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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시

나의 실존주의 앙가주망 (27), 리얼리즘 (5), 나의 무비즘 (33) 바람에 종이 한 장 / 박석준

나의 35 바람에 종이 한 장

나의 실존주의 앙가주망 (27), 리얼리즘 (5), 나의 무비즘 (33)

1989-08-02

박석준 /

(원작 오교정 시집)

바람에 종이 한 장

 

 

  18, 1급 정교사 자격 연수를 받으러 전남대로 갔으나,

  전교조 가입 교사는 제외한다는 말을 들었으나

  스스로 포기하고 싶지는 않아서 투쟁을 했다.

  721일에 돌아왔는데,

  교무실 바깥 벽에 징계 의결 요구 사유서가 붙어 있었다.

 

  89.6.19 이후 계속 2, 3층 교실 벽과 미술실 복도 벽에 정부 규, 교직원노조 탄압과 교직원노조 사수와 투쟁의 내용인 대자보를 부착하여 학생들의 89.7.7 외 집단 소요를 야기케 하였으며 이로 인해 당일 실시키로 한 1기 말 고사를 실시 못 해 사 일정에 차질을 가져오게 하였음.

 

  10시에 분회원은 미술실에서 나와 복도에 정렬했다.

  “대동단결 대동투쟁, 전교조를 사수하자!”

  외친 뒤 앞사람의 어깨에 두 손을 얹은 채 줄을 지어,

  비탈진 길을 거쳐 대회장인 파고라 동산으로 뛰어갔다.

  82, 햇빛이 흐르는 대회가 진행되었다.

  각 지역의 교사들, ‘공대위사람들, 민주 인사와

  대학생들 등 외부의 사람들이 대회장으로 찾아들었다.

  “! 막아라! 막아!”

  20미터쯤 떨어진 교문 쪽에서 소리가 들리더니

  더욱 소란스러운 소리와 움직임들로 이어졌다.

  결국 자가용 한 대가 들어와 본관 쪽으로 굴러갔다.

  “당 징계를 철회하라!”

  구호를 외치며 학생들이 그 차를 따라 뛰어갔다.

  대다수의 학생들은 교문 쪽에 남아, 지키고 있었다.

  어느덧 11가 넘어 있었다.

  나는 몹시 흥분되고 긴장된 심정으로

  두 장의 종이를 쥔 채 연단을 향해 갔다.

  마이크를 쥔 나는 타지역에서 온,

  내가 아는 선생들의 모습에 두근두근거렸지만

  곧 종이, 내가 작성했던 성명서를 읽기 시작했다.

  “부당한 징계를 즉각 철회하라! ……노조원과 비노조원

  간의, 분열만 없으면 좋겠다고 분명히 표명했던 바,”

  너무 긴장하고 흥분된 탓인지 갑자기 온몸을 전율하는

  바람에 손에서 떨어져 바람에 날려가는

  성명서 종이를 주워 와서 다시 읽어갔.

  “우리의 요구, 우리 전교조 교사를 부당하게 탄압 말라!”

  “탄압 말라! 탄압 말라!”

  “전교조!”, “사수!”, “전교조!”, “사수!” 하고

  앞사람과 뒷사람이 구호를 나누어 반복적으로 외치면서

  앞사람의 어깨에 두 손을 얹은 채

  교장실 옆 출입구로 뛰어갔다.

  곧 맞닥뜨려진 것은,

  교장실 옆 복도에서부터 출입구 현관까지 꽉 들어차

  남학생·여학생이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는 장면이었다.

  “징계위원들을 못 들어오게 막았으니까

  선생님들도 징계위에 참석하지 마십시오.”

  하고, 학생들이 간절히 호소해왔.

 

  나는 가볍고 손힘이 없어 손에 쥔 종이 한 장을

  사람들 앞에 펼쳐 들면 자주 놓친다.

  그런데 이날은, 힘없는 내가 펼쳐 든 종이를 놓쳐

  사람들의 바람과 눈물과 희열로 파도쳤다.

