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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 (창작년도)

나의 무비즘 (20), 실존주의 모더니즘 (5) 시간 속의 아이 ― 테를 돌리는 아이 / 박석준

나의 신시 21-1 시간 속의 아이 테를 돌리는 아이

나의 무비즘 (20), 실존주의 모더니즘 (5)

1985-09_하순

박석준 /

<수정 개작>

시간 속의 아이

테를 돌리는 아이

 

 

  한 아이가 고무로 만든 (hulla-hoop)를 다리에 두르고 놀고 있었다. 귀가하던 나는 그 정경을 바라보고 있었고……. 아이가 움직이는 뒤로, 어두워지는 집들과 해가 지며 노을이 지는 하늘이 있었다. 길이 갈리는 곳의 모퉁이를 돌아 내가 제 옆으로 점차 가까워져 가고 있었는데, 아이는 주의하려 하지 않은 채, 그저 놀고 있었다.

 

  진갈색의 바지와 흔하게 볼 수 있는 하늘색 웃옷이 찌푸린 석양에 한 템포를 채우고 있었다. 아이의 몸은 내 눈을 따라 굴러갔고, 시간을 따라 굴러갔고, 거기 갈리는 지점,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애야, 그만 놀고 어서 와서 밥 먹어. 어서,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의 정경이 추억같이 사라졌다.

 

  아이의 시들하고 쉬운 몸짓은 나를 그곳에 퍼져 앉게 했다. 나는 길을 찾아 헤매는 사람처럼 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고관절로 다리를 잘 못 쓰는 어머니가 나를 불러, 오늘은 빨리 왔구나, 배고프겄다, 어서 밥 먹어라, 하는 소리에 나는 사라진 정경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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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7-13 2008-09-06 <원작>

2013-01-06 오전 6:01 박석준-시집 최종본 201315-2(내가 모퉁이로 사라졌다가).hwp

<수정작 원본>

= 2013.01.06. 06:16.. 박석준-시집 최종본 201315-0(57).hwp

= 시집_카페, 가난한 비(2013.02.12. 푸른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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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상황

    1985-09-하순

      (초고를 19859월이 다 갈 무렵의 어느 날 오후 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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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와 시집들과 관련한 해석

  무기수인 큰형이 특별외출하여 은성여관으로 찾아온 날의 상황인 푸른하늘 푸른 옷 슬프고도 아이러니컬한 날에서 이어지는 상황을 담은 글이 시간 속의 아이 테를 돌리는 아이이다.

  「시간 속의 아이 테를 돌리는 아이먼 곳에서 19859월 말경에 퇴근한 28살인 나(박석준)의 귀갓길에서(광주 은성여관 근처에서) 석양에 흘러가는 시간을 따라 펼쳐지는 실제 상황을 리얼리즘 기법으로 있는 그대로 재현한 글이다. 나는 은성여관 근처에 이르러서 우연히 훌라후프를 두른 채 놀고 있는 아이를 보게 되었다. 지켜보다가 어서 와서 밥 먹어.하는 아이를 부르는 소리가 나서 (아이의 엄마가 부르는 소리라고 여겼는데) 곧 아이가 사라졌다. 그래서 내가 은성여관에 돌아갔는데 이내 똑같은 사정이 펼쳐졌다. “어서 밥 먹어라,”라는 어머니의 말소리가 나에게 흘러왔다.

  내가 길에서 본 것(훌라후프)은 나에게 굴레연상시켰다. 그런데 ‘(움직이는) 굴레에서 시간이 튀어나왔고, 흐르는 시간에서 다시 아이가 튀어나왔다. 아이가 굴레(“고무로 만든 테”) 속에 있다, 굴레를 두르고 있다, 굴레 속에서 제 뜻대로 활동하고 있다. 굴레 놀이를 한다. 나는? 가난하고, 눈이 불안하고 몸이 몹시 허약해서 놀이를 제대로 할 수 없고. 나는 자유로운가? 굴레 속에 있는가? 떠올랐다. 마음에 밝음이 흘러갔고 곧 어두움이 흘러갔다. 나의 몸 때문에, 그리고 우리 식구들의 생계 해결에 내가 벌어오는 돈이 충당되어야 하는 가난 때문에, 나는 먼 곳에서 떠나 다른 일터를 찾는다는 결심을 하진 못했다. ‘어른이 된 나의 불안한 몸과 가난, 이것 나의 굴레이다.

