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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 (창작년도)

나의 무비즘 (120) 아방가르드 (52), 초현실주의 (8), 상징주의 (16) 천냥하우스를 찾아갔다가 / 박석준

나의 시 140 천냥하우스를 찾아갔다가

나의 무비즘 (120) 아방가르드 (52), 초현실주의 (8), 상징주의 (16)

2013-11-11

박석준 /

천냥하우스를 찾아갔다가

 

 

  결혼하더니 이상해.

  매형이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잊어버렸나 봐.

  천냥하우스에서 나오자

  동생이 분노를 길에 퍼붓는다.

  누나 집에 누나가 보이지 않는다.

  아까 내가 챙겨두라는 것

  말을 꺼내자

  아차, 내 생각, 딴생각 하다가 깜빡했어.

 

  다시 들어간 천냥하우스

  내가 바라던 물건이 사라졌고

  매형도 사라졌고

  구석구석 뒤지는 사이에 햇살이 식어간다.

  뭐? 뭐 하고 왔는데?!

  연놈이 싸우는 소리가 너무 커서

  너나 쓸데없이 쏘다니지 말어!

  연놈이 싸우는 소리가 너무 드세게 들어와서

  날이 어두워지고

  나는 천냥하우스를 나가야겠다.

 

  재수 없이, 요상한 시국에 별꼴을 다 보네.

  우리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결혼하기 전 말이지,

  매형이 너한테 생각할 게 뭐 있겠어?

  스물둘 비정규직 동생 얼굴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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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1. 16:22. 카페 가난한 비_문병란 선생님(시인)께 <원작>

→ https://cafe.daum.net/poorrain/FB7E/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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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

    가상(꿈: 2013-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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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객관적 해석

  천냥 하우스. 옛날에 천냥이면 고급주택이거나 상류층 드나드는 일류 레스토랑 같은 곳, 서울 가는 노자 허리에 차고 가는 돈이 엽전 ‘열닷냥’이었으니까 천냥이면 꽤 고급 아파트, 대관집.

  비유가 너무 돌연해서 얼른 짐작이 가진 않지만 시적 화자에겐 벅차거나 낯선 곳, 아니, 옛날엔 썩 가까웠지만 이젠 우향우 한 어떤 혈족? 누이나 매형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가까운 사이였지만 요즈음 생각이 달라진 그런 처지가 연상된다(나 같으면 친애하는 독자를 위해 해독약이나 암시를 주지만 석준 시인은 그런 소시민적 친절을 꺼릴 테니까 매우 정상적인 metaphor이다.). 누나 집에 누나가 보이지 않는다(달라진 세상에 대한 자의식적 표현이다. 이런 역설(逆說 paradox)은 현대시에서 단골 메뉴다. 우향우 천박한 유행이나 요즈음 유신망령들 죄다 공동묘지에서 살아나고 있음. 괴기 영화에서 익숙한 장면이지만 사실 좌향좌 하는 사람은 미쳤다 하겠지. 천냥하우스가 아니라 만냥하우스도 자꾸 생겨날걸…. 물건도 매형도 누나도 ‘사라졌고’ 사실은 변질했겠지. 사람 만나러 다니면서 너무도 고독했기에 1930년대 李箱(이상)이처럼 이젠 家出(가출)이라도 할 걸 꿈꾸는 걸까. 연놈이 싸우는 소리, 부부싸움, 집안싸움… 요새 한참 유행이니까. T. S. Eliot의 프루프록처럼 넥타이를 고쳐매며 망설이다가 망설이다가 고백할까? 마침내 집에 와서 식어버린 된장국에 어린 추억 비정규직 동생을 생각하며 천냥하우스에서 떠나기로 결심한 건 우향우일까? 좌향좌일까 나도 요새 혼돈이 많으니까 색깔이나 방향 구분에 코가 많이 무디어졌다오.

  詩(시)는 본래 어려워서 믿을 것이 못 되지만 인생은, 떨어지는 잎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을 때 다시 사랑하고 싶은 연인 같은 것인가 봐. 난해성, 결코 비상구가 없는 건 아니지만 석준이가 앓나 보다 이런 생각을 하며 전교조 많이 괴로울꺼야! 뭐, 동정심 따위는 아무 쓸모도 없지만 넋나간 연놈들만 마구 늘어나는 이 세상에 어디 정신 똑바로 가지고 살겠어.

