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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시

나의 실존주의 앙가주망 (3), 나의 무비즘 (5) 생의 프리즈 ― 절규 / 박석준 나의 시 5 생의 프리즈 ― 절규 나의 무비즘 (5), 실존주의 앙가주망 (3) 1973 / 1989-09-09 박석준 / 생의 프리즈 ― 절규* 70년, 중1 나는 짝 현기, 영주·상우와 새 친구가 되었다. 넷은 함께 외국영화를 보고, 공원으로 걸어가 놀았다. 중2에 진급하면서 가세가 기울었다, 태섭을 처음 만났다. 겨울에도 도시락 반찬은 갓김치나 고추장이었다. 빈 도시락인 날에는 점심시간이 되면 교실에서 나갔다. 겨울 낮에 돌아와 내 책상에 든 튀김닭을 보고, 태섭이……? 생각에 2주 전에 짝이 됐을 뿐이라 번민했다. 납부금을 독촉해서 며칠간 결석한 나를 담임이 불렀다. 뒷집 사는 친구 국민학교 1학년 때 짝 국주에게 권했다. 네 돈으로 공원 옆 양림동 헌책방에서 교과서 사주라고. “됐어. 사줬다고 .. 더보기
나의 실존주의 앙가주망 (30), 나의 무비즘 (35) 꽃 / 박석준 나의 시 37 꽃 나의 실존주의 앙가주망 (30), 나의 무비즘 (35) 1989-09-01 박석준 / 꽃 강당엔 이백 명쯤 될 학생이 몇 그룹이 노래연습을 하고, 한 그룹이 무대작업을 하고, 한 그룹이 논의하고 있다. 9월이 온 날, 나뭇잎들은 푸르다, 강당 안을 휘둘러본 9인이 강당 앞 나무들 사이로 걸음들을 뿌리고 있다. “어제 데모를 해서, 학교에서 붙잡고 있는 것 아닐까요?” “어디라도 올 애들인데, 바로 옆에서 행사를 하는데….” 전날, 자취방으로 밤늦게 ‘그 애’가 찾아왔다. 새로 온 고문(古文) 선생의 수업을 거부하고 지난 시절의 선생에게 수업(受業)하려고 뛰쳐나간 3학년 ‘그 애’ 반이 학교 앞 3거리에서 전경들의 저지로 1시간 넘게 농성 시위를 벌이다가 학교로 돌아간 사건을 전했다. “.. 더보기
나의 무비즘 (34), 실존주의 멜랑콜리 (1), 앙가주망 (28) / 일상 2 ― 89. 8. 29의 비 / 박석준 나의 시 36 일상 2 ― 89. 8. 29의 비나의 무비즘 (34), 실존주의 멜랑콜리 (1), 앙가주망 (28)1989-08-29박석준 /원작>일상 2 ― 89. 8. 29의 비    장면(場面) 같은 오늘,  비가 오고  내가 가는 길 속으로  우수가 들어섰다.  비는 전날에도 왔었건만  세월이 흐를수록 비는  슬픔으로 흘렀던가 싶다.   비, 비가 오고 나서  빗속을 사람들은 갔었고  비는 사람들을 스몄건만  나는 빗물을 따라 귀가하고 있었다.  나는 빗물에 스며 간 사람도 비를 피해 간 사람도  아니려 한 채  말없이 실내(室內)의 사정(事情)을 새기면서   비! 빗속에 흔들거리는 세 개의 실내……  내가 8시간의 몸을 팔며 수업을 했던 교실과  소.. 더보기
나의 실존주의 앙가주망 (27), 리얼리즘 (5), 나의 무비즘 (33) 바람에 종이 한 장 / 박석준 나의 시 35 바람에 종이 한 장 나의 실존주의 앙가주망 (27), 리얼리즘 (5), 나의 무비즘 (33) 1989-08-02 박석준 / (원작 오교정 시집) 바람에 종이 한 장 18일, 1급 정교사 자격 연수를 받으러 전남대로 갔으나, 전교조 가입 교사는 제외한다는 말을 들었으나 스스로 포기하고 싶지는 않아서 투쟁을 했다. 7월 21일에 돌아왔는데, 교무실 바깥 벽에 징계 의결 요구 사유서가 붙어 있었다. 89.6.19 이후 계속 2, 3층 교실 벽과 미술실 복도 벽에 정부 규탄, 교직원노조 탄압과 교직원노조 사수와 투쟁의 내용인 대자보를 부착하여 학생들의 89.7.7 옥외 집단 소요를 야기케 하였으며 이로 인해 당일 실시키로 한 1학기 말 고사를 실시 못 해 학사 일정에 차질을 가져오게 하였음. 10.. 더보기
