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시 64-1 마흔다섯 넘어_(수정작)
나의 무비즘 (57), 실존주의 모더니즘 (18)
2003-03-14
박석준 /
<수정작> (살아가는 일에 대해/그때/스쳐 간다./살아가는 일에 대해/자꾸/오늘도)
마흔다섯 넘어
퇴근을 하고 열어보는 여러 얼굴들
살아가는 일에 대해 생각하는 날
아름다운 사람이 스쳐 간다. 그때
안다고 누군가 인사하는
몸짓이 재생된다, 유리창 밖 세상처럼.
SALE! SALE! 쇼윈도 속, 백화점 불빛 아래
내피 점퍼 650,000원
노르지 점퍼 219,300원, 338,300원
가격들이 붙어 있다. 가격 앞에 선
사람들도 불현듯 스쳐 간다.
SALE? SALE? 살래? 살래?
SALE? SALE? 못 사, 살 수 없어.
어느덧 저렴해진 내 인생,
흐르는 차는 밤을 불빛으로 남기는데,
길을 걷는 나는 돈 없음을 생각한다.
마흔다섯을 넘어, 살아가는 일에 대해
생각하는 날, 잠자리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자꾸 귀를 세우게 하는데,
오늘도 아름다운 사람이 스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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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3-14 ∼ 2012-04-30 <원작>
∼ 2012.08.16. 18:50.메. 박석준-시집 최종본 2012년7월.hwp <원작 수정작>
= 시집_『거짓 시, 쇼윈도 세상에서』(2016.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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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상황
2003-03-14(46살 된 날),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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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나의 삶과 글 「마흔다섯 넘어」
「마흔다섯 넘어」의 1연은 “나”가 시내버스 안에 있는 상황을 표현한 것이다. “나”는 “살아가는 일에 대해 생각하는” 중이고 시내버스 “유리창 밖”엔 “세상” 즉 도시가 흘러가는 중이다. “나”의 뇌리에선 “아름다운 사람이 스쳐 간다.”
2연엔 “나”가 백화점 안에 있는 상황이 흘러간다. 이곳에선 “가격 앞에 선/사람들”도 “나”를 스쳐 간다.
3연에선 “SALE? SALE? 못 사, 살 수 없어.”란 말이 “나”의 뇌리에서 흘러가고, “어느덧 저렴해진 내 인생”과 “차”가 흐르고 “백화점”에서 나온 “나”가 길을 걸어간다. “나”에게 ‘흐르는 차와 차의 불빛과 밤’과 ‘나의 인생’과 ‘나의 돈 없음’이 새겨졌다.
4연(끝 연)엔 “나”가 귀가하여 “잠자리”에 있는 시간이 형상화되었다. “나”에게 첫 연에 “살아가는 일에 대해 생각하는 날/아름다운 사람이 스쳐 간다.”라는 상황이 다시 펼쳐졌다. 일상에 한 상황이 ‘반복’되었다. 가난한 나는 “살아가는 일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인데, “나”에게 스쳐간 이 “아름다운 사람”은 어떤 사람(또는 누구)일까?
글에서 짐작되는 것은 ‘가난하지 않은 사람’이다. 하지만, 글을 섬세하게 살펴보면 ‘실존을 실현한 사람’도 된다. 이 글은 실존주의 사상을 반영하였다. 자본주의적 논리를 음험한 것으로 보지만 그로부터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애매한 모습의 “나”를 명쾌하게 형상화했다.
「마흔다섯 넘어」는 내(박석준)가 46살 된 날(2003년 3월 14일), 목포에서 시외버스로 퇴근하여 광주에 도착한 후에 흘러간 시간과 “나”의 상념을 시 형식으로 형상화한 실화이다. 신학기여서 새 양복을 사 입고 싶은 욕망이 생긴 나는 유동 집 근처에 있는 송원백화점 앞 정류장에서 시내버스에서 내렸다. 백화점에선 가격표 붙은 곳(매장)들을 사람들이 찾아가거나 스쳐갔다. 나는 봄 잠바를 사고 싶었으나 돈이 없어서(부족해서) 백화점 앞길로 나왔다. 차들이 도시의 밤을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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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해설
쇼윈도 거리를 걷는 현대의 햄릿
4
문제는 박석준의 「거짓 시」처럼 ‘진실의 진실’을 말하는 시 역시 역설의 순환에 놓인다는 점이다. 마치 크레타인이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다’라고 말하는 장면처럼 말이다. 그래서 시인은 자꾸만 우울해진다. 이것은 거의 형벌에 가깝지만, 그렇다고 해서 멈추지는 않는다. ‘반복’은 그에게 ‘진실’을 지킬 유일한 길이다.
