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시 66 흔들거리는 목소리의 슬픔
나의 실존주의 의식의 흐름 (6), 사상시 (10), 상징주의 (9)
2003-08-09
박석준 /
(원작 교정)_시집
흔들거리는 목소리의 슬픔
‘살아온 만큼의 아름다움’, 예전엔 목소리로 떨구었는데, 요즈음엔 뇌리에 새겨지는 말이다.
생각은 너무도 쉽고 편하지만 말 한 마디는 얼른 건네지 않는 20대! 하여 사람들은 늘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40대에 이르면서 돈, 한 사람의 삶의 흐름을 얽어버린, 비의 몸짓이 되게 한다.
돈 없음과 돈 있음, 부족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따라다닌다고 생각했지만, 돈 없는 갈등과 번민은 사람을 구속하고, 사람을 사람으로 있지 못하게 한다, 실존하지 못하게 한다.
회색의 거리가 가끔 사람의 비틀거리는 길을 껴안는다. 실존의 순간들을 실존의 욕망으로 변하게 한 것은 비가 사람 곁에 너무 가까이 다가왔을 때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비는 없다. 그저 잘 흘러가려는 사람이 따로 있을 뿐이다. 사람을 잃기 전에 ‘나’를 잃어갔다.
‘나는 누구인가?’ 생각할 때마다 사람은 ‘나’를 잃는다. 길을 잃어버린 그림자라고 말해야 옳다. 지금은.
사람은 원래 세 개의 색깔을 가지고 항상 서성거리지만, 40대 중반에 이르면 한 개의 색깔만이 시간을 따라 퇴색해, 사람의 자격을 잃게 한다.
사람, 빛깔을 잃으면서 물건보다 더 흔한 것이 되어 버린 사람, 사람과 사람의 나날이 저물고 있다. 석양 속으로 다만 캄캄한 밤이 되기 전, 가고 싶은, 머무르고 싶은 곳이 있어야 한다는 의식만 뇌리를 꿈틀거린다.
흔들거리는 목소리! 말이 되지 못하는 목소리는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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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8-09 ∽ 2003-10-17 <원작>
=→ 2008-08-08 오전 12:48. 박석준-가을비-신-05-06.hwp (원작 교정)
= 『문학마당』 24호(2008.09.27.) 신인상 당선작 6
= 『석사학위 작품집』(2009.08.)
= 시집_『거짓 시, 쇼윈도 세상에서』(2016.12.02. 문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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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2003-10-17
흔들거리는 목소리의 슬픔
‘살아온 만큼의 아름다움’
예전엔 목소리로 떨구었는데
요즈음엔 뇌리에 새겨지는 말이다.
생각은 너무도 쉽고 편하지만
말 한 마디는 얼른 건네지 않는 20대!
하여 사람들은 늘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40대에 이르면서
돈, 한 사람의 삶의 흐름을
얽어버린 비의 몸짓이
되게 한다.
돈 없음과 돈 있음,
부족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따라다닌다고 생각했지만,
돈 없는 갈등과 번민은 사람을 구속하고,
사람을 사람으로 있지 못하게 한다, 실존하지 못하게 한다.
회색의 거리가 가끔 사람의 비틀거리는 길을 껴안는다.
실존의 순간들을 실존의 욕망으로 변하게 한 것은
비가 사람 곁에 너무 가까이 다가왔을 때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비는 없다.
그저 잘 흘러가려는 사람이 따로 있을 뿐이다.
사람을 잃기 전에 ‘나’를 잃어갔다.
‘나는 누구인가?’ 생각할 때마다 사람은 ‘나’를 잃는다.
길을 잃어버린 그림자라고 말해야 옳다. 지금은.
사람은 원래 세 개의 색깔을 가지고 항상 서성거리지만,
40대 중반에 이르면 한 개의 색깔만이 시간을 따라 퇴색해,
사람의 자격을 잃게 한다.
