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18 그 술집
나의 무비즘 (18), 실존주의 앙가주망 (13)
1985-04
박석준 /
그 술집
85년 4월 중순의 어느 날, 퇴근할 무렵 김재일 선생이
알려준 구 터미널 옆에 있다는 술집을 찾아갔다.
5시 반, 약속 시간에서 10분이 지났다.
나는, 그가 작년 여름방학 때 광주로 찾아와준 일이
이미지로 남아서 만남을 수락했을 뿐, 그 후
아무런 만남 없는 사이여서, 더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다.
그럼에도 그냥 가버릴 수도 없어서, 마음을 다잡았다.
문을 여는 소리에 나는 시선을 던졌다.
“김재일 선생하고 윤보현 선생도 곧 올 거요.”
라고 지학 선생이 자기가 나타나게 된 사유를 말하더니
자신의 건강함과 그 비결이 냉수마찰과 등산에 있다고
말하고 내 몸을 걱정했다. 막걸리를 서로 간에
서너 잔째를 따른 때였다.
“아이고,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한 김 선생을, 이어 들어와 시선이 마주치자
“박 선생, 정말 미안하요.” 하는 윤 선생을 보게 되었다.
지학 선생이 내 곁으로 자리를 옮긴 뒤, 마주보는
두 사람에게 술을 따랐다.
“미안하요. 미리 말하면 응해주지 않을 것 같아서.
두 분이 이야기를 풀어가면 좋을 것 같소.”
나는 김 선생의 말에 상황이 배제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요?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가자는 겁니까?”
학기초의 일이 떠올라 나의 목소리는 조금 떨고 있었다.
“아무리 박 선생님이 말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이거는
너무 불공평해요. 어떤 사람은 해마다 국어, 현대문만
맡는데, 박제 선생은 2년씩이나 국어책을 못 잡아보니!
나는 고문이라도, 국어 그림자라도 밟으니까 나은 거죠.”
여선생이 찾아와 말했다. 2년째 한문만 가르치는 나에게.
“이미 지나쳐버린 일로 두 분 다 마냥
괴로워하고만 지낼 수는 없지 않소?”
나의 말에 먼저 반응을 보인 사람은 김 선생이었다.
내가 무능해서 ‘그’가 취한 조치라고 생각했는데,
학력고사에 한문 과목이 6문제만 출제되는 걸 아는
아이들은 곧 한문과 한문 선생인 나를 소원했다.
어머니는 쫓아내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여기라고,
몸이라도 덜 아플 것이니 다행이라 여기라고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서 멀어져가는 것에 안타까웠지만.
“내가 괴롭다고 하던가요? 지나쳐버린 일이라고요?”
내 말이 떨어지자 윤 선생이
“그건 김 선생이 말을 잘못한 거요.”라 말하고는,
“박제 선생한테 괴로움을 주고 만 것 같아 죄송스럽고,
또 내 자신이 잘못한 것 같아 괴롭기도 하고…….”
하여, 나를 복잡한 감정의 넝쿨 속으로 빠져들게 하였다.
“내년에는 절대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소. 믿어주시오.”
나는 괴로웠다. 그도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이 싫었다.
“믿어요. 생각이 있으면 이보다 더 좋은 만남이 있을
거라는 걸. 저는 가겠습니다. 술기운도 올라오고.”
그 후 87년 9월 광주·전남지역 교사협의회가 결성된 날
결성식 직후 광주 전일다방에서 윤 선생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89년에 윤, 김 포함 9인이 해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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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9 오후 8:33 ∽ 2020.04.13. 11:58 (약속 시간을) (초고)
∽ 2020-04-23. 14:28 (약속 시간에서) <원작 원본>
= 시집_『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2020.05.25. 푸른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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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상황:
1985-04, 구 터미널 근처(시장 근처) 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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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시집과 관련한 해석
1983년 4월에 모순된 현실을 만들어낸 것이 “안기부”와 “나”, “형들의 민주화운동(남민전 사건)” 그리고 ‘그’였다 하더라도, “나(박제)”가 어지럽고 어려운 처지에 놓인 것은 “나”의 부족함 때문이었다. 어떻게 해소해야 할 텐데,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이런 생각이 들었으나, “나”는 ‘도리불언하자성혜(桃李不言下自成蹊): 복숭아와 오얏은 말을 하지 않지만, 그 나무 밑에는 길이 저절로 생긴다.’란 길을 택했다. 그리고 2년이 흘러간 후에야 사람들이 “나”에게로 왔다. 우리는 진실된 말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황을 접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술집」에 대해 ‘이 글은 어려운 처지를 극복하려는 한 교사의 삶의 의지에 초점을 두었다.’고 해석했다면 그것은 세상에 대한 안목의 정교함이 부족한 데서 연유한 것이다. 이 글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이 글이 실린 자서전적 시집 『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에 나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날 “나”와 “교사들” 간의 모순이 해소됨으로써 ‘먼 곳’의 교사들은 전남민주교육추진 교사협의회 창립(1987.09.27.)과 전교조 건설(1989.05.28.)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 술집」은 실제로 현실(일어난 사건과 사정)을 그대로 묘사·재현하려고 쓴 리얼리즘에 바탕을 둔, 시공간을 이동한 무비즘 기법이 사용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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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즘
리얼리즘(Realism)은 근현대 예술의 한 부류로 일반적으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재현하려고 하는 창작 태도이다. 리얼리즘을 일단 “사실주의”로 번역하긴 하지만, 사실 “현실주의(現實主義)” 등 다양하게 번역될 수 있다
― 나무위키
https://namu.wiki/w/%EB%A6%AC%EC%96%BC%EB%A6%AC%EC%A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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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즘
리얼리즘은 경험적인 현실을 유일한 세계 · 가치 · 방법으로 인식하려는 문예사조이다.
사실주의(또는 현실주의)는 res(실물)에 어원을 둔 realism의 역어이다. 경험적인 현실 외의 이상적·초월적 세계의 존재 증거가 없다고 보는 일원론적 세계관에서 진리나 진실, 미학적 가치, 예술창작의 방법 등을 뭉뚱그려 통칭한다. 따라서 이상주의적 경향(고전주의·낭만주의·심미주의 등)과 자의식(自意識)의 절대성 및 회의주의를 바닥에 깔고 있는 모더니즘(modernism)과 대립된다.
리얼리즘은 ‘당대 사회의 객관적 묘사’로 보는 19세기의 근대 리얼리즘(사실주의, 자연주의)과, 사회적 변혁 이데올로기와 결합된 리얼리즘(변증법적 리얼리즘,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두 갈래로 대별할 수 있다. 19세기의 리얼리즘은 당대 사회현실의 객관적 묘사, 또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의 반영을 특색으로 한다.
현실의 본질이 바로 모순이며, 그 모순의 극복이 리얼리즘의 핵심이므로, 1980년대에 이르러 모순의 근원을 사회의 여러 국면에서 다양하게 추구한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5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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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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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09.04. 전남민주교육추진 교사협의회 창립_광주YM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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