.

오교정 시집_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2020.05.25. 푸른사상)

(‘계의결요구사유서는 문서이름이며 부규/외집단소/1기말/못해 사일은 문서에 찍힌 글자들이고, ‘바깥벽은 명사인데. ‘계 의결 요구 사유서’, ‘부 규/외 집단 소/1기 말/못 해 사 일’, ‘깥 벽으로 편집자가 임의 오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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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2020-04-13

바람에 종이 한 장

 

 

  18, 1급 정교사자격연수를 받으러 전남대로 갔으나,

  전교조가입교사는 제외한다는 말을 들었으나

  스스로 포기하고 싶지는 않아서 투쟁을 했다.

  721일에 돌아왔는데,

  교무실 바깥벽계의결요구사유서가 붙어 있었다.

 

    89.6.19 이후 계속 2, 3층 교실 벽과 미술실 복도 벽에 부규, 교직원노조 탄압과 교직원노조 사수와 투쟁의 내용인 대자보를 부착하여 학생들의 89.7.7 외집단소를 야기케 하였으며 이로 인해 당일 실시키로 한 1기말 고사를 실시 못해 사일에 차질을 가져오게 하였음.

 

  10시에 분회원은 미술실에서 나와 복도에 정렬했다.

  “대동단결 대동투쟁, 전교조를 사수하자!”

  외친 뒤 앞사람의 어깨에 두 손을 얹은 채 줄을 지어,

  비탈진 길을 거쳐 대회장인 파고라 동산으로 뛰어갔다.

  82, 햇빛이 흐르는 대회가 진행되었다.

  각 지역의 교사들, ‘공대위사람들, 민주 인사와

  대학생들 등 외부의 사람들이 대회장으로 찾아들었다.

  “! 막아라! 막아!”

  20m쯤 떨어진 교문 쪽에서 소리가 들리더니

  더욱 소란스러운 소리와 움직임들로 이어졌다.

  결국 자가용 한 대가 들어와 본관 쪽으로 굴러갔다.

  “당징계를 철회하라!”

  구호를 외치며 학생들이 그 차를 따라 뛰어갔다.

  대다수의 학생들은 교문 쪽에 남아, 지키고 있었다.

  어느덧 11시가 넘어 있었다.

  나는 몹시 흥분되고 긴장된 심정으로

  두 장의 종이를 쥔 채 연단을 향해 갔다.

  마이크를 쥔 나는 타지역에서 온,

  내가 아는 선생들의 모습에 두근두근거렸지만

  곧 종이, 내가 작성했던 성명서를 읽기 시작했다.

  “부당한 징계를 즉각 철회하라! 노조원과 비노조원

  간의, 분열만 없으면 좋겠다고 분명히 표명했던 바,”

  너무 긴장하고 흥분된 탓인지 갑자기 온몸을 전율하는

  바람에 손에서 떨어져 바람에 날려가는

  성명서 종이를 주워 와서 다시 읽어 갔.

  “우리의 요구, 우리 전교조 교사를 부당하게 탄압 말라!”

  “탄압 말라! 탄압 말라!”

  “전교조!”, “사수!”, “전교조!”, “사수!” 하고

  앞사람과 뒷사람이 구호를 나누어 반복적으로 외치면서

  앞사람의 어깨에 두 손을 얹은 채

  교장실 옆 출입구로 뛰어갔다.

  곧 맞닥뜨려진 것은,

  교장실 옆 복도에서부터 출입구 현관까지 꽉 들어차

  남학생·여학생이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는 장면이었다.

  “징계위원들을 못 들어오게 막았으니까

  선생님들도 징계위에 참석하지 마십시오.”

  하고, 학생들이 간절히 호소해 왔.

 

  나는 가볍고 손힘이 없어 손에 쥔 종이 한 장을

  사람들 앞에 펼쳐 들면 자주 놓친다.

