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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 (창작년도)

나의 실존주의 모더니즘 (35) 길을 걷다 보면 / 박석준

나의 신시 97 길을 걷다 보면

나의 실존주의 모더니즘 (35)

2007-10-09

박석준 /

<원작> (걷어간다. /군가를)

길을 걷다 보면

 

 

  길을 걷다 보면

  가을의 오전이 목욕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낮 열두시가 되면 곧 사라지겠지만

  그때까진

  시간을 신록처럼 깨끗하게 만들어

  행인들을 낯설게 할 것이다.

  비는 햇살처럼 가로수 밑둥까지 적신다,

  쇼윈도 속으로

  스며들기라도 할 것처럼

  평일이든 휴일이든.

  밤이면 찾아들던 카페,

  언제나 삶에 대해

  질문을 만드는 이 작은 공간은

  여름의 오후를 따라가

  가을 오전인 지금까지는 떠오르지 않고 있다.

  가을 오전의 거리엔

  은행이나 체인점을 찾거나

  길가 노점의 과일들을 낯설게 스쳐 가는 사람들만

  잠시 머물러 있을 뿐이다.

  거리에서 가을 오전이 목욕 하고 있을 때

  문득 초등학교 앞을 스치면

  거기 구멍가게 안 아이스크림이 특별히 떠오른다.

  이어 어디선지 모르게

  소년 하나가 따라와

  함께 길을 걷어간다.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은

  여름처럼 쉽게 떠나보내지 않는다.

  500원짜리 선물 하나 전한 적이 없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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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09 ∽ 2008.09.06. 10:50.메. 박석준-08종합1.hwp <원작>

= 『석사학위 작품집』(20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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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상황

    2007-10-09 (광주시 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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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사랑과 실존

  28행으로 된 「길을 걷다 보면」은 “길을 걷다 보면”이라고 가정형으로 시작하고 있고 “낯설게 할 것이다.”라고 추측형으로 이어지고 있어서 길을 걸어가면서 하게 된 지나간 날의 경험을 기반으로 한 공상(또는 회상)을 표현한 글로 여겨진다.

  이 글은 7행 “는 햇살처럼∼”에서 현재 시점(“가을 오전인 지금”)이 나타난다. 그런데 “문득 초등학교 앞을 스치면”라고 한 21행에서도 가정형이 사용되었다. 그러고는 글이 끝나는 부분(26행)에서 “군가”라는 인물이 언급된다. 이로 보아 이 글은 “군가”가 생각나서 화자가 가을 길을 걷고 있고, 이 “군가”가 화자에게서 떠나겠다고 말을 해서 화자가 지금 가을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이별의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고 사랑을 실현하고 유지하고 싶은 화자의 욕망만이 있을 뿐이다. “지금까지는 떠오르지 않고 있”는 “카페”는 화자에게서 사랑하는 사람(“누군가”)이 떠나가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소년”과 “함께 길을 걷어간다”는 표현이 바로 앞에 있어서 “쉽게 떠나보내지 않는다.”는 표현엔 ‘정 떠나겠다면 보내주겠다.’는 게 화자의 심정임을 암시하고 있다. 화자에겐 자신의 실존함이 더 중요한 일로 자리잡았음을 알게 한다.

  이 글에선 자본주의 사회의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은행, 카페, 쇼윈도, 노점)를 엮어 이야기를 펼쳐낸 모더니즘 기법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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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화