나의 실존주의 앙가주망 (26), 리얼리즘 (4), 나의 무비즘 (32) 단식 수업 그리고 철야 농성 / 박석준 나의 시 34 단식 수업 그리고 철야 농성 나의 실존주의 앙가주망 (26), 리얼리즘 (4), 나의 무비즘 (32) 1989-07-11 박석준 / (원작 최종교정: 탈퇴각서/긴급회의/직권면직) 단식 수업 그리고 철야 농성 노조 가입 교사 단식 수업 및 교내 농성을 계획·실행하라는 본조의 지침이 내려왔습니다. 생각을 말씀해 주세요” 7월 11일 2교시가 끝난 쉬는 시간, 긴급 모임에서 윤보현 분회장의 말이 매우 실감나게 전해진 것 같았다. “빨리 농성 체제로 들어가는 게 수라면 수제.” “아따, 마빡도 요런 때는 머리가 상당히 잘 돌아가네.” “허허, 그런께 마빡이제.”라고 7·9 대회 참가자 김종대, 강선, 김재일 선생이 말했다. 분회는 11일부터 무기한 제2차 농성투쟁을 한다는 것과 단식 수업과 철야 .. 더보기
나의 실존주의 앙가주망 (25), 리얼리즘 (3), 나의 무비즘 (31) 7·9대회 / 박석준 나의 시 33 7·9대회 나의 실존주의 앙가주망 (25), 리얼리즘 (3), 나의 무비즘 (31) 1989-07-09 박석준 / (원작 교정: 3시경) 7·9대회 7월 8일 저녁 7시, 전 조합원 32명이 학교로 돌아왔다. 1층인 미술실에서 전 조합원 긴급회의가 진행된 후, 합법성쟁취 범국민대회에 참가할 19명만 남았다. “지금부터 출정식 겸 전야제의 시간을 갖기로 하겠는데, 우선 이 문건들루터 숙독해주시기 바랍니다.” 김성진 선생의 말에 사람들은 행동지침을 숙독해갔다. 전원 연행 각오할 것, 상황에 따라 묵비권을 행사할 것, 소속 신분을 밝히지 말 것 등을 외우고, 출정식 및 전야제의 행사로 들어갔다. 토요일 밤 10시에. 불을 끈 미술실에 19명이 초에 불을 붙여 빛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19인이 자.. 더보기
나의 실존주의 앙가주망 (24), 리얼리즘 (2), 나의 무비즘 (30) 속보, 나의 길 ― 존재함을 위하여 / 박석준 나의 시 32 속보, 나의 길 ― 존재함을 위하여 나의 실존주의 앙가주망 (24), 리얼리즘 (2), 나의 무비즘 (30) 1989-05-14 ⁓ 1989-06-19 박석준 / 속보, 나의 길 ― 존재함을 위하여 가지 않으면 길이 생기지 않는다. 5월 14일, 16명이 먼 곳에서 전남대까지 왔는데, 장학사와 교장과 교감이 정문 봉쇄로 길을 막았다. 나는 기어이 광주·전남 지역 노조 발기인대회장으로 갔다. 5월 28일, 아침 7시경 대절 버스가 목포에서 떠났다. 오후 1시에 전교조 결성대회가 개최될 한양대를 향해서. 결성대회를 원천 봉쇄할 거라는 뉴스를 들었기에, 더욱 한양대로 가야 한다는 심정이 절실해서. 일로에서 전경이 10시를 넘길 때까지 길을 막아 광주 진입로에서도 길을 막아 12시를 훨씬 넘겨버렸.. 더보기
나의 실존주의 앙가주망 (23), 나의 무비즘 (29) 4월 그 가슴 위로 / 박석준 나의 시 31 4월 그 가슴 위로 나의 실존주의 앙가주망 (23), 나의 무비즘 (29) 1989-04 / 1989-05 / 1990 박석준 / 4월 그 가슴 위로 오전인데, 교실의 아이들이 나하고 인사를 나누었을 뿐 말없이 앉아 있다. 4·19라 그런가, 란 생각이 들 정도로. “오늘이 4·19인데, 내가 노래 하나 불러줄까?” “예.” 예전과는 달리, 짧게 반응했을 뿐 움직임도 말도 거의 흐르지 않은 조용함, 침울함을 1분쯤 느껴본 뒤, 나는 목소리를 흘려갔다. “이젠 우리 폭정에 견딜 수 없어 자유의 그리움으로…… 사월 그 가슴 위로…… 통일의 염원이여.” 박수 소리가 흐르는데, “한 번 더 불러주세요.” 하는 소리가 여러 곳에서 났다. 나는 다시 라는 노래를 불러주었다. “선생님의 잔잔한 목소리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