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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시

나의 무비즘 (1), 실존주의 모더니즘 (1), 아방가르드 (1) 언덕의 아이 / 박석준

나의 신시 1 언덕의 아이

나의 무비즘 (1), 실존주의 모더니즘 (1), 아방가르드 (1)

1966

박석준 /

언덕의 아이

 

 

  열두 그루였는지는 모르나 나무가 서 있는 언덕에서

  내가 본 건 도시오후였지.

  흐릿하고 몽롱하게 안개와 함께 박혀버린 어느 ,

  열 살이나 혹은 아홉 살인 나는

  그날도 그곳으로 찾아갔었지.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영원한 우정과도 헤어진 날,

  그 헤어짐 때문만은 아니었어.

  아버지가 날 싫어한 것 같아

  아마 이런 생각이 충동된 것도 같아.

  곧 스물두 살이 될 는 겨울에도

  서석대에서 내려오는 길에

  친구하고 떨어져 언덕이 있던 자리를 보았지.

  제법 뚜렷하게 드러난 풍경 속에는

  언덕이 단절되고 그 자리에 집들이

  울긋불긋 오밀조밀 박혀 있더군.

  눈 덮인 통나무집 앞에서 키스하는 사진 속에

  ‘거울 속 왕자님을 바라보는 거지 소녀’*라고 예쁘게 쓰인

  한 달 전의 카드가 생각나더군.

  그런 뒤, 30년쯤 흐르는 사이에 우쩍 커져버린 도시

  도시의 아스라한 끝을 보았던 것인데…….

  지금은 언덕에 세워진 병원 창밖을 내다보고 있지,

  한 사람을 태운 휠체어를 밀고 4층 호스피스 병실

  작은 나무 둘레를 왔다 갔다 하다가.

  창밖에는 무슨 나무인지 나무가 자라고 있고

  한두 달 후면 이 올 텐데, 오후가 있고

  모르는 사람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지.

 

 

  * 거울 속 왕자님을 바라보는 거지 소녀가 : 1978.11.07.(예비고사 날)에 받은 카드의 내용 (7) 장미의 곁에 있는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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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 2012-02-03 2012.04.30. 23:30 <원작>

= 문학마당39(2012-06-30)

2013-01-06 (원작 교정)

시집_카페, 가난한 비(2013-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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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상황: 2009-02. 현재 시점

    (19663학년 / 197812월 고3. 회상)

    2009-02. 광주기독교병원,

    어머니 임종 2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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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덕과 아이

  언덕은 가파르기 때문에 고난길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골고다 언덕(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했던 언덕.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곳)이다. 언덕의 아이는 제목처럼 언덕아이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아이는 시인이 되기 전 어린 박석준이고, 시인의 여러 글에 언덕이 나오는데, 언덕은 박석준의 삶의 과정에 첫 번째로 스쳐간 언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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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덕의 아이50대가 된 남자의 시점에서 자신의 성격 형성과 실존주의 인생관을 보여주면서 도시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모더니즘 글이다.

  “아이에겐 이 언덕여자 친구와 헤어져서, ‘영원한 우정과도 헤어져서, 헤어짐(이별의 슬픔) 때문에, 그리고 아버지가 날 싫어한 것 같아, “오후에 찾아간 곳으로 도시”, ‘나무와 함께 기억에 남았다. 이런 점에서 이 언덕괴로운 일이 있어서 찾아간 곳이다.

  그런데 곧 스물두 살이 될 나언덕이 단절되고 그 자리에 집들이박혀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이내 거지 소녀를 생각나게 했다. 그러고는 30년쯤 될 시간이 우쩍 커져버린 도시로 흘러가 지금은 언덕에 세워진 병원에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이 언덕이 어린 시절에 찾아간 바로 그 언덕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한 사람을 태운 휠체어를 밀고 4층 호스피스 병실을 왔다 갔다 하다가. (“한 사람아버지인지, “거지 소녀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리고 거지 소녀가 어린 시절에 헤어진 여자 친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 ①다만 언덕이 단절되고라는 표현이 먼저 있어서 거지 소녀는 어린 시절 여자 친구가 아닌 새 여자이며 카드에 거지 소녀라고 적은 걸로 보아서 와 헤어졌다고 추측될 뿐이다 → ②이런 점이 이 글의 아방가르드를 낳는다.)

