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시 2 신
나의 무비즘 (2), 실존주의 앙가주망 (1)
1967 / 2016-06-24
박석준 /
신
이토록 서둘러 어디로 가는 걸까?
강아지신발 신은 저 개
지하철 주변에 흩어져 있는 신 주인, 몰려든 사람들
신이!
도랑물 따라 흘러가는 신을 잡을 수 없어
불안해하고 안타까워하며 보았는데.
장마철 고무신을 가지고 도랑에서 신나게 놀다가
대학 시절 마루에 가지런히 놓인 고무신 한 켤레
우리 엄마 못 봤어요?
검은 세단차가 낮에 집 앞에 대더니 실어가던데……?
뭔 일 있냐고 만화가게 아저씨가 물어보고
중정부에 끌려간 엄마 찾으러 서울로 동생이랑 올라가고.
살다가 다리가 오그라들었어도 신을 신고
쉬엄쉬엄 걷던 어머니가 겨울에 뇌출혈로 쓰러져 가고
털신만 남아
이사 온 아파트 베란다에 아직 놓여 있는데.
신이!
없어졌네. 동생도 보이지 않는다. 핸드폰도 사라져서 불신을 하고
불안해도 맨발로 눈길을, 공사 중인 길을 걸어간다.
가다가 버려진 구두 한 짝, 슬리퍼 한 짝 생기어
신고 조금은 편안하게 걸어가다가
꿈에서 깨었는데
신이 없네.
신이 보이지 않는다.
신경이 쓰이고 생각도 하고 살펴보고,
신을 찾았어도 며칠 전에도 꾼 신
어머니 사후로 간혹 꾸는 신
잃어버린 꿈 생각도 나서
뭔가 불안하게 하는 것 같아
신을 신고 식당에서 나와 밤길 나서면서 조심스러워진다.
어디로 갔지?
먼저 나간 사람 불신을 한다.
곁에 있어야 할 사람이어야만 하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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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6 ∽ 2016-08-24 오후 8:02 <원작>
=→ 시집_『거짓 시, 쇼윈도 세상에서』(2016.12.02. 문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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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상황:
2016-06-24.(금) 뉴스 (1연, 현재 시점).
1967-장마철. 계림국민학교 4학년 (2연)
1979-10-20. 중정부에 끌려감, 대학교 1학년 (3연)
2007-12-25. 쓰러짐 / 2009-04. 사망 (4연)
2016-06-24. (꿈, 5연)
2016-06-24. (금). (6∼7연. 식당과 식당 앞길, 현재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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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건/구성형식/시점
「신」에는 2연→3연→4연→5연→1연→6연→7연 순으로 발생한 사건이 담겨 있다. 「신」은 “이토록 서둘러 어디로 가는 걸까?”로 시작하는 1연에, 그리고 “신이 없네.”, “어디로 갔지?”로 이어지는 6, 7연에 현재 시점의 현실 상황과 “나”의 생각을 표현하고, 그 사이(2∼5연)에 과거 일을 전개하여 구성한 글이다. 그런데 다시 읽으면 2∼5연이 1연에서 6연으로 흘러가는 현재의 상황임을 깨닫게 한다.
1연에서 화자는 식당에서 지하철역 개 장면을 막 보고 난 후인 현재 그 내용과 관련해 상념을 흘린다. 그러고는 곧 지하철역 장면’ 속의 “강아지신발”이 “흘러가는 신”을 연상시켜 어린 시절(2연의 내용)을 회상한다. 회상이 꼬리를 물어 대학 시절로, 그리고 그 시절이 끝난 후의 시간으로 흘러간다. 그러고는 6연에서 회상에서 깨어났는데 곁에 있던 사람도, 신이 보이지 않음(현실 상황)을 깨닫게 된다. 「신」은 이렇게 이중의 현재 시점을 사용하였다. 「신」은 “나”를 따라 시공간이 이동하고 이를 통해 ‘신’과 ‘가다’의 이미지를 부각시킨 무비즘 수법으로 구성을 한 글이다. 1연을 6연 앞에 배치하지 않은 이유는 메시지를 인상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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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표현/의도
이 글은 ‘신, 강아지신발, 신은, 고무신, 신나게, 털신, 불신, 신고, 신경’이라는 동일음이 포함된 어휘를 각 연에 배치하고 있어서 뉘앙스를 풍긴다. 그리고 그 ‘신’들이 “불신”에 이르게 하여 사람 사이의 일(또는 인간관계)을 생각해보게 한다.
