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69 바람과 사람
나의 실존주의 모더니즘 (22)
2004-09-04
박석준 /
바람과 사람
비를 좋아했지만
너무나 강한 바람은 싫어했다.
그 바람에 실려 오는 비도
싫어지곤 했다.
바람 사람, 사람 바람 둘 중에 어느 것이 맘에 들어요?
묻곤 하던 아이는
내가 있는 세상을 떠나
어느덧 2년쯤 흘러갔다.
나는 인연의 흔들림을
바람 불 때마다 짙게 느끼게 되었다.
바람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그 골목으로 간 것은,
사람 때문만도 아니었다.
사람과 바람 때문에
쪼그려 앉아 피워도 마구 흩뜨려지는
담배 연기가 나를 콕콕 찔렀다.
나는 바람을 다시 생각했고
바람 끝이 그저 자극이라는 것을
장미꽃 아래서, 가시처럼 의식했다.
나는 사람을 다시 생각했고
가시에 찔린 곳을 어루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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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07 ∽ 2013-01-06 오전 6:01. 박석준-시집 최종본 2013년1월5일-2(내가 모퉁이로 사라졌다가).hwp <원작>
= 시집_『카페, 가난한 비』(2013.02.12. 푸른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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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상황
2004-09-07 (순천여고 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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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바람과 장미, 인연
‘인연’엔 ‘①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사람이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 ②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원인인 인(因)과 간접적인 원인인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 등 몇 가지 뜻이 있다. 「바람과 사람」은 “인연”을 ①의 ‘사람이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로 사용했다. 그래서 ‘인연의 흔들림’은 ‘관계의 흔들림’ 내지 ‘관계의 끊어짐, ‘이별, (사람의) 죽음’을 함축하게 된다.
“바람 불 때”는 ‘나에게 좋지 않은 상황이 스치고 있을 때’를 함축한 표현이다. 그리고 “담배”는 ‘생각(고민)’을 비유한 말이다. 「바람과 사람」은 “나”가 ‘나에게 좋지 않은 일(바람)’이 스치고 있을 때 ‘인연의 흔들림(사망이 소외시킴, 이별함, 죽음 등으로 사람이 내 곁을 떠남, 인간관계가 끊어짐)’을 생각하게 되고 번민(흡연)하게 된다는 것과 “나”가 아이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형상화하였다.
“장미꽃”이 함축한 뜻은 “나”가 바라는 것(아름다운 일, 좋은 상황)이다. 「바람과 사람」에는 ‘바람’과 ‘가시(형극, 장애)’를 고려하지 않으면(그리고 살피지 않으면) “장미꽃”을 얻을 수 없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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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창작 동기
교사들에게서 소외된 나(박석준)는 점심시간이면 학교 밖으로 돌아다니다가 자판기 율무차 한 잔을 뽑아 먹고 피로회복제 한 병을 사 먹었다. 그러고는 학교 앞 골목길에서 담배 한 대를 피우고 학교로 돌아가는 게 점심시간의 일상이 되었다.
2004년 9월 일은 태풍이 불고 간 후이지만 나의 존재의 가벼움을, 깊이 없는 내 존재를 안타까워하고 불안해했다. 그런데 아직도 바람 끝이 남아서 내가 몸을 휘청거리는데 돌연 ‘묻곤 하던 아이’(박재원) 얼굴이 떠올랐다.
‘묻곤 하던 아이’는 2년 전인 2002년 4월 말에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나를 배려하고 나에게 많은 것을 줬고, 주고 싶어하는 아이였다. ‘그 애’는 대학 시절에 내게 바람과 사람 중 어느 것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질 좋은 삶은 깊이와 폭이 있는 삶이라고 했다.
그런 일이 떠오르면서 나는 ‘나는 폭이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순천에서 근무한 지 6개월이 넘었는데, 이상하게도 부임한 3월 초부터 선생들은 내 곁에 머무르는 것을 꺼려했다. 나는 소외되었으며, 교무실에서나 학교의 다른 곳에서 학교 선생에게 말 한마디를 못 하는 시간만 땋아갔다. 점심시간엔 함께 밥을 먹지 못하고 고독감을 느낀 채 학교 주변 길을 점심시간 끝날 무렵까지 돌아다녔다.
9월이 흐르는 이날까지 나를 찾아오고 나에게 먹을 것을 주기도 한 사람은 여고 3학년 선아와 지영이 단 둘뿐이었다. 나는 매주 하는 교사들의 친목회 자리에도 가지 않았다. 나의 눈과 심장이 아프고 다리가 너무 가늘어서 친목회에서 주마다 하는 배구경기에 뛰고 싶지 않기 때문에.
‘내 몸이 건강하지 않다는 것과 내가 전교조 복직교사라는 것 때문에 사람들은 나를 떨어져 나가게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학교의 선생 거의 다가 전교조 운동엔 별로 관심이 없었다. 하여 나는 아는 사람을 만날 리 없는 이 골목길에서 생각에 잠기게 했다.
