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20 시간 속의 아이 ― 테를 돌리는 아이
나의 무비즘 (20)
1985-09_하순
박석준 /
시간 속의 아이
― 테를 돌리는 아이
한 아이가 고무로 만든 테(hulla-hoop)를 다리에 두르고 놀고 있었다. 귀가하던 나는 그 정경을 바라보고 있었고……. 아이가 움직이는 뒤로, 어두워지는 집들과 해가 지며 노을이 지는 하늘이 있었다. 길이 갈리는 곳의 모퉁이를 돌아 내가 제 옆으로 점차 가까워져 가고 있었는데, 아이는 주의하려 하지 않은 채, 그저 놀고 있었다.
진갈색의 바지와 흔하게 볼 수 있는 하늘색 웃옷이 찌푸린 석양에 한 템포를 채우고 있었다. 아이의 몸은 내 눈을 따라 굴러갔고, 시간을 따라 굴러갔고, 거기 갈리는 지점,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애야, 그만 놀고 어서 와서 밥 먹어. 어서,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의 정경이 추억같이 사라졌다.
아이의 시들하고 쉬운 몸짓은 나를 그곳에 퍼져 앉게 했다. 나는 길을 찾아 헤매는 사람처럼 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고관절로 다리를 잘 못 쓰는 어머니가 나를 불러, 오늘은 빨리 왔구나, 배고프겄다, 어서 밥 먹어라, 하는 소리에 나는 사라진 정경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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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7-13 ∽ 2008-09-06 <원작>
→ 2013-01-06 오전 6:01 박석준-시집 최종본 2013년1월5일-2(내가 모퉁이로 사라졌다가).hwp
<수정작 원본>
= 시집_『카페, 가난한 비』(2013.02.12. 푸른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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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2008-09-06
시간 속의 아이
― 9월이 다 갈 무렵의 어느 날 오후
굴레! 한 아이가 고무로 만든 테(hulla-hoop)를 다리에 두르고 놀고 있었다. 귀가하던 나는 그 정경을 바라보고 있었고……. 아이가 움직이는 뒤로, 어두워지는 집들과 해가 지며 노을이 지는 하늘이 있었다. 그 길이 갈리는 곳의 모퉁이를 돌아 내가 제 옆으로 점차 가까워져 가고 있었는데, 아이는 주의하려 하지 않은 채, 그저 굴레 속에서 놀고 있었다.
굴레! 굴레 속이었건만, 제 뜻대로 활동하고 있어서? 진갈색의 바지와 흔하게 볼 수 있는 하늘색 웃옷이 찌푸린 석양에 한 템포를 채우고 있었다. 그 아이의 몸은 내 눈을 따라 굴러갔고, 시간을 따라 굴러갔고, 거기 갈리는 지점,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또다시 일상을 재생하는데, “애야, 그만 놀고 어서 와서 밥 먹어. 어서.” 소리가 들렸다. 아이가 굴레에서 다리를 빼내자 굴레 놀이를 하는 정경이 추억같이 사라졌다.
시들하고 쉬운 몸짓이 나를 퍼져 앉게 했다. 나는 길을 찾아 헤맨 사람처럼 겨우 집으로 돌아갔다. 고관절로 다리를 잘 못 쓰는 어머니가 나를 불러 “오늘은 빨리 왔구나. 배고프겄다. 어서 밥 먹어라.” 라는 소리로 이미 사라진 정경을 재생해 냈다. 그때 반복으로 지쳐 가는 일상에서도 때로 산뜻함이 뿌려질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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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7-13 ∽ 2008.09.06. 10:50. 박석준-08종합1.hwp <원작>
= 2009-03-03 오전 11:19. 박석준-나의시론(논문)-1.hwp (원작 원본)
= 『석사학위 작품집』(20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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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상황
1985-09-하순
(초고를 1985년 9월이 다 갈 무렵의 어느 날 오후 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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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해설
비극적 주체의 절망과 희망
― 박석준 시집 『카페, 가난한 비』에 대하여
박석준의 시 「카페, 가난한 비」는 예의 비극적 정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주관적 화자의 상념을 고백적으로 진술하기보다는 객관적 인물의 행위를 독백적으로 진술하고 있다고 해야 옳다. 이는 그의 시 「시간 속의 아이 ― 테를 돌리는 아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시에는 우선 “고무로 만든 테”, 곧 훌라후프를 돌리며 놀고 있는 아이와, “귀가”를 하며 “그 정경을 바라보고 있”는 나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 구절에 진술되어 있는 대상은 상대적으로 객관적이라서 겉으로는 시인의 주관적 정서가 일정 정도 배제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들 대상에 대한 시인의 태도는 2연에 이르면서 다소 흔들리기 시작한다. ‘아이와 나’라는 이 시의 중심 대상에 대한 그의 정서가 2연에 이르러 좀 더 적극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아이의 몸은 내 눈을 따라 굴러갔고, 시간을 따라 굴러갔고, 거기 갈리는 지점,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와 같은 표현이 그 구체적인 예이다.
