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29 슬픈 방 2 ― 방과 나
나의 실존주의 앙가주망 (21), 나의 무비즘 (27)
1988-05 / 1988-12 / 1992
박석준
슬픈 방 2
― 방과 나
88년 5월의 어느 토요일. 직통버스를 기다리며 줄 서
있는 나에게는 한 생각이 흘러가고 있었다.
아무도 모를, ‘방과 나의 존재’에 관련한 생각이.
‘방! 방은 사람이 돌아가 일상을 마무리하는 실내이지만
나에겐 방이 주로 바람과 바램과 슬픔의 사정들을
안고서 허덕이는 모습들로 푸접없이 다가왔을 뿐이다.
어머니는 우리들의 방이 두 개의 방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 두 방에서 형들과도 함께 살고 싶어 하는 어머니의
심정을 형들이 받아들여야 할 텐데…….’
나는 12월 어느 황혼 무렵에 광주행 버스 속에서
“지난 79년 남민전 사건으로…… 크리스마스…….”
하는 갑작스러운 소리에 라디오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날 저녁 나는 어머니를 찾아 그 소식을 알렸다,
그날 밤, 나는 열려진 앞닫이 문과 앞닫이 속에서 나왔을
물건들을 만지작거리는 어머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머니 곁에는 그 물건들을 담고 있었을
자주색 보자기가 펼쳐져 있었다. 아버지가 떠올랐다.
“피곤하실 텐데…….”
“김장 담가둔 장독 있디야. 내가 그 큰 장독 속에다
짚숙이 숨겨놔서 요것이라도 남았제. 심새 항아리도
뒤지더라. 장독이 크고 김치까지 담아놔서 그랬는지,
다행히 고놈들 손이 짚은 데까장은 안 가더라만.”
동문서답 같은 반응을 하면서도 어머니가 손길을 주고
있는 것은 10년 전쯤에 형들이 남기고 간 물건들이었다.
12월 20일 밤, 어머니는 청소를 하고 방에 이부자리를
가지런히 펼쳐놨다. 형들이 오면 쓸 거라고 10년간
농 속에 갇혔던 이부자리였다.
내게 더욱 애틋한 것은, 어느 가을 저녁
어머니가 손길을 주는, 마당에 놓인 나팔꽃 화분이었다.
그 화분은 그 저녁처럼 약간의 흙을 담고 있을 뿐이지만,
겉이 깨끗이 씻겨 있었다.
12월 21일 새벽, 어머니는 식구들을 깨우셨다.
누나와 잔디, 작은형, 나, 어머니는 아침이 다 된 때에야
철문에서 나오는 큰형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소리와 모습을 알아차릴 새도 없이 형은
기다리는 다른 사람들 속으로 스며들어가 버렸는데,
한 시간쯤 지난 뒤에야 어머니 품에로 안길 수 있었다.
오후, 수와 함께 안동교도소에 갔지만 출감한 삼형을
만났을 뿐 남의집살이 일 때문에 헌이 순천으로 가서,
헌과 아버지를 제외한 우리 가족은 10년 만에
한 곳에서, 유동 슬픈 방에서 재회할 수 있었다.
10년 전 나를 광주피정센터로 데리고 갔을 때의 그 갈색
바지에다가 흰 고무신 차림을 하고서 돌아온 삼형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고 몹시 비통해했다.
형들이 석방되면 잠이라도 잘 수 있어야 하니까 두 개의
방이 필요하다고, 우리들에게 털어놓으셨던
어머니의 바람은 형들이 가석방된 바로 그날에 바램으로
깨어지고 말았다. 그 두 개의 방에서 삼형이 이틀간
번갈아 자고 갔을 뿐……. 그 밤, 뜬눈으로 밤을 새는
어머니의 모습이 애틋한 장면으로 내게 남았다.
큰형은 글 쓰는 일과 운동권 사람들을 만나야 할 일
때문에 집 근처 여관으로 갔다.
어머니는 형의 식사를 마련해 하루 한 번 여관으로 갔다.
“제야, 니가 고생 많았다. 몸이 이렇게 말라버렸으니.
우유랑 사과 세 개 사 와라. 우리가 먹으면 맛있을 거다.”
하고 남주* 형이 천 원을 줬다.
‘소년 같아. 사과 값도 모르고.’ 생각하고 여관에서 나와,
나는 돈을 보태 89년 1월의 사과와 우유를 샀다.
그리고 세월은 그 두 개의 방에 나와 어머니의 모습을
뿌려대고 92년으로 흘러가 나를 아프게 했다.
심장과 눈이 아파 외출이 어려운 내가 빛이 조금이라도
드는 방으로 이사하자고 부탁했고,
어머니가 절름거리며 93년 가을에 박제방을 구했다.
방! 방은 사람이 돌아가 일상을 마무리하는 실내이어서.
* 큰형 : 박석률(1947~2017). 혁명가. 남민전 사건으로 1979년 11월에 체포되었으며, 무기수였음.