내게 비지는 반복,
그걸 볼 때마다 마음이 애틋해지지만
그래서 진실되게 여겨진다.
반복됨이야말로 간단한 형식이고
그 속에 사정事情이 내게 닿아,
내가 도망치듯 말을 잃어도
배반인지 알 수가 없다.
― 「어머니의 신음 소리를 듣고」 부분
이러한 상황은 세상이 “쇼윈도”로 이루어져 있다는 구조 상 공통점 때문이다. ‘쇼윈도’는 소통 불가뿐만 아니라 현혹의 이미지 또한 담고 있다. 그 이중성이 문제다. “퇴근을 하고 열어보는 여러 얼굴들/살아가는 일에 대해 생각하는 날/아름다운 사람이 스쳐 간다. 그때/안다고 누군가 인사하는/몸짓이 재생된다, 유리창 밖 세상처럼”(「마흔다섯 넘어」)에서 “세상”이라는 시어를 사용하는 것, 박석준 시의 화자는 이미 ‘도시인’이다. 같은 시에서 “SALE!”을 “살래?”로 읽는 장면은 단순한 말장난을 넘어 그러한 자본주의적 논리를 음험한 것으로 보지만 그로부터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애매한 모습의 자신을 명쾌하게 형상화해 낸다. 「흙」이나 「가난함」에서 보이는 ‘말의 흐름’ 또한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돈으로 돌고” 어지러운 시야 속에서 “상像, 상像으로 상傷한” “그 사람”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데 기표의 흐름을 끌어들이는 이유는 도시가 가진 이중성 때문이다.
이 이중성을 넘어 ‘진실’에 도달하고자 하는 그의 처절한 말들, 음울하지만 찬란하다. 그것은 필시 그가 투명하고 민감한 감성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데서 비롯될 것이므로, 세상과 관계 맺기가 내면으로의 침잠과 우울로 이어지는 것은 그만큼 그가 세상과 관계를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 김청우 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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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시 64
<원작> 2012-04-30
마흔다섯 넘어
퇴근을 하고
열어보는 여러 얼굴
살아감을 생각하는 날
아름다운 사람이 스쳐 갔다
안다고 누군가 인사하던
몸짓이 재생되었다
유리창 밖 세상처럼
SALE! SALE!
쇼윈도 속, 백화점 불빛 아래
내피 점퍼 65만원, 노르지 점퍼 219,300원, 338,300원
가격들이 붙어 있다.
가격 앞에 선 사람들도 불현듯 남았다.
SALE? SALE? 살래? 살래?
SALE? SALE?
못 사, 살 수 없어
어느덧 저렴해진
내 인생을
흐르는 차 밤을 불빛으로 남기고
길을 걷는 나는
돈 없음을 생각했었다.
마흔다섯을 넘어
살아감을 생각하는 날
잠자리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귀 세우게 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스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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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3-14 ∼ 2012.04.30. 23:30.메. 1문학마당에 보내는 신작시 5편.hwp <원작 원본>
= 『문학마당』 39호, 2012 여름호(2012.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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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 2003-03-14
45를 넘어
퇴근을 하고
열려지는 여러 얼굴
살아감을
생각하는 날
아름다운 사람이 스쳐 갔다.
안다고 누군가 인사하던
몸짓이
유리창 밖 세상처럼
재생되었다.
SALE
쇼윈도 속
사람들도 불현듯 남아
살래?
사시오
어느덧 저렴해진
내 인생을
흐르는 차 밤을 불빛으로 남기고
길을 걷는 나는
돈 없음을 생각했었다.
45를 넘어
살아감을 생각하는 날
잠자리에 빗소리가 떨어지고
아름다운 사람이
스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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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3.14. 00:20. 카페 가난한 비_45를 넘어 (초고 원본)
→ https://cafe.daum.net/poorrain/F1vW/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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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된 곳
blog.naver.com마당 깊은 꽃집
마흔다섯 넘어 / 박석준
― https://blog.naver.com/poesytree/22089837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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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img452 박석준+ 학생들. 전남제일고. 목포. 20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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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 유동 근처 신안동 현대백화점 (이 글의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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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3 오후 6:47. 광주시 신안동 옛 현대백화점 뒷길_DSC5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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