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시 19 그 술집
나의 무비즘 (17), 실존주의 앙가주망 (14), 리얼리즘 (2)
1985-04
박석준 /
그 술집
자서전 시집 『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엔 아래 이야기가 흘러가고 그 2년 후 1985년에 펼쳐진 사건이 「그 술집」에 담겨졌다.
한 형사가 학교에서도 감시하는, 한 형사가 나를 데리고
형들을 추적하는…. 4년 전 4월이 흘렀다. 1분쯤 지나
“해방전선? 그런 데에 관심 있소?”
(중략)
나는 어떻게 될까? 자유롭지 못하다, 한 달이 됐는데!
나는 어두워져서 터미널 앞쪽 삼성다방으로 갔다.
“어쩔 것이냐! 그 학교에서 쫓아내기 전에는
니 발로 나와서는 절대 안 된다. 당분간만 참아라.”
전화 후 어머니의 슬픈 눈이 떠오르고, 슬퍼졌다.
(중략)
5개 반 교실 뒤에서 참관하는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오늘 또 안기부에서 왔소. 정식 채용하려면
각서라도 받아야 한다고 압박을 해서, 내가 증인이 되는
식으로 각서를 썼소. 이걸 보시오.”
몸이 허약한데, 소리 후 어깨뼈를 따독대는 손.
쿵쾅쿵쾅 심장소리 들렸다. 네모진 종이들. 앞 장에
타자로 찍힌, ‘각서’, 본인은 학생에게 문제가 되는 일이
발생했을 때 즉각 학교를 그만둔다는 내용, 내 이름.
슬퍼졌다.
― 「먼 곳 2 ― 프리즈 프레임」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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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술집
85년 4월 중순의 어느 날, 퇴근할 무렵 김재일 선생이
알려준 구 터미널 옆에 있다는 술집을 찾아갔다.
5시 반, 약속 시간에서 10분이 지났다.
나는, 그가 작년 여름방학 때 광주로 찾아와준 일이
이미지로 남아서 만남을 수락했을 뿐, 그 후
아무런 만남 없는 사이여서, 더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다.
그럼에도 그냥 가버릴 수도 없어서, 마음을 다잡았다.
문을 여는 소리에 나는 시선을 던졌다.
“김재일 선생하고 윤보현 선생도 곧 올 거요.”
라고 지학 선생이 자기가 나타나게 된 사유를 말하더니
자신의 건강함과 그 비결이 냉수마찰과 등산에 있다고
말하고 내 몸을 걱정했다. 막걸리를 서로 간에
서너 잔째를 따른 때였다.
“아이고,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한 김 선생을, 이어 들어와 시선이 마주치자
“박 선생, 정말 미안하요.” 하는 윤 선생을 보게 되었다.
지학 선생이 내 곁으로 자리를 옮긴 뒤, 마주보는
두 사람에게 술을 따랐다.
“미안하요. 미리 말하면 응해주지 않을 것 같아서.
두 분이 이야기를 풀어가면 좋을 것 같소.”
나는 김 선생의 말에 상황이 배제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요?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가자는 겁니까?”
학기초의 일이 떠올라 나의 목소리는 조금 떨고 있었다.
“아무리 박 선생님이 말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이거는
너무 불공평해요. 어떤 사람은 해마다 국어, 현대문만
맡는데, 박제 선생은 2년씩이나 국어책을 못 잡아보니!
나는 고문이라도, 국어 그림자라도 밟으니까 나은 거죠.”
여선생이 찾아와 말했다. 2년째 한문만 가르치는 나에게.
“이미 지나쳐버린 일로 두 분 다 마냥
괴로워하고만 지낼 수는 없지 않소?”
나의 말에 먼저 반응을 보인 사람은 김 선생이었다.
내가 무능해서 ‘그’가 취한 조치라고 생각했는데,
학력고사에 한문 과목이 6문제만 출제되는 걸 아는
아이들은 곧 한문과 한문 선생인 나를 소원했다.
어머니는 쫓아내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여기라고,
몸이라도 덜 아플 것이니 다행이라 여기라고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서 멀어져가는 것에 안타까웠지만.
“내가 괴롭다고 하던가요? 지나쳐버린 일이라고요?”
내 말이 떨어지자 윤 선생이
“그건 김 선생이 말을 잘못한 거요.”라 말하고는,
“박제 선생한테 괴로움을 주고 만 것 같아 죄송스럽고,
또 내 자신이 잘못한 것 같아 괴롭기도 하고…….”
하여, 나를 복잡한 감정의 넝쿨 속으로 빠져들게 하였다.
“내년에는 절대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소. 믿어주시오.”
나는 괴로웠다. 그도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이 싫었다.
“믿어요. 생각이 있으면 이보다 더 좋은 만남이 있을
거라는 걸. 저는 가겠습니다. 술기운도 올라오고.”
