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시 21 시간 속의 아이 ― 9월이 다 갈 무렵의 어느 날 오후
나의 무비즘 (19), 실존주의 모더니즘 (4)
1985-09_하순
박석준 /
<원작> 2008-09-06
시간 속의 아이
― 9월이 다 갈 무렵의 어느 날 오후
굴레 한 아이가 고무로 만든 테(hulla-hoop)를 다리에 두르고 놀고 있었다. 귀가하던 나는 그 정경을 바라보고 있었고……. 아이가 움직이는 뒤로, 어두워지는 집들과 해가 지며 노을이 지는 하늘이 있었다. 그 길이 갈리는 곳의 모퉁이를 돌아 내가 제 옆으로 점차 가까워져 가고 있었는데, 아이는 주의하려 하지 않은 채, 그저 굴레 속에서 놀고 있었다.
굴레! 굴레 속이었건만, 제 뜻대로 활동하고 있어서? 진갈색의 바지와 흔하게 볼 수 있는 하늘색 웃옷이 찌푸린 석양에 한 템포를 채우고 있었다. 그 아이의 몸은 내 눈을 따라 굴러갔고, 시간을 따라 굴러갔고, 거기 갈리는 지점,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또다시 일상을 재생하는데, “애야, 그만 놀고 어서 와서 밥 먹어. 어서.” 소리가 들렸다. 아이가 굴레에서 다리를 빼내자 굴레 놀이를 하는 정경이 추억같이 사라졌다.
시들하고 쉬운 몸짓이 나를 퍼져 앉게 했다. 나는 길을 찾아 헤맨 사람처럼 겨우 집으로 돌아갔다. 고관절로 다리를 잘 못 쓰는 어머니가 나를 불러 “오늘은 빨리 왔구나. 배고프겄다. 어서 밥 먹어라.”라는 소리로 이미 사라진 정경을 재생해 냈다. 그때 반복으로 지쳐 가는 일상에서도 때로 산뜻함이 뿌려질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2001-07-13 ∽ 2008.09.06. 10:50. 박석준-08종합1.hwp <원작>
= 2009-03-03 오전 11:19. 박석준-나의시론(논문)-1.hwp (원작 원본)
= 『석사학위 작품집』(2009.08.)
.
실제 상황
1985-09-하순
(초고를 1985년 9월이 다 갈 무렵의 어느 날 오후 에 씀)
.
.
Ⅰ. 작가와 시집들과 관련한 해석
무기수인 큰형이 특별외출하여 은성여관으로 찾아온 날의 상황인 「푸른하늘 푸른 옷 ― 슬프고도 아이러니컬한 날」에서 이어지는 상황을 담은 글이 「시간 속의 아이 ― 9월이 다 갈 무렵의 어느 날 오후」이다.
「시간 속의 아이 ― 9월이 다 갈 무렵의 어느 날 오후」는 ‘먼 곳’에서 1985년 9월 말경에 퇴근한 28살인 나(박석준)의 귀갓길에서(광주 은성여관 근처에서) 석양에 흘러가는 시간을 따라 펼쳐지는 실제 상황을 리얼리즘 기법으로 있는 그대로 재현한 글이다. 나는 은성여관 근처에 이르러서 우연히 훌라후프를 두른 채 놀고 있는 아이를 보게 되었다. 지켜보다가 “어서 와서 밥 먹어.” 하는 아이를 부르는 소리가 나서 (아이의 엄마가 부르는 소리라고 여겼는데) 곧 아이가 사라졌다. 그래서 내가 은성여관에 돌아갔는데 이내 똑같은 사정이 펼쳐졌다. “어서 밥 먹어라,”라는 어머니의 말소리가 나에게 흘러왔다.
내가 길에서 본 것(훌라후프)은 나에게 ‘굴레’를 연상시켰다. 그런데 ‘(움직이는) 굴레’에서 ‘시간’이 튀어나왔고, 흐르는 ‘시간’에서 다시 ‘아이’가 튀어나왔다. 아이가 굴레(“고무로 만든 테”) 속에 있다, 굴레를 두르고 있다, 굴레 속에서 제 뜻대로 활동하고 있다. 굴레 놀이를 한다. 나는? 가난하고, 눈이 불안하고 몸이 몹시 허약해서 놀이를 제대로 할 수 없고. 나는 자유로운가? 굴레 속에 있는가? 떠올랐다. 내 마음에 밝음이 흘러갔고 곧 어두움이 흘러갔다. 나의 몸 때문에, 그리고 우리 식구들의 생계 해결에 내가 벌어오는 돈이 충당되어야 하는 가난 때문에, 나는 ‘먼 곳’에서 떠나 다른 일터를 찾는다는 결심을 하진 못했다. ‘어른이 된 나의 불안한 몸과 가난, 이것이 나의 굴레이다.’
