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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시

나의 실존주의 앙가주망 (22), 나의 무비즘 (28) 그 애의 수첩과 선생님, 길 / 박석준

나의 30 그 애의 수첩과 선생님,

나의 실존주의 앙가주망 (22), 나의 무비즘 (28)

1987-03 / 1989-01 / 1993 / 2002

박석준 /

그 애의 수첩과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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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에 잘생긴 고1 아이가 싱글거렸다.

  ‘쟤가 수업을 하는 거냐, 나를 감상하는 거냐?’

  생각케 한 그 애가 광주로 귀가하려고 길을 걷는 나를

  따라왔다. 엿새를 버스정류장까지 오더니, 마지막 날엔

  “하숙하면 더 편하잖아요?” 하며 나의 손을 잡았다.

  나는 3월 봉급으로 4월에 항구도시에 자취방을 빌려,

  밤엔 을 설계했다.

        ― 「먼 곳 3 11월의 얼굴들과 빗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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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의 수첩과 선생님,

 

 

  귀갓길을 걷는 나를 따라와 버스정류장에서 3월에

  6일간을, 집 가르쳐주세요, 하고 내 손을 잡았다.

  3월분 봉급으로 나는 4월에 자취방을 구했다.

  시간은 6월항쟁 속으로 들어갔다.

  ‘그 애9월에 찾아왔다.

  날 알려 하지 말고, 니 할 일을 해라, 난 내 할 일 할 테니까.

  그러세요. 전 아버지한테 기술 배워서 목수 일 할 줄 아니까.

 

  수상한데? 왜 이런 책을 보세요? 하던 아이가 타자를 쳤다.

  타는 진달래*. 조여오는 압박과 갈등의 굴레에 아이들은 하나 둘 지쳐가고……

  나는, 8월에 해직을 선택하여, 냉장고 없는 어머니가 있는 광주 셋집에 돌아갔다.

  내가 생존을 위해 노조 사무실 알바를 하고,

  대학 4학년인 그 애수첩선생님이라 쓰고 전화번호를 적었다. 그리고 입대했다.

 

  다른 아이에게서 그 애가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면회하는데

  수첩을 뺏겼어요. 선생님 전화번호만 적혔는데, 누구냐고, 자꾸만 누구냐고, 고문을…….

 

  내가 복직하고, 의자 공장에 다닌다는 그 애와 서울의 지하철에서 헤어졌다.

  한 달쯤이나 지난 17년 전 메이데이, ‘그 애가 떠났다고 전화로 전해졌다.

 

  그를 기리려고 학교에 17년 전 심은 나무가 떠오르고,

  ‘그 애얼굴이, 택시의 차창 밖에서, 흐르는 과 밤의 불빛들 사이에서 흔들거렸다.

 

 

    * 타는 진달래 : ‘더불어의 핵심인 그 애(박재원 열사, 19712002), 서다윗, 김대호, 박광휘, 배상일, 이창석, 김현국이 박승희 등과 논의하여 1989526일에 결성한, 고교생의 전교조 투쟁을 주도한 자주교육쟁취고등학생협의회9월 간행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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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082019.07.28. 11:37 <원작 원본> ()

= 문학들572019 가을(2019.08.30.)

=2020.03.17. 16:43 <개작 원본> (그애)

= 시집_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2020.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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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상황

    19873(만남),

    19879(자취방에 찾아옴)

    19891(자취방에 찾아옴) : 1

    19898(해직),

    19899(타는 진달래)

    1991(노조 상근 알바)

    1993_(입대) : 2

    1993_초여름 (면회) : 3

    19981(헤어짐),

    20024월 말경. (그 애 사망, 32) : 4

    201968(현재)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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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삶과 관련한 해석

  200024월 말경에 그 애가 세상을 떠났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심란했다. 이 해 2월에 22살의 제자가 군대에서 사망하여 괴로워하는 중이어서. (고흐를 좋아한 이 제자를 생각하다 20035월에 쓴 글이 블로그 고흐이다.)