  그런데 이날은, 힘없는 내가 펼쳐 든 종이를 놓쳐

  사람들의 바람과 눈물과 희열로 파도쳤다.

 

 

  * 89.7.7 옥외집단소요 : ‘자고협(자주교육쟁취 고등학생협의회)’먼 곳의 학습토론 조직 더불어의 회원들을 중심으로 하여 목포 시내에서 전교조를 사수하기 위해 펼친 데모.

  * 공대위 : 전교조 목포지회 탄압저지 공동대책위원회 : 목포지역 22개 단체와 각계민주인사(12)718일 카톨릭회관에서 결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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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4 오전 11:57 2020.04.13. 11:58.. 2020_04(박석준)원고-교정본.hwp (‘붙어붙어로 오타됨) <원작 원본>

(‘계의결요구사유서는 문서이름이며, 짙은 파란색 부분 부규/외집단소/1기말/못해 사일은 문서에 찍힌 글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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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상황

    1989.08.02. ‘먼 곳파고라 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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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객관적인 해석

  「바람에 종이 한 장198982일에 실제 있었던 일과 사정들을 사실 그대로 담고 징계의결요구사유서원문을 그대로 적은 리얼리즘 기법으로 시 형식으로 쓴 글이다. 시공간을 이동하면서 교사들과 학생들이 직접 투쟁하는 모습에 앙가주망, 무비즘 경향을 반영하고 있다. 교사들과 (타고교생들까지 합세하여) 학생들이 만들어낸 이 상황들은 참교육이란 무엇인지를 암시한다.

  제목 바람에 종이 한 장에서 바람은 세 가지 의미를 내포한 말이다(, , 기원, 소망). 전율하는 바람”(‘-는 바람에의 구성으로 쓰여, 어떤 일이 원인으로 작용한 결과나 그 영향을 나타내는 말(의존명사)), “바람에 날려가는”(공기의 흐름(자립명사), 사람들의 바람”(기원, 소망)이 동음어로 사용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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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밖 실화

  그 시절, 내가 서른두 살이었던 1989. 나는 전교조 가입교사라는 이유만으로 나의 희망을 거부당해야 했다. 선생이 된 지 3년 경력을 쌓고서부터는 1(1급 정교사)연수를 받겠다고 다른 선생들이 나서던 것을 나는 보아 왔는데.

교사로서의 삶보다는 다른 삶을 더 추구하고 싶어하는 심정이 간절함에도 교사라 불리워지고 있는 나의 존재에 대한 회의와 교직 생활을 떠나야 할 날을 생각해야 할 정도로 뇌리에 쌓여버린 번민 등이 1정을 받으면 뭐하냐 하는 생각을 갖게 해서, 나는 연수 신청을 미루곤 했었다. 그런데 그해에는, ‘형들은 석방되었고, 각각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삶의 길을 찾아가고 있다.’라는 현실 인식과 더불어 는 나대로 홀로 서야만 할 것 같다.는 징후 같은 것을 느꼈던 까닭에 1정연수를 신청하였다. 하지만 내가 그해에 희망한 1급 정교사 자격 연수는 신청으로만 끝나고 말았을 뿐, 5년 뒤인 947월에야 비로소 나는 장주섭, 장주선, 박혜영, 박명섭, 이호 등 복직했던 선생들과 함께 그 연수를 받을 수 있었다. 특히 석준아, 너 여기서 또 만난다이.” 하는 말로 인사를 건넨 주섭으로부터 89년이라는 그 시절의 일을 언뜻 장면으로 스치게 된 채.

  89718, 1정연수를 받고자 전남대로 간 나는 오전 10시경의 쏟아지는 햇볕을 스치면서 대강당 옆길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전교조 가입교사는 1정연수에서 제외한다는 말을 전남대로 오기 전에 이미 들은 상태였지만, 객관적 상황으로 인해 나의 희망을 스스로 버리고 싶지는 않았고, 찾아 들어간 대강당 안의 분위기가 산만하고 이상스럽게 여겨져서.

