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47 우산과 양복 ― 마음과 시공간의 잔상 2
나의 초현실주의 (3), 실존주의 (5), 나의 무비즘 (45)
1997-가을
박석준 /
<원작> 2023-01-09
우산과 양복
― 마음과 시공간의 잔상 2
만화방 같다.
시간 강사인 동생이 문을 열어서
문밖의 눈에 들어온 책상 위 검은 우산,
책상 위 몇 권씩 책 꽂힌 3단 6칸 책꽂이,
가져온 책 든 박스를 책상 위에 놓고 그 우산을 챙기는
비좁은 단칸방
(돈 모아 몇 달 전에 얻었다는 신혼방)이.
“형이 가냘파서 백화점에도 맞는 양복 있을지 걱정이다.”
선볼 날 입을 옷 고르는 걸 엄마가 동생에게 부탁했는데,
4년째 교사를 하는 나는 백화점에서
고가 양복들이 마음에 들지만
오십육 센티네! 허리가 너무 가늘어요. 제일 작은 걸
줄여드릴게요. 하곤 저가 양복을 고르는 여자를 본다.
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젖은 광주역을 뒤에 남기고
버스가 멈춘 두 번째 정류장에 유동에,
(정류장 부스가 비닐 포장마차 같다) 정류장 부스에
우산 속에 누나가, 옆 우산 속에 엄마가 서 있다.
“잊어버리지 말고 우산 챙겨 오란께!”
엄마가 말해, 막 내린 동생이 버스에 오른다.
엄마와 동생이 함께 우산을 쓰고 간다.
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나는 우산 속에서 집을 향해 걷고 있다, 누나와 따로.
“양복 좀 그만 사 입어라.”
“왜 그런 말 해? 3년 전 봄하고 이번, 두 번뿐인데.”
“유세 떨지 말고.”
식당일 나가면 됐지, 양장하고 어딜 갔다 왔지?
나 돈 없는데. 돈 때문인가?
3년 전 3월에 내가 직장을 잡아
엄마 방을 만들려고 반전세 셋집으로 9월에 옮겼는데,
며칠 안 되어 애 둘을 데리고
돌아와 방 하나를 차지해버리고선.
불만스럽다! 피아노 학원 보내줘, 애원하는 소리,
작은딸 초5 아이의 얼굴이 엊그제 흘렀는데.
빗속의 세 개의 우산 같다, 네 사람의 가난한 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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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6 낮 ∼ 2022-12-11 (초고)
+ 2023.01.09. 13:59.메. 교정-3-2023-01-09.hwp ‘(돈 모아 몇 달 전에 얻었다는 신혼방)이.’, ‘선볼 날 입을 옷 고르는 걸’ = <원작>
= 2023.02.14. 11:30 박석준 시집_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이니_내지(0214).pdf <원작 원본>
= 시집_『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이니』(2023.03.20. 푸른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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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 상황
1997-11. 광주 신세계백화점, 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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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객관적 해석
「우산과 양복」은 등장하는 5인이 “옷”=“양복”과 관련하여 시공간을 움직이면서 사건을 펼쳐내는 한편, 인물의 사정이나 심리나 의식을 흘려내기도 하는 무비즘 경향을 반영한 글이다. 이 글은 어떤 일이나 사정, 상태에 대해서 매우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어서 사실적인 글이라는 생각을 쉽게 갖게 한다. 리얼리즘의 글로 보기가 쉽다. 하지만 이 글은 쉬르리얼리즘(Surrealism, 초현실주의)을 반영한 글이다. 왜 그럴까?
쉬르리얼리즘이란 ‘비합리적인 잠재의식이나 꿈의 세계를 탐구하여 표현의 혁신을 꾀한 예술 운동’이기 때문이다. 이 글에선 ‘비합리적인 잠재의식’이 현실(현상)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잊어버리지 말고 우산 챙겨 오란께!”(어머니의 말) 때문이다. 좀 더 정확하게는 “어머니의 말”이 예언이 됐기 때문이다. 이날 비가 올 거라는 걸 “어머니”가 미리 알고 있었다면 “어머니”는 “옷”을 사러 가는 “나”에게 “우산”을 주었을 테니까. 그런데 옷 사는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이렇게 해서 이 글이 초현실주의를 반영한 것이 된다.
한편 이 글의 “우산”은 상징어이다. “우산”은 어떤 사람들의 ‘가난한’을 연상시키고 그들의 ‘삶의 순환/불안의 순환’을 암시한다. “비”(장애물)가 내리는 길을 걷는 네 사람에게 우산이 세 개만 있기 때문이다. “동생”이 우산 없이 버스를 타고 돌아가거나 우산을 가지고 버스를 타고 돌아가거나 둘 중의 한 사람은 내리는 비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는 이 가족에겐 음울한 색깔의 배경이면서 ‘불안’을 일어나게 하고 돈 없는 현실을 의식하게 하는 ‘장애물’ 같은 작용을 한다. 하지만 “누나”는 “비”에 대한 말은 없고 “옷”=“양복”, 즉 “돈”에 관한 말만 한다. “나”와 “누나”가 비 내리는 길에서 충돌한다. ― “나는 우산 속에서 집을 향해 걷고 있다, 누나와 따로.”
