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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 (창작년도)

나의 무비즘 (84), 실존주의 모더니즘 (37) 가을의 오전 / 박석준

나의 신시 97-2 가을의 오전

나의 무비즘 (84), 실존주의 모더니즘 (37)

2007-10-09

박석준 /

<수정 재개작>

가을의 오전

 

 

  길을 걷다가 문득

  가을의 오전이 목욕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

  낮 열두시가 되면 곧 사라지겠지만

  그때까진 시간을

  신록처럼 깨끗하게 만들어

  행인들을 낯설게 할 것이다.

  살짝 내리는 비가 햇살처럼 가로수 밑동까지 닿는다,

  햇살은 노점의 바구니와 상점의 쇼윈도 속으로 스며들고.

 

  밤이면 언제나 삶에 대해 질문을 만드는 카페

  2층 유리창문 안에서 잠들어 있다.

  가을 오전의 거리엔

  노점 아낙 바구니의 과일들을 낯설게 스쳐가는,

  은행이나 슈퍼마켓으로 가는

  사람들이 잠시 머물러 있을 뿐이다.

 

  거리에서 가을 오전이 목욕하고 있을 때

  초등학교 앞을 스치면

  구멍가게 안 아이스크림이 특별히 떠오른다

  이어 어디선지 모르게

  소년 하나가 따라와

  함께 길을 걷는다. 이제라도

  그 아이와 아이스크림 한 개씩

  나눠 먹으며 걷고 싶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여름처럼 쉽게 떠나보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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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09 ∽ 2008-09-06 <원작>

∽→ 2013-01-06 오전 6:01. 박석준-시집 최종본 2013년1월5일-2(내가 모퉁이로 사라졌다가).hwp <수정 재개작>

= 시집_『카페, 가난한 비』(2013.02.12. 푸른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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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상황

    2007-10-09 (광주시 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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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사랑과 실존

  4개의 연 24행으로 된 「가을의 오전」은 길을 거닐면서 화자에게 일어나는 생각과 화자가 길을 걷고 있을 때의 상황과 심정들이 무비즘 기법으로 표현된 글이다. 2연의 “카페”가 복선 역할을 한다.

  이 글은 현재 시점(“가을 오전인 지금”)에서 비가 내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가을의 오전이 목욕하고 있”다고 생각한 화자는 “가로수 밑동”, “노점”, “쇼윈도”가 있는 곳까지 왔다. 화자가 이렇게 생각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1연)

  화자는 “카페”를 보았으며 “노점” 있는 곳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카페는/2층 유리창문 안에서 잠들어 있다.”는데 화자는 “카페”에서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 (2연)

  (3연)에서 “거리에서 가을 오전이 목욕하고 있을 때” 화자는 “소년”과 “함께 길을 걷는다”. 그러면서 ⓐ“이제라도/그 아이와 아이스크림 한 개씩/나눠 먹으며 걷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고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은/여름처럼 쉽게 떠나보내지 않는다.”라는 생각도 한다. (4연) 그런데 이것은 정 떠나겠다면 보내주겠다.’는 심정을 가졌음을 암시한다. ⓐ라는 생각을 먼저 했기 때문이다. 화자에겐 자신의 실존함이 더 중요한 일로 자리잡았음을 알게 한다. 그리고 이것은 “이제라도”가 있어서 “거리에서 가을 오전이 목욕하고 있을 때”가 ‘화자가 누군가를 떠나보낼 준비를 하고 있을 때’임을 유추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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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해설

비극적 주체의 절망과 희망

― 박석준 시집 『카페, 가난한 비』에 대하여

 

  이 시에서 시인은 우선 “길을 걷다가 문득/가을의 오전이 목욕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이어 그는 “낮 열두시가 되면 곧 사라지겠지만/그때까진 시간을/신록처럼 깨끗하게 만들” 것이라고 진술한다. “가을의 오전이 목욕하고 있”다니? “시간을/신록처럼 깨끗하게 만들” 것이라니? 이들 구절만 보더라도 그의 시가 매우 신선한 감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을의 오전이 주는 신선한 분위기를 이처럼 생생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순수하고 무구한 마음, 지공무사(至公無私)한 마음이 필요하다. 지공무사한 마음, 다시 말해 사무사(思無邪)의 마음이 없이는 지극한 정신차원에 이를 수 없고, 지극한 정신차원에 이르지 않고서는 각각의 사물에 새로운 이름, 곧 신선한 언어를 부여할 수 없다.

