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50 옷과 시간과 시력 ― 마음과 시공간의 잔상 3
나의 초현실주의 (4), 실존주의 (8), 나의 무비즘 (46)
2000-07-20
박석준 /
<개작> (교정)
옷과 시간과 시력
― 마음과 시공간의 잔상 3
돈이 필요해서 광주 셋집에 어머니를 두고
목포에 교사 일 하러 왔지만, 나는
심장병이 있고 심히 허약하다. 음식을 주의하는데,
돈이 필요해서, 어제저녁 회식하고 새벽에 돌아와서,
나는 7월 주말에 더운 시간을 꽤 걷고 있다,
버스 정류장까지 이십 분쯤 걸리는 달동네에 살고 있어,
가방과 셋집에 가져갈 반찬그릇 보따리를
양손에 들고 시력으로 길을 걷고 있다.
나는 피로하고, 땀을 흘리고 있다.
쉬었다 가고 싶은데,
앞쪽에서 다가오다가, 시간이
빨간 블라우스 옷이, 여자가 초등학교 정문으로 들어갔다.
빨간색이 1층 창밖에 고개 숙인 얼굴 아래 나타나서
내가 화단 갓길 끝쯤 왔을 때 본 여자의 얼굴 때문에,
누나와 똑 닮았는데! 삼십 대일까? 나를 보았을까?
생각을 하고, 현관 뒤 복도 중앙에서 좌우를 살피고,
우측 행정실에 여자가 있었음을 좌우에 화장실이 있음을
안, 나는 좌측으로 간다.
두 번째 교실의 뒷문이 흐뭇하게 열려 있어서
나는 문 안에서 얼른 하늘색 반팔 와이셔츠를 벗는다.
여자 때문에, 문 속을 여자가 들여다보진 않을 테지
생각을 하고 화장실에서 팔과 낯을 잠시 씻고, 나는
좌측으로 간다.
나는 시력으로 얼른 길을 시간을 걸어가야 한다.
그런데, 옷이? 사라져서, 여자 때문에 빨간색도 떠올랐다.
옷을? “요놈이?!” 하였으나, 가위로 잘라버렸다.
동그란 얼굴 놀란 듯 유심한 눈이 사람을 본다.
교실 앞쪽에 앉아 있다가 일어선 아이가 조그맣다.
1학년일까? 아이가 내 손을 잡고 나를 밖으로 이끈다.
학교 뒤편 10여 채 보이는 빈민가 언덕길을 올라가
끝 집, 폐지들 넝마들 쌓인 곳 사이를 걸어
마루 앞에 아이가 섰다. 여기에 내려놓으세요.
소리에, 말을 할 줄 아네?! 생각한 나를
엄마, 누나야 소리 내고, 방으로 끌어갔다.
허드레옷 엄마가 돌아보고, 엄마와 함께 노파가 일하고,
뒷마루에서 수를 놓으면서 목례하는 누나가 어리고.
나갔다 들어온 아이가, 이거 입으세요. 건네어
옷을 ― 아랫단추 하나 남은 남루한 겨울 남방셔츠를,
입은 나를 유심히 본다.
1학년일까? 아이같이 이상한 시간에 빠져든 나는…….
정문 가까이 왔는데, 옷이 더 너풀거려,
옷 속을 가리고 가고 싶은데, 툭
단추가 굴러가, 올라오는 파란 티셔츠를 의식게 한다.
다가와, 자신의 시력으로 의사처럼 상대 얼굴을 보고,
상대의 드러난 러닝셔츠 속을 살펴본 것 같은데,
파란 티셔츠 남자가 갑자기 웃통을 벗어젖혔다.
너무 빈약하다! 드러난 몸이. 청년기 이십 대일 텐데?
그 몸이 정문 앞 골목으로 곧 들어가버렸다.
