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16 아픈 수업
나의 무비즘 (16), 실존주의 리얼리즘 (1)
1983-11-하순
박석준 /
아픈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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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수업」은 자서전적 시집 『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에서 「한순간만이라도 이미지를」 사건(1978-11 / 1983-11-중순 사건) 다음에 일어난 사건을 담고 있다.
중간고사가 끝난 후의 11월 중순, 어느 오후였다.
“뭐라고? 수업을 조금만 하자고?” 내가 묻는데,
“선생님, 그렇게 해줘요. 날씨가 너무 좋아요.”
“쉬고 싶을 때는 쉴 수도 있어야 한다고 했잖아요?”
아이들의 말이 쏟아져 나왔다.
2학기 시작된 후로는 ‘그’가 1주일에 두세 번 나타나
주로 복도에서 지켜보고 갔다. 게다가 주마다 한 번 이상
“법적으로 금지한 거니 통근 그만하시오.”,
“통근한다고 학부형들이 전화가 잦단 말이오.”
라는 식으로 교감이 압박을 가중시켰다.
20분쯤 수업을 하고 나자, 아이들이 운동장 쪽 벽을
지름으로 하는 반원형의 공간을 만들어냈다. 거기에는
따사로운 햇볕이 쏟아지고, 창밖으로는 가을과,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른 하늘이 흐르고 있었다.
애들은 반원형의 교실 바닥과, 그 둘레에 포개어진
책상이나 의자에 올망졸망 앉았다.
“노래 한 곡 듣고 싶어요.” 소리에, 나는 교탁 옆에서
반원형의 공간으로, 애 둘은 망보러 교실 문가로 갔다.
“눈을 감고 걸어도 눈을 뜨고 걸어도 … 보고 싶은 얼굴.
거리마다 물결이 거리마다 발길이…….”
전날 또다시 눈에 통증이 오고 얼굴 주변에 종기가 나서
7시경 학교를 빠져나와 충장로의 약국에 갔다가, 수많은
사람들을 느끼며 귀가 중 불빛에 불현듯 형들의 얼굴이
떠올라, 가슴이 뭉클해져 가만히 흥얼거린 그 노래였다.
― 나의 무비즘 (8) 박석준, 「한순간만이라도 이미지를」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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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보려면 →
https://blog.naver.com/poorrain21/22323073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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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무비즘 (16)
1983-11-25(금)?
박석준 /
아픈 수업
그 나흘 후 새벽 5시 반경에 어머니가
“어쩔 거나! 그렇게 눈이 아파서!”
란 말과 슬픈 눈을 건네어, 나는 아픈 눈을 껌벅였다.
공용터미널 안에 줄 서 있는 게 일상이 된
어머니는 곧 여관 방문을 나섰다.
월요일 밤 충장로의 약국에서 처방한 약으로 얼굴과
목덜미에 난 종기들은 다소 가라앉았는데,
목요일 7시에 다시 학교에서 빠져나와, 귀가하는 밤길에
동네 약국에서 안정제·소염제·안대를 샀는데,
새벽에 일어나 보니 충혈된 눈에 다래끼만 커져 있었다.
게다가 11월의 새벽 찬바람이 공용터미널을 향해 걷는
나를, 내 안경 속으로 스며들어 다래끼를 눈알을 건드려
눈을 떴다 감았다 하게 몸을 비틀거리게 하였다.
교실에선 수업하려고 학생에게도 시선을 주어야 했지만,
교무실에선 눈을 쉬고 싶었다. 그러나 자리에 앉자마자
“다랏 났네! 눈알이 빨갛구만. 안과에 가보시제.”
화학 선생이 불쑥 말을 건네서, 눈을 껌벅여야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생물 선생이 나를 부르고 다가와
“안대를 끼시제. 끼웠다 뺐다 하면 더 안 좋을 것인디.”
라고 말을 걸었다. “좀 답답해서.”란 말을 그는 버렸다.
“오른쪽 눈이 힘이 없어 보이요. 초점이 안 맞는 것 같고
눈알에 파란 기가 있는데, 혹시 의안 아니오?” 했다.
“전에 백열등 밑에서 공부해 갔는데, 눈이 열을 받았는지
아프더니 그렇게 된 겁니다.” 했으면, 가야 할 텐데,
“그러요? 보는 덴 지장 없고?” 하여 심장 뛰게 했다.
책상도 농도 들여놓지 못한, 여섯 식구가 벽에 기대어
자는, 창 없는 좁은 방에서 겨울방학에 백열등 아래 서서
공부하다 눈을 다쳤다. 쌀도 돈도 없어 휴학만 했던 나는
사실대로 말하지 않는 건 싫었지만 “네.”라고 답했다.
학교에서 알게 되면 나는 그만두어야 한다는 생각에.
오후 우리 반에서 수업을 하고 있는데 5분도 안 되어,
며칠 만에 교실 뒷문을 열고 ‘그’가 들어왔다.