  물론 이 시집에 드러나 있는 박석준의 자아는 무력해 보일 때도 있고, 무료해보일 때도 있다. 더러는 절망하고 좌절하는 자아로도, 더러는 고독하고 외로운 자아로도 존재하는 것이 그의 시에서의 주체의 모습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시와 함께하고 있는 주체는 때로 실패한 자아, 상실한 자아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처럼 아픈 주체, 고통을 받는 주체로서의 그의 시의 자아는 급기야 “내일, 혈관확장시술을 하기로 되어 있는데”(「어느 협심증 환자의 유월」) 등의 고백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는 자아의 정서 일반을 이 글에서는 죽음의 정서, 곧 멜랑콜리라고 명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때의 죽음의 정서, 곧 멜랑콜리가 시인 박석준의 순수하고도 무구한 마음에서 비롯되었으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지공무사의 마음, 사무사의 마음을 갖지 않고서는 자신의 시에서 그가 이처럼 밝으면서도 어두운 정서를 구현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명징하고 정직한 양심이 불러일으키는 슬프고도 서러운 정서에 기초해 있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은 것이 그의 시에서의 멜랑콜리라는 것이다. 그의 시에 구현되어 있는 이들 정서를 가리켜 밝은 어둠, 나아가 흰 그늘이라고 불러도 무방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은봉 시인, 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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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화

  나(박석준)는 1986년 9월(29살 때)부터 2008년 2월(51살 때)까지 광주의 유동에서 살았다. 내가 사는 집은 바로 옆이 유동4거리이다. 유동4거리는 한 길이 금남로의 끝이어서 나는 도심인 금남로로 자주 산책을 했다. 다른 한 길은 광주역에 닿아 있고, 길가에 ‘백화점’과 ‘스토리 카페’가 있다, 이어 뻗은 양동으로 가는 길에는 극장과 상가가 있다. 이 장면이 담긴 시가 「길을 걷다 보면」과 이것을 수정한 「가을/길을 걷다」, 재수정한 「가을의 오전」이다. 「길을 걷다 보면」은 2007년 10월 광주 유동과 금남로를 배경으로 한 것인데, 내가 유동에서 산 마지막 가을을 담은 글이 되었다. 이 가을 뒤에 ‘어머니의 죽음’이 곧 다가올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유동4거리 주변엔 목욕탕이 3군데 있어서 나는 그날 시간에 따라 목욕탕을 선택했다. 특히 수창초등학교 가까운 곳에는 은행들과 유동의 상가가 있어서(그중 아세아극장 앞에는 노점들도 있어서) 그 상가의 노점이나 쇼윈도 속을 살펴보기도 하였고, 현대백화점(구 송원백화점) 쪽에는 ‘스토리 카페’가 있어서 사람들을 만나러 가곤 했다. 이 글엔 그런 사정 때문에 그곳 장면들이 등장한다. “가을의 오전이 목욕하고 있는 모습”이란 표현은 이 가을에 내가 아세아극장 쪽으로 목욕하러 가는 길에서 문득 떠올리게 된 생각이다.

  다음 글은 목욕탕에서 나와 관련하여 2000년에 일어난 일을 담은 일화이다. ― 2년 전의 깊은 밤 카운터 앞에 막 선 그에게 “제가, 이곳을 가끔 찾아오는 아저씨를 생각해 봤어요. 이곳을 찾아오면 꼭 한 시간 정도만 있다가 밤 열두 시 즈음해서 나가시더군요. 아저씨는 인삼 향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이에요.”라고 청년이 자신에게 지나간 몇 장면에 대한 소감을 턴 일도 있었지만./2002. 7. 5. 13시경-8월 2일 19시_카페 가난한 비_1-4. 행복한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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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개작>

가을/길을 걷다

 

 

  길을 걷다가 문득

  가을의 오전이 목욕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

  낮 열두시가 되면 곧 사라지겠지만

  그때까

  을 신록처럼 깨끗하게 만들어

  행인들을 낯설게 할 것이다.

  는 햇살처럼 가로수 밑동까지 적신다,

  쇼윈도 속으로

  스며들기라도 할 것처럼.

 

  평일이든 휴일이든

  밤이면 찾아들던 카페,

  언제나 삶에 대해

  질문을 만드는 이 작은 공간은

  여름의 오후를 따라가

  가을 오전인 지금까지는 떠오르지 않고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여름처럼 쉽게 떠나보내지 않는다.

  가을 오전의 거리엔

  은행이나 체인점을 찾거나

  길가 노점의 과일들을 낯설게 스쳐 가는 사람들만

  잠시 머물러 있을 뿐이다

 

  거리에서 가을 오전이 목욕 하고 있을 때

  문득 초등학교 앞을 스치면

  거기 구멍가게 안 아이스크림이 특별히 떠오른다

  이어 어디선지 모르게

  소년 하나가 따라와

  함께 길을 걷는다.

  이제라도

  그 아이와 아이스크림 한 개씩

  나눠 먹으며 걷고 싶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여름처럼 쉽게 떠나보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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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09 ∽ 2012.04.30. 23:30.메. 1문학마당에 보내는 신작시 5편.hwp <수정 개작>

= 『문학마당』 39호, 2012 여름호(2012-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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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길을 걷다 보면

 

 

  길을 걷다 보면

  가을의 오전이 목욕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낮 열두시가 되면 곧 사라지겠지만

  그때까진

  시간을 신록처럼 깨끗하게 만들어

  행인들을 낯설게 할 것이다.