나는 택시를 탈 생각을 곧 버려서 길을 내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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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31 <원작> ∼ 2022-12-03 오전 10:54 (이십분쯤/삼십대일까/이십대일/들어가 버렸다) <개작>
= 2022-12-14 오후 07:25. 카페, 가난한 비, 거리에 움직이는 사람들, 무비이즘-선경-박석준-2022-12-14.hwp (개작 원고 원본)
= 2023-01-09 오후 01:29.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이니-박석준-2023-91-09-교-분석.hwp (개작 날짜) =
=→ (띄어쓰기 교정) 시집_『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이니』(2023.03.20. 푸른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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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2019.12.31
옷과 시간과 시력
돈이 필요해서, 고향 셋집에 어머니를 두고
이 도시로 일하러 왔지만, 나는 병약하다,
음식을 주의하는데, 어제저녁 회식으로 새벽에 돌아와서,
나는 7월 주말에 더운 시간을 꽤 걷고 있다.
버스 승강장까지 이십분쯤 걸리는 달동네에 살고 있어,
가방과 셋집에 가져갈 반찬그릇 보따리를
나는 양손에 들고 길을 걷고 있다.
나는 피로하고, 땀을 흘리고 있다.
쉬었다 가고 싶은데,
빨간 블라우스 여자가 초등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빨간색이 1층 창밖에 고개 숙인 얼굴 아래 나타나서,
내가 화단 갓길 끝쯤 왔을 때 본 여자의 얼굴 때문에
누나와 똑 닮았는데, 삼십대일까? 나를 보았을까?
생각을 하고, 현관 뒤 복도 중앙에서 좌우를 살핀다.
우측 행정실에 여자가 있었음을, 좌우에 화장실이 있음을
알게 되어 나는 좌측으로 갔다.
두 번째 교실의 뒷문이 열려 있어, 나는 흐뭇하게
문 안에 짐을 놓고 반팔 와이셔츠를 얼른 벗어버렸다.
나는 화장실로 갔다.
세수를 하고 돌아왔는데, 옷이 없다. 소리가 난 것 같다.
교실 앞쪽에 앉아 어린아이가 옷을 가위로 잘라버렸다.
요놈이! 소리에 놀랐는지 동그란 얼굴의 눈이 나를 본다.
유심한 눈길을 보내고, 말없이 일어선 아이가 조그맣다.
1학년일까? 아이가 내 손을 잡고 나를 밖으로 이끌었다.
학교 뒤편 10여 채 보이는 빈민가 언덕길을 올라가
끝 집, 폐지들 넝마들 쌓인 곳 사이를 걸어,
마루 앞에 서자, 여기에 내려놓으세요.
아이가 나에게 처음으로 말소리를 낸다.
엄마, 누나야 소리 내고, 내 손을 끌어 방에 들어간다.
허드레옷 엄마가 돌아보고, 엄마와 함께 노파가 일하고
뒷마루에서 수를 놓는 어린 누나가 목례한다.
나갔다 들어온 아이가, 이거 입으세요.
옷을 건넨다. 아랫단추 하나 남은 남의 남방셔츠를
입은 나를 유심히 보는 아이에게 나는 길을 묻는다.
1학년일까? 아이같이 이상한 시간에 빠져든 나는 …….
학교 앞에서 옷이 너풀거려 옷 속을 가리려고
짐을 들고 걸으면서 몸을 트는데, 툭 떨어져 단추가
굴러간다, 티셔츠 차림 한 남자가 올라오는 길에.
티셔츠 남자가 다가와, 의사처럼 내 얼굴을 보고,
가린 상의에 눈길을 주고, 갑자기 웃통을 벗어젖혔다.
빈약한 몸이 드러나서 나는 놀랐다. 청년기일 텐데?
그 몸이 학교 앞 골목으로 들어가 버린다.
나는 택시를 기다리려는 생각을 버리고 길을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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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9 ∼ 2019.12.31. 16:02.메. 옷과 시간과 시력.hwp <원작 원본>
= 『광고문학』 8호(2020.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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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
2000-07-20 (2017-07-20 꿈속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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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객관적 해석
이 글은 길을 걷는 “나”가 빨간색을 발견함으로써 장소를 이동하고 안면 없는 사람들을 만나서 곤란한 사정을 겪는 서사를 담고 있다.
김소월 시 「옷과 밥과 자유」와 제목이 유사한 이 글은 이상 시 「오감도 시제1호」처럼 형식과 내용이 독특하고 도시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인들은 「오감도 시제1호」를 시라고 하는데, 내가 쓴 이 글은 소설인가? 시인가, 수필인가?