  나(박석준)는 1986년 9월(29살 때)부터 2008년 2월(51살 때)까지 광주의 유동에서 살았다. 내가 사는 집은 바로 옆이 유동4거리이다. 유동4거리는 한 길이 금남로의 끝이어서 나는 도심인 금남로로 자주 산책을 했다. 다른 한 길은 광주역에 닿아 있고, 길가에 ‘백화점’과 ‘스토리 카페’가 있다, 이어 뻗은 양동으로 가는 길에는 극장과 상가가 있다. 이 장면이 담긴 시가 「길을 걷다 보면」과 이것을 수정한 「가을/길을 걷다」, 재수정한 「가을의 오전」이다. 「길을 걷다 보면」은 2007년 10월 광주 유동과 금남로를 배경으로 한 것인데, 내가 유동에서 산 마지막 가을을 담은 글이 되었다. 이 가을 뒤에 ‘어머니의 죽음’이 곧 다가올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유동4거리 주변엔 목욕탕이 3군데 있어서 나는 그날 시간에 따라 목욕탕을 선택했다. 특히 수창초등학교 가까운 곳에는 은행들과 유동의 상가가 있어서(그중 아세아극장 앞에는 노점들도 있어서) 그 상가의 노점이나 쇼윈도 속을 살펴보기도 하였고, 현대백화점(구 송원백화점) 쪽에는 ‘스토리 카페’가 있어서 사람들을 만나러 가곤 했다. 이 글엔 그런 사정 때문에 그곳 장면들이 등장한다. “가을의 오전이 목욕하고 있는 모습”이란 표현은 이 가을에 내가 아세아극장 쪽으로 목욕하러 가는 길에서 문득 떠올리게 된 생각이다.

  다음 글은 목욕탕에서 나와 관련하여 2000년에 일어난 일을 담은 일화이다. ― 2년 전의 깊은 밤 카운터 앞에 막 선 그에게 “제가, 이곳을 가끔 찾아오는 아저씨를 생각해 봤어요. 이곳을 찾아오면 꼭 한 시간 정도만 있다가 밤 열두 시 즈음해서 나가시더군요. 아저씨는 인삼 향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이에요.”라고 청년이 자신에게 지나간 몇 장면에 대한 소감을 턴 일도 있었지만./2002. 7. 5. 13시경-8월 2일 19시_카페 가난한 비_1-4. 행복한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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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재개작>

가을의 오전

 

 

  길을 걷다가 문득

  가을의 오전이 목욕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

  낮 열두시가 되면 곧 사라지겠지만

  그때까진 시간을

  신록처럼 깨끗하게 만들어

  행인들을 낯설게 할 것이다.

  살짝 내리는 비가 햇살처럼 가로수 밑동까지 닿는다,

  햇살은 노점의 바구니와 상점의 쇼윈도 속으로 스며들고.

 

  밤이면 언제나 삶에 대해 질문을 만드는 카페는

  2층 유리창문 안에서 잠들어 있다.

  가을 오전의 거리엔

  노점 아낙 바구니의 과일들을 낯설게 스쳐가는,

  은행이나 슈퍼마켓으로 가는

  사람들이 잠시 머물러 있을 뿐이다.

 

  거리에서 가을 오전이 목욕하고 있을 때

  초등학교 앞을 스치면

  구멍가게 안 아이스크림이 특별히 떠오른다

  이어 어디선지 모르게

  소년 하나가 따라와

  함께 길을 걷는다. 이제라도

  그 아이와 아이스크림 한 개씩

  나눠 먹으며 걷고 싶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여름처럼 쉽게 떠나보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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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09 ∽ 2008-09-06 <원작>

∽→ 2013-01-06 오전 6:01. 박석준-시집 최종본 2013년1월5일-2(내가 모퉁이로 사라졌다가).hwp <수정 재개작>

시집_『카페, 가난한 비』(2013.02.12. 푸른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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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개작>

가을/길을 걷다

 

 

  길을 걷다가 문득

  가을의 오전이 목욕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

  낮 열두시가 되면 곧 사라지겠지만

  그때까

  을 신록처럼 깨끗하게 만들어

  행인들을 낯설게 할 것이다.

  는 햇살처럼 가로수 밑동까지 적신다,

  쇼윈도 속으로

  스며들기라도 할 것처럼.

 

  평일이든 휴일이든

  밤이면 찾아들던 카페,

  언제나 삶에 대해

  질문을 만드는 이 작은 공간은

  여름의 오후를 따라가

  가을 오전인 지금까지는 떠오르지 않고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여름처럼 쉽게 떠나보내지 않는다.

