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13 25년 전의 담배 한 모금과 세 잔의 술
나의 무비즘 (13), 실존주의 앙가주망 (9)
1979 / 1980
박석준, 문병란 /
<원작 교정 수정작> (5월, 세)
25년 전의 담배 한 모금과 세 잔의 술
― 박석준, 문병란
담배를 권했던 친구가
5월 연기만 남기고 떠나갔다
담배 한 모금과 세 잔의 술
그가 남긴 현기증을 안고
스무 살의 소년인 나는
술주정보다 먼저 실연을 배웠다
숨어서 나눈 그 우정
담배 연기 속에서 사라져 가고
나는 그해 대학교 1학년이었다
시가 무엇인지 모르면서 시를 쓰고 싶었던
슬픈 모방기 어질병을 안고
나의 몸은 최루탄 속에서도
꽃을 피웠고, 비오는 날이면 나는
결강을 했다. 하얀색 빨간색
불경한 진달래는 조심해야지
형들은 감옥에 가고 나는 무서웠다
나는 가슴이 멍멍하였다 군인 출신 대통령
차례로 권좌에 앉았다 가고
나는 술이 늘지 않았다
담배 한 모금과 세 잔의 술
손가락이 누우레져도 태우고 태워서
나를 버리고 간 그 봄을 태우고 태웠다
새벽 한 시의 레스토카페
불은 꺼지고 영업은 끝나고
주머니 속 동전은 떨어지고
횡단보도의 빨간불이 나를 세웠다
아, 나는 누굴 사랑할 수 있는가?
.
2013.05.31. <원작> (그는, 시가, 석)
∽ 2014.06.01. 16:30. 카페 가난한 비_25년 전의 담배 한 모금과 세 잔의 술 (5월, 시가, 석) (원작 수정작 초고)
→ https://cafe.daum.net/poorrain/F2u2/34
∽ 2016.11.09. 17:41. 박석준 시집 본문.pdf (교정: 5월, 시를, 세) <원작 수정작>
= 시집_『거짓 시, 쇼윈도 세상에서』(2016.12.02. 문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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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31. <원작> (그는, 시가, 석)
25년 전의 담배 한 모금과 세 잔의 술
― 박석준, 문병란
담배를 권했던 친구가
그는 연기만 남기고 떠나갔다
담배 한 모금과 세 잔의 술
그가 남긴 현깃증을 안고
스무살의 소년인 나는
술주정보다 먼저 실연을 배웠다
숨어서 나눈 그 우정
담배 연기 속에서 사라져 가고
나는 그 해 대학교 1학년이었다
시가 무엇인지 모르면서 시가 쓰고 싶었던
슬픈 모방기 어질병을 안고
나의 몸은 최루탄 속에서도
꽃을 피웠고, 비오는 날이면 나는
결강을 했다. 하얀 색 빨간 색
불경한 진달래는 조심해야지
형들은 감옥에 가고 나는 무서웠다
나는 가슴이 멍멍하였다 군인 출신 대통령
차례로 권좌에 앉았다 가고
나는 술이 늘지 않았다
담배 한 모금과 석 잔의 술
손가락이 누우레지도 태우고 태워서
나를 버리고 간 그 봄을 태우고 태웠다
새벽 한 시의 레스토카페
불은 꺼지고 영업은 끝나고
주머니 속 동전은 떨어지고
횡단보도의 빨간 불이 나를 세웠다
아, 나는 누굴 사랑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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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26. 25년 전의 담배 한 모금과 세 잔의 술-박석준 (초고: 2013-05-26에 문병란 시인께 쓴 편지에 삽입됨)
∽ 2013.05.31. 문병란 시인의 답장편지 <원작>
= 2013.09.27. 09:16. 카페 가난한 비_박석준 시인 보오. -정리 (원작 원본)
→ https://cafe.daum.net/poorrain/Ewta/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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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상황
1979 ⁓ 1980-05-18 즈음 ⁓ 2005-09-25 현재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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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해설
쇼윈도 거리를 걷는 현대의 햄릿 - ②
박석준 시의 화자는 매우 예민하다. 그는 불안을 감지하는 데 탁월한 촉수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도처에서 ‘소외’를 경험한다. 이러한 ‘소외’가 화자로 하여금 이와 같은 시를 쓰게 했을 것이다. 『거짓 시, 쇼윈도 세상에서』는 박석준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다. 첫 번째 시집인 『카페, 가난한 비』(푸른사상, 2013)에 이어 3년만의 시집이다. 김백겸은 『카페, 가난한 비』에 대해 “비가 내리는 도시의 풍경, 소시민으로서의 삶, 고독한 예술가였던 고흐에 투사되어 있는 내면의 우울이 파노라마처럼 전개”된다고 말한 바 있다. 이 시집 역시 그러한 평가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 결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김백겸이 말한 내용 중에 “그의 시는 텍스트와 콘텍스트를 동시에 염두에 두고 있어야 이해하기 쉽다”고 한 것은 박석준의 시를 읽는 데 있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 「25년 전의 담배와 세 잔의 술 ― 박석준, 문병란」과 같은 시를 볼 때 ‘콘텍스트’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가 없다.
