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45 유동 뷰티
나의 실존주의 앙가주망 (35), 리얼리즘 (9)
1996-09-06
박석준 /
유동 뷰티
소안 배 확보 운동을 하고, 96년 9월 첫 토요일,
주의보로 인해 2주일 만에 유동에 올 수 있었던 39살
37킬로인 아픈 나에게 어머니가 절룩이며 속삭였다.
“아야, 어쩌면 좋겄냐?
집주인이 오만 원을 얹어주라고 하는디.
내 생각에는 니 통장에서 이백만 원을 빼서
눈 딱 감고 갖다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마는…….”
‘이백만 원? 그렇다면 그 돈어치만큼을 전세로
해달라고 사정을 해 보겠다는 것인데,
통장에 그 돈이 월급이 남아 있다는 건가?
다시 돈을 벌어들이게 된 지가 2년 반이 되었는데…….
하지만 살아가야 하지 않은가?
나는 돈을 벌어들이게 되었지만,
어머니는 돈을 벌 수 없는 몸이 되고 말았는데.
비밀스럽게 털어 보인 어머니의 마음인데.’
하는 생각에 39살 37킬로인 고독한 나는 잠시나마
나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을 어머니에게 대답해주었다.
“그렇게 하세요.”
.
2020-03-20 ∽ 2020.04.13. 11:58 <원작 원고> (‘5만’, 오타 ‘39킬로’)
=→ 2020.05.14. 18:01. 박석준시집_시간의색깔은자신이지향하는빛깔로간다_내지(0514).pdf (원작 교정 ‘오만, 37킬로’)
= 시집_『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2020.05.25. 푸른사상)
.
.
실제상황
1996-09-06(토). 37kg.
.
.
Ⅰ. 객관적 해석
「유동 뷰티」는 ‘설명 → 어머니의 말 → 나의 의식 → 설명 → 나의 말’로 전개된, ‘설명’과 ‘대화’, ‘의식’으로만 구성된, 매우 간단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리얼리즘의 글인지 모더니즘의 글인지 이야기시 형식의 글인지 뭐라고 규정하기가 애매하다.
이 글의 “나”와 “어머니”는 “돈”으로 인해 흔들거리는 삶을 살아가는 유동(도시)의 가난한 소시민이다. “돈”으로 인해 살아감(생활, 생계)이 흔들거리는 가난한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다시 돈을 벌어들이게 된” 사람이고 “어머니”는 ‘돈을 벌 수 없는 몸이 되고 만’ 사람이라는 점에서 사정(事情)이 다르다. 이런 사정을 생각한 “나”는 “어머니”에게 “그렇게 하세요.” 대답해준다.
이 글은 ‘가난한 사람의 슬픔’에 중심을 둔 글이 아니라 ‘흔들거리는 삶에도 아름다움은 있다’는 것을 형상화한 글이다. 그래서 ‘유동 뷰티’를 제목으로 정한 것이다.
하지만 이 글만 가지고는 독자는 그저 그런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글에 “소안 배 확보 운동”, “주의보”, “39살 37킬로인 아픈 나 / 39살 37킬로인 고독한 나”라는 서로 동떨어진(불연속적인) 3가지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소안 배 확보 운동”이 무슨 의미하는지를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소안 배”란 소안에서 생산하는 과일인가, 소안에서 팔기 위한 과일인가, 소안으로 가는 배인가? 식으로.
이글을 제대로 해석하려면 다른 작품이라든가 작가의 삶을 통해 “소안 배”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
.
Ⅱ. 시집들과 관련한 해석
「유동 뷰티」를 수록한 자서전적 시집에서 ‘소안’과 관련한 표현을 찾을 수 있다. ― “철선이 흔들린다. 첫 출근을 할 수 없었다. 폭풍주의보 발효 때문에.”, “나는 완도항에서 배를 1시간 10분 타고 섬에 갈 수 있었다.”, “내가 소안(所安)에서 한 일이 글쓰기와, 민중상회 주인과 논의한 소안 배 확보를 위한 탄원서 작성과 서명운동에 불과한데.”(시집 『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 속의 글 「별이 빛나던 밤이 흐르는 병 속의 시간」)
또한 작가의 시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이니』에서도 찾을 수 있다. ― “내가 그 섬에서 우연히 본, 빨갛게 초록으로 보라색으로 변하는 안개가 신비해서, 내게 내 소유 카메라가 없음을 의식하게 했다. 해녀와 옷가게는 존재하지만 약국, 중국집, 대중목욕탕이 존재하지 않는 그 섬”(「세상은 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어서」)
이 표현들을 통해 “소안”은 꽤 먼 곳에 있는 섬인데 “주의보”가 발효되어도 갈 수 있는 좋은 배가 없어서 일상생활이 차단(격리)되는, 가난한(사람들이 사는) 곳임을 알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앎’이 “나”가 가난한 사람이지만 가난한 타인들을 위하여 “소안 배 확보 운동”을 하였음도 알게 한다.
“그의 시는 텍스트(text)와 콘텍스트(context)를 동시에 염두에 두고 있어야 이해가 가기 쉽다. 내면의 우울과 고뇌를 드러내 자신을 치료하고자 하는 박석준 시인의 시 쓰기는 양극화 시대를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힘든 자화상에 관한 이야기라고 해도 좋다. 고도로 발달한 자본의 문화를 지배하고 세뇌하는 환경 속에서 그는 지금 자신의 감수성으로 현실에 저항하는 시적 신념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고통을 연민으로 받아들일 때 독자들은 그의 시편들이 언어 놀이가 아니라 온몸의 힘을 기울인 것임을 좀 더 알게 된다.”(시인 김백겸)
“나”는 가난하고 “39살 37킬로인 아픈 나”, “39살 37킬로인 고독한 나”(젊지만 섬에 격리된 사람)이다. 이러한 점에서 “나”가 한 운동은 타인(섬 사람들)을 위한 일이면서, “나” 자신의 실현(실존)을 위한 행위로, ‘자본의 문화를 지배하고 세뇌하는 환경 속에서 현실에 저항함’으로 해석된다. 이 글에는 휴머니즘과 실존주의 앙가주망이 반영되었다.