  19981월에 내가 일산에 가 있는 때 그 애가 그곳으로 1주일 가량 찾아왔다. 나의 자서전의 최종 교정을 보기 위해서였다. 교정을 마치고, 고속버스로 광주로 돌아가는 나를 배웅하려고 지하철에 동승한 그 애는 지하철역에서 작별인사를 했다. (→ 「언덕의 말)

  그러나 자서전은 유명 출판사와의 교섭 과정에서 많은 고난(난도질)을 겪는 슬픈 책(sad book)’이 되고 말았다. 나는 고뇌하었고 1998122일에 저자후기(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를 썼다. 그렇지만 사정이 좋아지지 않아서 19994월엔 시 형식의 글 일상 3’(= 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을 쓰기에 이른다. 내가 괴로워하는 것을 본 석률 형이 한ᄀᆞᄅᆞᆷ출판사를 만든 후 이 글을 마지막에 덧붙여서 19999월에 출판한 책이 나의 자서전 내 시절 속에 살아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지하철역에서의 헤어짐이 그 애와의 마지막 만남이 되고 말았다. ‘그 애가 사망하고 1주일쯤 지난 후 그 소식을 듣고 점식이 광주로 찾아와 괴로워했는데 그 며칠 후에 점식이 세상을 떠났다.

  나는 201968() 밤에 장주선 선생과 함께 제자 창석이 하는 술집에 가서 그 애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다음날 그 애의 수첩과 선생님, 초고를 썼다.

  ‘그 애가 고문을 당한 것은 학생운동권의 리더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첩이 문제가 되었다. 그 애가 수첩에 선생님이라는 글자 옆에 전화번호(실제 번호의 네 개의 숫자에 1씩을 더한 것임)를 적었기 때문이다. ‘그 애는 나를 보호하려는 생각에서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나는 해직교사이고 전교조 전남지부 정책실에서 일하는 사람이고 나의 한 제자가 수감 중이고 두 제자가 얼마 전에 출감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생운동에서 핵심으로 활동을 하는 제자가 많기 때문이다.

  1학년 학생 중 그 애가 나의 자취방에 찾아온 첫 아이이다. ‘그 애는 학생을 데려왔다. 나는 나의 자취방에 찾아온 학생들에게 자취방을 학습 및 토론 공관으로 제공했다. 하지만 그들의 학습 및 토론에는 개입하지 않았다. 그들이 삶에 관한 문제를 놓고 나의 생각을 물었지만 몇 차례만 내가 생각한 대로 말했을 뿐이다. 그들 중 중심인물은 그 애’, 성태, 대호, 창석이었다. 이들은 고등학생연합회를 구상하였고 작업을 하여 목고련을 결성했다(19892).

  「그 애의 수첩과 선생님, 은 수첩()으로 인해 고문을 받고 그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난 그 애(박재원 열사)’에게 의미를 두기 위해 쓴 것이다.

 

  “날 알려 하지 말고, 니 할 일을 해라, 난 내 할 일 할 테니까.

  그러세요. 전 아버지한테 기술 배워서 목수 일 할 줄 아니까.

  「그 애의 수첩과 선생님, 은 이 문장에 글의 경향(색깔)이 잘 드러나 있다. ‘그 애는 자신의 삶의 을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이 글은 인간의 주체적 존재성을 강조하는 실존주의를 바탕에 깔고 있다. ‘그 애는 사회 변혁을 위한 길로 의식을 키워갔고, 자신이 생각한 대로 후일 의자 공장에서 목수 일을 하던 중에 삶을 마친 것이다. 해직을 선택하여” “노조사무실 알바를 한 것이다.

  이 글에 덤덤한 어조를 취한 것은 그 애의 슬픈 삶이나 안타까운 삶을 형상화하는 것보다는 그 애는 진실한 삶을 이루었다는 것을, 또는 진실한 삶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려는 마음 때문이다. “흐르는 흐르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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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 길을 따라 계절이 열두 번 가고

  나는 그 골목길을 걸어가네

 

  골목길을 걷다가

  내 그림자가 벽에 져서

  낮이 사라진 벽을 보았네

 

  떠났어, 서울 지하철역에서,

  잘 있거라, 거울 속 얼굴들아 조선대 언덕의 말들아.

  사람들한테 들어서 낯익은 말들인데,

  마음이 궁글어

  무디어진 사람의 얼굴이 모습이

  나를 그곳에서 망설이게 하네

 

  그 사람의 말 없음에, 사랑을 잃고

  내 젊음이 사라졌네

박석준, 언덕의 말전문

    *실제 상황 : 2005.03.25. (, 현재, 순천 순천여고 후문 앞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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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그애(1971-2002)의 묘비 _ 조선대학교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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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협 엠티 _1989-08. 재원 , 다윗( 앞줄 왼쪽부터 ), 광휘( 2번 줄 오른쪽 2 번째 ), 대호(마지막 줄 오른쪽 2번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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