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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시

나의 실존주의 모더니즘 (2) 어머니의 신음 소리를 듣고 / 박석준 나의 시 23 어머니의 신음 소리를 듣고 나의 실존주의 모더니즘 (2) 1985-10_초순 박석준 / 어머니의 신음 소리를 듣고 내게 비지는 반복, 그걸 볼 때마다 마음이 애틋해지지만 그래서 진실되게 여겨진다. 반복됨이야말로 간단한 형식이고 그 속에 사정事情이 내게 닿아, 내가 도망치듯 말을 잃어도 배반인지 알 수가 없다. 오늘도 집을 나서고 집에 돌아와 선 것이 시계처럼 나는 똑같았지만 그렇다고 허름한 모습의 동생 둘, 이웃집에서 차비 빌려 목포까지 일하러 가 있던 나 다만 맥없이 지친 모습은 아니어야 했는데. 끄응 끙, 으음 음 돈 없어서 신음 소리가 이렇게 약할까. 어머니의 신음 소리를 듣고 내게 비지는 반복, 그걸 알 때마다 나 분리되고 싶어 배반인지 알 수가 없다. 살아야 한다는 의식만이 뚜렷이.. 더보기
나의 초현실주의 (2), 나의 무비즘 (21) 흙 / 박석준 나의 시 21 흙 나의 초현실주의 (2), 나의 무비즘 (21) 1985-10_초순 박석준 / 흙 ― 마음과 시공간의 잔상 0 불빛…… 빈가…… 골목길 …… 골목길, 길이 막히었다. 빈틈이 적게 난 구멍으로 기어들어갔다. 말소리 들려오는 곳을 피하고 담을 넘는다. 한숨 사이로 거짓이 지붕, 지붕을 타고, 빈터까지 살금살금 기어내린다. 덜 포장된 길이다, 돌·흙·먼지·쓰레기…… 하룻밤, 얼굴은, 건너 건너, 와서 말했다. 돈, 돈으로 돌고 상(像), 상(像)으로 상(傷)해 내 육신 떨어져도 발, 발만이 가고 싶지 않아. 얼굴, 얼굴은, 잘 알 수도 없는 말을 하면서…… 돌아왔다, 하루는, 야산에서, 흙, 먼지, 쓰레기 있는 곳에서 비명이 퍼지고, 얼굴은 눈을 뜬 채, 숨을 쉬지 않았다. 얼굴, 얼굴…… 피.. 더보기
나의 무비즘 (20) 시간 속의 아이 ― 테를 돌리는 아이 / 박석준 나의 시 20 시간 속의 아이 ― 테를 돌리는 아이 나의 무비즘 (20) 1985-09_하순 박석준 / 시간 속의 아이 ― 테를 돌리는 아이 한 아이가 고무로 만든 테(hulla-hoop)를 다리에 두르고 놀고 있었다. 귀가하던 나는 그 정경을 바라보고 있었고……. 아이가 움직이는 뒤로, 어두워지는 집들과 해가 지며 노을이 지는 하늘이 있었다. 길이 갈리는 곳의 모퉁이를 돌아 내가 제 옆으로 점차 가까워져 가고 있었는데, 아이는 주의하려 하지 않은 채, 그저 놀고 있었다. 진갈색의 바지와 흔하게 볼 수 있는 하늘색 웃옷이 찌푸린 석양에 한 템포를 채우고 있었다. 아이의 몸은 내 눈을 따라 굴러갔고, 시간을 따라 굴러갔고, 거기 갈리는 지점,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애야, 그만 놀고 어서 와서 밥 먹어.. 더보기
나의 무비즘 (19), 실존주의 앙가주망 (14) 푸른 하늘 푸른 옷 ― 슬프고 아이러니컬한 날 / 박석준 나의 시 19 푸른 하늘 푸른 옷 ― 슬프고 아이러니컬한 날 나의 무비즘 (19), 실존주의 앙가주망 (14) 1985-05 박석준 / 푸른 하늘 푸른 옷 ― 슬프고 아이러니컬한 날 . 김남주 형(시인)이 광주에 수감되어 있을 때 형의 부인과 대학생인 나는 함께 면회하러 다녔다. 계림동 집이 방 두 개인데 형의 부인은 어머니와 함께 잤고, 남민전 사건 관련 가족인 내 또래의 남대생은 나하고 공부방에서 잤다. 우리 집안엔 두 사람이 서로 다른 곳에서 수감 중이고 면회 인원은 3인으로 제한되어서, 누군가 세 사람씩 큰형과 삼형 면회를 따로따로 가야 했는데, 광주항쟁 나기 전까지는 윤한봉 형(민주화운동가)이 면회비(영치금)를 구해 주기도 했다. 광주항쟁이 끝난 후에는 이학영 형과 김세원 선생이 많은 도움을 주.. 더보기