이 글은 “만화방 같다”는 표현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이 글에 나타난 세상이 “만화”(⓵여러 장면으로 이어져 이야기 형식을 가진 그림. ⓶붓 가는 대로 아무렇게나 그린 그림. ⓷웃음거리가 되는 장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같지 않은가? “어머니”는 “동생”에게 부탁했지만, “동생”은 ‘시간 강사(매주 정해진 시간에만 강의를 하고, 시간당 일정한 금액의 급료를 받는 강사)’일 뿐 “나”를 위한 일을 하지 못한다. “동생”은 “나”가 마음에 든 “고가 양복”을 사기 어려운 가난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초현실주의 경향을 반영하였지만, 이 글은 리얼리즘 글 못지않게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드러내고 있다. ― “빗속의 세 개의 우산 같다, 네 사람의 가난한 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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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글 밖 실화
나는 2019년(62살 때)에 「우산과 양복」에 담긴 내용의 꿈을 꾸고 깨어났는데 너무 생생하게 떠올라서 바로 글을 써 갔다. 꿈속의 나는 1997년 40살의 청년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게 매우 오래 전 일인데 왜 이런 꿈이 꿔졌을까? (좋은 옷을 살 만한 여유가 없고) 내 몸이 너무 허약해서(내 허리가 너무 가늘어서) 양복을 사려 해도 맞는 옷이 없는 까닭에 그냥 선을 보러 나가곤 했는데, 이 문제점을 꿈에서 해결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유동”에서 사는 시절에 전교조 사건으로 해직된 나는 1994년에 복직하였고, 내가 다시 교사가 된 지 “4년째”인 1997년에 동생이 결혼했다. 그해에 “누나”는 광주 각화동 영세민아파트에서 살고 있었고 작은딸은 “초5 아이”였다. “누나”가 두 아이를 데리고 “유동”의 ‘슬픈 방’으로 살러 온 때는 1988년 6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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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주의
초현실주의(超現實主義, 영어: surrealism) 또는 쉬르레알리슴(프랑스어: surréalisme)은 1920년대 초 프랑스를 중심으로 전 세계에 퍼진 문예·예술사조의 하나이다. 비합리적인 잠재의식과 꿈의 세계를 탐구하여 표현의 혁신을 꾀한 예술 운동이다. 인간의 무의식을 표현하는 여러 작품들을 남겼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인간의 상상에 자유를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정신분석가 프로이트의 학설에서 영향을 받아, 자유로운 상상력으로서 지성을 초월한 꿈이나 무의식(unconscious; 잠재의식subconscious과 구별됨)의 세계를 해방하는 것으로서 초현실적인 미를 창조하려고 했다. 초현실주의의 가장 영향력 높은 주도자는 앙드레 브르통(대표작: 「자유로운 결합」), 시인인 루이 아라공(Louis Aragon), 폴 엘뤼아르(Paul Éluard) 등이다.
초현실주의자들의 대표적인 기법으로는 콜라주(Collage), 프로타주(Frottage), 파피에 콜레(Papier Collar), 데페이즈망(depaysment), 자동기술법(automatism)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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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 2022-12-11
우산과 양복
― 마음과 시공간의 잔상 2
만화방 같다.
시간 강사인 동생이 문을 열어서
문밖의 눈에 들어온 책상 위 검은 우산,
책상 위 몇 권씩 책 꽂힌 3단 6칸 책꽂이,
가져온 책 든 박스를 책상 위에 놓고 그 우산을 챙기는
비좁은 단칸방
이(돈 모아 몇 달 전에 얻었다는 신혼방이).
“형이 가냘파서 백화점에도 맞는 양복 있을지 걱정이다.”
선볼 양복 고르는 일을 엄마가 동생에게 부탁했는데,
4년째 교사를 하는 나는 백화점에서
고가 양복들이 마음에 들지만
오십육 센티네! 허리가 너무 가늘어요. 제일 작은 걸
줄여 드릴게요. 하곤 저가 양복을 고르는 여자를 본다.
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젖은 광주역을 뒤에 남기고
버스가 멈춘 두 번째 정류장에 유동에,
(정류장 부스가 비닐 포장마차 같다) 정류장 부스에
우산 속에 누나가, 옆 우산 속에 엄마가 서 있다.
“잊어버리지 말고 우산 챙겨 오란께!”
엄마가 말해, 막 내린 동생이 버스에 오른다.