강당 속의 사람들과 나를 분리시켜 버리고서, 무슨 일이 생기기를 바라는 불만족스러움에 가득 찬 채로, 강당 옆길을 거닐던 나는 어느 순간에는 전날 들었던 소식들을 되새겨 내기도 하였다. 전날인 717일에는, 중징계 대상자가 사립 3,400, 공립 1,500명이라고 문교부에서 발표했었다. 그리고 전교조 본부에서는, 18일까지 대화하자고 문교부에 제의를 함과 아울러 단체행동권 유보를 검토한다는 발표를 했었다. ‘유보? 현장 교사들은 노동3권의 확보를 바라며 전교조를 사수하려 하는 것 아닌가?’

  소식들을 되새겨봄에 따라 나에게는 생각이 일어났다. 그런데 강당 옆길을 20분쯤 거닐었을 때, 뜻밖에도 강당 입구의 계단께에서 주섭과 마주치게 되었다.

  “아니, 석준아. 너도 1정 받으러 왔냐?”

  주섭은 놀라움과 반가움을 표현했다.

  “. 그런데 받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한바탕해야 할 것 같다.”

  “그래?”

  나는 그를 따라 강당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주섭은 강당 무대 위로 올라갔다. “투쟁합시다!” 하고 그의 선동하는 외침이 몸짓과 함께 뿌려졌다. 그로 인해 분위기가 정리되기 시작했다. 무대에서 내려온 뒤 강당 밖으로 빠져나가는 주섭의 뒤에는 나를 포함해 몇 사람이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 강당 옆길에 쪼그리고 앉게 되었는데, 주섭을 포함해 세 사람은 종이를 길바닥에 깔고 즉석에서 대자보를 작성해갔다. 이어 대자보가 강당의 바깥벽과 안벽, 출입문에 붙여졌고, 그 뒤 강당 안에서는 400여 명이 자격박탈 규탄 및 농성 투쟁을 전개해갔다. 그 다음 날에는 광주전남지역 연수교사들이 성명을 냈고, 그들 중 1,000여 명은 연수를 거부하여 투쟁을 지지·지원했다. 하지만 그 며칠 동안의 투쟁은, 전교조 가입 교사는 1정 연수에서 제외되고 만 채로 정리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21일에 먼 곳에 돌아오게 되었는데, 얼마 안 있어 교무실 바깥벽에 징계의결요구사유서들이 붙어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날, 이 징계의결 요구서를 다 읽고 난 나에게는 그 길 가는 곳에 이르러 서고 강조된 화살표 하나, 그래서 나는 왼쪽으로 갔다.’라는 나의 시(→ 「일상 1-1) 구절이 떠올려지더니, ‘! 아마도 이 징계의결 요구서는, 내가 교직이라는 일로부터 공식적으로 떠나갈 수 있도록 나와 사람들에게 표시해 준 첫 번째 서류가 될 것이다. 이 이후 그렇게 되고 안 되는 건 거의 나한테 달려 있지만.’이라는 생각이 일어났고, 이어서 곧 이상스럽게도 홀가분한 기분이 일어났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내 뇌리에 장면으로만 남게 된 상황들교직이라는 일을 해 가다가 그 일과 관련하여 갈등·고뇌·고통을 일으켰던 상황들과 그 일로부터 떠나고 싶어했던, 그럼에도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떠나지 못해야 했던 지난날들의 심적 상황들이 되살아나서 뇌리를 스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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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당한 징계를 즉각 철회하라! …… 나타났듯이 팔십사 프로가 교조를 지지하고 있는 바, …… 야수적 발상을, 사학재단을 하수인으로 만들어 재단으로 하여금 전교조 교사를 징계케 하려는 음모적 발상을 드러냄으로써, …… 교사들 간의, 노조원과 비노조원 간의, 분열만 없으면 좋겠다라고 분명히 표방했던 바,” (내가 작성했던 <성명서>)

박석준, 내 시절 속에 살아 있는 사람들(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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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 2020-03-24 오전 11:57 2020-03-25

바람에 종이 한 장

 

 

  18, 1급 정교사자격연수를 받으러 전남대로 갔으나,

  전교조가입교사는 제외한다는 말을 들었으나

  스스로 포기하고 싶지는 않아서 투쟁을 했다.