1연은 “강아지신발 신은 저 개”와 “지하철 주변에 흩어져 있는 신 주인, 몰려든 사람들”이 “이토록 서둘러 어디로 가는 걸까?”라는 문장을 도치법으로 표현하였다. 의문을 제기하여 호기심을 끌어들인 후 뜻밖에 ‘개’를 등장시켜 괴리감을 주기 위해서이다.
지하철역 안으로 몰려든 사람들 틈에 신발 신은 개가 왜 있을까? “어디로 가”려면 현대의 도시 사람이 “신”을 이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한데, 현대 도시의 개가 어디로 가는 데에 신발이 반드시 필요할까? 그리고 개가 어디로 가려고 무엇을 하려고 지하철역에 나온 것일까?
개가 무엇을 하기 위해 신을 신고 지하철역에 오는 일은 상식 있는 사람이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1연에서 서술어 “가는 걸까?”의 주어로 “강아지신발 신은 저 개”를 “신 주인”이나 “몰려든 사람들”보다도 앞에 배치한 것은 “저 개”를 끄집어들여 “저 개”를 데리고 나온 사람을 ‘비꼬기(사르카즘, sarcasm)’ 위해서이다.(개는 지하철역에 확실한 존재로 있지만, 그 주인은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없다는 점에서.) “강아지신발 신은 저 개”는 “저 개”를 데리고 나온 사람의 마음을 나타낸 사물(의 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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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내용/메시지
지하철역에서 뜻밖에 “강아지신발 신은 저 개”를 보게 되어 “어디로 가는 걸까?”를 생각하게 된 화자는, 곧바로 어린 시절 “흘러가는 신(고무신)”이 떠올라서 “흘러가는 신을 잡을 수 없어/불안해하고 안타까워하며 보았”던 시간을 새겨낸다. 이것은 화자에겐 ‘신’과 ‘가는’이 묶인 이미지로 저장되었음을 암시한다.
‘강아지신발 신고 지하철역에 있는 “저 개”의 모습’은 ‘흘러가는 신을 잡을 수 없어 불안해하고 안타까워하며 보는(신을 신지 못한) 소년의 모습’, ‘고무신을 신지 못한 채 중정부에 끌려가는 엄마의 모습’과 대조를 이룬다. 동물인 개는 신발을 신고 있고 사람은 신발을 못 신었다(못 신고 끌려갔다)는 점에서 괴리감을 준다.
‘강아지 신발을 신겨 개를 지하철역에 데리고 온 것’은 ‘애완인가, 인정(人情. 남을 동정하고 이해하는 따뜻한 마음)을 잃어감인가, 개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인정(認定)받고 싶어하는 마음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자유의 의미와 ‘인간적인 삶’을 생각해보라 한다. 자유의 의미와 ‘인간적인 삶’을 생각해보라. 이것이 이 글에서 전하려는 중심 메시지이다. (앙가주망)
‘신’은 (주로) 사람이 땅을 딛고 서거나 걸을 때 발에 신는 물건이며 사람이 만든 것이다. ‘신’은 ‘사람이 걷는(가는, 살아가는)’을 연상하게 한다. ‘사람의 죽음 후엔 그 사람의 신만 남기 때문이다.
7연에선 자리를 함께한 사람이 자신의 목적(식사하기 일)을 달성한 후에는, 아무 말 없이 바로 가버린 사실을 알게 된 화자가 가버린 그 사람을 불신한다. 현대 도시인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 타인에 대한 냉정한 점’을 떠올리게 한다. 현대 자본주의 도시사회(도시인들)의 인간관계를 드러내어 비정함을 느끼게 한다.