엄마와 동생이 함께 우산을 쓰고 간다.
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나는 우산 속에서 집을 향해 걷고 있다, 누나와 따로.
“양복 좀 그만 사 입어라.”
“왜 그런 말 해? 3년 전 봄하고 이번, 두 번뿐인데.”
“유세 떨지 말고.”
식당일 나가면 됐지, 양장하고 어딜 갔다 왔지?
나 돈 없는데. 돈 때문인가?
3년 전 3월에 내가 직장을 잡아
엄마 방을 만들려고 반전세 셋집으로 9월에 옮겼는데,
며칠 안 되어 애 둘을 데리고
돌아와 방 하나를 차지해 버리고선.
불만스럽다! 피아노학원 보내줘, 애원하는 소리,
작은딸 초5 아이의 얼굴이 엊그제 흘렀는데.
빗속의 세 개의 우산 같다, 네 사람의 가난한 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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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6 ∼ 2022-12-11 오전 12:56 (초고)
= 2022-12-14 오후 07:25. 카페, 가난한 비, 거리에 움직이는 사람들, 무비이즘-선경-박석준-2022-12-14.hwp (초고 원본)
= 2023-01-09 오후 01:29.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이니-박석준-2023-91-09-교-분석.hwp (초고 날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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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2019-07-16 ∼ 2019-08-08
택배 일 쉬는 날 (15)
택배 일 하는 택헌이 돈 마련해 며칠 전 얻었다는 길가방,
문 열자 책상 위 책 몇 권씩 꽂힌 작은 책꽂이, 우산이 보이고,
택헌이 책상 위에 박스를 놓고, 우산을 챙겨 나오는,
단칸방이 만홧가게 같다.
“쉬는 날이오?” 인사하는 아저씨가 옆 과일가게 주인일까?
택헌이 택배 일을 쉬는 날, 애인이 찾아올 수 있다.
포장마차 같은 버스 정류장에 사람이 많다.
택헌이 정류장 밖으로 나가고, 담배 필 생각으로 내가 나간다,
담배가 피다 남긴 것까지 두 개비뿐이어서 담뱃가게로 향한다.
“에쎄 한 갑 주시오.”
esse가 계산대 유리 위로 나오고
주머니에서 가짜 돈 영수증들, 지전 3천원이 섞여 나온다,
살 수 없어 돌아가다가
호주머니를 뒤져서 500원짜리 한 개, 백원짜리 두 개를 본다.
돈이 안 된다. 정류장 앞에 택헌이 보이고, 송 선생이 서 있다.
“담배 한 대 주게.”
내가 담뱃갑을 꺼내고, 확인한 택헌이 그에게 담배를 준다.
담배를 피려는데, 라이터를 켜려는데 불빛만 낼 뿐.
손등에 빗방울이 떨어진다. 내 라이터를 비 오는 길에 떨친다.
줄 맨 앞에 선 택헌을 따라 버스에 오른다.
기사 뒷자리 꼬마 소녀 옆에 앉는다.
소녀가 흠흠하고, 찌푸리고 우측으로 건너간다.
광주역이 보여서 택헌 어깨를 두드려 깨우고,
광주역을 지나자 내린다.
비가 내리고 있다.
비가 내리고 있어, 우산을 가지고 온 것 같은데, 생각이 든다.
“잊어버리지 말고 우산 챙겨 오란께!”
정류장 옆 우산 속 엄마 말에 택헌이 달려가
떠나려는 버스에서 우산을 가지고 나온다.
비가 내리고 있다.
우산 속에서 집을 향해 걷고 있다. 누나랑 먼저. 누나와 따로.
“옷 좀 그만 사 입어라.”
“내가 언제 옷 사 입었다고 그런 말 해?”
“유세 떨지 말고.”
양장하고 어디 갔다 왔는지 누나가 신경을 건든다.
“방세도 안 내면서 나한테 왜 그래?”
“추접스럽게 방세 주라 하냐!”
단칸방에서 살던 5년 전 내가 직장을 잡고, 그해에
두 칸 방 셋방을 빌려 방값 내고 엄마 방을 만들었는데,
만든 지 몇 달 만에 누나가 애 둘을 데리고 돌아왔다,
한 방을 5년째 쓰고 있다. 올해 큰딸이 초등학교 1학년 되고.
누나가 식당일 나간다지만, 돈 없는 나한테 오늘따라 왜?
돈 때문인가?
이불 깔린 방에서 큰딸 혼자 놀고 있다.
피아노학원 보내줘, 애원하는 소리 엊그제 들린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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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6 낮 ∼ 2019-08-08 오후 3:10 (메모)
= 2019.10.12. 18:14.메. 쐐기가 걸어가고.hwp (메모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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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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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1_15:41 20 금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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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5_15:35 푸른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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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07_11:30 푸른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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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07_11:34 푸른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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