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14 먼 곳 1 ― 돈과 나와 학생들
나의 무비즘 (14), 실존주의 앙가주망 (10)
1983-03
박석준 /
먼 곳 1 ― 돈과 나와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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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또는 돈과 관련된 말)’을 시 형식의 글에 많이 사용한 사람으로 김수영 시인이 있다. ‘돈(또는 가난)’은 내가 쓴 시 형식의 글 몇 편에 제목이나 부제에 사용되었고, 많은 글 속에 사용되었다.
먼 곳 1 ― 돈과 나와 학생들
5일간의 가정방문을 마치고 광장 횡단보도 앞에 섰을 때
밤은 열 시를 조금 넘었다. 터미널 쪽으로 야위어가는
가로등 불빛과, 건물들에 들쑥날쑥 침울한 불빛과,
사라져가는 자동차들의 불안한 불빛을 좇다가
신호등 파란불을 보고 횡단보도를 걸었다.
방안에 앉은 나는 부은 가는 다리와 발등을 보는 눈에
통증을 느낀다. 쉬고만 싶지만, 한숨만 쉬었을 뿐, 이내
교재를 펼친다. 그리고 11시 40분이 되는데
눈까풀이 가물거리고, 연구하는 눈의 눈가에 눈물 같은
액체가 끼어들고, 눈알이 너무 아파, 왼눈을 어루만진다.
왜 내가 여기서, ‘흐음, 흠!’ 한숨을 쉬고 있는 거지?
슬퍼졌다. 뇌리에 여관방이 떠올랐다. 4년 전에 수감된
형들을 기다리며 수레를 끌고 고물을 줍는 아버지,
영치금을 구하러 돌아다니는 작은형, 간첩 집안이라고
쫓겨난 누나, 중학교, 국민학교만 나온 동생들 헌과 수,
유일하게 대학을 나왔으나, 몸이라도 성해야 할 텐데,
하였을 때, 내가 본 어머니의 슬픈 눈.
나는 그 눈을 보고 죄스러워, 구직하겠다고 했다.
나는 어머니와 함께 구직하러 돌아다녔다.
찾아간 모든 곳에서, 너무 허약하다며 나를 거절했다.
그런데 그 한 곳에서 입학식 날 빈자리가 생기고
요행히 나를 불러, 내가 취업했는데, 내 몸이…….
눈 주위를 어루만지던 손을 떼어 몽롱하게 있는데,
하숙집 아주머니의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학생들도 선생님을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고,
통 못 드시는데, 더 야위신 것 같아 미안스럽고.
어떻게 주말까지만 계시다가…….”
내일이 주말인데, 내일 중으로 옮기겠다고 말했다.
통증이 계속되는데, 수업과 거처를 생각해야 했다.
“준비를 못 해서 죄송해요, 남은 시간 자습을 권합니다.”
하고는 창가에 서 아침 바다를 보는 남색 수트 나를
3월 셋째 토요일 퇴근길에서 떠올렸다.
전화하러 아침에 내려갔던 터미널을 향해 내려가면서.
어머니는 터미널 매점 앞에 서 있었다.
주인 여자의 침울한 눈빛에 마음이 뒤숭숭해졌다. 하지만
“어떠냐? 당분간이라도…….”
음성에 ‘떨어져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어머니의
슬픔이 담긴 듯했다. 이미 저물어 어두워져 있었다.
큰 보따리 하나이지만, 내가 가벼워서 들지 못한,
짐을 어머니가 옮기고, 터미널로 내려갔다.
9시발 버스가 광주로 향했다. 어둠 속에 자동차가,
불안한 불빛이 시간을 훔쳐 앞질러 달아났는데,
집을 잃어 빌려 사는 여관방으로 돌아갈 어머니는
잠들어 있다. 그런데 나, 시간 따라 3주를 갔지만,
이날까지 왔지만, 진실로 먼 곳에 내가 있는가?
집에 돈이 없어 돈을 벌러 먼 곳에 온 나,
실존하고 싶은 나, 불안한 몸을 지닌 나,
죄송하다, 자습한 학생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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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7 ∽ 2020-04-21 14:33 <원작 원본>
= 시집_『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2020.05.25. 푸른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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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상황:
1983.3.19.(금) ⁓ 3.20(토).