사람, 빛깔을 잃으면서 물건보다 더 흔한 것이 되어 버린
사람.
사람과 사람의 나날이 저물고 있다. 석양 속으로
다만 캄캄한 밤이 되기 전
가고 싶은, 머무르고 싶은
곳이 있어야 한다는 의식만 뇌리를 꿈틀거린다.
흔들거리는 목소리!
말이 되지 못하는 목소리는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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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8-09 ∽ 2003.10.17. <원작>
2003.10.19. 16:53. 카페 가난한 비_흔들거리는 목소리의 슬픔 (원작 원본)
→ https://cafe.daum.net/poorrain/F1vW/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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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상황
2003-08-09. 광주시 유동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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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나의 시론 ; 카페, 가난, 비 - ③
살아오는 동안 나는 말과 부딪치거나, 말에 대해 생각해보거나, 말과 관련한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적잖다. 물론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없으면 온전하게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내가 생각해 정작 알게 된 것은 이 말과 부딪치는 것이 말을 하는 주체일 때가 있고, 이 말을 받는 세계(다른 사람, 事象사상, 상황 등)일 때가 있다는 점이다.
존재와 존재자, 그리고 말이 이루는 관계에 대해 하이데거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존재라는 구역은 존재가 말 가운데서 자리잡을 때 제대로 자리를 굳히게 마련이다. 언어라고 하는 것은 구역이니 곧 존재의 집이다. 언어라고 하는 것은 존재의 집이니까, 우리는 이 존재의 집 곁을 끊임없이 지나가면서 존재자에게 이르게 된다.”*1) 이로부터 존재와 말에 대해 내가 생각해낸 것은 ‘말은 움직이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이기에 ‘말’은 존재 사이의 ‘모임’에도 관계하게 되며, 分離분리에도 관계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내 생각은 특히 「카페. 가난한 비」, 「술과 밤」, 「흔들거리는 목소리의 슬픔」 등의 시에 많이 반영되어 있다.
하이데거는 횔덜린의 시 「빵과 포도주」와 관련해 사유하면서 현대, 즉 지금의 세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시간은 가버린 신들과 다가올 신들 사이에 있는 시간이다. 이 시간이야말로 옹색한 시간인 것이며, 그러기에 두 겹의 허무와 결핍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중략…) 시인은 이 밤의 공허 가운데 굳게 서 있다. 시인은 이런 사명을 지니고 있기에 다시없는 고독에 빠지고 자기 자신에 머물게 된다. ‘밤이 되고 옹색한 가운데 지내노라면 인간은 튼튼해지는 법’이다. 시인은 거룩한 밤에 돌아다니는 주신의 거룩한 사제나 다름없다.”*2) 이 인용문에서 하이데거가 말하고 있는 현대는 자본주의 사회를 가리킨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 역시 화폐가 꿈틀거리는 자본주의의 사회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자본주의 사회와 관련해서는 우선 돈, 기계, 그리고 하이데거가 말하는 神의 不在(신의 부재)를 떠올릴 수 있다.
헤겔은 서정시의 미학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서정시의 내용은 한편으로 현존재와 그 상태에 일반적인 것을 요약하고, 다른 한편으로 특수한 것들의 다양성을 요약할 때 이루어진다. 그러나 양쪽 모두 그저 일반적이거나 특수한 직관이거나 느낌으로서 단순한 추상성을 띠고 있으므로 이를 서정적으로 생생한 개별성을 띠게 하려면 내적이면서 주관적인 특성을 갖도록 연결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서정시의 중심이자 본래의 내용이 되는 구체적인 주체, 즉 시인이 그 안에 들어서야 한다. (…중략…) 그의 유일한 표현 활동은 자신의 내면에 말을 부여하는 것에 국한된다.”*3) 헤겔의 이런 언급에 따르면 시에서 객관 현실에 대한 반영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시인의 주관성이 갖는 깊이와 넓이이다.
