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시 73 고흐의 의자_(석사 버전)
나의 실존주의 아방가르드 (15)
2004-11-09
박석준 /
<석사 버전>
고흐의 의자
벤치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고흐는 실내의 의자를 그렸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는 날 빗물이 흐르는 실외의 벤치에 앉아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림의 풍경이 실제는 아니었겠지만.
그림에서처럼 그 풍경에 감흥을 느껴 여자 하나가 고흐, 그 사람이 앉아 있는 비가 내리는 벤치 쪽으로 다가갔을까.
실내의 탁자에는 해바라기가 놓여 있었고, 벽에는 해바라기*가 걸려 있었다.
그 사람이 떠나간 뒤 그림으로는 그릴 수 없는 흔적 하나가 실내에는 분명하게 남아 있었다.
사람이 머무는 자리엔 체취가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면 그 흔적은 여자의 것이 틀림없었으리라, 소녀 또한 여자였으므로.
그 여자가 ‘난 Vincent라는 노래를 좋아하죠,’ 라고 지껄여 24세의 그 사람이 이 방에 머무르던 시절, 갈등이 숨쉬기라도 했다면, 더욱 그러했으리라.
그 후 여자는 전원 속의 이 방에서 7개월쯤 더 머물렀다, 방문을 잠그지 않은 채 짐 몇 가지에 체취를 묻힌 채.
네 계절이 순환하고 11월이 흐르는데― 엷어지고 있었다. 그녀의 몸짓이 이별을 암시하고 있었다.
고흐의 사색의 방에 찾아와 세 통의 편지를 남긴 그때 이미 소녀의 색깔은 사라지고 있었다. 고흐는 11월 11일에야 그녀가 남긴 글이 그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넌 누구냐?! 왜 들여다본 거지? 이 방을 무엇 때문에! 하지만 이 방엔 빈 의자만 있고 소녀는 없었다.
이미 여자의 체취가 지배해버린 실내, 문자 메시지 몇 개로도 창문을 열게 할 수 있다던, 그녀의 아이디는 persona였다.
창문 밖 벤치엔 가을비가 내렸고, 고흐는 실내의 의자만을 그렸는데.
고흐의 그림에는 한 번도 비가 내리지 않았다.
* Vincent : 돈 맥클린(Don McLean. 1945- . 미국의 singer-songwriter and guitarist.)의 앨범 “American Pie ”(1971)에 수록된 노래(Fo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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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09 ∽ 2006-06-14
∽ 2008.09.06. 10:50.메. 박석준-08종합1.hwp <원작>
= 『석사학위 작품집』(2009.08.)
= 『내일을 여는 작가』 83 (2023.06.20. 2023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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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상황
없음(가상: 2004-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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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작과 나의 삶
나(박석준)는 두 개의 버전(석사 버전/카페 버전)으로 「고흐의 의자」를 창작했다. 먼저 만들어낸 「고흐의 의자」<석사 버전>엔 “고흐”와 “여자” 둘 다 버림받는 사람으로 이야기를 구성했다. <카페 버전>에서는 “고흐”를 위해 “여자”가 떠나는 이야기로 구성했다. <카페 버전>에는 사람이 움직여서 시간을 따라 공간만 남게 되는(헤어지는),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이미지를 새겨내는 무비즘 기법이 사용되었다.
나는 ‘고흐의 그림에는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서 13행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아방가르드 요소를 지닌 <석사 버전>을 썼다.