1) 드러냄과 가림
1연에서 드러난 “나”는 “병이 있고 심히 허약”한 가난한 기간제 교사이다. (돈이 필요해서/고향 집으로 가기 위해서) “더운 시간을” “시력으로 목포(도시) 길을 걷고 있”고 “땀을 흘리고 있다”. “나”가 “옷”을 입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13인의 아해”는 도로를 질주하고, (무엇에겐가) 무섭다고 하고, 화자가 “길은 뚤닌 골목이라도 적당하오”, “길은 막다른 골목이 적당하오”라고 덧붙였을 뿐인 시 「오감도 시제1호」하고는 다르다. = “나”가 길을 가는 이유와 상황과 목적이 매우 구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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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분의 (무기교) 변주
이 글은 “나”가 “더운 시간을 꽤 걷고 있”는 이유를 크게 ‘돈이 필요해서/회식하고 새벽에 돌아와서/달동네에 살고 있어’라는 3가지를 들고 있으며, 자세하게는 ‘광주 셋집에 어머니를 두고 있어서/목포에 교사 일 하러 와서/심장병이 있어서/심히 허약해서/음식을 주의하는 까닭에/7월 주말이어서/반찬그릇을 셋집에 가져가기 위해서’까지 10가지를 들고 있다.(부사어를 바꾸고 있다.)
「오감도 시제1호」에서는 ‘第一의兒孩가/第二의兒孩도/第三의兒孩도/第四의兒孩도/ … /第十三의兒孩도’라고 주어만 바꾸고 서술어는 ‘무섭다고그리오.’라고 동일하게 표현하고 있다. 주어인 ‘第一의兒孩’가 주어인 ‘第二의兒孩’, ‘第十三의兒孩’와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다(주어의 주인공이 가려져 있다.).
이 두 글에서 여기에 제시한 부분에 같은 점은 직유나 은유 등의 기교가 없이 한 성분의 표현을 바꾸어 서술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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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초현실주의
그런데 2연에서 “나”가 “시력”으로 “여자(빨간색→블라우스 옷→여자)”를 차례로 인지하고 이어 “시력”으로 “초등학교 정문”을 인지하고, 곧 “화장실”을 연상한다.
그러고는 3연에 가서, “나”가 “여자”가 보이지 않음을 확인한 후에, “나”가 입고 있던 “옷”이 “하늘색 반팔 와이셔츠”라는 구체적인 모습으로 화면에서 포착된다. 하지만, 이 옷은 “나”가 마음에 둔 “화장실에서 팔과 낯을 잠시 씻”은 후에 옷의 기능을 잃어버린다.(더이상 옷이 아니다.) “아이”가 이 옷을 “가위”로 잘라버려서.
인간은 의지(依支)하려고(ⓐ몸(자신)을 보호하거나 ⓑ몸(자신)을 가리기 위해) 만들어 입는 것이 옷(衣, 의복(衣服))이다. 시간이 흘러 인간은 인간 사이에서 ⓒ자신의 위치를 드러내기 위해서도 옷을 만들어 입었다. 그런데 “나”가 입고 있던 이 옷 “하늘색 반팔 와이셔츠”는 이 외에 ⓓ“나는 시력으로 얼른 길을 시간을 걸어가야 한다.”라는 생각을 실현할 수 있게 한 것이었고 실현할 수 있게 할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아이”가 이 옷을 “가위”로 잘라버린 사건은 “나”의 시간(인생/인생길/자유로운 삶)을 잘라버렸다(막았다, 굴절시켰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가, “아이”가 “나”를 이끄는 존재가 됨을 ― 다른 옷을 입음을 ― 기대하고 선택하여, “나”의 시간(인생/인생길)이 굴절하기 때문이다.
“나”는 “허드레옷” 입은 “엄마”를 본 후 “아랫단추 하나 남은 남루한 겨울 남방셔츠를”를 입었지만, “단추”가 굴러감으로써 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파란 티셔츠 남자가 갑자기 웃통을 벗어젖혔다” 이 해괴한 사건으로 “나”는 “너무 빈약하다! 드러난 몸이.”란 생각을 일으키면서 자신의 “러닝셔츠 속”, 즉 ‘가난하고 힘이 없음=빈약함’에서 갖는 불안감, 콤플렉스를 벗어난다(자신의 정체성을 깨닫는다). 그리하여 “나”가 다른 옷을 입은 채로 음식(“어머니”가 만든 반찬)을 가져오기 위해 셋집으로 향한다.