‘사람과 바람. 나는 바라는 게 있지만, 내가 함께할 사람이 없다. 나는 나의 바람 때문에 스스로 아파하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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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화
“바람 사람, 사람 바람 둘 중에 어느 것이 맘에 들어요?”라는 말은 내가 가장 좋아한 아이, 애제자 박재원(1971-2002)이 한 말이다. 2002년엔 호철, 재원, 점식, 세 제자가 6월로 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 중 호철은 고흐를 좋아하여 자신의 홈페이지에 고흐와 관련된 것을 올려놓기도 했다. 2002년 2월에 2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 사실을 나는 몇 달 후에야 알게 되었고, 이후 5월 1일에 재원의 죽음을 전화로 듣게 되었다. 그 며칠 후에 그의 친구 점식이 세상을 떠났다. 나는 괴로워하다가 2003년 4월에 「홈페이지 속의 두 죽음」을 쓰고 5월에 「홈페이지, 고흐」로 개작했으나 둘 다 발표는 못 했다.(한데 시집 출판 과정에서 내용이 수정되고 제목도 「블로그 고흐」로 바꾸게 되었다.) 순천여고 교사인 나(박석준)는 일상 계획에 따라, 1년 후인 2004년 9월에도, 점심시간이어서 약국에 가서 피로회복제를 사 먹고 순천여고 앞 골목길(순천남초등학교 옆 골목길)로 들어갔다. 그런데 골목길에서 불현듯 재원이 얼굴이 떠올랐다. 이날 메모를 하여 ‘바람 속 길’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그리고 세월이 매우 흐른 후에 이를 바탕으로 「바람과 사람」(2013), 「세월, 말」(2021), 「언덕의 말」(2022)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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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5.06 (월) 20:20 메일엔 이렇게 적혀 있다.(재원이 4월 말경에 세상을 떠났지만.)
재원!
시간의 마디가 시절로 끝나버린 사람.
오늘은 이 모든 것이 비에 젖어
‘살아감’이 어디까지였는지
발자국을 흐리게 한다.
아침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리듯 말듯 하였는데
보름 전부터 계속되는 눈의 통증 때문에 조퇴를 하고 귀가했다.
그러나 병원에 가면서부터
시간의 색깔을 많이 생각해 보았다.
가기 직전에 <내 시절 속에 살아 있는 사람들> 이야기의 한 주인공의
자살 소식을 접한 오늘은 ‘빈 색(貧色)’인 것 같다.
그리고 그 시간의 색깔은 어떤 빛깔로 가는 건지
알 수 없어,
지금 상념을 털고 있다.
그 사건은 10일 전쯤에나 일어났으리라 생각하는데,
3년 3개월 전부터 나는 아무런 말도 그에게 할 수 없었다.
세상에는 많은 것이 흐르고 있다는 걸 나는 안다.
오늘도 많은 것들이 만나고 흩어지고 있으리라.
오늘 내리는 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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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 2013-01-15
바람과 사람
비를 좋아했지만
너무나 강한 바람은 싫어했다.
그 바람에 실려 오는 비도
싫어지곤 했다.
바람 사람, 사람 바람 둘 중에 어느 것이 맘에 들어요?
묻곤 하던 아이는
내가 있는 세상을 떠나
어느덧 2년쯤 흘러갔다. 인연도 흘러가
나는 육체의 흔들림을
바람 불 때마다 짙게 느끼게 되었다.
바람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그 골목으로 간 것은,
사람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람과 바람 때문에
쪼그려 앉아 피워도 마구 흩뜨려지는
담배 연기가 나를 콕콕 찔렀다,
눈가에 이상하게도 눈물이 맺히도록.
나는 바람을 다시 생각했고
바람 끝이 그저 자극이라는 것을
‘장미’ 꽃 아래서, 가시처럼 의식했다.
나는 사람을 다시 생각했고
가시에 찔린 곳을 어루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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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5 오후 1:26. 박석준-시집 최종본 2012년9월22일-1(맹문재).hwp (초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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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2004-09-07
바람 속 길
바람이 불기 전
찾아온 그 골목길,
나 없을 때 지나간 누군가의 사람 자취
사람 그리워
바람이 불었다. 태풍에 섞여 비도 왔지만.
바람이 비보다 내 가슴에 새겨져,
출근길엔 돌아올 시간을 걱정하였다.
나는 비를 좋아하지만,
너무나 강한 바람은 싫어
그 바람에 실린 비도 싫어지곤 했다.
‘바람’과 ‘바람(소망)’은 달랐다
말하던 아이는 내가 있는 세상을 떠나,
어느덧 2년쯤 흐르고,
인연도 흘러가
나는 육체의 흔들림을
바람 불 때마다 짙게 느끼게 되었는데.
바람이 불어서 나는 그 골목으로 간 것만은 아니다.
왠지 그 골목으로 가야 담배라도 피울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담배는 내가 쪼그려앉아 피워도
연기를 흩뜨리며 나를 콕 찌른다.
눈가에 이상하게도 눈물이 맺히게
나는 바람을 다시 생각하고
바람 끝이 그저 자극이라는 걸
‘Rose’ 꽃 아래
가시처럼 의식한다.
그러나 바람은 불던 방향 어디론가 가버리고
나도 어디론가 가야 하기에
가던 길을 가야 한다.
사람 생각나는 골목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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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7 태풍이 지나가는 오후. (메모)
2004.09.07. 15:51. 카페 가난한 비_바람 속 길 (메모 원본)
→ https://cafe.daum.net/poorrain/4Ps/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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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조선대학교 20240402_104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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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곤 하던 아이' 추모비. 조선대학교 FB_IMG_169858594109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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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배경. 순천여고 맞은편 순천남초등학교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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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배경. 내가 근무한 순천여고_(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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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 유동, 나, 2004-04-04 오후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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