  721일에 돌아왔는데,

  교무실 바깥벽에 징계의결요구사유서가 붙어 있었다.

 

    89.6.19 이후 계속 2, 3층 교실 벽과 미술실 복도 벽에 정부규, 교직원노조 탄압과 교직원노조 사수와 투쟁의 내용인 대자보를 부착하여 학생들의 89.7.7 외집단소요를 야기케 하였으며 이로 인해 당일 실시키로 한 1기말 고사를 실시 못해 사일정에 차질을 가져오게 하였음.

 

  10시에 분회원은 미술실에서 나와 복도에 정렬했다.

  “대동단결 대동투쟁, 전교조를 사수하자!”

  외친 뒤 앞사람의 어깨에 두 을 얹은 채 줄을 지어,

  비탈진 길을 거쳐 대회장인 파고라 동산으로 뛰어갔다.

  82, 햇빛이 흐르는 대회가 진행되었다.

  각 지역의 교사들, ‘공대위사람들, 민주 인사와

  대학생들 등 외부의 사람들이 대회장으로 찾아들었다.

  “! 막아라! 막아!”

  20m쯤 떨어진 교문 쪽에서 소리가 들리더니

  더욱 소란스러운 소리와 움직임들로 이어졌다.

  결국 자가용 한 대가 들어와 본관 쪽으로 굴러갔다.

  “당징계를 철회하라!”

  구호를 외치며 학생들이 그 차를 따라 뛰어갔다.

  대다수의 학생들은 교문 쪽에 남아, 지키고 있었다.

  어느덧 11시가 넘어 있었다.

  나는 몹시 흥분되고 긴장된 심정으로

  두 장의 종이를 쥔 채 연단을 향해 갔다.

  마이크를 쥔 나는 타지역에서 온,

  내가 아는 선생들의 모습에 두근두근거렸지만

  곧 종이, 내가 작성했던 성명서를 읽기 시작했다.

  “부당한 징계를 즉각 철회하라! 노조원과 비노조원

  간의, 분열만 없으면 좋겠다고 분명히 표명했던 바,”

  너무 긴장하고 흥분된 탓인지 갑자기 온몸을 전율하는

  바람에 손에서 떨어져 바람에 날려가는

  성명서 종이를 주워 와서 다시 읽어 갔.

  “우리의 요구, 우리 전교조 교사를 부당하게 탄압 말라!”

  “탄압 말라! 탄압 말라!”

  “전교조!”, “사수!”, “전교조!”, “사수!”, 하고

  앞사람과 뒷사람이 구호를 나누어 반복적으로 외치면

  교장실 옆 출입구로 뛰어갔다.

  곧 맞닥뜨려진 것은,

  교장실 옆 복도에서부터 출입구 현관까지 꽉 들어차

  남학생·여학생이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는 장면이었다.

  “징계위원들을 못 들어오게 막았으니까

  선생님들도 징계위에 참석하지 마십시오.”

  하고, 학생들이 간절히 호소해 왔.

 

  나는 가볍고 손힘이 없어 손에 쥔 종이 한 장을

  사람들 앞에 펼쳐 들면 자주 놓친다.

  그런데 이날은, 힘없는 내가 펼쳐 든 종이를 놓쳐

  사람들의 바람과 눈물과 희열로 파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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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내 시절 속에 살아 있는 사람들(메모),

2020-03-24 오전 11:57 2020-03-25 오전 11:39 (초고)

= 2020.03.25. 15:35.. 박석준-3시집-0618-12-105()-5-20-2.hwp (초고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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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교정) 2023-05-29 오후 6:25

바람에 종이 한 장

 

 

  18, 1급 정교사 자격 연수를 받으러 전남대로 갔으나,

  전교조 가입 교사는 제외한다는 말을 들었으나

  스스로 포기하고 싶지는 않아서 투쟁을 했다.