문학사에 준하여 미학적 성과를 가늠하는 성격의 글은 그 태생의 ‘특징’ 혹은 ‘한계’로 인해 텍스트에 나타난 ‘특이한’ 혹은 ‘특수한’ 표현들을 찾는 데 관심을 쏟는다. 형식주의 비평이 대두된 이래, 이러한 방식의 비평은 비평의 ‘처음이자 끝’으로 군림해 왔다. 그러나 데리다(J. Derrida)가 문제 삼았듯, “너무 지나치게 남발되는 저자의 죽음과 그 누락”은 문제다. 물론 그의 말처럼 애초에 텍스트가 아닌 것은 없다. 심지어 시인 본인의 입으로 ‘직접’ 자신의 생애에 대해 구술하는 것을 듣는다 해도 ‘언어’라는 매개―시인 본인 또한 ‘언어’로 말을 하는 순간 언어의 법칙에 따라 기억을 조직하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언어는 생각의 도구가 아니라 본질인 셈이다―를 통하게 되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텍스트’ 차원을 벗어날 수 없다. 더군다나 시는 특수한 형식의 말하기다. 따라서 시를 논하는 데 있어 ‘저자’ 역시 텍스트 차원에서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의 발화 국면에는 언제나 시인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곤란하다. ‘저자의 죽음’으로 사태를 단순화하는 것은 오히려 쉽다. 고민해야 할 것은 한쪽으로 수렴시킴으로써 상황을 미니멀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를 논하는 데 있어 어떻게 시인의 자리를 마련해 주느냐이다. 그렇지 않고 쉬운 길을 택할 때 박석준의 시를 이루는 축 중의 한 축이 망각되거나 정당한 취급을 받지 못할 공산이 크다. 박석준의 시가 음울한 도시의 풍경과 소시민으로서의 삶을 우울감과 고독으로 그려내고 있는 데는 그가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갖은 고통을 겪은 형제들을 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본인도 교사로 근무하며 전교조 운동에 참여(「떠나는 사람의 노래 연습, 집회」)하는 등 결코 적지 않은 고통을 감내하고 있기 때문이다.
「25년 전의 담배와 세 잔의 술 ― 박석준, 문병란」이라는 시에서 우리는 그와 같은 시인의 자화상을 확인할 수 있다. “모든 흔적은 연상을 불러일으킨다”(「전화 목소리 ― 숲 속의 비」)는 고백에서처럼, “담배 연기”가 주는 “현기증”은 “5월”, “연기만 남기고 떠나”간 친구를 떠올리게 한다. “시가 무엇인지 모르면서 시를 쓰고 싶었던 슬픈 모방기”로부터 그의 시는 시작되었다. 담배 연기는 사라지지만 여전히 현기증은 남아 시인으로 하여금 그를 떠올리게 한다.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시인의 마음에 흔적을 남기고, 그는 그렇게 유령처럼 떠도는 기억에 애도를 표하기 위해 “시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시를 쓰게 된 것이다. 박석준 시인의 상실감은 “5월”, “최루탄”, “감옥”, “군인 출신 대통령”(그것도 “차례로”)과 무관하지 않다. 이를 ‘민주화’라는 말에 수렴시키는 것은 그 섬세한 결을 놓치는 일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민주화’가 ‘타자에 대한 사랑과 공존에의 희망’의 다른 이름이라면, 박석준 시는 확실히 ‘민주화’의 실현에 온 마음을 쏟은 결과라고 단언할 수 있다.