내가 생각해낸 ‘시간 속의 아이’는 ‘훌라후프로 시간 속에서 노는 아이’와 ‘시간 속의 아이로 돌아갈 수 없는 어른인 나 = 박석준’이라는 두 사람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어 글의 제목을 ‘시간 속의 아이’로 정했다. 그런데 이날 이 시간에 ‘소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무위자연’ 혹은 ‘무념무상’에 젖고 싶은 마음이나 생각은 없었다. 아버지가 사망하고 5개월 후 1984년 9월 초엔 형편이 너무 어려워져서 은성여관으로 거처를 옮겼는데, 9월이 다 갈 무렵인 이날 내가 귀가하는 길에서 “찌푸린 석양”에 아이가 놀고 있는 정경은 내 마음에 밝음(자유와 순수 ← “진갈색의 바지와 흔하게 볼 수 있는 하늘색 웃옷”)과 어두움(가난과 고달픔 ←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이 흐르게 했다.
「시간 속의 아이 ― 9월이 다 갈 무렵의 어느 날 오후」에선 “아이가 움직이는 뒤로, 어두워지는 집들과 해가 지며 노을이 지는 하늘이 있었다. 그 길이 갈리는 곳의 모퉁이를 돌아 내가 제 옆으로 점차 가까워져 가고 있었는데”에서 무비즘 기법이 사용되었음을 쉽게 알게 된다. 인물의 움직임에 따른 시공간의 이동과 시각적 심상이 혼합되었음을 알게 된다.
“어서 와서 밥 먹어”, “어서 밥 먹어라”, “나는 길을 찾아 헤맨 사람처럼 겨우 집으로 돌아갔다.”, 이들 구절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삶’의 요소이다. 이것들은 사람의 ‘살아감’과 직결되는 말이다. 사람은 생계를 해결해야 살아가고 그런 기반에서 ‘길’을 찾아 살아가야 실존하게 된다.
.
.
※ 일화
나(박석준)는 대학을 졸업했으나 몸이 매우 불안하고 허약해서 계속 구직에 실패했다. 그런데 1983년(26살) 3월 초에 요행히 ‘먼 곳’ 임시직 국어 교사가 되었다. 그렇지만 안기부에게 ‘각서’를 쓴 후엔 ‘내가 이곳에서 쫓겨난다면 나는 갈 데가 없다,’, ‘어떻게 살 것인가?’ 같은 생각을 수시로 하게 되었다. 4월엔 생각도 못 한 안기부가 찾아와서 각서를 써야 했다.
몸과 사람을 조심하면서 살아갔지만 1984학년도에 국어 과목을 맡지 못하고 한문 선생으로 전락한 처지가 되었다. 쫓아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어머니는 위로했는데, 그 처지가 1985학년도에도 이어서(언제든 쫓겨날 수가 있어서) 나는 불안해했다. 무기수인 큰형이 5월에 특별외출하여 은성여관에 찾아와서 나그네처럼 잠시 머물다가 다시 호송차에 탔는데, 슬퍼지고 현실에 대해 반항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
.
.
(초고 원본) 2001-07-13
시간 속의 아이
- 85년 9월이 다 갈 무렵의 어느 날 오후 -
굴레!
한 아이가 고무로 만든 테(hula-hoop)를 다리에 두르고 놀이하고,
나는 정경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가 움직이는 뒤로 어두워지는 집들과 해가 지며 노을이 지는 하늘이 있는데,
그 길 갈리는 곳의 모퉁이를 돌아 걸어
내가 제 옆으로 점차 가까워져 가고 있음에도
아이도 나를 정경으로만 바라보았는지,
주의하지 않은 채 굴레 속에서
그저 놀고 있었다.
굴레! 놀이?
그 몸을, 굴레 속이었건만, 제 뜻대로 활용하고 있어서?