― 2013. 11. 16. 문병란

= 2015.08.14. 21:17. 카페 가난한 비_2013_11_16 <해석>

→ https://cafe.daum.net/poorrain/FB7E/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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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나의 해석

  2013년 11월에 꿈을 꾸었는데, 꿈이 하도 이상해서, 깨어나자 곧 그대로 모사해갔다. 그러고는 완성된 글이 「천냥하우스를 찾아갔다가」이다. ‘천냥하우스’라는 문패가 있는 집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글 제목에 ‘천냥하우스’라고 넣었다. 꿈에는 나, 동생, 싸우는 소리 내는 연놈이 등장하고, 매형은 천냥하우스 안에 있었다는 정보만 있다. 천냥하우스가 매형의 집인지 아니면 물건을 파는 집인지는 독자가 추측해야 한다.(꿈에서는 물건 파는 집이었다가 다시 들어갔을 때엔 매형의 집으로 변해 있었고 물건도 사라졌으니까, 나도 이해할 수 없는 초현실적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동생은 변질한 매형에 대한 분노를 털어내지만 나는 별말을 하지 않는다.

  이 글은 ‘천냥하우스’라는 어휘에 상징을 두고 있어서 상징주의 기법이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천냥하우스가 돌연 변하고 만다는 점에서 초현실주의 기법과 아방가르드 기법이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인물의 움직임을 따라 시공간이 변하는 무비즘 기법이 사용되었다. (“연놈이 싸우는 소리가 너무 드세게 들어와서/날이 어두워지고”은 ‘난해성’ 표현법이나 ‘역설’표현법이라고 볼 수 있으며 아방가르드 기법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꿈을 글로 옮겨놓기만 했을 뿐 이런 표현법이나 기법들을 생각한 적은 없다.)

  동생은 현실에서도 못사는 사람이지만, 꿈에서도 못사는 사람(비정규직)으로 등장하여, 자기보다는 돈 많은 매형이 변질했음에 대한 분노(불만)를 퍼붓는다. 나는 “천냥하우스를 나가야겠다.”라고 생각한다. 매형은 대단한 부자일 수도 있고 권력 맛을 본 정치인일 수도 있다. 한데 매형의 정체가 둘 중 어느 한 면을 지닌 사람이라는 점을 암시받을 수 있는 까닭에 이 글은 한국 자본주의 사회의 (정치적 혹은 경제적) 문제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본다. 「천냥하우스를 찾아갔다가」는 대도시 삶의 퇴폐적인 풍광들을 소재로 삼고, 천냥하우스 즉, 객관적 상관물이라는 상징주의적 표현기제를 사용하여, 공통의 가치와 신념을 나누지 못하고 경험과 의식의 분절화를 겪으며 살아야 하는 대도시 생활의 병폐적 속성을 표출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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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 상관물(客觀的 相關物)은 창작자가 표현하려는 자신의 정서나 감정, 사상 등을 다른 사물이나 상황에 빗대어 표현할 때 이를 표현하는 사물이나 사건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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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S. 엘리엇 /

J. 알프레드 프루프록의 연가(The love song of J. Alfred Prufrock) 서문1 + 36행까지

 

  만일 내 대답이 지상으로 다시 돌아갈 사람에게

  하는 것이라고 내가 생각한다면,

  이 불꽃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을 것이네,

  하나 내가 들은 것이 사실이라면, 어느 누구도

  이 심연에서 살아 돌아간 적이 없으므로,

  난 오명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신에게 대답하겠네.1

 

  그러면 우리 함께 가요, 너와 나,

  저녁이 하늘에 펼쳐져 있을 때

  마치 수술대 위에 에테르로 마취된 환자처럼.

  우리 함께 가요, 반쯤 인적 끊긴 거리를 통해,

  잠 못 이루는 밤을 중얼거리며 묵는

  싸구려 일박 호텔

  굴껍질과 톱밥이 깔린 식당이 있는.

  거리들은 이어지네, 마치 음흉한 의도를 가진

  지겨운 논쟁처럼,

  절실한 문제로 널 인도하면서 ...