이 글엔 추리소설 기법이 사용되어서, 독자는 다 읽은 후에야 ‘의식주와 인생(길)’이 소재임을 알게 된다. 또한, 시공간을 이동하여 발생한 인간관계와 사건과 생각을 리얼하게 표현하는 무비즘 기법이 사용되었음도 알게 된다.
그런데, “아이”가 “옷”을 자르려고 “가위”를 가지고 주말에 교실에 올 사람을 교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옷을 주기 위해서. 꿈에서나 가능하고 현실에서는 거의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바로 이 점에서 이 글이 초현실주의를 반영하였음을 알 수 있다.
4) 실존주의, 무비즘
「오감도 시제1호」에서는 화자가 “13인의 아해”의 행위를 관찰하고 서술하고 있다. 「옷과 시간과 시력」에는 “나”, “아이”, “파란 티셔츠 남자”가 상대방을 관찰하고 있다. 두 글에는 “골목”이라는 말(장소)이 표현되어 있다.
“얼른”이라는 말이 2번 나오는 「옷과 시간과 시력」에서, “나”는 가난함을 포함한 여러 가지 원인으로 생각도 못 한 일을 만나고 생각한 일은 굴절되었다. 보다 신중하게 섬세하게 생각하고 행동했다면 “나”는 생각한 일을 이루어냈을 가능성이 많았을 텐데. 하지만 사람은 길을 가려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고, 사람은 모르는 곳에서 와서 모르는 곳으로 돌아간다. 이것이 인생이다.
‘무섭다’는 말이 표현된 「시제1호」는 시의 구체적인 의미 파악은 불가능하고, 시의 전체적인 느낌에서 불안감, 공포감, 혼란감 등이 막연하게 독자들에게 전달된다. 그러면서도 「옷과 시간과 시력」에 등장하는 “나”처럼 “13인의 아해”는 ‘자유(로운 삶)’를 갈망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다만, 「옷과 시간과 시력」에서 “나”는 ‘현대의 도시(목포)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구체적인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13인의 아해”는 어느 시대를 살아가는지(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알 수 없다. 비평가들은 「시제1호」를 초현실주의 혹은 다다이즘 경향의 시로 해석하기도 한다. 내가 쓴 「옷과 시간과 시력」은 실존주의, 초현실주의, 무비즘 경향을 반영하고 있다. 무비즘이란 인물이 시공간을 이동하면서 만나는 상황과 사정을 영화를 보는 것처럼 표현하는 데에 중점을 둔 경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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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글 밖 실화
나는 2017년 여름에 「옷과 시간과 시력」의 내용을 담은 꿈을 꾸고 깼는데, 생생하게 떠올라 바로 글로 써갔다. 꿈에 나타난 시간은 2000년(43살) 7월의 주말이다.
실제로 나는 광주에서 셋방을 얻어 어머니와 함께 2000년 봄까지 살아가면서 목포로 버스 통근했다. 한데 심장병이 있고 몸이 심히 깡말라버려서 불안해하는 마음이 생겼고, 없는 돈에 목포 변두리의 버스정류장에서 20분쯤 걸으면 나오는 동네에 셋방을 얻었다. 그리고 병 때문에 소금이 들어 있지 않은 반찬을 가지러 주마다 광주로 올라갔다.
이 글은 『광고문학』에 발표한 원작을 약간 수정한 것인데, 원작을 3시집 『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에 수록하려다가 수정작을 4시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이니』에 수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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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 2019-06-29 ∼ 2019-09-24
옷과 시간과 시력 (19) 7연 44행(50줄)
나는 4년간 동부의 도시에서 근무하고 다시 서부로 돌아갔다.
내가 혼자 사는 데 도시가 유리하여 도시로 돌아갔지만, 여태
1년 전에 생긴 심장판막증으로 몸이 많이 축나 있다, 그러나
나는 외식을 피해야 한다. 일 때문에 어제 저녁 회식을 했지만.