가정방문: 3.15(월) ⁓ 3.19.(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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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작품만 본 해석
「먼 곳 1」은 4년 전에 형들이 수감된 가난한 “나”가 “돈”을 벌려고 ‘먼 곳’에 왔으나, 몸이 너무 허약해서 수업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학생들”에게 자습시킨 후 내적으로 갈등하다가 “학생들”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것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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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창작 과정 및 의도
1. 먼 곳
시집 『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에는 ‘먼 곳’을 제목으로 한 4편의 글이, 「먼 곳 1」 바로 다음에 「먼 곳 2」가, 그리고 13, 14번째에 「먼 곳 3」, 「먼 곳 4」가 실려 있어서, 이들을 연작시로 볼 수도 있고 각각을 별개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먼 곳”은 무엇일까? 지명인가 학교명인가? 무엇(을 지칭하는 것)인지 불분명하더라도 사건의 흐름엔 문제가 되지 않으니까, 그리고 궁금증을 최대로 고조시키고 긴장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나는 실명을 가렸다. 소설의 추리 기법을 사용한 것이다. 「먼 곳 4」에서 “먼 곳 분회”라는 말이 나오지만, 그럼에도 ‘먼 곳’이 지명 또는 학교명이라고 추측하게 할 뿐이다.
「먼 곳 1」만을 분석한다면 ‘먼 곳’은 ‘멀리 떨어져 있는 곳(사립학교명 또는 지명)’으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이 글이 자서전 시집 속의 한 편이어서 ‘먼 곳’엔 ‘소외시키는 곳, 소원(疏遠)한 곳, “나”를 낯선 자로 만드는 곳’이라는 의미도 내포한다.
2. 부제 “돈과 나와 학생들”
「장미의 곁에 있는 두 얼굴」이 “산다는 건 무엇일까?”라는 물음으로 마무리되고 상황이 「먼 곳 1」로 이어진다. “산다는 건 무엇일까?”라는 물음의 의미는 ‘세상에선 어떤 것이 바람직한 살아가는 것일까?/세상에서 어떤 형태로(어떻게) 살아야 바람직하게 살아가는 것일까?/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실존하는 것일까?’이다.
「먼 곳 1」에서 “나”는 “진실로 먼 곳에 내가 있는가?”라고 자문하고는 곧 의식(‘돈을 벌러 먼 곳에 온 나’, ‘실존하고 싶은 나’, ‘불안한 몸을 지닌 나’)을 털어낸다. “나”가 가장 바라는 것은 ‘실존(개별자로서 자기의 존재를 자각적으로 물으면서 존재하는 인간의 주체적인 상태)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임을 알게 하는 말이다.
한데 “나”가 실존하기 위해선 하고 싶은 일을 추구해야 하고, 하고 싶은 일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우선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돈”이 없다. 따라서 “돈”을 벌어야 하고 “돈”을 벌려면 “학생들”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학생들”이 있다 해도 “나”가 건강해야 한다.
“나”는 ‘가는 다리(허약한 몸)와 (통증을 유발하는) 연구하는 눈을 소유한, 불안한 몸을 지닌 나’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돈”은 ‘나의 생계를 이어갈(그리하여 실존하게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학생들”은 ‘먼 곳’에 있으며 애초에 “나”를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줄 사람들’이었지만, 마지막에 (“나”가 수업시간에 진실하게 교육활동을 해줘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새로운 의미가 생긴다. “나”가 ‘민 곳’에서 진실한 ‘교사로서의 나’, 진실한 ‘노동자로서의 나’로 존재해야 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에겐 “몸”과 “먼 곳”의 갈등, “먼 곳”과 “실존”의 갈등이 있다. 한국이 자본주의 사회여서 성인인 “나”는 ‘생계를 해결하는 일(돈을 버는 일)을 하는 나’, ‘추구하고 싶은 일을 하는 나’, ‘건강하게 살아가는 나’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나는 「먼 곳 1」에서 부제에 “돈”과 “나”, “학생들”을 사용했다.
