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52 화분의 꽃
나의 모더니즘(9), 앙가주망(38), 나의 무비즘(48)
2000-12-초순, 2001-07-04
박석준 /
<원작 원본>
화분의 꽃
집에서 기르건 꽃집에서 기르건 그 주인은
화분의 꽃이 아름답거나 좋은 상태로 보이기를 바란다.
12월 초순 즈음 도서실에 찾아온 아이
화분의 꽃 같은 사람 인상을 주는데
관리자인 내게 도우미로 활동하고 싶다 한다.
이틀쯤 지나서는 분위기가 삭막하니
카세트가 필요하다 실내장식이 필요하다
손님을 위한 커피도 필요하다고 한다.
커피, 커피 기구를 마련하자 그는 커피 끓일 물을 떠오는데,
한 사흘 물을 떠왔을 뿐, 카세트라든가 실내장식은 언급했을 뿐
2주일이 지나고 수업을 마치고 온 오후.
도서실에 친구들인지 대여섯 명이 인터넷을 하고 있고
그 애는 컵라면을 먹으면서 왔다갔다하고 있다.
화를 내게, 찾아온 의도를 생각게 한다.
남에게 자기 세계를 보여주려는 표현의 욕구 때문일까.
꽃집 화분의 꽃처럼 자신의 가치를 상품성으로 인정받으려는 것일까.
외로움이 싫어서일까.
자기가 주인인 카페를 소개해 주기까지 하여서,
내가 주인인 카페를 보여주었더니 그날 밤 인사말을 올리기도 하여서,
자신이 쓴 글들을 이따금 건네주기도 하여서
글 쓰는 감각이 신선하고 괜찮다는 느낌을 받아서,
그의 말에 진실성 있기를 기대하는데
그는 나쁘지 않은 사람이다.
자기실현을 지향하는 글을 올리고 곧바로
자신의 현 상태를 반성문 쓰듯이 써서
내 카페 게시판에 1월 30일에 글로 올린 사람이다.
어느 시간까지 나만 보라고 올린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글을.
7월이 막 시작된 어제 반성문 같은 글은 지워버렸지만.
그는 이제 꼬마가 아니다.
나는 그에게 카페의 특별한 존재로 대접할 이유가 없다.
그는 자신을 카페의 가장 특별한 존재로 대접해 주기를 요구하지만
관계란 깊이와 폭과 질을 가지면서 진행되는 건데,
자신의 마음대로 관계가 형성되고 유지되기를 바라고 있으니,
모순된 생각이다. 그래서 그는 아직도 꼬마이다.
화분의 꽃 같은 사람.
꽃집 화분의 꽃같이 주로 남에게 아름답거나 좋은 상태로 보여야 하는 상품으로
자신을 만들어가고 있는 건지 어떤 건지 아직 알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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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7-04 ∽ 2016.07.04. 10:42.메. 2시집_차례-2016-2.hwp (꽃집 화분의 꽃처럼/왔다갔다하고) <원작 원본>
↛ (편집자가 임의 오교정 : ‘ 화분의 꽃처럼/왔다 갔다 하고)
= 시집_『거짓 시, 쇼윈도 세상에서』(2016.12.02. 문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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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상황
2000-12-초순, 2001-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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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객관적 해석
이 글은 “나”가 ‘도서실’, ‘(인터넷) 카페’에서 벌인 한 “아이”의 일을 서술하고 “아이”에 대해서 규정하거나 판단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이”는 이 두 공간에서 “인터넷”과 관련한 행동을 하는데, “나”는 “아이”를 “(꽃집) 화분의 꽃”같이 자신의 가치를 ‘상품(성)’으로 표현한 존재로 보고 있다. 즉 ‘자신을 상품으로 만들어가려는 사람’으로 보고 있다.
이 글은 “꽃(또는 꽃의 아름다움)”의 가치는 “상품성”에 의해 표현된다고 하여 일반적인 시에서 다루는 ‘꽃’과는 다른 시각을 담고 있다. “꽃”을 자본주의 사회에서 존재하는 한 상품으로 나타내고 있다. 한편, ‘외로움이 싫어서 표현을 한다.’는 생각도 담고 있다.
“나”는 “그는 이제 꼬마가 아니다”/“그는 아직도 꼬마이다”라고 상충된 판단을 하면서, 아이가 설정한 인간관계, 즉 인터넷 사회에서의 인간관계에 대해서 비판하고 있다. 이 글은 모더니즘 기법을 사용하여 현대 인터넷 사회에 대한 앙가주망을 기치로 내건 글이다.