2행 “그림의 풍경이 실제는 아니었겠지만”에서 “그림의 풍경”은 13행의 표현(“고흐의 그림에는 한 번도 비가 내리지 않았다.”)이나 글의 흐름으로 보아 ‘비가 내리지 않는 풍경’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이 “그림”은 고흐의 <생 레미 정신병원의 돌 벤치**>다는 생각이 들게 하고 그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또는 이 “그림”은 고흐의 <연인들이 있는 정원: 생피에르 광장***>이다는 생각이 들게 하고 그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이 그림에서 벤치에 앉아 있는 연인들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빈센트 반 고흐는 비가 내리는 풍경을 담아 <비(Rain)****>라는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런데 5행의 “그 사람이 떠나간 뒤”에서 “그 사람”은 누구일까? “그 사람”은 고흐를 찾아간 “소녀”이고 이 “소녀”가 “그 여자”로 변한 것이다, 라고 해석되게도 하는 표현이다(6, 7행). 그런데 7행의 “24세의 그 사람이 이 방에 머무르던 시절”이라는 말로 보아서, “그 사람”은 “고흐”를 가리킨다. 그리고 이것은 상대방한테서 먼저 떠난 사람이 “고흐”였다는 걸 알게 한다. “여자”가 이 방(고흐의 방)에서 “방문을 잠그지 않은 채 짐 몇 가지에 체취를 묻힌 채”로 고흐를 기다리면서 7개월을 더 머물러 11월이 흐르는데, “고흐”는 이 방(“고흐의 사색의 방”)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하여 “여자”는 “세 통의 편지를 남”기고 “고흐(의 사색의 방)”에게서 떠났다. 11월에 ‘여자가 떠났음’을 확인한 후에 “고흐”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지만 “11월 11일”에야 여자가 “남긴 글이 그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 자기 “방엔 빈 의자만 있고 소녀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흐가 후회했음을 짐작게 한다.
“여자”는 스스로 “고흐”를 사랑하여 고흐의 방에 찾아가 머물렀고 스스로 “고흐”를 단념하고 고흐의 방에서 떠난 “persona” 즉 ‘이성과 의지를 가지고 자유로이 책임을 지며 행동하는 주체’로 남았다. 여자는 실존했다. 그러나 “고흐”는 자신만 지향만을 근본인 것으로 추구했을 뿐 “창문 밖 벤치엔 가을비가 내렸”음을 몰랐다. “그 여자”가 “고흐”를 사랑하고 있음과 사랑을 이루지 못해 괴로워함을 알려 하지 않았다.
<석사 버전>은 남자인 “고흐”가 여자를 먼저 버림으로써 마침내 ⓐ“여자”가 남자 “고흐”를 버리고 떠난다, 또는 ⓑ“여자”가 남자 “고흐”(고흐의 예술적 지향)를 위해서 떠난다는 내용으로 끝난다. 무엇이 인간의 의미 있는 ‘사랑, 예술, 삶’일까? 어떻게 해야 인간은 의미 있는 ‘사랑, 예술, 삶’을 실현할까? 생각하게 한다. ⓐ로 해석할 경우, ‘허무’를 느낀 “여자”가 떠남으로써 “고흐”에게 안긴 것은 ‘허무’이다. 여자가 ‘허무’로써 타인에게 ‘허무’를 생산하는 까닭에 공격적이며 주체 “persona”가 된다. 그리고 “고흐”는 “그녀가 남긴 글이 그림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나 “이미 여자의 체취가 지배해버린 실내”에 갇히게 되어 사랑을 잃어버린 소년 같은 존재로 남게 된다. 이런 점이 이 글에 아방가르드를 낳는다.
내(박석준)가 성년(20살)이 된 1월의 한 날에 동시에 편지로 두 여자가 나에게 다가왔다. 두 여자가 ‘사랑한다’는 말을 편지로 전하여 나는 ‘사랑’에 대해서 자주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사랑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잘 몰랐다. 22살 때 5월이 지난 후에 두 여자가 나에게서 떠났음을 깨닫게 되었으나, 어떻게 해야 제대로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아직도 잘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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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 2006-06-14
고흐의 의자
벤치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고흐는 실내의 의자를 그렸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는 날
빗물이 흐르는 실외의 벤치에
앉아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림의 풍경이
실제는 아니었겠지만.
그림에서처럼 그 풍경에 감흥을 느껴
여자 하나가 고흐,
그 사람이 앉아 있는
비가 내리는 벤치 쪽으로 다가갔을까
실내의 탁자에는 해바라기가 놓여 있었고
벽에는 해바라기가 걸려 있었다
그 사람이 떠나간 뒤
그림으로는 그릴 수 없는 흔적 하나가
실내에는 분명하게 남아 있었다.
사람이 머무는 자리엔
체취가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면
그 흔적은 여자의 것이 틀림없었으리라,
소녀 또한 여자였으므로.
그 여자가 ‘난 Vincent라는 노래를 좋아하죠,’ 라고 지껄여
24세의 그 사람이 이 방에 머무르던 시절,
갈등이 숨쉬기도 했다면.
더욱 그러했으리라
그 후 여자는 전원 속의 이 방에서
7개월쯤 더 머물렀다.