  721일에 돌아왔는데,

  교무실 바깥벽에 징계의결요구사유서가 붙어 있었다.

 

    89.6.19 이후 계속 2, 3층 교실 벽과 미술실 복도 벽에 정부규, 교직원노조 탄압과 교직원노조 사수와 투쟁의 내용인 대자보를 부착하여 학생들의 89.7.7 외집단소요를 야기케 하였으며 이로 인해 당일 실시키로 한 1기말 고사를 실시 못해 사일정에 차질을 가져오게 하였음.

 

  10시에 분회원은 미술실에서 나와 복도에 정렬했다.

  “대동단결 대동투쟁, 전교조를 사수하자!”

  외친 뒤 앞사람의 어깨에 두 손을 얹은 채 줄을 지어,

  비탈진 길을 거쳐 대회장인 파고라 동산으로 뛰어갔다.

  82, 햇빛이 흐르는 대회가 진행되었다.

  각 지역의 교사들, ‘공대위사람들, 민주 인사와

  대학생들 등 외부의 사람들이 대회장으로 찾아들었다.

  “! 막아라! 막아!”

  20미터쯤 떨어진 교문 쪽에서 소리가 들리더니

  더욱 소란스러운 소리와 움직임들로 이어졌다.

  결국 자가용 한 대가 들어와 본관 쪽으로 굴러갔다.

  “부당 징계를 철회하라!”

  구호를 외치며 학생들이 그 차를 따라 뛰어갔다.

  대다수의 학생들은 교문 쪽에 남아, 지키고 있었다.

  어느덧 11시가 넘어 있었다.

  나는 몹시 흥분되고 긴장된 심정으로

  두 장의 종이를 쥔 채 연단을 향해 갔다.

  마이크를 쥔 나는 타지역에서 온,

  내가 아는 선생들의 모습에 두근두근거렸지만

  곧 종이, 내가 작성했던 성명서를 읽기 시작했다.

  “부당한 징계를 즉각 철회하라! ……노조원과 비노조원

  간의, 분열만 없으면 좋겠다고 분명히 표명했던 바,”

  너무 긴장하고 흥분된 탓인지 갑자기 온몸을 전율하는

  바람에 손에서 떨어져 바람에 날려가는

  성명서 종이를 주워 와서 다시 읽어갔다.

  “우리의 요구, 우리 전교조 교사를 부당하게 탄압 말라!”

  “탄압 말라! 탄압 말라!”

  “전교조!”, “사수!”, “전교조!”, “사수!” 하고

  앞사람과 뒷사람이 구호를 나누어 반복적으로 외치면서

  앞사람의 어깨에 두 손을 얹은 채

  교장실 옆 출입구로 뛰어갔다.

  곧 맞닥뜨려진 것은,

  교장실 옆 복도에서부터 출입구 현관까지 꽉 들어차

  남학생·여학생이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는 장면이었다.

  “징계위원들을 못 들어오게 막았으니까

  선생님들도 징계위에 참석하지 마십시오.”

  하고, 학생들이 간절히 호소해왔다.

 

  나는 가볍고 손힘이 없어 손에 쥔 종이 한 장을

  사람들 앞에 펼쳐 들면 자주 놓친다.

  그런데 이날은, 힘없는 내가 펼쳐 든 종이를 놓쳐

  사람들의 바람과 눈물과 희열로 파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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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9 오후 6:25 (원작 최종교정)

(‘계의결요구사유서는 문서 이름이며 깥벽/기말 고사는 단어임, ‘부규’, ‘외집단소’, ‘못해 사일은 문서에 적힌 글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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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혜영_장주선_이호_박석준_장주섭_(앞줄)_1994년&nbsp;1정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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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 파고라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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