3연에서는 “아이의 시들하고 쉬운 몸짓”이 “나를 그곳에 퍼져 앉게 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퍼져 앉”아 있다가 그는 “길을 찾아 헤매는 사람처럼 겨우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들 구절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지금 망연한 삶, 멍한 시간에 빠져 있다는 점이다. 이는 어쩌면 그가 무위자연의 정신경지에 이른 것일 수도 있다. “어머니가 나를 불러, 오늘은 빨리 왔구나, 배고프겄다, 어서 밥 먹어라, 하는 소리에” 다시금 세계와의 객관적 거리를 회복하는 것이 그이지만 말이다.
무위자연이라고 했지만 이는 곧 무념무상에 빠진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세계와 미분리되어 있는 심리,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아무런 생각도 없”는 심리에 처한 것 말이다.
― 이은봉 시인, 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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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시집들과 관련한 해석
무기수인 큰형이 특별외출하여 은성여관으로 찾아온 날인 「푸른하늘 푸른 옷 ― 슬프고도 아이러니컬한 날」에서 이어지는 상황을 담은 글이 「시간 속의 아이」이다.
「시간 속의 아이」는 ‘먼 곳’에서 1985년 9월 말경에 퇴근한 28살인 귀가 중인 내가 광주에서 오후 7시가 되어가는 시간 무렵에 흘러가는 실제 상황을 있는 그대로 재현한 리얼리즘 기법으로 쓴 글이다. 귀가하는 나는 이 저녁 무렵에 은성여관 근처에 이르러서 우연히 훌라후프를 두른 채 놀고 있는 아이를 보게 되었다. 그러곤 아이가 사라졌는데 내가 은성여관에 돌아가자 똑같은 사정이 펼쳐졌다. ― (글에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아이의 엄마가 부르는 소리라고 여긴) “어서 와서 밥 먹어.”와 사정이 똑같은, “어서 밥 먹어라.”라는 어머니의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가 길에서 본 것(훌라후프)은 나에게 ‘굴레’를 연상시켰다. ‘(움직이는) 굴레’에서 ‘시간’이 튀어나왔고, 흐르는 ‘시간’에서 다시 ‘아이’가 튀어나왔다. 아이가 놀기 위해 두른 “고무로 만든 테”는 나에게 ‘굴레’(가난하고, 눈이 불안하고 몸이 몹시 허약한 나의 처지)를 떠올리게 했고 그러자 곧 내 마음에 밝음과 어두움이 동시에 흘러가게 했다. 나의 몸 때문에, 그리고 우리 식구들의 생계 해결에 내가 벌어오는 돈이 충당되어야 하는 가난 때문에, 나는 ‘먼 곳’에서 떠나 다른 일터를 찾는다는 결심을 하진 못했다. ‘어른이 된 나의 불안한 몸과 가난’, 이것이 나의 굴레였다.
나는 이런 생각(‘시간 속의 아이’라는 말엔 훌라후프로 노는 아이뿐 아니라 ‘시간 속의 아이로 돌아갈 수 없는 어른인 나 = 박석준’이 포함되어 있다.)을 하게 되어 글의 제목을 ‘시간 속의 아이’로 정했다. 아이와 아이의 훌라후프를 보고 ‘나의 삶의 굴레’ 또는 ‘아이로 돌아갈 수 없는 어른이 된 나의 삶에 굴레가 씌어진 시간’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날 이 시간에 ‘소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무념무상’에 젖고 싶은 마음이나 생각은 없었다. 아버지가 사망하고 5개월 후 1984년 9월엔 우리 식구들은 형편이 너무 어려워져 은성여관으로 거처를 옮겼는데, 이날 내가 귀가하는 길에서 해질 무렵에 아이가 놀고 있는 정경은 내 마음에 밝음(← “진갈색의 바지와 흔하게 볼 수 있는 하늘색 웃옷”)과 어두움(← “찌푸린 석양”/“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을 동시에 일으켜주었다.