진갈색의 바지와 그저 흔하게 볼 수 있는 웃옷의 순함이
찌푸린 석양에 한 템포를 채우면서
정경 같은 장면으로 나의 눈을 따라 굴러가고
그리고 시간으로 굴러가
그 갈리는 길에 어두움을 깔고 또다시 일상을 반복하는데,
“애야, 그만 놀고 어서 와 밥 먹어. 어서.” 소리로
굴레 놀이하는 정경이 추억같이 날리고
아이가 굴레에서 다리를 빼내어 재촉해서 달리어
어두운 밤 속으로 사라졌다.
그 뒤 시들하고 쉬운 몸짓이 나를 퍼지고
나를 전날처럼 실내로 이끌고 갔다.
실내는 늘 그러던 것처럼 허름한 형상으로 푸접없었고
나는 피곤해진 몸으로 다시 실내에 돌아왔지만,
이미 밤인 채로……
식구들은 일상을 정리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나를 보고 다리를 절며
“오늘은 빨리 왔구나. 배고프겄다. 어서 밥 먹어라.” 소리로
이미 사라져 갔던 정경을 표상으로 일으켜 냈을 땐
반복으로 지쳐 가는 일상에서도
때로는 산뜻함이 흠뻑 뿌려진다는 걸 새겨낼 수 있었다.
.
2001.07.13. 21:55. 카페 가난한 비_시간 속의 아이 (초고 원본)
― https://cafe.daum.net/poorrain/F1vW/1
.
.
<수정 개작>
시간 속의 아이
― 테를 돌리는 아이
한 아이가 고무로 만든 테(hulla-hoop)를 다리에 두르고 놀고 있었다. 귀가하던 나는 그 정경을 바라보고 있었고……. 아이가 움직이는 뒤로, 어두워지는 집들과 해가 지며 노을이 지는 하늘이 있었다. 길이 갈리는 곳의 모퉁이를 돌아 내가 제 옆으로 점차 가까워져 가고 있었는데, 아이는 주의하려 하지 않은 채, 그저 놀고 있었다.
진갈색의 바지와 흔하게 볼 수 있는 하늘색 웃옷이 찌푸린 석양에 한 템포를 채우고 있었다. 아이의 몸은 내 눈을 따라 굴러갔고, 시간을 따라 굴러갔고, 거기 갈리는 지점,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애야, 그만 놀고 어서 와서 밥 먹어. 어서,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의 정경이 추억같이 사라졌다.
아이의 시들하고 쉬운 몸짓은 나를 그곳에 퍼져 앉게 했다. 나는 길을 찾아 헤매는 사람처럼 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고관절로 다리를 잘 못 쓰는 어머니가 나를 불러, 오늘은 빨리 왔구나, 배고프겄다, 어서 밥 먹어라, 하는 소리에 나는 사라진 정경을 떠올렸다.
.
2001-07-13 ∽ 2008-09-06 <원작>
→ 2013-01-06 오전 6:01 박석준-시집 최종본 2013년1월5일-2(내가 모퉁이로 사라졌다가).hwp
<수정작 원본>
= 2013.01.06. 06:16.메. 박석준-시집 최종본 2013년1월5일-0(57편).hwp
= 시집_『카페, 가난한 비』(2013.02.12. 푸른사상)
.
.
사진
1985-05. 은성여관에서 나. img379
.
1981-11. 제주도. 대학교 3학년 나. img308
.
'나의 시 (창작년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무비즘 (21), 실존주의 초현실주의 (2) 흙 / 박석준 (0) | 2024.05.12 |
---|---|
나의 무비즘 (20), 실존주의 모더니즘 (5) 시간 속의 아이 ― 테를 돌리는 아이 / 박석준 (0) | 2024.05.12 |
나의 무비즘 (18), 실존주의 앙가주망 (15), 리얼리즘 (3) 푸른 하늘 푸른 옷 ― 슬프고 아이러니컬한 날 / 박석준 (1) | 2024.05.12 |
나의 무비즘 (17), 실존주의 앙가주망 (14), 리얼리즘 (2) 그 술집 / 박석준 (0) | 2024.05.11 |
나의 무비즘 (16), 실존주의 앙가주망 (13) 아버지 ― 무너진 집 / 박석준 (0) | 2024.05.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