.
Ⅲ. 작가의 말
시에는 문장의 압축, 비유 등이 사용되어야 한다고 일반적으로 말하는데, 나는 장면(상황)의 압축을 더 중요시했다. 시간을 압축하면서도 당시의 현장성(사실성)을 확보하기 위해 사정(상태)이 흐르는 당시의 시간과 공간, 움직임(의식의 흐름, 말, 행동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방향을 모색했다.
「유동 뷰티」는 나의 살아감에서 1996년 9월에 실제로 일어난 일들, 나의 생각을 그대로 그린 실화이다.
나는 청년 시절(1986-09⁓2008-02)을 ‘유동’의 ‘슬픈 방’, ‘박제방’에 세를 들어 살면서 인간의 실존과 인생에 대하여 고뇌하는 시간이 많았다. 그런 까닭에 이것 외에도 ‘유동’을 제목에 넣은 작품 「광주 유동 박제방」, 「유동 거리 유월 밤비를 맞고」를 쓰게 되었다.
.
.
<원작 원고> 2020.04.13. (39킬로, 5만)
유동 뷰티
소안 배 확보 운동을 하고, 96년 9월 첫 토요일,
주의보로 인해 2주일 만에 광주로 올 수 있었던 39살
39킬로인 아픈 나에게 어머니가 절룩이며 속삭였다.
“아야, 어쩌면 좋겄냐?
집주인이 5만 원을 얹어 주라고 하는디.
내 생각에는 니 통장에서 이백만 원을 빼서
눈 딱 감고 갖다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마는…….”
‘이백만 원? 그렇다면 그 돈어치만큼을 전세로
해 달라고 사정을 해 보겠다는 것인데,
통장에 그 돈이 월급이 남아 있다는 건가?
다시 돈을 벌어들이게 된 지가 2년 반이 되었는데…….
하지만 살아가야 하지 않은가?
나는 돈을 벌어들이게 되었지만,
어머니는 돈을 벌 수 없는 몸이 되고 말았는데.
비밀스럽게 털어 보인 어머니의 마음인데.’
하는 생각에 39살 39킬로인 고독한 나는 잠시나마
나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을 어머니에게 대답해 주었다.
“그렇게 하세요.”
.
2020-03-20 ∼ 2020.04.13. 11:58.메. 2020년_04월(박석준)원고-교정본.hwp (‘5만’, 오타 ‘39킬로’) <원작 원고 원본>
∽ 2020.05.14. 18:01. 박석준시집_시간의색깔은자신이지향하는빛깔로간다_내지(0514).pdf (37킬로, 오만) = 시집
.
.
(초고) 2020-03-20 (생각에 나는)
유동 뷰티 (어머니)
소안 배 확보 운동을 하고, 96년 9월 첫 토요일,
주의보로 인해 2주일 만에 광주로 올 수 있었던 39살
39킬로인 아픈 나에게 어머니가 절룩이며 속삭였다.
“아야, 어쩌면 좋겄냐?
집주인이 5만 원을 얹혀 주라고 하는디.
내 생각에는 니 통장에서 이백만 원을 빼서
눈 딱 감고 갖다 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마는…….”
‘이백만 원? 그렇다면 그 돈 어치만큼을 전세로
해 달라고 사정을 새 보겠다는 것인데,
통장에 그 돈이 월급이 남아 있다는 건가?
다시 돈을 벌어들이게 된 지가 2년 반이 되었는데…….
하지만 살아가야 하지 않은가?
나는 돈을 벌어들이게 되었지만,
어머니는 돈을 벌 수 없는 몸이 되고 말았는데.
비밀스럽게 털어 보인 어머니의 마음인데.’
하는 생각에 나는 잠시나마 나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을
어머니에게 대답해 주었다.
“그렇게 하세요.”
.
2020-03-20 오후 12:14 ∼ 2020-03-21 오전 4:55 (초고)
2020.03.23. 12:12.내메. 박석준-3시집-0618-12-푸105(교)-5-93-1.hwp (‘사정을 새’ 오타, ‘39킬로’ ‘얹혀’, ‘생각에 나는’) (초고 원본)
.
.
.
사진
.
.
.
'문학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초현실주의 (3), 실존주의 (5), 나의 무비즘 (45) 우산과 양복 ― 마음과 시공간의 잔상 2 / 박석준 (2) | 2023.11.21 |
---|---|
나의 실존주의 앙가주망 (36), 나의 무비즘 (44) 시간의 색깔, 길 / 박석준 (2) | 2023.11.20 |
나의 리얼리즘 (8), 나의 무비즘 (43) 침묵 수업 / 박석준 (2) | 2023.11.18 |
나의 무비즘 (41), 실존주의 아방가르드 (3), 사상시 (30) 푸른 오후의 길을 지나간 까닭에 / 박석준 (0) | 2023.11.17 |
나의 실존주의 앙가주망 (34), 아방가르드 (2), 나의 무비즘 (41) 별이 빛나던 밤이 흐르는 병 속의 시간 / 박석준 (0) | 2023.1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