-202402-14 오후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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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글 밖 실화
이 글은 2000년 12월 초순, 2001년 7월 4일에 나하고 관련하여 실제로 일어난 일을 표현한 것이다. 당시 나는 목포의 전남제일고(구 목포상고)에 재직하였고, 인터넷 카페 <가난한 비>를 운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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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022-03-29_13:27 푸른마을 내 집 베란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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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4 인터넷 카페_가난한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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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교정) 시집
화분의 꽃
집에서 기르건 꽃집에서 기르건 그 주인은
화분의 꽃이 아름답거나 좋은 상태로 보이기를 바란다.
12월 초순 즈음 도서실에 찾아온 아이
화분의 꽃 같은 사람 인상을 주는데
관리자인 내게 도우미로 활동하고 싶다 한다.
이틀쯤 지나서는 분위기가 삭막하니
카세트가 필요하다 실내장식이 필요하다
손님을 위한 커피도 필요하다고 한다.
커피, 커피 기구를 마련하자 그는 커피 끓일 물을 떠오는데,
한 사흘 물을 떠왔을 뿐, 카세트라든가 실내장식은 언급했을 뿐
2주일이 지나고 수업을 마치고 온 오후.
도서실에 친구들인지 대여섯 명이 인터넷을 하고 있고
그 애는 컵라면을 먹으면서 왔다 갔다 하고 있다.
화를 내게, 찾아온 의도를 생각게 한다.
남에게 자기 세계를 보여주려는 표현의 욕구 때문일까.
화분의 꽃처럼 자신의 가치를 상품성으로 인정받으려는 것일까.
외로움이 싫어서일까.
자기가 주인인 카페를 소개해 주기까지 하여서,
내가 주인인 카페를 보여주었더니 그날 밤 인사말을 올리기도 하여서,
자신이 쓴 글들을 이따금 건네주기도 하여서
글 쓰는 감각이 신선하고 괜찮다는 느낌을 받아서,
그의 말에 진실성 있기를 기대하는데
그는 나쁘지 않은 사람이다.
자기실현을 지향하는 글을 올리고 곧바로
자신의 현 상태를 반성문 쓰듯이 써서
내 카페 게시판에 1월 30일에 글로 올린 사람이다.
어느 시간까지 나만 보라고 올린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글을.
7월이 막 시작된 어제 반성문 같은 글은 지워버렸지만.
그는 이제 꼬마가 아니다.
나는 그에게 카페의 특별한 존재로 대접할 이유가 없다.
그는 자신을 카페의 가장 특별한 존재로 대접해 주기를 요구하지만
관계란 깊이와 폭과 질을 가지면서 진행되는 건데,
자신의 마음대로 관계가 형성되고 유지되기를 바라고 있으니,
모순된 생각이다. 그래서 그는 아직도 꼬마이다.
화분의 꽃 같은 사람.
꽃집 화분의 꽃같이 주로 남에게 아름답거나 좋은 상태로 보여야 하는 상품으로
자신을 만들어가고 있는 건지 어떤 건지 아직 알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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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9. 17:41. 박석준 시집 본문.pdf (편집자가 임의 오교정: ‘ 화분의 꽃처럼/왔다 갔다 하고’)
= 오교정 시집_『거짓 시, 쇼윈도 세상에서』(2016.12.02. 문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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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 2016-06-22 ∼ 2016-06-23
화분의 꽃
집에서 기르건 꽃집에서 기르건
그 주인은 화분의 꽃이 아름답거나 좋은 상태로 보이기를 바란다.
12월 초순 즈음 도서실에 찾아온 아이
화분의 꽃 같은 사람 인상을 주는데
관리자인 내게 도우미로 활동하고 싶다 한다.
이틀쯤 지나서는 도서실이 삭막한 분위기라고
카세트가 필요하다고 한다.
벽면에도 장식이 필요하고 손님을 위한 커피도 필요하다고 한다.
커피 기구와 일회용 커피를 마련하자 그는 커피 끓일 물을 떠오는데, 한 사흘 그랬다.
카세트라든가 실내장식, 실내 분위기 조성 등은 그가 제안했을 뿐이다.
며칠이 지나고 수업을 마치고 온 오후.
도서실에 친구들인지 대여섯 명이 인터넷을 하고 있고
그 애는 컵라면을 먹으면서 왔다갔다하고 있다.
생각지 못한 장면에 화를 내고, 찾아온 의도를 생각게 한다.
남에게 자기 세계를 보여주려는 표현의 욕구 때문이었을까.
내가 알지 못하는 외로움 탓이라 할 수도 있다.
자기가 주인인 카페를 소개해 주기까지 하여서,
내가 주인인 카페를 보여주었더니 그날 밤 인사말을 올리기도 하여서,
자신이 쓴 글들을 이따금 건네주기도 하여서
글 쓰는 감각이 신선하고 괜찮다는 느낌을 받아서,
해가 바뀌면 그가 진실된 행각을 하기를 나는 원했는데.