  이 글엔 언덕의 아이가 청년을 흘러갔고 50대 중년에 온 인생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 글이 인생무상을 메시지로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다 살아가는 인생에는 인생무상을 부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창밖에는 무슨 나무가 자라고 있고”(어린 시절에 언덕에 서 있던 그 나무인지는 알 수 없으나), 새로운 오후가 있고”, “모르는 사람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한두 달 후면 봄이 올 텐데”.

  이 글은 의 움직임을 따라 도시언덕나무오후40년 넘게 흘러가는데 확실하게 변한 것은 도시언덕”(언덕이 단절되고), “아이”(“아이거울 속 왕자님으로 변한 후에 어디론가 사라졌음)임을 무비즘 기법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처음과 끝에 도시언덕나무오후가 배경 장면으로 펼쳐져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 무비즘 경향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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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밖 실화

(박석준)의 글에는 언덕의 아이언덕의 말이 있다. ‘언덕이라는 장소는 이외에 남민전 사건을 다루는 글 장미의   곁에 있는 두 얼굴(“너는 말없이 눈물을 쏟아내고는 언덕 쪽으로 달아났어.”/“안쓰러워 들어간 언덕길, 골목이 갈린 곳에서 여기서부터는 따라오지 마세요, 사감한테 들키면 혼나요, 소리만 했지.”) 등 몇 편의 글들에서도 나오는데, 첫사랑과의 헤어짐, 친구와의 헤어짐 후에 나는 고독하다라는 생각이 들어 찾아가게 된 때문인지는 모르나, 나에겐 언덕이라는 장소 혹은 말이 중요한 의미로 남았다.

  언덕은 가파르기 때문에 고난길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골고다 언덕(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했던 언덕.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곳)이다. 언덕의 말언덕함께 정답게 지내던 곳이면서도 ‘(내가 간) 고난의 길을 뜻하는 상징어이다.(나의 삶이 반영된 작품들엔 언덕괴로운 일이 있어서 찾아간 곳’, ‘기대를 품고 갔으나 헤어진 곳으로 설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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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덕의 아이는 나의 가장 어린 시절(9살 때, 1966)의 모습이 투영된 글이다. 이 글의 언덕은 내 기억엔 깃대산’(공식 이름은 깃대봉 : 조선대학교 본관 바로 뒷산. 서석동과 지산동에 걸쳐 있는 산.)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언덕으로 남았다. 나는 9살 때에, 외삼촌이라고 생각되는데 그분을 따라서 그 언덕으로 처음으로 올라갔고, 나중엔 나보다 몇 살 위인 덕순이라는 이름의 식모를 따라 그 근처까지 갔다. 그러고는 한 번은 나 혼자서 간 것으로 기억한다.

  이 해엔 여자가 나타나서 나한테 동무를 하자고 한 일이 처음으로 발생했다. 그리하여 서로 친구가 되었고 얼마 후엔 나는 신랑이 되었다.(나는 이 아이 혜자를 내 첫사랑으로 생각한다.)

  「언덕의 아이는 나의 살아온 이야기를 시 형식으로 표현한 글이다. 글의 현재 시점은 20092월이고, ‘병실은 어머니가 의식을 잃어 20071226일에 입원한 광주기독교병원의 병실이다. 나는 20092월 말경에 한 사람이라고 표현한 나의 어머니를 태운 휠체어를 밀고 호스피스 병실 작은 나무 둘레를 왔다 갔다 했다. 그러나 1개월 조금 넘게 지난 후인 4월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거지 소녀197811월에 나에게 카드를 보냈지만, 그 후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 아버지는 내가 27살 때인 1984년에 봄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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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준)의 어린 시절

  나(박석준)는 첫 친구를 국민학교(초등학교) 입학하기 1년 전(1963)에 사귀었다. ‘맥아더를 좋아한 명현이라는 이 친구는 우리 집의 길갓방에서 셋방살이하는 가정의 아이였는데, 나에게 (종이를 말아서 불붙여 피우는) 담배 피우기를 가르쳐주었고, 입학 직전에 소리 없이 이사했다. 이것은 내가 겪은 첫 번째 이별이었다.