수업 내용보다 눈이 아프다는 것에서 불안감이 일었다.
‘한 눈 없는 어머니’라는 수필을 수업하려고 국어 책을
펼쳐 든 채 칠판 앞에서 왔다 갔다 하며 눈을 껌벅이며
“그려달라는 ‘눈’에서 어떤 생각이 일어났습니까?”
물었으나 활기를 잃은 아이들의 얼굴이,
맨 뒷자리에 앉아 감시하는 ‘그’의 모습이, 나의 모습이,
20여 분 시간 속 어느 순간들에 새겨졌다.
‘아파도 아픔을 드러내서는 안 되는, 아파도 쉴 수도
조퇴할 수도 결근할 수도 없는 나! 나를 둘러싼 사정!
눈알이 가렵고 콕콕 찌르듯 아픈데, 안대를 할 수 없는
나의 지루하고도 절실한 사정!’
‘그’가 참관하고 간 뒤에도 수업을 하는 교사와 학생
사이가 불안하고 불만스럽고 어두웠다. 그런데 수업한 지
30분쯤 된 시각에 ‘그’가 교실에 다시 나타남으로써,
교실은 긴장 상황으로 변했다. ‘모두가 상황과 관계
속에서 지쳐버린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15분쯤 있다 갔지만 곧 끝종이 울렸다.
다시 시작종이 울렸고 1주에 30시간 혹은 40시간을
수업하러 가야만 하는 나는 교무실에서 빠져나갔다.
전 시간 같은 상황에 또다시 빠지게 될까 두려워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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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8 밤 ∽ 2020.04.23. 14:28 <원작 원본>
= 시집_『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20.05.25. 푸른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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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상황:
1983-11-25(하순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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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객관적 해석
「아픈 수업」은 “나”의 “눈”과 「한 눈 없는 어머니」라는 수필과 ‘그’의 “참관(어떤 모임이나 행사 등을 참가하여 지켜봄)/감시” 등 ‘눈’에 관련된 3가지 사정(事情: 일의 형편이나 그렇게 된 까닭)을 시 형식으로 쓴 글이다. 시공간이 이동함에 따라 상황으로 나타난 사람들이 “나”에게 상황에 적절한 행동을 찾게 함으로써 서로에게 긴장과 불안과 어색함(‘모두가 상황과 관계 속에서 지쳐버린 것만 같다.’)을 이상하게 펼쳐내는 일을 무비즘 기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글의 ‘ 백열등’은 ‘불안과 통증’을 의미하는 개인적 상징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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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열등’ 상징
만화 등의 묘사에서 새롭고 참신한 아이디어가 떠오름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백열등이 자주 쓰인다. 하지만 나의 글에서는 ‘불안 혹은 통증을 가져오는 매체’로 사용되었다. “그 안의 백열전등 불빛 아래 장미꽃처럼 빨간 준수한 얼굴에 코트 깃을 세운 사람, 그 옆에 놓인 빨간 장미./ 그 옆에 서점 상윤 형이 전해주라는 검은 가방을 놓았다.”(「장미의 곁에 있는 두 얼굴」)가 그 한 예이다. 백열등은 열에 의해 빛을 내기 때문에 색온도도 낮고 붉은색을 띠는데, 이 ‘열’과 ‘붉은색’이 나의 의식에 ‘통증’과 ‘불안’의 심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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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밖 실화
나는 ‘수업’을 제목에 넣어 3편의 글(「아픈 수업」, 「단식 수업 그리고 철야 농성」, 「침묵 수업」)을 썼다. 이 중 「아픈 수업」은 나와 관련하여 983년 11월 중순에 실제로 일어난 일을 시 형식으로 쓴 글이다.
1983학년도에 나의 정규 수업시간은 주 25시간이었지만, 아침이나 저녁에(혹은 아침저녁에) 각 5시간인 보충수업을 하고, 2학기 때엔 후반(6반부터 10반) 국어 선생이 과다한 수업에 어려워하다가 돌연 그만두었던 까닭에 5개 반을 1시간씩 수업하게 되어 주 40시간 수업을 하는 날이 꽤 있었다.
나의 눈이 1976년 1월 어느 날 ‘백열등’ 아래 서 있던 도중부터 매우 불안한 상태가 되었다. 조금 과로하면 눈에 통증이 왔다. 때문에 나는 눈을 조심하면서 살아갔다.
건강해져야 할 텐데, 눈 조심하고……. 빨간 장미를 든 나는 집 쪽으로 걸었다. 간혹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 박석준, 「장미의 곁에 있는 두 얼굴」에서
통증이 와도 안대로 가릴 수도 결근을 할 수도 없다.
교육관이 뭐냐고? 글쎄요.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했을 뿐.
― 박석준, 「국밥집 가서 밥 한 숟가락 얻어 와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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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눈 없는 어머니/이은상
자료출처
https://m.cafe.daum.net/Essayyoungdae/PdHW/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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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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