고향의 셋집에 가져가야 할 반찬그릇들을 보자기에 싸
가방과 보따리를 양손에 들고 7월 더운 시간을 꽤 걷고 있다.
셋집에선 어머니가 기다릴 텐데, 빈약한 나는 돈이 별로 없고,
버스 정류장까지 이십분쯤 걸리는 산동네에 사는지라
피로하다. 서른아홉 살인 나는 땀을 흘리고 있다. 주말에
빨간 상의 여자가 초등학교 안으로 들어가서, 멀어져 가는데.
현관 앞 슬리퍼로 갈아 신은 나는 현관 옆 문 열린 행정실에
서 있는 빨간 상의 여자의 얼굴을 보고 놀라 물러섰다.
누나와 똑 닮은……, 나를 보았을까? 삼십대일까?
짐부터 놔둬야겠다고 계단을 올라갔다.
2층에서 바로 화장실을 보니 흐뭇하다.
게다가 조금 걸어서 교실 문이 열려 있는 걸 보니 상쾌하다.
교실 안 문 옆에 짐을 놓고 반팔 와이셔츠를 얼른 벗어버린다.
세수를 하고 돌아왔는데, 이상했다. 소리가 난 것 같다.
교탁 앞 쪽에, 앉아서 일하는 조그만 어린아이가 있다.
아이가 와이셔츠를 가위로 자르고 있다가, 놀랐는지 나를 본다.
아랫부분이 없어진 반쯤 남은 셔츠, 조각들이 그 앞에 있다.
행정실 문이 잠겨 있고 출입문 앞에 구두가 보이지 않는다.
신발장에 한 짝씩 다른 운동화가 딴 칸에 있다.
어머니께 전화하려다가 호주머니 속 핸드폰에서 손을 뗀다.
아이가 유심한 듯 내게 눈길을 보내고, 손을 잡아 이끈다.
학교 뒤편으로 산이 보이는 한적한 작은 길을 조금 올라가
서너 집 지나 고물들 넝마들 쌓인 곳 사이를 걸어
마루 앞에 서자, 여기에 내려놓으세요,
아이의 말소리가 처음으로 들려온다. 1학년일까?
아이는 내 손을 끌고 방에 들어가 엄마, 누나, 소리를 냈다.
허드레옷 엄마와 늙은 여자가 이불 깔린 방에서 일하고 있다.
뒷마루에서 수놓던 어린 누나가 보따리를 풀어 다시 매고
아이가 나갔다 들어오더니, 이거 입으세요, 한다.
아랫단추 하나 남은 남의 남방셔츠를 입은 나를 보고 아이가
다시 나가서, 내가 사람들에게 아무 말 없이 마루로 간다.
아이가 낡은 백구두를 챙겨주고, 유심한 눈길을 보내고 있다.
1학년일까? 아이같이 이미 이상한 시간에 빠져든 나는 …….
옷이 너덜너덜 너풀거려 옷 속을 가리려고
짐을 들고 걸으면서 몸을 트는데, 툭 떨어져 단추가
굴러간다, 내리막길에. 티셔츠 차림 한 사람이 올라오는 길에.
다가와, 의사처럼 얼굴을 보고 가린 상의에 눈길을 준 그자가
갑자기 웃통을 벗어젖혀 빈약한 몸을 드러내서 나는 놀랐다.
청년기일 텐데, 아닌가? 그 몸이 골목으로 들어가 버린다.
나는 택시를 기다리려는 생각을 버리고 길을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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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9 ∼ 2019-09-24 오전 8시 15 (초고)
= 2019.10.12. 18:14.메. 쐐기가 걸어가고.hwp (초고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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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 ― 오감도 시제1호
https://ko.wikisource.org/wiki/%EC%98%A4%EA%B0%90%EB%8F%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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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소월 ― 옷과 밥과 자유
https://ko.wikisource.org/wiki/%EC%98%B7%EA%B3%BC_%EB%B0%A5%EA%B3%BC_%EC%9E%90%EC%9C%A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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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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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8_14:22. 05 푸른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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