  는 햇살처럼 가로수 밑둥까지 적신다,

  쇼윈도 속으로

  스며들기라도 할 것처럼

  평일이든 휴일이든.

  밤이면 찾아들던 카페,

  언제나 삶에 대해

  질문을 만드는 이 작은 공간은

  여름의 오후를 따라가

  가을 오전인 지금까지는 떠오르지 않고 있다.

  가을 오전의 거리엔

  은행이나 체인점을 찾거나

  길가 노점의 과일들을 낯설게 스쳐 가는 사람들만

  잠시 머물러 있을 뿐이다.

  거리에서 가을 오전이 목욕 하고 있을 때

  문득 초등학교 앞을 스치면

  거기 구멍가게 안 아이스크림이 특별히 떠오른다.

  이어 어디선지 모르게

  소년 하나가 따라와

  함께 길을 걷어간다.

  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여름처럼 쉽게 떠나보내지 않는다.

  500원짜리 선물 하나 전한 적이 없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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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09 ∽ 2008.09.06. 10:50.메. 박석준-08종합1.hwp <원작>

= 『석사학위 작품집』(20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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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2) 2007-1

길을 걷다 보면

 

 

  어쩌다가 길을 걷다 보면

  시가에서 가을 오전이 목욕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곧 낮 열두시가 되어 사라질 테지만

  그 때까진

  시간을 신록처럼 깨끗하게 만들어

  행인들을 낯설게 할 것이다.

  비가 내리는 가로수 아래까지 햇살을 내리쏟고

  쇼윈도 속으로 빗방울을 스며들게 할 것처럼

  평일이든 휴일이든

 

  밤이면 찾아들던, 삶을 생각게 하는 카페는

  여름 끝자락을 따라가

  가을 오전 길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은행이나 체인점에 찾아들거나

  길가의 사과들을 낯설게 스쳐 가거나 하는

  사람이 잠시 머물러 있을 뿐이다.

 

  시가에서 가을 오전이 목욕을 하고 있을 때

  문득 초등학교 앞을 스치면

  거기 구멍가게 안 아이스크림이 특별하게 떠오른다.

  그러곤 곧 어디선지 모르게

  소년 하나가 따라와

  함께 길을 걷어간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여름처럼 쉽게 떠나 보이지 않는다.

  500원짜리 선물 하나 전한 적이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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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09 오후 10:25. 길을 걷다 보면.hwp (초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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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1) 2007-10-09

가을 오전 길을 걸을 때

 

 

  가을 어쩌다가 오전 길을 걸을 때엔

  가을 오전이 시가에서 목욕을 하고 있었다.

  곧 낮 열두시가 되어 사라질 테지만

  그 때까진

  시간을 신록처럼 깨끗하게 만들어

  행인을 낯설게 할 것이다.

  비가 내리는 가로수 아래까지 햇살을 내리쏟고

  쇼윈도 속으로 빗방울을 스며들게 할 것처럼

  평일이든 휴일이든

 

  하지만 밤이면 찾아들던, 삶을 생각하는 카페는

  여름 끝자락을 따라가

  가을 오전 길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은행이나 체인점에 찾아들거나

  길가의 사과들을 낯설게 스쳐가거나

  하는 사람이 잠시 있을 뿐이다.

 

  가을 오전이 시가에서 목욕을 하고 있을 때

  구멍가게, 앞 초등학교를 문득 스쳤을 때

  구멍가게 안 아이스크림이 특별하게 떠오른다.

  그러곤 곧 어디선지 모르게

  소년 하나가 따라와

  함께 길을 걷어간다.

  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여름처럼 쉽게 떠나 보이지 않는다.

  500원짜리 선물 하나 전한 적이 없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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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09 (초고)

= 2007-11-15 오후 10:24. 서정시의 이론.hwp (초고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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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12.04 22:33 (메) 길을 걷다 보면 (초고)

  2008-08-07 오후 7:43 (파) 07-12-04-길을걷다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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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PHOTO0509110003 충장로 2층 카페_박석준. 2005.09.11

  PHOTO0509110003 충장로 2층 카페_박석준. 2005.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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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22_11:15. 푸른마을 큰길 광주은행_poorrain

  2022-10-22_11:15. 푸른마을 큰길 광주은행_poor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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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6_11:26. 3단지 쪽 비_poorrain

  2023-11-16_11:26. 3단지 쪽 비_poor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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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4_12:04. 푸른마을 초등학교 앞 아이스크림_poorrain

  2020-10-24_12:04. 푸른마을 초등학교 앞 아이스크림_poor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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