― 김청우 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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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텍스트(시와 나) : 창작 동기와 과정
순천에서 교사로 근무하는 나(박석준)는 2005년 9월 25일엔 육신과 처지가 너무도 메말라버렸다. 조직에서 소외된 존재임을 또 확인하고 순천에서 퇴근했지만, 9월 23일 밤 10시 30분 광주행 버스를 탔고 광주 유동에서 밤이 깊어지도록 배회했다. 그러고는 새벽 1시경에 ‘스토리 카페’로 갔는데 문이 닫혀 있었다. 카페 건너편 유동 ‘박제방’으로 가는 인도에 있는 자판기 커피를 뽑을 생각을 했으나 호주머니엔 동전 한 푼 없었다. 횡단보도 앞에서 서성거리다가 ‘박제방’에 돌아갔다. 유동 거리에서는 생각들이 여러 면으로 교차되었다. 나는 9월 25일 새벽에 글 ‘25년 전의 담배와 세 잔의 술’을 썼다. ―
나는, 몸이 너무 약해서 군대 가지 못했고, 사랑을 제대로 한 적이 없다. 스무 살 땐 두 여자가 찾아와서 나를 사랑한다고 했으나, 스물두 살 대학교 1학년 때인 4월에 형사들이 집을 수색했고 그 후로 두 여자가 떠나버렸다. (→ 「장미의 곁에 있는 두 얼굴」)
그 후로도 몇 여자가 나에게 마음을 두어 찾아왔는데 무엇이 싫었는지 떠나갔다. 교육 민주화 운동을 해갔지만, 복직교사라는 처지 때문에 조직에서 소외되었고, 잊고 싶어서 2004년 3월에 기항지인 목포에서 떠나 아는 사람 없는 순천으로 갔다. 그러나 순천에서도 복직교사라는 처지 때문에 교사들로부터 소외되었다. 2005년, 48살이 되었는데, 이곳 조직에서 소외된 나는 나의 삶(인생)을 고뇌했다. 9월에는 너무 괴로워서 세 잔의 술을 마셨고 귀가 후 메모 ‘25년 전의 담배와 세 잔의 술’을 썼다. 그날 순천에서 친구가 함께 가자고 하여 합석하게 된 술자리에서 첫 담배와 첫 술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옛 생각에 젖어든 까닭이었다. 나는 1979년에 흔이라는 아이와 같은 반이었는데, (5월로 기억되는데) 그 아이가 벤치에 앉아 생각에 잠긴 나를 찾아와서 담배를 권했다. 친해지고 싶어서 바로 담배를 사고 귀가하여 거울을 보면서 담배 피우는 연습을 했다. 그리고 1년 후 5월에 흔이 다시 담배를 권해서 함께 피웠으나 그 이틀 후 나와 헤어졌다.
이러한 나의 경험을 투영한 메모를 정리한(따라서 글의 현재 시점이 2005년 9월 24일인) ‘초고’를 2013년에 편지에 삽입하여 문병란 시인(선생님)께 보냈다. 편지 교류를 통해 두 사람이 2013년 5월 31일에 「25년 전의 담배 한 모금과 세 잔의 술」(원작: 그는, 시가, 석)을 만들어냈다. → 문병란 시인이 사망한 후 2016.11.09.일에 ‘원작’의 세 어휘를 수정하여(5월/시를/세) 시집에 수록했다.
이 글은 2005년 9월 현재 시점에서 회상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이 글에는 나(박석준)의 살아간 시절을 반영한 이야기가, 세 부분으로 ― 1연∼4연 11행(1979년과 1980년 5․18 즈음), 4연 12행∼6연(1980년 5․18 이후∼1993년 2월), 7연(2005년 9월 23∼24일) ― 전개되었다. “담배 한 모금과 세 잔의 술”을 두 곳에 둔 영화 연출 기법인 ‘프리즈 프레임(freeze frame)’ 연출 기법이 사용되었다.
문병란 시인이 시적 효과를 위해 3, 4연에서 ‘대학교 1학년 스무 살’의 인물로 바꿨다(실제의 나는 스물두 살이지만). 그리고 마지막 행 “아, 나는 누굴 사랑할 수 있는가?”를 첨가했다.
나와 문병란 시인은 「25년 전의 담배 한 모금과 세 잔의 술」, 「술집에서 ― 그 밤의 메뉴」(2013-09-05 작), 이 2편의 시를 공동으로 창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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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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