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68 안_(석사본)
나의 낭만주의 (1), 멜랑콜리 (1), 실존주의 (21)
2004-02-19
박석준 /
<원작교정>_석사본 2008-09-07 (못해/‘안’ 을)
안
한 해면 삼백 육십 오일을, 슬프다고 말해 놓고도
말 못할 슬픔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삼백육십오일 모두를
얼굴을 보며 말한 건 아니지만요.
말 한마디 못해 병이 되었다면
말 한마디 하고도 병이 남아 있겠지요.
하루를 말 한마디로
다 붙잡을 순 없을 테니까요.
지금 내가 떠올려보는 하루는
그런 하루가 아니에요.
말 한 마디 자체가
그저 내게만 머물다 사라져야 할 어떤 날에
어떤 사람을 몹시 그리워할까 봐
미리 아파하고 있는 그런 하루이지요.
사람은 가고, 그림자조차 없는
그런 비명 같은 길을 나를 잊고파
나를 의식하고 마는, 그런 날 말이지요.
그럴 거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생각해봐, ‘안’ 을!
안을 생각해 보지만, 더욱 안 될 것 같아요.
그냥 밖으로, 그냥 아무렇게나
길 위를 흐르고 싶어요.
그 사람, 길 위에서 사라져 버렸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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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1 (못하여/‘안’을) <원작> ∽ 2008-09-07 오전 4:48. 박석준-08종합1-1.hwp <원작교정: 못해/‘안’ 을>
= 『석사학위 작품집』(2009.08.)
↛ (편집자가 임의 오교정: 삼백육십오 일을/삼백육십오 일/한마디) 『시와시』 제7호/2011 여름호(2011.06.01. 푸른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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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2006-12-11 (못하여/‘안’을)
안
한 해면 삼백 육십 오일을, 슬프다고 말해 놓고도
말 못할 슬픔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삼백육십오일 모두를
얼굴을 보며 말한 건 아니지만요.
말 한마디 못하여 병이 되었다면
말 한마디 하고도 병이 남아 있겠지요.
하루를 말 한마디로
다 붙잡을 순 없을 테니까요.
지금 내가 떠올려보는 하루는
그런 하루가 아니에요.
말 한 마디 자체가
그저 내게만 머물다 사라져야 할 어떤 날에
어떤 사람을 몹시 그리워할까 봐
미리 아파하고 있는 그런 하루이지요.
사람은 가고, 그림자조차 없는
그런 비명 같은 길을 나를 잊고파
나를 의식하고 마는, 그런 날 말이지요.
그럴 거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생각해봐, ‘안’을!
안을 생각해 보지만, 더욱 안 될 것 같아요.
그냥 밖으로, 그냥 아무렇게나
길 위를 흐르고 싶어요.
그 사람, 길 위에서 사라져 버렸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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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19 ∽ 2006-12-11 오후 7:45. 박석준-가을비-1.hwp (못하여/‘안’을) <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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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상황
없음(2004-02-19. 광주에서 한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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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어휘에 내가 시인으로서 담은 의도
나는 사랑을 제대로 한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가끔 ‘사랑’에 관련하여 생각하게 되고 글로 표현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안」이라는 글은 나의 이러한 욕망이 자극해서 쓴 글이다, 「안」은 지면에 3번 실린 글인데, 석사학위 논문집에 실린 것이 원본이며, 나는 이 원본을 쓰는 데에 많은 사색을 하여 “안을 생각해 보지만, 더욱 안 될 것 같아요.”라는 표현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편집자의 교정을 거쳐 시집으로 나온 「안」에는 이 문장이 사라짐으로써 전혀 다른 분위기를 만드는 것 같다.
애초 나는 “안”이라는 어휘에 이중의 장치를 넣어두었다. 사전에 나온 대로 ‘안: 1. 안쪽, 2. 아니’라는 두 의미를 한꺼번에 넣어둔 것을 시집본에서는 이 문장이 사라져서 이런 어감에서 나오는 아우라를 맛볼 수가 없다.