  나는 국주, 길수, 김정호하고는 같은 반으로 계림국민학교를 다녔고 다른 학교에 다니는 우리 집 앞 골목에서 사는 상록이하고도 친구로 지냈다.

  한데 내가 가장 친해지고 싶은 아이는 짝 장재선이다. 영화배우처럼 잘생긴 아이인데, 1학년 종업식 하는 운동장에서 내 옆에 서 있다가 엄마 손에 잡히어 사라져갔다. 이것이 나의 두 번째 이별이다. 이날 운동장에서 들었던 노래를 잊지 못하다가 20살 넘어서 우연히 라디오 방송을 통해 제목이 슈만의 <어린이의 정경>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거의 날마다 찾아온 정호는 월남에 간 맹호부대 이야기를 해주거나 새로운 것들을 알려주었다. 한데, 3학년 된 얼마 후 상록이네가 이사했고 그래서 나는 부모 모르게 결석을 하곤 했다.(상록이는 글 언덕의 아이에 나오는 영원한 친구로 남았다.)

  마음 둘 곳 없는 나를 4월경에 여자아이가 찾아왔다. 동갑인 혜자라는 아이인데 명현이가 살던 집에 이사 온 그날부터 대문 옆 나의 방에 놀러왔다. 며칠 안 되어 우리 둘은 살림을 차렸다. 밥도 해먹고 함께 놀러도 가고.

  노는 데 재미를 붙인 나는 결석하거나 학교에서 점심시간 전에 몰래 나왔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담임(여선생)이 우리 식료품가게로 찾아와 엄마한테 이실직고하는 바람에 엄마는 설탕이랑 밀가루 한 포대랑 선물로 드렸고, 아버지는 나를 혜자한테 떼어놓으려 했다. 너는 왜 몸은 안 크고 공부도 안 하고 아버지 속만 썩이냐, 손님 오니까 큰방 청소해놔라를 볼 때마다 반복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애가 아주 이양스러우니까(아양스러우니까) 같이 놀지 마라.”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렸다.

  나는 학교가 재미없어서(그리고 교실에 갇혀 있는 게 무척 싫어서) 결석을 하거나 조퇴를 하고는, 혼자 백과사전 보고 놀거나 공원에 가거나 언덕에 가거나 하는 식으로 나날을 보냈다. 내가 학교에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생긴 데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나의 괴로움*이 있었다.

  마침내 나는 4학년 여름에 담임한테서 징계(학교에 나오지 마라 : 퇴학)를 받았는데, 가을에 온 새 담임에게 엄마가 사정사정해서 학교를 다시 다닐 수 있었다. 나의 결석은 5학년이 되면서 조금씩 줄어들었지만, 내 몸에 심각하게 이상이 생겼음을 느끼게 된 무렵(학교 졸업하기 얼마 전)에 가장 친한 정호에게 헤어지자고 말하여, 내가 행한 첫 이별이 이루어졌다.

 

  *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나의 괴로움 (3) 국밥집 가서 밥 한 숟가락 얻어 와라/ (4) 한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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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즘

  모더니즘은 문학의 독자성과 자기 목적성을 강조한다. 모더니즘의 이러한 입장은 지금까지의 문학 전통과 비교해 볼 때 크나큰 차이를 보여준다. 리얼리즘 문학에서 문학은 일종의 도구나 수단으로밖에 쓸모가 없었다. 그것은 윤리적·도덕적인 면에서 독자를 계몽시키거나 독자들에게 삶의 단조로움을 덜어주는 오락을 제공해 준다는 뚜렷한 목적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말엽에 들어서면서부터 문학의 이 기능은 큰 도전을 받기 시작했다. 이것은 문학은 사회적이건 도덕적·윤리적이건 또는 심리적이건, 모든 공리적 기능에서 완전히 벗어난, 문학만을 위한 문학이여야 한다는 것이다. 문학의 독자성과 자기 목적성을 강조하는 모더니즘의 이러한 태도는 무엇보다도 프랑스의 상징주의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겠다.