  내가 생각해낸 시간 속의 아이훌라후프로 시간 속에서 노는 아이시간 속의 아이로 돌아갈 수 없는 어른인 나 = 박석준이라는 두 사람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어 글의 제목을 시간 속의 아이로 정했다. 그런데 이날 이 시간에 소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무위자연혹은 무념무상에 젖고 싶은 마음이나 생각은 없었다. 아버지가 사망하고 5개월 후 19849월 초엔 형편이 너무 어려워져서 은성여관으로 거처를 옮겼는데, 9월이 다 갈 무렵인 이날 내가 귀가하는 길에서 찌푸린 석양에 아이가 놀고 있는 정경은 내 마음에 밝음(자유와 순수 진갈색의 바지와 흔하게 볼 수 있는 하늘색 웃옷”)어두움(가난과 고달픔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이 흐르게 했다.

  「시간 속의 아이 테를 돌리는 아이에선 아이가 움직이는 뒤로, 어두워지는 집들과 해가 지며 노을이 지는 하늘이 있었다. 길이 갈리는 곳의 모퉁이를 돌아 내가 제 옆으로 점차 가까워져 가고 있었는데에서 무비즘 기법이 사용되었음을 쉽게 알게 된다. 인물의 움직임에 따른 시공간의 이동과 시각적 심상이 혼합되었음을 알게 된다.

  “어서 와서 밥 먹어”, “어서 밥 먹어라”, “나는 길을 찾아 헤매는 사람처럼 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이들 구절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의 요소이다. 이것들은 사람의 살아감과 직결되는 말이다. 사람은 생계를 해결해야 살아가고 그런 기반에서 을 찾아 살아가야 실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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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

비극적 주체의 절망과 희망

박석준 시집 카페, 가난한 비에 대하여

 

  박석준의 시 카페, 가난한 비는 예의 비극적 정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주관적 화자의 상념을 고백적으로 진술하기보다는 객관적 인물의 행위를 독백적으로 진술하고 있다고 해야 옳다. 이는 그의 시 시간 속의 아이 테를 돌리는 아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시에는 우선 고무로 만든 테”, 곧 훌라후프를 돌리며 놀고 있는 아이와, “귀가를 하며 그 정경을 바라보고 있는 나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 구절에 진술되어 있는 대상은 상대적으로 객관적이라서 겉으로는 시인의 주관적 정서가 일정 정도 배제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들 대상에 대한 시인의 태도는 2연에 이르면서 다소 흔들리기 시작한다. ‘아이와 나라는 이 시의 중심 대상에 대한 그의 정서가 2연에 이르러 좀 더 적극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아이의 몸은 내 눈을 따라 굴러갔고, 시간을 따라 굴러갔고, 거기 갈리는 지점,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와 같은 표현이 그 구체적인 예이다.

  3연에서는 아이의 시들하고 쉬운 몸짓나를 그곳에 퍼져 앉게 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퍼져 앉아 있다가 그는 길을 찾아 헤매는 사람처럼 겨우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들 구절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지금 망연한 삶, 멍한 시간에 빠져 있다는 점이다. 이는 어쩌면 그가 무위자연의 정신경지에 이른 것일 수도 있다. “어머니가 나를 불러, 오늘은 빨리 왔구나, 배고프겄다, 어서 밥 먹어라, 하는 소리에다시금 세계와의 객관적 거리를 회복하는 것이 그이지만 말이다.

  무위자연이라고 했지만 이는 곧 무념무상에 빠진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세계와 미분리되어 있는 심리,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아무런 생각도 없는 심리에 처한 것 말이다.

이은봉 시인, 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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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화

  나(박석준)는 대학을 졸업했으나 몸이 매우 불안하고 허약해서 계속 구직에 실패했다. 그런데 1983(26) 3월 초에 요행히 먼 곳임시직 국어 교사가 되었다. 그렇지만 안기부에게 각서를 쓴 후엔 내가 이곳에서 쫓겨난다면 나는 갈 데가 없다,’, ‘어떻게 살 것인가?’ 같은 생각을 수시로 하게 되었다. 4월엔 생각도 못 한 안기부가 찾아와서 각서를 써야 했다.

