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시 70 바람과 사람
나의 실존주의 모더니즘 (20)
2004-09-04
박석준 /
바람과 사람
비를 좋아했지만
너무나 강한 바람은 싫어했다.
그 바람에 실려 오는 비도
싫어지곤 했다.
바람 사람, 사람 바람 둘 중에 어느 것이 맘에 들어요?
묻곤 하던 아이는
내가 있는 세상을 떠나
어느덧 2년쯤 흘러갔다.
나는 인연의 흔들림을
바람 불 때마다 짙게 느끼게 되었다.
바람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그 골목으로 간 것은,
사람 때문만도 아니었다.
사람과 바람 때문에
쪼그려 앉아 피워도 마구 흩뜨려지는
담배 연기가 나를 콕콕 찔렀다.
나는 바람을 다시 생각했고
바람 끝이 그저 자극이라는 것을
장미꽃 아래서, 가시처럼 의식했다.
나는 사람을 다시 생각했고
가시에 찔린 곳을 어루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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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07 ∽ 2013-01-06 오전 6:01. 박석준-시집 최종본 2013년1월5일-2(내가 모퉁이로 사라졌다가).hwp <원작 원본>
= 시집_『카페, 가난한 비』(2013.02.12. 푸른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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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상황
2004-09-07 (순천여고 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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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바람’과 ‘장미’, 인연, 골목
‘인연’엔 ‘①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사람이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 ②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원인인 인(因)과 간접적인 원인인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 등 몇 가지 뜻이 있다. 「바람과 사람」은 “인연”을 ①의 ‘사람이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로 사용했다. 그래서 ‘인연의 흔들림’은 ‘관계의 흔들림’ 내지 ‘관계의 끊어짐, ‘이별, (사람의) 죽음’을 함축하게 된다.
“바람 불 때”는 ‘나에게 좋지 않은 상황이 스치고 있을 때’를 함축한 표현이다. 그리고 “담배”는 ‘생각(고민)’을 비유한 말이다. 「바람과 사람」은 “나”가 ‘나에게 좋지 않은 일(바람)’이 스치고 있을 때 ‘인연의 흔들림(소외시킴, 이별함, 죽음 등으로 사람이 내 곁을 떠남, 인간관계가 끊어짐)’을 생각하게 되고 번민(흡연)하게 된다는 것과 “나”가 아이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형상화하였다.
“골목”은 “나”가 편안한 상태가 되고 싶어서 간 곳(“나”가 ⓐ바람을 피하려고 찾은 곳 ⓑ사람을 생각하려고 찾은 곳, ⓒ‘인연의 흔들림’이 의식되어서 벗어나려고 간 곳, ⓓ장미꽃이 있는 곳)이다. “장미꽃”은 “나”가 편안한 (마음) 상태로 있는 곳, 즉 좋은 상황을 의미한다. 「바람과 사람」에는 ‘바람’과 ‘가시(형극, 장애)’를 고려하지 않으면(그리고 살피지 않으면) “장미꽃”을 만나도 아름다운 “장미꽃”을 볼 수 없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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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창작 동기
교사들에게서 소외된 나(박석준)는 점심시간이 시작되면 학교 밖으로 돌아다니다가 자판기 율무차 한 잔을 뽑아 먹고 피로회복제 한 병을 사 먹었다. 그러고는 학교 앞 골목길에서 담배 한 대를 피우고 학교로 돌아가는 게 점심시간의 일상이 되었다.
2004년 9월 일은 태풍이 불고 간 후이지만 나의 존재의 가벼움을, 깊이 없는 내 존재를 안타까워하고 불안해했다. 그런데 아직도 바람 끝이 남아서 내 몸을 휘청거리게 하는데 돌연 나에게 ‘묻곤 하던 아이’(박재원) 얼굴이 떠올랐다. ‘묻곤 하던 아이’는 2년 전인 2002년(32살) 4월 말에 돌연 세상을 떠났다. 32살인 때에도 나를 배려하고 나에게 많은 것을 줬고, 주고 싶어하는 아이였다. 대학생인 ‘묻곤 하던 아이’는 내게 바람과 사람 중 어느 것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질 좋은 삶은 깊이와 폭이 있는 삶이라고 했다.
나는 몹시 허약한 어른이었으나 1987년 3월엔 30살이나 된 청년 교사였다. 1983년 3월 ‘먼 곳’ 고등학교 교사가 되었는데, 1987년 3월 신학기에 한 아이가 퇴근길에서 며칠을 나를 따라왔다. “선생님은 잘생기셔서 따라왔습니다.”, ‘잘생기셨는데 몸이 너무 허약하네요.’ 하거나 내 얇은 손목을 만져보고는 악수를 했다. 그 후로 나에게 이 아이는 “묻곤 하던 아이”, ‘그 애’가 되었다. ― “묻곤 하던 아이”로 나와 인연을 맺은 이 아이는 나의 몇 편의 글에 ‘그 애’로 등장한다. ‘그 애’는 후일 박재원 열사가 되었다.