화자의 불안은 ‘신만 남기고 어머니가 사망한 것’, 더 근원적으로는 ‘신만 남기고 어머니가 중정부에 끌려간 것’, ‘흘러가는 신을 잡을 수 없었던 일’ ― ‘신 주인(사람)이 신을 신을 수 없는 처지에 놓임’과 관련된 것이다. 중정부는 ‘신을 못 신게 한 채로 사람을 끌고 간 인권을 침해한 억압의 표상이다. 그런데 사람이 아닌 “저 개”는 신을 신고 있고, 지하철 타고 어디로 가려고 지하철역에 있다. 아이러니하다.
이 글은 지하철역에 있는 “강아지신발 신은 저 개”가 중심 이미지를 형성하여, 현대 자본주의 도시 사람의 살아가는 다양한 양상을 형상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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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밖 실화
아버지가 내가 중2 때인 1971년에 파산했다. 빚 때문에 1982년 1월에 계림동 우리 집을 잃었다. 중흥동 장원여관으로 이사하기 전까지 나(박석준)는 계림동에서 살았다. 계림동엔 삼거리의 양쪽 길을 낀 두 번째 자리에 우리 집(안집)이 있었다. 삼거리의 오른쪽 길인 소로를 조금 따라가면 오복당 만홧가게, 안양이발관이 안집 대문 맞은편에 있는데, 대문 쪽으로 흘러가고 대문 앞에서 복개된 좁은 도랑에서 나는 10살 때(4학년 때인 1967년 장마철에) 고무신을 가지고 놀았다.
1979년 4월에 형사들이 안집으로 들이닥쳐 수색했다. 서울과 광주에서 온 이 형사들은 집을 감시했다. 큰형과 삼형이 남민전 조직에 관련 혐의가 있다고 판단한 때문이었다.
1979년 10월 20일 아침에 윤한봉 형이 어머니 신으라고 흰 고무신을 주고 갔다. 그 고무신이 내가 전남대학교에서 돌아온 오후에도 공부방 옆 마루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중정부(중앙저오부) 사람들한테 끌려간 것 같다고 오복당 만홧가게 아저씨가 말해줬다. 큰형은 1978년 12월에 계림동 오거리의 언덕 밑 포장마차에서 20만 원을 대학교에 진학하라며 나에게 줬는데.
아침에 한봉* 형이 사다 준 흰 고무신만 마루에 있고
어머니가 보이지 않아, 6일 후 막내랑 서울로 갔다.
10시경, 어머니, 작은형이 아버지 사는 방에 돌아왔다.
전기가 흐른가 몇 번 정신 잃었제라. 그런디 뭔 꿍꿍이가
있는가 8시 반이나 돼서 가라고 내보냅디다.
나는 트랜지스터로 음악을 들으며 새벽으로 갔다. 그냥
음악이 끊기면서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뉴스가 삽입됐다.
광주로 돌아온 날, 4월부터 나를 감시하고 시험도 방해한
형사가, 광주와 서울 각 다섯 명인 형사가 보이지 않았다.
11월엔 해방전선*, 큰형, 삼형, 검거 기사를 보았다.
― 박석준, 「1980년」 부분
작은형과 1979년 10월 20일에 끌려간 어머니가 전기고문을 받고 1주일째 갇혀 있다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후에 풀려났다. 그리고 1주일 후 1979년 11월 3일엔 대통령 장례식이 있었고 남민전 사건으로 큰형, 삼형, 검거됐다.
어머니는 2007년 12월 크리스마스 밤에 뇌출혈로 쓰러졌는데 병원에 15개월 넘게 의식 없이 있다가 2009년 4월에 털신과 지팡이만 남기고 병원에서 사망했다.
나는 2016년 6월 26일에 「신」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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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계림동 우리 집(안양이발관 맞은편)과 도랑이 있던 곳, 삼거리의 오른쪽. 20230115_15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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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림동 우리 집(빨래방 건물 자리), 삼거리의 왼쪽. 20230115_15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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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고 졸업식 날. 광주고. 수-나-어머니. 1979-01. img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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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 고문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남영동 1985>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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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_cp0501_0050-계림초등학교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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