“안”과 ‘삼백 육십 오일/삼백육십오일/말 한 마디’는 말하는 화자의 상황(처지)과 태도 상상하게 하려고 생각해낸 표현이다. “삼백 육십 오일”은 ‘생각에 빠진 나’를 표현하려는 의도가 들어 있고, ‘삼삼백육십오일’은 ‘1년’ 혹은 ‘한 해’뿐만 아니라 ‘항상’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는 말이다. 이것들은 문법에만 맞는 표현인 ‘삼백육십오 일’과는 다른 기능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말 한 마디”에는 ‘말 중에서의 한 마디’라는 의미도 발생시키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그런데 시집에서는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교정된 까닭에 이러한 요소들을 발생시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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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요약>_시집본 2013-01-06 (‘ 안’/‘밖으로 흐르고’)
안
한 해면 삼백육십오 일을, 슬프다고 말해 놓고도
말 못할 슬픔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삼백육십오 일 모두를
얼굴을 보며 말한 건 아니지만요.
말 한마디 못해 병이 되었다면
말 한마디 하고도 병이 남아 있겠지요.
하루를 말 한마디로
다 붙잡을 순 없을 테니까요.
지금 내가 떠올려보는 하루는
그런 하루가 아니에요.
말 한마디 자체가
그저 내게만 머물다 사라져야 할 어떤 날에
어떤 사람을 몹시 그리워할까봐
미리 아파하고 있는 그런 하루이지요.
사람은 가고, 그림자조차 없는
그런 비명 같은 길을 나를 잊고파
나를 의식하고 마는, 그런 날 말이지요.
그럴 거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생각해봐, ‘안’을!
안 될 것 같아요.
그냥 밖으로 흐르고 싶어요.
그 사람, 길 위에서 사라져 버렸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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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19 ∽ 2006-12-11 <원작>
→ 2013-01-06 오전 6:01. 박석준-시집 최종본 2013년1월5일-2(내가 모퉁이로 사라졌다가).hwp (‘ 안’/‘밖으로 흐르고’) <원작 교정>
= 시집_『카페, 가난한 비』(2013.02.12. 푸른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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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해설
비극적 주체의 절망과 희망
― 박석준 시집 『카페, 가난한 비』에 대하여
시인 박석준은 한국 민주화운동 과정에 수많은 고통을 겪은 형제들을 두고 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가족의 일원인 그는 저 자신 또한 전남지역에서 교사로 근무하며 전교조운동에 참여하는 등 적잖은 고통을 감내한 바 있다. 그래서일까. 그의 시의 정서적 바탕에는 고통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오랫동안 마음고생을 하지 않고서는 형성되기 어려운 슬프고도 서러운 정서가 깊게 깔려 있는 것이 그의 시이다.
이때의 슬프고도 서러운 정서는 거개가 침통한 표정,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우울한 표정을 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시의 이러한 정서는 심지어 멜랑콜리라고 명명되어도 무방할 정도이다. 멜랑콜리라고 불리는 비정상적인 심리는 그 범주를 한 마디로 잘라 말하기 쉽지 않다. 그것이 고독, 소외, 상실, 환멸, 염증, 피곤, 절망, 불안, 초조, 공포, 설움, 우울, 침통, 싫증, 짜증, 권태, 나태, 무료 등 어긋나고 비틀린 정서를 모두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왜곡된 정서는 물론 자본주의적 근대에 들어 부쩍 만연해진 병적 심리 일반과 무관하지 않다. 극단적인 이기주의로 말미암아 소통이 단절된 시대, 공감이 사라진 시대의 정서와 깊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 멜랑콜리이다.
물론 이때의 고독은 우울로, 곧 멜랑콜리로 전이되기 쉽다. 멜랑콜리의 핵심 정서는 우울이거니와, 이때의 우울이 고독이나 소외, 상실이나 좌절 등의 정서와 상호 침투되기 쉽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박석준이 자신의 시에서 “비는 전날에도 왔지만/…… 내가 가는 길 위에 우수가 들어선다”(「마지막 출근투쟁」)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이는 잘 알 수 있다. 다음의 시도 동일한 맥락에서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예이다.