  가을 오전의 거리엔

  은행이나 체인점을 찾거나

  길가 노점의 과일들을 낯설게 스쳐 가는 사람들만

  잠시 머물러 있을 뿐이다

 

  거리에서 가을 오전이 목욕 하고 있을 때

  문득 초등학교 앞을 스치면

  거기 구멍가게 안 아이스크림이 특별히 떠오른다

  이어 어디선지 모르게

  소년 하나가 따라와

  함께 길을 걷는다.

  이제라도

  그 아이와 아이스크림 한 개씩

  나눠 먹으며 걷고 싶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여름처럼 쉽게 떠나보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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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09 ∽ 2012.04.30. 23:30.메. 1문학마당에 보내는 신작시 5편.hwp <수정 개작>

= 『문학마당』 39호, 2012 여름호(2012-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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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2) 2007-1

길을 걷다 보면

 

 

  어쩌다가 길을 걷다 보면

  시가에서 가을 오전이 목욕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곧 낮 열두시가 되어 사라질 테지만

  그 때까진

  시간을 신록처럼 깨끗하게 만들어

  행인들을 낯설게 할 것이다.

  비가 내리는 가로수 아래까지 햇살을 내리쏟고

  쇼윈도 속으로 빗방울을 스며들게 할 것처럼

  평일이든 휴일이든

 

  밤이면 찾아들던, 삶을 생각게 하는 카페는

  여름 끝자락을 따라가

  가을 오전 길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은행이나 체인점에 찾아들거나

  길가의 사과들을 낯설게 스쳐 가거나 하는

  사람이 잠시 머물러 있을 뿐이다.

 

  시가에서 가을 오전이 목욕을 하고 있을 때

  문득 초등학교 앞을 스치면

  거기 구멍가게 안 아이스크림이 특별하게 떠오른다.

  그러곤 곧 어디선지 모르게

  소년 하나가 따라와

  함께 길을 걷어간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여름처럼 쉽게 떠나 보이지 않는다.

  500원짜리 선물 하나 전한 적이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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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09 오후 10:25. 길을 걷다 보면.hwp (초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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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1) 2007-10-09

가을 오전 길을 걸을 때

 

 

  가을 어쩌다가 오전 길을 걸을 때엔

  가을 오전이 시가에서 목욕을 하고 있었다.

  곧 낮 열두시가 되어 사라질 테지만

  그 때까진

  시간을 신록처럼 깨끗하게 만들어

  행인을 낯설게 할 것이다.

  비가 내리는 가로수 아래까지 햇살을 내리쏟고

  쇼윈도 속으로 빗방울을 스며들게 할 것처럼

  평일이든 휴일이든

 

  하지만 밤이면 찾아들던, 삶을 생각하는 카페는

  여름 끝자락을 따라가

  가을 오전 길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은행이나 체인점에 찾아들거나

  길가의 사과들을 낯설게 스쳐가거나

  하는 사람이 잠시 있을 뿐이다.

 

  가을 오전이 시가에서 목욕을 하고 있을 때

  구멍가게, 앞 초등학교를 문득 스쳤을 때

  구멍가게 안 아이스크림이 특별하게 떠오른다.

  그러곤 곧 어디선지 모르게

  소년 하나가 따라와

  함께 길을 걷어간다.

  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여름처럼 쉽게 떠나 보이지 않는다.

  500원짜리 선물 하나 전한 적이 없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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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09 (초고)

= 2007-11-15 오후 10:24. 서정시의 이론.hwp (초고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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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12.04 22:33 (메) 길을 걷다 보면 (초고)

  2008-08-07 오후 7:43 (파) 07-12-04-길을걷다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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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023-11-16_11:26. 3단지 쪽 비_poorrain

  2023-11-16_11:26. 3단지 쪽 비_poor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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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5_10:35. 푸른마을 노점   _poorrain

  2023-10-25_10:35. 푸른마을 노점 _poor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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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22_11:15. 푸른마을 큰길 광주은행   _poorrain

  2022-10-22_11:15. 푸른마을 큰길 광주은행 _poor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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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4_12:04. 푸른마을 초등학교 앞 아이스크림   _poorrain

  2020-10-24_12:04. 푸른마을 초등학교 앞 아이스크림 _poor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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