  몸과 사람을 조심하면서 살아갔지만 1984학년도에 국어 과목을 맡지 못하고 한문 선생으로 전락한 처지가 되었다. 쫓아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어머니는 위로했는데, 그 처지가 1985학년도에도 이어서(언제든 쫓겨날 수가 있어서) 나는 불안해했다. 무기수인 큰형이 5월에 특별외출하여 은성여관에 찾아와서 나그네처럼 잠시 머물다가 다시 호송차에 탔는데, 슬퍼지고 현실에 대해 반항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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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2008-09-06

시간 속의 아이

9월이 다 갈 무렵의 어느 날 오후

 

 

  굴레 한 아이가 고무로 만든 테(hulla-hoop)를 다리에 두르고 놀고 있었다. 귀가하던 나는 그 정경을 바라보고 있었고……. 아이가 움직이는 뒤로, 어두워지는 집들과 해가 지며 노을이 지는 하늘이 있었다. 길이 갈리는 곳의 모퉁이를 돌아 내가 제 옆으로 점차 가까워져 가고 있었는데, 아이는 주의하려 하지 않은 채, 그저 굴레 속에서 놀고 있었다.

 

  굴레! 굴레 속이었건만, 제 뜻대로 활동하고 있어서? 진갈색의 바지와 흔하게 볼 수 있는 하늘색 웃옷이 찌푸린 석양에 한 템포를 채우고 있었다. 그 아이의 몸은 내 눈을 따라 굴러갔고, 시간을 따라 굴러갔고, 거기 갈리는 지점,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또다시 일상을 재생하는데, “애야, 그만 놀고 어서 와서 밥 먹어. 어서.” 소리가 들렸다. 아이가 굴레에서 다리를 빼내자 굴레 놀이를 하는 정경이 추억같이 사라졌다.

 

  시들하고 쉬운 몸짓이 나를 퍼져 앉게 했다. 나는 길을 찾아 헤맨 사람처럼 겨우 집으로 돌아갔다. 고관절로 다리를 잘 못 쓰는 어머니가 나를 불러 오늘은 빨리 왔구나. 배고프겄다. 어서 밥 먹어라.” 라는 소리로 이미 사라진 정경을 재생해 냈다. 그때 반복으로 지쳐 가는 일상에서도 때로 산뜻함이 뿌려질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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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7-13 2008.09.06. 10:50. 박석준-08종합1.hwp <원작>

= 2009-03-03 오전 11:19. 박석준-나의시론(논문)-1.hwp (원작 원본)

= 석사학위 작품집(20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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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 원본) 2001-07-13

시간 속의 아이

- 85 9월이 다 갈 무렵의 어느 날 오후 -

 

 

  굴레!

  한 아이가 고무로 만든 테(hula-hoop)를 다리에 두르고 놀이하고,

  나는 정경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가 움직이는 뒤로 어두워지는 집들과 해가 지며 노을이 지는 하늘이 있는데,

  그 길 갈리는 곳의 모퉁이를 돌아 걸어

  내가 제 옆으로 점차 가까워져 가고 있음에도

  아이도 나를 정경으로만 바라보았는지,

  주의하지 않은 채 굴레 속에서

  그저 놀고 있었다.

  굴레! 놀이?

  그 몸을, 굴레 속이었건만, 제 뜻대로 활용하고 있어서?

  진갈색의 바지와 그저 흔하게 볼 수 있는 웃옷의 순함이

  찌푸린 석양에 한 템포를 채우면서

  정경 같은 장면으로 나의 눈을 따라 굴러가고

  그리고 시간으로 굴러가

  그 갈리는 길에 어두움을 깔고 또다시 일상을 반복하는데,

  “애야, 그만 놀고 어서 와 밥 먹어. 어서.” 소리로

  굴레 놀이하는 정경이 추억같이 날리고

  아이가 굴레에서 다리를 빼내어 재촉해서 달리어

  어두운 밤 속으로 사라졌다.

  그 뒤 시들하고 쉬운 몸짓이 나를 퍼지고

  나를 전날처럼 실내로 이끌고 갔다.

  실내는 늘 그러던 것처럼 허름한 형상으로 푸접없었고

  나는 피곤해진 몸으로 다시 실내에 돌아왔지만,

  이미 밤인 채로……

  식구들은 일상을 정리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나를 보고 다리를 절며

  “오늘은 빨리 왔구나. 배고프겄다. 어서 밥 먹어라.” 소리로

  이미 사라져 갔던 정경을 표상으로 일으켜 냈을 땐

  반복으로 지쳐 가는 일상에서도

  때로는 산뜻함이 흠뻑 뿌려진다는 걸 새겨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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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7.13. 21:55. 카페 가난한 비_시간 속의 아이 (초고 원본)

 https://cafe.daum.net/poorrain/F1vW/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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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985-10. 먼 곳 가을 소풍. 20240511_1858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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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11 제주도. 대학교 3학년 나   . img308

  1981-11 제주도. 대학교 3학년 나. img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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