  아, 묻지 말아요, “무엇이냐”라고,

  우리 함께 가요, 방문하러.

 

  방 안에서 여자들이 오고 가며

  미켈란젤로를 이야기하네.

 

  유리창에 등을 문지르는 노란 안개,

  유리창에 코와 입을 비벼대는 그 노란 연기는,

  혀로 저녁의 구석구석을 핥으며,

  수채에 고인 웅덩이 위에 잠시 머물다가,

  굴뚝에서 떨어지는 그을음을 등에 맞으며,

  테라스 옆을 살짝 빠져나가, 갑자기 껑충 뛰었네,

  그러곤 포근한 10월 밤인 것을 알고는,

  집 주위에 웅크리고는잠들어 버렸네.

 

  그리고 정말 시간은 있으리라

  유리창에 등을 문지르며

  거리를 미끄러지듯 지나가는 노란 연기에게는,

  시간은 있으리라, 시간은 있으리라,

  네가 만나는 얼굴들을 만날 얼굴을 준비할.

  시간은 있으리라, 살인하고 창조할 시간은,

  그리고 너의 쟁반에 질문을 올려놓는 손의

  모든 일과 날들을 위한 시간은,

  너를 위한 시간과 나를 위한 시간은,

  그리고 아직 일백 번의 망설임과,

  일백 번의 구상과 수정을 위한 시간은,

  토스트를 먹고 차를 마시기 전에.

 

  방 안에서 여자들이 오고 가며

  미켈란젤로를 이야기하네.

 

  *1: 서문. 이탈리아어로 된 이 부분은 단테의 <신곡(Divine Comedy)>의 ‘지옥(Inferno)’편 제27부(Canto 27) 61-66행을 인용한 것이다.​ T. S. 엘리엇의 이 시는 총 131행의 시이다.

[출처] T. S. 엘리엇 / J. 알프레드 프루프록의 연가 (1)|작성자 차일피일

https://blog.naver.com/yoonphy/223102349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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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엇은 보들레르가 현대사회가 현대인이 갖는 의식과 감정에 부정적으로 끼치는 문제점들을 찾아 이를 상징적인 이미지를 활용하여 시를 쓰는 것을 발견하고 깊은 영감을 얻었다. 엘리엇은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인들 가운데, 특히 보들레르가 구현하는 시적 주제와 표현기법에 많은 관심을 가졌으며 엘리엇의 초기 시들은 프랑스 상징주의의 시학전통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고 할 것이다. 보들레르가 퇴폐적인 대도시의 삶을 새로운 시의 소재로 전면에 내세우고 대도시의 환경에서 시적 영감을 찾았던 것처럼, 엘리엇 역시 「J. 알프레드 프루프록의 연가」와 같은 그의 초기 시작품에서 대도시가 새로운 현대시의 환경이 되고 시적 소재의 근원이 됨을 주목한다. 엘리엇이 단지 현대 대도시 삶의 퇴폐적인 풍광들을 시의 소재로 삼을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엘리엇이 이런 실제의 도시적 풍광을 활용하여 프푸프록으로 대변되는 현대 지식인의 번민과 내면의 의식을 상징적으로 구현하고 있음을 주장한다. 엘리엇이 자신의 과거의 경험과 관찰을 통하여 제시한 시적 소재들을 객관적 상관물로 활용하여, 현대 도시민의 복잡한 의식의 속성과 그 문제점들을 들추어냄을 밝힌다. 아울러, 엘리엇이 객관적 상관물이라는 상징주의적 표현기제를 사용하여, 공통의 가치와 신념을 나누지 못하고 경험과 의식의 분절화를 반복적으로 겪으며 살아야하는 대도시 생활의 병폐적 속성을 표출하려 했음을 밝힌다.

  「J. 알프레드 프루프록의 연가」는 엘리엇의 활동초기 작품으로 영국 형이상학 시와 프랑스 상징주의 시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프루프록은 방황하는 현대의 중년, 이성과 감정을 적절히 조화시키지 못하여 고뇌하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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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석준_출판기념회_광주 민중항쟁 강당 2013-02-26 오후 4:33

  박석준_출판기념회_광주 민중항쟁 강당 2013-02-26 오후 4:33

    [20130226_박석준 선생님 시집출간기념]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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