1974년 4월 ~ 1975년 2월. 민청학련 수감 (7년형)
1979년 11월 ~ 1988년 12월. 남민전 수감 (무기징역형) (1988년 12월 21일 특별사면 가석방됨)
1995년 11월 ~ 1996년 8월. 범민련 수감
전)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민자통) 의장
전)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공동대표
* 삼형 : 박석삼. 남민전 사건으로 1979년 11월에 체포되었으며, 15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함.
(1988년 12월 21일 특별사면 가석방됨)
* 김남주(1946~1994):시인. 박석률의 권유로 남민전에 가입. 남민전 사건으로 15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함.
(1988년 12월 21일 특별사면 가석방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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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0 오후 5:22⁓2020.03.25. 01:32 <원작 원본> (열려진/새는)
=→ 시집_『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2020.05.25.) (열린/새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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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상황
1988.05. 목포 버스터미널 : 1연
1988.12. 목포에서 탄 광주행 버스 안, 유동 두 개의 슬픈 방 : 2연
1988.12.20. 유동 두 개의 슬픈 방 : 3연
1988.12.21. 광주교도소, 유동 두 개의 슬픈 방 : 4연
1989.01. 유동 서울여관 : 5연
1992/1993 광주 유동 : 6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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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시집과 관련한 해석
⓵ 구성, 기법
「슬픈 방 2 ― 방과 나」는 “방! 방은 사람이 돌아가 일상을 마무리하는 실내이지만”이 “방! 방은 사람이 돌아가 일상을 마무리하는 실내이어서.”로 변주되면서 끝나는 구성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글은 “방”과 관련하여 시공간을 이동하면서 사건들이 펼쳐지는(사람들이 움직이는) 무비즘 기법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 글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ㆍ재현하려고 하는 리얼리즘 기법과 ‘시간과 인간 의식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반영한 모더니즘 기법이 결합된 글이다.
⓶ 표현
“고놈들”, “나팔꽃 화분”은 「슬픈 방 2 ― 방과 나」를 수록한 자서전적 시집 『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를 살펴봐야만 제대로 해석되는 표현이다. ― 시집의 「장미의 곁에 있는 두 얼굴」을 통해 “고놈들”이 “형사들”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일상 1-1」을 통해 “나팔꽃 화분”이 ‘수감된 아들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의 투사물’임을 알 수 있다.
“아버지가 떠올랐다.”라는 표현이 불쑥 튀어나와서 긴장하게 한다.
“박제방”의 ‘방’은 백석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의 ‘방(方)’과 같은 말이면서도 “박제”는 “(세 들어 사는) 나”이고 ‘박시봉’은 ‘집 주인’이라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
한데 “나”는 ‘형들이 석방된다’는 소식을 들었음에도 “나팔꽃 화분”에 ‘애틋함’을 느낀다. 그리고 형들이 석방된 날에 “그(가석방된) 밤, 뜬눈으로 밤을 새는 어머니의 모습”에 ‘애틋함’을 느낀다. “나”에게 “나팔꽃 화분”과 “어머니”는 ‘애틋함’으로 연결되는 심상을 남긴 것이다.
이 글은 시집의 한 부분이다. 시집에서 ‘슬픈 방’이라는 제목은 「슬픈 방 1」, 「슬픈 방 2」로 나뉘었지만, “나”의 방이자 “어머니”가 살아가는 방이며, 두 아들이 석방되면 “어머니”가 그 두 아들과도 함께 살고 싶어 하는 방이며, “나”의 의식에 ‘슬픈 방’으로 남은 방이다. 하지만 결국 “나”와 “어머니”가 살아가는 방으로만 남아버렸기에 ‘슬픈 방’이라고 “나”가 생각할 뿐이지, 「슬픈 방 1」, 「슬픈 방 2」에는 “나”나 “어머니”가 슬퍼하는 내용은 없다. 다만 “나”가 “뜬눈으로 밤을 새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애틋한(애가 타는 듯이 깊고 절실한) 심정을 일으켰고 그것이 뇌리에 남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 글은 담담한 어조로 흘러간다. ― 그리하여 독자가 ‘슬픔’을 느낀다. 이 점이 나(박석준)의 글의 표현에 나타난 특징이다.
⓷ 구속과 실존
시집에서 “나”는 “불안한 몸”, ‘그’, “형들(의 남민전 사건)”으로 구속(통제)된 교사 생활을 한다. 이 중 ‘그’의 구속(통제)이 ‘먼 곳 평교사회’를 창립한 날(1987년 12월)에 사라진다.(「먼 곳 4」) 그리고 이 글에서(1988년 12월 21일에) 형들이 가석방됨으로써 “형들”과 관련한 구속이 사라진다. 그리하여 “나”에겐 “불안한 몸”(나 자신)으로 인한 구속만 남는다.
“심장과 눈이 아파 외출이 어려운”(불안한 몸을 지닌) “나”는 “빛이 조금이라도 드는 방”을 원한다. 이 글에서 “빛”은 ‘실존’을 암시하는 말이다. 이 글은 실존주의를 반영하고 있다.
“방”이 ”나“에게 “허덕이는 모습들로 푸접없이(붙임성이나 정이 없고 쌀쌀하게) 다가왔”다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 표현이지만, ‘방과 나의 존재’가 깊은 관계에 있음을 알게 한다. ‘방과 나의 존재’에서 “존재”는 ‘실존’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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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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