방문을 잠그지 않은 채
짐 몇 가지에 체취를 묻힌 채.
네 계절이 순환하고 11월이 흐르는데―
엷어지고 있었다. 그녀의 몸짓이
이별을 암시하고 있었다
고흐의 사색의 방에 찾아와
세 통의 편지를 남긴 그때 이미
소녀의 색깔은 사라지고 있었다.
고흐는 11월 11일에야
그녀가 남긴 글이
그림이었음을 깨달았다
넌 누구냐?! 왜 들여다본 거지? 이 방을 무엇 때문에!
하지만 이 방엔 빈 의자만 있고 소녀는 없었다.
이미 여자의 체취가 지배해버린 실내
문자 메시지 몇 개로도 창문을 열게 할 수 있다던
그녀의 아이디는 persona였다.
창문 밖 벤치엔 가을비가 내렸고
고흐는 실내의 의자를 그렸다.
고흐의 그림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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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14. 22:26.메. 박석준 시-40대의말에내리던밤비-2.hwp (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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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상) 2004-11-09
Questions
벤치에 비가 내리고 있다. 고흐는 실내의 자신의 의자를 그렸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는 날 비가 떨어져 흐르는 벤치에 앉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림은 실재가 아니었듯이. 더군다나 그런 풍경을 그림에서처럼 감흥을 느껴 여자 하나가 고흐, 그 사람 있는 벤치 가까이 다가갔을지도 모른다. 샤갈의 ‘마을’에 눈 내리는 풍경에서처럼.
하지만, 그 방에는 어떤 사람이 떠나간 뒤 그림으로는 그릴 수 없는 흔적 하나가 분명하게 남아 있었다. 사람이 머물렀던 자리엔 체취가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면, 남아 버린 그 흔적은 여자의 것이 틀림없다. 소녀 또한 여자일 것이므로.
그 사람은 ‘나도 Vincent라는 노래를 좋아하죠,’라고 했어요.
그 방에 24세의 사람이 머무르고 있던 시절, 이렇게 들려준 말 속에 갈등이 숨쉬고 있었다면.
그 사람은 전원 속에 있던 그 방에서 그 후로 7개월쯤 더 머물었다는 것만이 현재로선 확실하다. 방문을 잠그지 않았으나 짐 몇 가지에는 체취가 남은 채로. 그리고 네 계절이 순환하면서 11월이 흐르는데…….
‘엷어지고 있었다. 그 몸짓이 외출을 암시하고 있었다면. 그 애가 내 사색의 방에 찾아와 세 개의 글을 남긴 그 때 이미. 소녀의 색깔은!’
p는 11월 9일에야 그 애가 남긴 글이 그림이었음을 깨닫고 있었다. 그리고 ‘0개월 전보다 이전에 그 애는 여자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떠난 것을 내가 확인하게 된 것이 10개월 전이었으니까!’ 하며 사색에 잠겼다.
넌 누구냐?! 왜 들여다보는 거지? 그 바을 무엇 때문에! 그 방에 새로 머물고 있는 소녀를 찾아온 거야? 하지만 그 방엔 소녀는 없다. 이미 여자의 체취가 지배해 버린 그 속에서 아마도 소녀는 여자가 되고 있거나, 되어버렸을 텐데, 왜 기웃거리는 거지? 문자 몇 개로도 그 방의 창문을 열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건가?
그의 아이디는 persona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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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09. 23:51. 카페 가난한 비_Questions (발상)
→ https://cafe.daum.net/poorrain/4Ps/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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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된 곳
방랑자의 슬기로운 노후 생활 2023.07.13.
내일을 여는 작가
― https://blog.naver.com/samsun60/223154838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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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동영상
Vincent - Don McLean
― https://www.youtube.com/watch?v=Ooi2yP_v9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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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youtube.com/watch?v=G7PaK328md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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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 Vincent_van_Gogh_<해바라기(Sunflowers)>_1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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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 레미 정신병원의 돌 벤치(The Stone Bench in the Asylum at Saint-Remy)>(1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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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인들이 있는 정원: 생피에르 광장(Garden with Courting Couples: Square Saint-Pierre)>(1887)
이 작품엔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어린 밤나무 아래에서 산책을 즐기고 길가를 따라 벤치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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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Rain) or <빗속의 밀밭(Enclosed Wheat Field in the Rain)>(1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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