그 후 87년 9월 광주·전남지역 교사협의회가 결성된 날
결성식 직후 광주 전일다방에서 윤 선생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89년에 윤, 김 포함 9인이 해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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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9 오후 8:33 ∽ 2020.04.13. 11:58 (약속 시간을) (초고)
∽ 2020-04-23. 14:28 (약속 시간에서) <원작 원본>
= 시집_『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2020.05.25. 푸른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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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상황:
1985-04, 구터미널 근처(시장 근처) 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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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시집과 관련한 해석
「그 술집」은 자서전 시집 속 시이므로 시집 속 다른 작품과의 관련성 및 시인의 삶을 고려하지 않으면 작품에 정확한 의미를 부여할 수 없게 된다. 이 글은 50행으로 된 이 시는 시인이 47행까지를 “85년 4월 중순의 어느 날”을 현재로 한 무비즘 기법으로 표현하고, 47행까지 흘러간 상황의 결과로 후일에 나타난 역사적 사건을 그 뒤의 3개 행에 진술한 형태로 구성한 단편서사시이다. 시 전체를 살펴봤을 땐 시에 리얼리즘 경향을 반영한 글이다. 시인은 ““믿어요. 생각이 있으면 이보다 더 좋은 만남이 있을/거라는 걸.”과 마지막 3개 행에서 실존주의와 앙가주망을 드러냈다.
시인은 이 시에 “술집”에 ‘나’→‘나-지학 선생’→‘나-지학 선생-김 선생-윤 선생’으로 등장인물이 확대되어 시간을 흘려내고 사건을 만들어내는 무비즘을 사용하였다. “술집”은 사건을 만들어내고 모순된 현실 사정을 해소하는 주된 매체이며 ‘지학 선생’과 ‘김 선생’도 그런 역할을 한 매체이다.
이 작품만을 분석한다면 “박 선생, 정말 미안하요.”라고 말한 “윤 선생”이 “나”에게 잘못한 일이 있어서 그것을 짚고 해소하는 이야기가 흘러가지만, 시집과 작가의 삶을 고려하면 이 작품은 한국의 정치 폭력이 한 가족에게 어떠한 아픔을 남겼는가를 암시했음을 알게 된다.
작품엔 “나”가 2년째 한문만 맡게 된 까닭을 “내가 무능해서 ‘그’가 취한 조치라고 생각했는데”라고 표현하여 언뜻 보면 ‘윤 선생’을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라고 판단하게끔 하였지만 섬세하게 보면 “‘그’가 취한 조치라고 생각했”다는 것을 반어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교사가 맡을 과목에 대한 결정권자는 “그”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아는 까닭에 “어머니는 쫓아내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여기라고” 말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조치에 말없이 지낸 것이다. 작품에는 “나”와 가족의 경제적 형편이나 사회적 처지에 대한 아무런 표현도 없지만. ‘나는 가난하여 안기부에게 각서를 쓴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이며 돈을 벌어야 하니까.’ (← 이 글은 자서전 시집의 일부이다.)
그래서 발령과목은 가르치지 못하고 자격증도 없는데 한문을 가르치고 “아이들에게서 멀어져가는 것에 안타까웠했”울 뿐이다. ‘나는 몸이 너무 허약한 집이 가난한 형들이 갇혀 있는, 부족한 사람인데,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이곳에서 떠나면 나는 갈 데를 구하기(구직)가 어렵다.’ 고민하여 내가 선택한 것은 ‘도리불언하자성혜(桃李不言下自成蹊): 복숭아와 오얏은 말을 하지 않지만, 그 나무 밑에는 길이 저절로 생긴다.’란 길을 택했다. 그리고 2년이 흘러간 후 사람들이 “나”에게로 찾아왔다.
「그 술집」은 실제로 현실(일어난 사건과 사정)을 그대로 묘사·재현하려고 쓴 리얼리즘에 바탕을 둔, 인물을 따라 시공간을 이동한 무비즘 기법이 사용된 글이다. 「그 술집」은 나(박석준=“박제”)의 삶의 한 시절을 시 형식으로 형상화한 실화이다. “문을 여는”은 ‘변화를 가져올’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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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즘
리얼리즘(Realism)은 근현대 예술의 한 부류로 일반적으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재현하려고 하는 창작 태도이다. 리얼리즘을 일단 “사실주의”로 번역하긴 하지만, 사실 “현실주의(現實主義)” 등 다양하게 번역될 수 있다
― 나무위키
https://namu.wiki/w/%EB%A6%AC%EC%96%BC%EB%A6%AC%EC%A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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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즘
리얼리즘은 경험적인 현실을 유일한 세계·가치·방법으로 인식하려는 문예사조이다.
사실주의(또는 현실주의)는 res(실물)에 어원을 둔 realism의 역어이다. 경험적인 현실 외의 이상적·초월적 세계의 존재 증거가 없다고 보는 일원론적 세계관에서 진리나 진실, 미학적 가치, 예술창작의 방법 등을 뭉뚱그려 통칭한다. 따라서 이상주의적 경향(고전주의·낭만주의·심미주의 등)과 자의식(自意識)의 절대성 및 회의주의를 바닥에 깔고 있는 모더니즘(modernism)과 대립된다.
리얼리즘은 ‘당대 사회의 객관적 묘사’로 보는 19세기의 근대 리얼리즘(사실주의, 자연주의)과, 사회적 변혁 이데올로기와 결합된 리얼리즘(변증법적 리얼리즘,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두 갈래로 대별할 수 있다. 19세기의 리얼리즘은 당대 사회현실의 객관적 묘사, 또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의 반영을 특색으로 한다.
현실의 본질이 바로 모순이며, 그 모순의 극복이 리얼리즘의 핵심이므로, 1980년대에 이르러 모순의 근원을 사회의 여러 국면에서 다양하게 추구한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5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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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빈 교실. 1985. img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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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20100927.22002212524i1_1986_09_27_전국교사협의회창립_한신대
전교협(전국교사협의회) 창립(1986.09.27.)_한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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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08.25. 전남교사신문 제2호. 00861759_0001
(1987.09.04. 전남민주교육추진 교사협의회 창립_광주YM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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