그는 나쁘지 않은 사람이다.
자신의 현 상태를 반성문 쓰듯이 써서
내 카페의 게시판에 1월 30일에 올린 사람이다.
그건 어느 시간까지 나만 보라고 올린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글을.
반성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날 그는 단순히 나만 보라고 쓴 게 아닌
진실로 자기 실현을 지향하는 글도 보냈다.
그래서 그 두 편의 글을 들여다보곤 하다가
7월이 막 시작된 어제 반성문 같은 글은 지워버렸다.
그의 현 상태에 관심을 갖고 있고 진실로 자기 실현을 바라기 때문에.
그는 이제 꼬마가 아니다.
나는 그에게 카페의 특별한 존재로 대접할 이유가 없다.
그는 자신을 카페의 가장 특별한 존재로 대접해 주기를 요구하고 원하지만.
관계란 깊이와 폭과 질을 가지면서 진행되는 건데,
자신의 마음대로 관계가 형성되고 유지되기를 바라고 있으니,
모순된 생각이다. 그래서 그는 아직도 꼬마이다.
화분의 꽃 같은 사람.
꽃집 화분의 꽃같이 그저 남을 위한 감상용에 불과한 것으로
자신을 만들어가고 있는 건지 어떤 건지 아직 알 수 없는
.
2016-06-22 ∽ 2016-06-23 (초고)
= 2016-06-28 오전 12:36 파. 2시집_차례-2016-0.hwp (초고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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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2001-07-04
화분의 꽃
지난해 12월 초순쯤이었으리라. 확실한 기억은 아니지만.
내가 관리하는 도서실에도 화분의 꽃 같은 사람이 함께 지내겠다고 찾아왔다. 그 사람은 이틀쯤 지내더니 도서실이 삭막한 분위기라고 하면서 카세트가 필요하다고 했다. 게다가 벽면에도 장식이 필요하고 손님을 위한 커피도 필요하다고 했다. 그 며칠 후 나는 일회용 믹스 커피를 마련했는데 그는 커피를 끓일 물을 떠왔다. 그는 한 이틀 그랬다. 그렇지만 카세트라든가 실내장식, 실내 분위기 조성 등 자신이 제시한 사항들은 말뿐이었다. 무엇 때문에 그런 말들을 꺼냈는지 알 수 있었지만, 나는 그를 그대로 두다가 어느 날엔 화를 냈다. 도서실에 대여섯 명의 친구들을 데려와 인터넷을 하는 가운데 그 자신은 컵라면을 먹으면서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서 한 허상을 보았다. 남에게 자기 세계를 보여주려는 표현의 욕구를 보았다. 그게 타고난 성격 탓이라 할 수도 있다.
그 사건이 있기 전에 그는 카페가 있냐고 물었다. 자기가 주인인 카페를 소개해 주기까지 하면서. 내가 카페 가난한 비를 보여주었더니 그는 곧바로 그곳으로 찾아들어 인사말을 올렸다.
이후 그는 자신이 쓴 글들을 내게 이따금 건네 주었는데, 그러면서도 카페에는 올리지 않았다. 다만 그가 준 글에서는 글 쓰는 감각이 신선하고 괜찮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해가 바뀌었다. 나는 그가 진실된 행각을 하기를 원했다.
그는 나쁘지 않은 사람이다. 1월 30일에 내가 올린 글에 대하여 그는 자신의 현 상태를 반성문 쓰듯이 카페의 게시판에 올렸다. 그건 어느 시간까지 나만 보라고 올린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반성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날 그는 다른 한 편의 글(단순히 나만 보라고 쓴 게 아니고 진실로 자기 실현을 지향하는 글)도 보냈다. 그래서 그 두 편의 글을 들여다보곤 하다가 어제 반성문 같은 글은 지워버렸다. 왜냐하면 그의 현상태에 관심을 갖고 있고 가ㅡ의 생각을 알 수 있었기 때문에.
그는 이제 꼬마가 아니다. 나는 그에게 말장난하면서 그를 비판하고자 까페를 만든 것도 아니지만, 그를 카페의 특별한 존재로 대접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그는 자신을 카페의 가장 특별한 존재로 대접해 주기를 요구하고 원한다. 관계란 깊이와 폭과 질을 가지면서 진행되는 건데, 자신의 마음대로 관계가 형성되고 유지되기를 바라고 있으니, 모순된 생각이다. 그래서 그는 아직도 꼬마이다. 화분의 꽃같이 그저 나를 위한 감상용에 불과한 것으로 그는 자신을 만들어가고 있을 뿐이다. 현재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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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7.04. 16:24. 카페 가난한 비_화분의 꽃 (메모)
― https://cafe.daum.net/poorrain/4Pz/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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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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