  대부분 모더니즘 작가들은 비록 철학자는 아니었지만 현대인이 놓여 있는 인간 조건을 실존주의적 관점에서 즐겨 다룬다. 더구나 실존주의라는 것도 추상적인 명제로 이루어진 체계적인 철학이라기보다는 삶에 대한 구체적인 견해나 태도를 가리키는 편리한 꼬리표에 지나지 않는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과학과 기술이 급진적 발전이 가져다 준 충격과 그것에 따른 인간 정신의 약화로 말미암아 인간은 그 어느 때보다 삶의 실존적 의미를 더욱 실감하게 되었다. 특히 두 번의 세계 대전은 그동안 인류가 받아들여 온 가치관에 회의를 갖게 했다. 실존주의는 바로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발생했다. 이러한 실존주의는 문학을 통해서 발전했는데 많은 모더니즘 작가들이 의식 또는 무의식적으로 실존주의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삶의 문제를 작품에서 다루었다. (실존주의 인생관)

  리얼리즘 문학의 연대기적이고 객관적인 서술 방법을 피하고 비연대기적인 플롯 진행 방법에 의존한다. 이러한 것을 <공간적 형식>이라고 한다. 즉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전통적인 시간적 구성을 중지시키거나 아예 없애버리고 그 대신 공간을 작품을 지배하는 구성 원리로 삼는다. 또한 작중인물이나 성격 형성도 전통적인 리얼리즘 작품에서 작중인물들은 평면적 인물로 그려지는데 모더니즘 작품 속 작품인물은 일관성 있는 행동이 없고 특성에 따라 실체를 쉽게 찾을 수 없는 인물로 그려진다. (플롯, 구성, 성격형성)

  모더니즘이 전통적인 작품과 두드러진 차이를 보이는 것은 플롯이나 구성 또는 성격형성보다도 관점이나 시점이다. 전통적인 작품에서는 3인칭 전지적 화법을 쓴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서 이러한 전지적 관점이나 시점은 도전을 받기 시작했으며 복수적 관점으로 그것이 대체 되었다. 이러한 복수적 관점은 다른 분야-상대성 이론, 불확정성 원리, 양자론 같은 새로운 자연 과학이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특히 모더니즘은 큐비즘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관점과 시점)

  모더니즘의 기법상 혁명은 무엇보다도 인간 의식에 대한 새로운 태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무의식과 잠재의식의 세계가 빛을 보게 되고, 또한 시간에 대한 태도는 인간의 의식과 마찬가지로 큰 변화를 겪었다. 종래의 유물론적 관점이 비판당하면서 삶의 모든 문제를 공간적인 분석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점, 또는 그러한 현상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점이 주장되었다. 새로운 시간과 인간의식에 대한 새로운 태도는 모더니즘 문학의 기법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기법은 인간이 바로 자신의 기억 자체라는 점, 그리고 인간의 의식의 한 단면을 보면 그에 대한 모든 사실을 알 수 있다는 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의식과 시간에 대한 새로운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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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978년(21살 때) 12월에 서석대에서 내려오는 길에서 img325

  1978(21살 때) 12월에 서석대에서 내려오는 길에서 img325

    「언덕의 아이의 배경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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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에서 내려오는 길에서 본 광주시. IMG_20160801_142711

  서석대에서 내려오는 길에서 본 광주시. IMG_20160801_142711

    「언덕의 아이의 배경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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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12월(고3, 21살 때) 광주공원에서 img330

  197812(3, 21살 때) 광주공원에서 img330

    서석대에서 함께 내려온 친구들(호웅, , 신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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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5월의 휴일 광주사직공원에서(나, 거지 소녀 ‘연’, 동생 헌) img289

  19775월의 휴일 광주사직공원에서(, 거지 소녀 ’, 동생 헌) img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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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전남 제사를 중심으로 한 광주 시가지. 1966-cp0603-0133-광주-1966

  1966-전남 제사를 중심으로 한 광주 시가지. 1966-cp0603-0133-광주-1966

    사진출처: 광주광역시

http://gjarchive.kr/index.php?_filter=search&mid=cp06&search_target=title_content&search_keyword=1966&document_srl=4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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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 올라간 언덕 너머에 있는 산(깃대산)

  어린 시절에 올라간 언덕 너머에 있는 산(깃대산)

    「언덕의 아이의 배경임

    광주시 지산동 서석동 일대(1969)_1969-cp0603-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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