3. 또 하나의 ‘현실 상황’과 ‘메시지’
「먼 곳 1」은 “(생계에 필요한)돈”과 “나”의 현실(나의 허약한 몸, 가난)과 학생들(나의 노동이 실현되는 곳, 교육 활동) 사이의 갈등과 학생들에 대한 죄책감이 형상화됨으로써 마무리된다. 하지만, 「먼 곳 1」에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또 하나의 현실 상황(가족의 사정 혹은 한국 현대사의 한 과정)이 형상화되었다.
(작은형은 영치금을 구하러 돌아다니고, 동생들은 국민학교만 나오고, 아버지는 수레를 끌고 고물을 줍는, 집을 잃어 식구들이 여관방을 빌려 사는) 가난한 집인데, 무슨 사건이 있었기에 4년 전에 형들이 수감되었고, 누나는 간첩 집안이라고는 쫓겨났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이러한 사항을 고려하면 ‘남민전 사건과 아픈 삶의 고해’, ‘현대사 굴곡·해체된 삶’이 부각되어 이 글이 중심을 둔 곳(메시지)이 달라진다. 왜냐하면 여관에서 사는 “나”의 모든 식구들이 “돈”과 “형들이 수감되”어 있는 현실 상황에 관련되기 때문이다.
4. 소재: ‘눈’과 ‘불빛’
한편 세 가지의 “눈”―‘(통증을 느끼는) 보는 눈*=연구하는 눈’, ‘슬픈 눈’, ‘침울한 눈’―이 시간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는데, “눈”이 “불빛”을 볼 수 있는 도구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이 글에 사건의 흐름의 색깔을 암시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불빛(또는 불)”은 처음(‘야위어가는/사라져가는/불안한’)과 마지막(‘불안한’)의 배경을 이루는 한편 ‘축소의 심상(‘야위어가는/사라져가는/가는 다리/허약하다/가벼워서)’을 형성하고 ‘불안한’ 상황이나 분위기를 조성해 이어지는 글 「먼 곳 2」의 색깔을 암시한다.
5. 표현 및 구성 형식
이 글은 사건을 서술하다가 의식의 흐름(자동기술법)이 튀어나오는 표현(왜 내가 ⁓ 거지?/어둠 속에 ⁓ 학생들에게.) 및 구성 형식을 취하고, 시각적인 동사 서술어(어루만진다./돌아다녔다/떠올렸다/내려갔다/달아났는데)를 사용하여 시간과 공간이 변하면서 인물들 간의 사건이 전개되는 무비즘 기법이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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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는 눈 : → 「생의 프리지 ― 절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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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는 다리
‘마르다: (사람이나 짐승의 몸이나 얼굴이) 예전보다 살이 빠져 홀쭉한 상태로 되다.’는 ‘살찐 사람’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말이어서 형태가 선명하지 않다. 나의 다리는 특히 윗다리가 매우 마른 사람의 (윗)다리보다 훨씬 얇고 가늘다. 이런 이유로 나는 “나”의 다리를 시각적인 말인 ‘가는(가느다란) 다리’로 표현한 것이다. “가는 다리”는 “나”의 허약한 몸을 대신한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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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자
한국에서는 반공 자본주의 체제라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노동자’라는 말 대신에 정부수립 이래 ‘열심히 노동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근로자(勤勞者)’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근로자’가 이런 의미라면 대통령도 근로자이므로 ‘노동자’가 되어버린다.
노동자(worker)는 사용자(使用者)에게 노동력을 제공하고, 노동을 한 대가로 임금을 지급받는 사람이다. 사립학교 교사는 노동력(법인과 학생에게 제공하는 교육활동)을 제공하고 ‘급여’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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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사
교사(敎師)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일반적으로 국가에서 정한 법령에 따라 자격증을 갖추고 학생에게 국가에서 지정한 과목, 종목의 교육 이수의 과정에서 이끌어주거나 도움을 주거나 설명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대한민국에서는 1960년대부터 교사도 일종의 노동자라는 의견이 제기되었고, 1990년대 이후에는 전문 직업인(또는 직업)으로 보는 시각도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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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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