「시간 속의 아이」에선 “아이가 움직이는 뒤로, 어두워지는 집들과 해가 지며 노을이 지는 하늘이 있었다. 길이 갈리는 곳의 모퉁이를 돌아 내가 제 옆으로 점차 가까워져 가고 있었는데”에서 무비즘 기법이 사용되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시공간의 이동과 시각적 심상이 혼합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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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화
나는 대학을 졸업했으나 몸이 매우 불안하고 허약해서 계속 구직에 실패했다. 그런데 1983년(26살) 3월에 요행히 ‘먼 곳’ 임시직 국어 교사가 되었다. 그렇지만 ‘내가 이곳에서 쫓겨난다면 나는 갈 데가 없다,’, ‘어떻게 살 것인가?’ 같은 생각을 수시로 하게 되었고 4월엔 생각도 못한 안기부가 찾아와서 각서를 써야 했다.
조심하면서 살아갔지만 1984학년도에 국어 과목을 맡지 못하고 한문 선생으로 전락한 처지가 되었다. 쫓아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어머니는 위로했는데, 그 처지가 1985학년도에도 반복되어서(언제든 쫓겨날 수가 있어서) 나는 불안해했다.
무기수인 큰형이 5월에 특별외출하여 은성여관에 찾아와서 나그네처럼 잠시 머물다가 다시 호송차에 탔는데, 슬퍼지고 현실에 대해 반항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 그런데 1985년 11월에 후배인 박오철(1989년 전교조 해직교사)이 활동할 만한 사회서클이 있다고 전화로 전했다. 그 서클의 리더 김상집(민주화운동가) 형을 만나러 YMCA 건물 다방으로 갔다. 이것이 내가 사회변혁운동을 하기 위해 사회서클(Y독서회) 활동에 뛰어든 날이 되었고 Y독서회 활동은 후일 전교조 운동을 하는 기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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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 원본) 2001-07-13
시간 속의 아이
- 85년 9월이 다 갈 무렵의 어느 날 오후 -
굴레!
한 아이가 고무로 만든 테(hula-hoop)를 다리에 두르고 놀이하고,
나는 정경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가 움직이는 뒤로 어두워지는 집들과 해가 지며 노을이 지는 하늘이 있는데,
그 길 갈리는 곳의 모퉁이를 돌아 걸어
내가 제 옆으로 점차 가까워져 가고 있음에도
아이도 나를 정경으로만 바라보았는지,
주의하지 않은 채 굴레 속에서
그저 놀고 있었다.
굴레! 놀이?
그 몸을, 굴레 속이었건만, 제 뜻대로 활용하고 있어서?
진갈색의 바지와 그저 흔하게 볼 수 있는 웃옷의 순함이
찌푸린 석양에 한 템포를 채우면서
정경 같은 장면으로 나의 눈을 따라 굴러가고
그리고 시간으로 굴러가
그 갈리는 길에 어두움을 깔고 또다시 일상을 반복하는데,
“애야, 그만 놀고 어서 와 밥 먹어. 어서.” 소리로
굴레 놀이하는 정경이 추억같이 날리고
아이가 굴레에서 다리를 빼내어 재촉해서 달리어
어두운 밤 속으로 사라졌다.
그 뒤 시들하고 쉬운 몸짓이 나를 퍼지고
나를 전날처럼 실내로 이끌고 갔다.
실내는 늘 그러던 것처럼 허름한 형상으로 푸접없었고
나는 피곤해진 몸으로 다시 실내에 돌아왔지만,
이미 밤인 채로……
식구들은 일상을 정리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나를 보고 다리를 절며
“오늘은 빨리 왔구나. 배고프겄다. 어서 밥 먹어라.” 소리로
이미 사라져 갔던 정경을 표상으로 일으켜 냈을 땐
반복으로 지쳐 가는 일상에서도
때로는 산뜻함이 흠뻑 뿌려진다는 걸 새겨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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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7.13. 21:55. 카페 가난한 비_시간 속의 아이 (초고 원본)
― https://cafe.daum.net/poorrain/F1vW/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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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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