나의 무비즘 (18), 실존주의 앙가주망 (13) 그 술집 / 박석준 나의 시 18 그 술집 나의 무비즘 (18), 실존주의 앙가주망 (13) 1985-04 박석준 / 그 술집 85년 4월 중순의 어느 날, 퇴근할 무렵 김재일 선생이 알려준 구 터미널 옆에 있다는 술집을 찾아갔다. 5시 반, 약속 시간에서 10분이 지났다. 나는, 그가 작년 여름방학 때 광주로 찾아와준 일이 이미지로 남아서 만남을 수락했을 뿐, 그 후 아무런 만남 없는 사이여서, 더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다. 그럼에도 그냥 가버릴 수도 없어서, 마음을 다잡았다. 문을 여는 소리에 나는 시선을 던졌다. “김재일 선생하고 윤보현 선생도 곧 올 거요.” 라고 지학 선생이 자기가 나타나게 된 사유를 말하더니 자신의 건강함과 그 비결이 냉수마찰과 등산에 있다고 말하고 내 몸을 걱정했다. 막걸리를 서로 간에 서너 잔째.. 더보기
나의 무비즘 (17), 실존주의 앙가주망 (12) 아버지 ― 무너진 집 / 박석준 나의 시 17 아버지 ― 무너진 집 나의 무비즘 (17), 실존주의 앙가주망 (12) 1984 / 1985-02 박석준 / 아버지 ― 무너진 집 우리 식구들은 계림동 우리집을 잃고, 털고 남은 돈으로 1982년 1월에 중흥동 장원여관을 빌렸다. 수감된 형들에게 넣을 영치금이라도 벌고 싶은 61살 아버지는 광주항쟁이 끝난 후에 62살에 송정리의 달방에서 살면서 수레를 끌고 고물을 주워 팔았다. “사람은 정직해야 하지.”라고 중1 나에게 새겨주었는데, 내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인 1983년 1월경에 장원여관으로 돌아왔다. 나는 몸이 몹시 허약하고 아프지만 우리 식구들 중 유일하게 대학을 졸업한 까닭에 직장을 구해야만 했다. 나의 누나는 간첩의 집안이라고 몇 년 전에 시댁에서 두 애를 데리고 쫓겨나 여관 근처 .. 더보기
나의 무비즘 (16), 실존주의 리얼리즘 (1) 아픈 수업 / 박석준 나의 시 16 아픈 수업 나의 무비즘 (16), 실존주의 리얼리즘 (1) 1983-11-하순 박석준 / 아픈 수업 . 「아픈 수업」은 자서전적 시집 『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에서 「한순간만이라도 이미지를」 사건(1978-11 / 1983-11-중순 사건) 다음에 일어난 사건을 담고 있다. 중간고사가 끝난 후의 11월 중순, 어느 오후였다. “뭐라고? 수업을 조금만 하자고?” 내가 묻는데, “선생님, 그렇게 해줘요. 날씨가 너무 좋아요.” “쉬고 싶을 때는 쉴 수도 있어야 한다고 했잖아요?” 아이들의 말이 쏟아져 나왔다. 2학기 시작된 후로는 ‘그’가 1주일에 두세 번 나타나 주로 복도에서 지켜보고 갔다. 게다가 주마다 한 번 이상 “법적으로 금지한 거니 통근 그만하시오.”, “통근한다.. 더보기
나의 무비즘 (15), 실존주의 앙가주망 (11) 먼 곳 2 ― 프리즈 프레임 / 박석준 나의 시 15 먼 곳 2 ― 프리즈 프레임 나의 무비즘 (15), 실존주의 앙가주망 (11) 1983-04 박석준 / 먼 곳 2 ― 프리즈 프레임 . 나는 선생을 해서는 안 될 정도로 허약한 불안한 몸이었지만, 가난하고 나의 형들이 수감돼 있고 “안기부”는 나를 통제하고 있어서, “언젠가 ‘어디를 찾아가야 하나?’라는 문제에 부딪칠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이었지만, “목련꽃”처럼 고귀한 존재로 살아가고 싶었지만, “나는 무엇이어야 하는지…” 고민했지만, “어머니의 슬픈 눈”을 보았기 때문에 “먼 곳”에 머물렀다. 그것이 선생으로 먹고사는 내 인생이 되었다. . . 먼 곳 2 ― 프리즈 프레임 1 먼 곳에 근무하러 갈 나를 5시 반경에 깨우고 이내 어머니가 여관방에서 나갔다. 눈과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