외로움 때문이었다.
댓글 하나에,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그리움을 둔 것은
―「음악 카페에서」 부분
한 해면 삼백육십오 일을, 슬프다고 말해 놓고도
말 못할 슬픔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안」 부분
버리고 싶은 우울이 가난이 튀어나온 곳에서 일어난다.
우울은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우울은 네가 없는 곳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비와 세 개의 우산과 나」 부분
위의 인용시에는 각 편마다 ‘외로움’, ‘슬픔’, ‘우울’ 등의 어휘가 토로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보더라도 그의 시의 기본 정조가 멜랑콜리라는 이름의 죽음의 정서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것이 고독, 소외, 상실, 환멸, 염증, 피곤, 절망, 불안, 초조, 공포, 슬픔, 설움, 우울, 침통, 싫증, 짜증, 권태, 나태, 무료 등 어긋나고 비틀린 정서와 무관하지 않다. 그와 더불어 우수나 우울이 실제로는 심화된 슬픔이나 설움으로부터 비롯되기 마련이라는 것도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들 정서가 자본주의적 근대에 이르러 끊임없이 부추겨진 욕망이 지속적으로 억압되는 데서 기인하는 왜곡된 정서, 병적 정서라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점에서 생각하면 자본주의적 근대에 대한, 특히 자본 자체에 대한 시인 박석준의 비판 역시 매우 도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우선 “구르는 차 안에서/돈을 세며 ‘돈을 세는 사람’을/바라본다. 다시 나는/돈을 세며 ‘돈을 세는 사람’을,/‘나’를”(「돈을 세며, ‘돈을 세는 사람’을)과 같은 그의 시를 통해 확인이 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사람이 얼어 죽어도/냄새나는 돈, 살 길 막막한/내 머릿속을 항상 떠다닌다”(「길이 떠는 겨울」)라고 하며 자본에 대해 비판하기도 한다.
―이은봉 시인, 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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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작 노트
나는 내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발생한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일이라든가 내가 겪은 일이나 나에게 다가온(스쳐간) 것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나의 시의 대다수를 썼다. 그렇지만 여러 기법으로 시를 쓴다는 마음도 있어서 아방가르드 경향의 시라든가 실험시, 멜랑콜리 성향의 시를 쓰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사랑해 본 적이 없어서, 멜랑콜리 중 사랑의 좌절을 다룬 몇 작품, 예컨대 「안」, 「입원실 침대 위에 드러누운 말」은 상상하여 형상화한 것이다. 내가 쓴 이런 시들은 내가 멜랑콜리한 상태에 있어서 쓴 것이 아니다. 만일 평론가가 나의 이런 시들에서 ‘시인의 멜랑콜리’를 찾아냈다면, 나는 멜랑콜리한 시를 굉장히 잘 쓰는 시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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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 2004-02-19
In 3
한 해면 삼백육십오일을 말해 놓고
말 못할 슬픔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었어요.
그렇지만, 삼백육십오일 모두를
얼굴을 보며 말한 건 아니었어요.
말 한마디 못하여 병이 되었다면,
말 한마디하고도 병이 남아 있겠지요.
하루란 말 한마디로 다 붙잡을 순 없을 테니까요.
그러나 지금 내가 떠올려보는 하루는
그런 하루가 아니에요.
말 한 마디 자체가 그저 내게만 머물다 사라져야 할
어떤 날에
어떤 사람을 몹시 그리워할까 봐
미리 아파하고 있는 그런 하루이지요.
사람은 가고
그림자도 없는
그 비명 같은 길을 나를 잊고파
나를 의식하고 마는 그런 날 말이지요.
그럴 거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Think
In.
아니 그래서는 더욱 안 될 것 같아요.
그냥 밖으로, 그냥 아무렇게나 길 위를 흐르고 싶어요.
그 사람이 길 위에서 사라져 버렸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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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19. 03:34. 카페 가난한 비_In 3 (초고)
→ https://cafe.daum.net/poorrain/4Ps/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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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순천여고. poorrain 7-05-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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