그런 일이 떠오르면서 나는 ‘나는 폭이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순천에서 근무한 지 6개월이 넘었는데, 이상하게도 부임한 3월 초부터 선생들은 내 곁에 머무르는 것을 꺼렸다. ‘내가 전교조 복직교사라는 것 때문에 사람들은 나를 떨어져 나가게 했다.’는 것을 3월이 끝날 즈음에 깨닫게 되었다. 나는 매주 하는 교사들의 친목회 자리에도 가지 않았다. 나의 눈과 심장이 아프고 다리가 너무 가늘어서 친목회에서 주마다 하는 배구경기에 뛰고 싶지 않기 때문에. 나는 소외되었으며, 교무실에서나 학교의 다른 곳에서 학교 선생에게 말 한마디를 못 하는 시간만 땋아갔다. 점심시간엔 함께 밥을 먹지 못하고 고독감을 느낀 채 학교 주변 길을 점심시간 끝날 무렵까지 돌아다녔다.
아는 사람을 만날 리 없는 이 골목길에서 나는 생각에 잠기곤 했다. ‘사람과 바람. 나는 바라는 게 있지만, 내가 함께할 사람이 없다. 나는 나의 바람 때문에 스스로 아파하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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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화
2004년 9월에도, 점심시간이어서 약국에 가서 피로회복제를 사 먹고 배회하다가 순천여고로 가는 골목길(순천남초등학교 옆 골목길) 입구로 갔다. 그런데 바람이 불었고 나에게 불현듯 재원이 얼굴이 떠올랐다. 학교로 돌아가 바로 메모를 하여 ‘바람 속 길’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그리고 세월이 매우 흐른 후에 이를 바탕으로 「바람과 사람」(2013), 「세월, 말」(2021), 「언덕의 말」(2022)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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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5.06 (월) 20:20 메일엔 이렇게 적혀 있다.(재원이 4월 말경에 세상을 떠났지만.)
재원!
시간의 마디가 시절로 끝나버린 사람.
오늘은 이 모든 것이 비에 젖어
‘살아감’이 어디까지였는지
발자국을 흐리게 한다.
아침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리듯 말듯 하였는데
보름 전부터 계속되는 눈의 통증 때문에 조퇴를 하고 귀가했다.
그러나 병원에 가면서부터
시간의 색깔을 많이 생각해 보았다.
가기 직전에 <내 시절 속에 살아 있는 사람들> 이야기의 한 주인공의
자살 소식을 접한 오늘은 ‘빈 색(貧色)’인 것 같다.
그리고 그 시간의 색깔은 어떤 빛깔로 가는 건지
알 수 없어,
지금 상념을 털고 있다.
그 사건은 10일 전쯤에나 일어났으리라 생각하는데,
3년 3개월 전부터 나는 아무런 말도 그에게 할 수 없었다.
세상에는 많은 것이 흐르고 있다는 걸 나는 안다.
오늘도 많은 것들이 만나고 흩어지고 있으리라.
오늘 내리는 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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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2) 2013-01-15
바람과 사람
비를 좋아했지만
너무나 강한 바람은 싫어했다.
그 바람에 실려 오는 비도
싫어지곤 했다.
바람 사람, 사람 바람 둘 중에 어느 것이 맘에 들어요?
묻곤 하던 아이는
내가 있는 세상을 떠나
어느덧 2년쯤 흘러갔다. 인연도 흘러가
나는 육체의 흔들림을
바람 불 때마다 짙게 느끼게 되었다.
바람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그 골목으로 간 것은,
사람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람과 바람 때문에
쪼그려 앉아 피워도 마구 흩뜨려지는
담배 연기가 나를 콕콕 찔렀다,
눈가에 이상하게도 눈물이 맺히도록.
나는 바람을 다시 생각했고
바람 끝이 그저 자극이라는 것을
‘장미’ 꽃 아래서, 가시처럼 의식했다.
나는 사람을 다시 생각했고
가시에 찔린 곳을 어루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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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5 오후 1:26. 박석준-시집 최종본 2012년9월22일-1(맹문재).hwp (초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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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2004-09-07
바람 속 길
바람이 불기 전
찾아온 그 골목길,
나 없을 때 지나간 누군가의 사람 자취
사람 그리워
바람이 불었다. 태풍에 섞여 비도 왔지만.
바람이 비보다 내 가슴에 새겨져,
출근길엔 돌아올 시간을 걱정하였다.
나는 비를 좋아하지만,
너무나 강한 바람은 싫어
그 바람에 실린 비도 싫어지곤 했다.
‘바람’과 ‘바람(소망)’은 달랐다
말하던 아이는 내가 있는 세상을 떠나,
어느덧 2년쯤 흐르고,
인연도 흘러가
나는 육체의 흔들림을
바람 불 때마다 짙게 느끼게 되었는데.
바람이 불어서 나는 그 골목으로 간 것만은 아니다.
왠지 그 골목으로 가야 담배라도 피울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담배는 내가 쪼그려앉아 피워도
연기를 흩뜨리며 나를 콕 찌른다.
눈가에 이상하게도 눈물이 맺히게
나는 바람을 다시 생각하고
바람 끝이 그저 자극이라는 걸
‘Rose’ 꽃 아래
가시처럼 의식한다.
그러나 바람은 불던 방향 어디론가 가버리고
나도 어디론가 가야 하기에
가던 길을 가야 한다.
사람 생각나는 골목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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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7 태풍이 지나가는 오후. (메모)
2004.09.07. 15:51. 카페 가난한 비_바람 속 길 (메모 원본)
→ https://cafe.daum.net/poorrain/4Ps/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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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먼곳 소풍. 송석정. 1987. img2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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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대학교 민주공원 내 열사비 20240402_104034
(왼쪽 두 번째 계단 앞 박재원 열사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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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대학교 민주공원 20240402_104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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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대학교 (장미) 20240402_104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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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남초등학교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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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 유동, 나 (담배), 2004-04-04 오후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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