따라서 한 편의 시에는 시인 자신이 ‘살아온 만큼의 아름다움’이 투사된다고 볼 수 있다. 살아간다는 것은 현실에 대한 자아의 내적 지향 및 그 표현 행위로서의 말과 행위들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라고 규정되는 지금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다. 심지어 돈은 사람에게 ‘말’의 있음과 없음을 결정해주는 기본 조건으로도 작용한다. 따라서 ‘돈’과 관련해 ‘말’을 할 수 없는 존재는 슬픈 목소리를 띨 수밖에 없다.
이미지는 은유, 직유, 상징 등 각종 수사의 결과로 태어난다. 사상, 관념, 의지 등이 진술의 대상이 되는 관념시, 즉 관념어들로만 이루어져 있는 시라고 하더라도 시는 이미지를 읽을 수 있도록 써야 한다. 물론 절실한 주제의식을 갖고 있지 않으면 이미지의 형성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4) 박석준의 시 「흔들거리는 목소리의 슬픔」은 비, 돈, 길, 사람, 물건, 색깔 등 다양한 개념들이 뒤얽히면서 번민하는 인간의 우울한 정서와 이미지를 드러내려는 의도에서 쓴 예이다.
이 시의 상황은 화자인 ‘나’의 의식이 흐르는 상황이거니와, 나의 의식이 흘러가면서 시의 내용을 이루고 있다. ‘나’의 의식 속에서는 여러 관념들이 부딪치면서 ‘번민’이라는 색깔을 띤다. ‘나’는 현실세계에 대해 “말이 되지 못하는 목소리”를 지니고 있는 존재이며, 또한 그런 존재가 되는 것을 슬퍼하는 존재이다.
그런데 이 시에서 “세 개의 색깔”이란 무엇인가. 가지고 있었던 것, 가지고 있는 것, 가지고 싶은(가져야 할) 것인가? 혹은 과거, 현재(및 그 주변), 미래의 시간인가. 이런 식으로 ‘세 개의 색깔’, 즉 어떤 세 가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도 있지만,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이 시에서 지배적인 의미와 정서를 산출하는 데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한 개의 색깔만이 시간을 따라 퇴색해”라는 구절이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는 첫 연의 “(떨구어버린) 목소리”와 “뇌리에 새겨지는 말”이 끝 연에 서 “흔들거리는 목소리”와 “말이 되지 못하는 목소리”로 전이된다. 물론 마지막 연에서 “말”은 “흔들거리는 목소리”와 대조되면서 “흔들거리는 목소리”보다 덜 결여된 의미를 지니기는 한다. 나는 그런 두 개념의 대조를 통해 “말”의 의미를 ‘완전한 것’, ‘사람’, ‘실존 또는 실존하는 삶’ 등으로 확산시키려고 한 것이다.
*1) 마르틴 하이데거, 「횔더린과 詩의 本質(시의 본질)」, 『하이데거의 詩論과 詩文(시론과 시문)』, 조광진 역, 탐구당, 1979, 31~32면. 박철호는 시에 표현된 ‘옹색한 시간’을 ‘궁핍한 시대’로 번역하고 있음. 이승하, 「궁핍한 시대의 시인이 불러야 할 노래_독일의 시인 프리드리히 횔덜린」, 『세계를 매혹시킨 불멸의 시인들』, 문학과지성사, 2006, 138면 참고.
*2) 마르틴 하이데거, 「詩人의 使命(시인의 사명)은 무엇인가」, 『하이데거의 詩論과 詩文(시론과 시문)』, 조광진 역, 탐구당, 1979, 115면. 이 논문은 릴케論으로, 존재론에 바탕을 둔 하이데거가 ‘사유와 시의 대화’를 꾀한 미학론이다.
*3) G. W. F. 헤겔, 『헤겔미학』제3권, 두행숙 옮김, 나남출판, 1996. 610면.
*4) 오세영․장부일, 「이미지 창조의 방법」, 『시창작의 이론과 실제』, 지식의날개, 2006, 137~138면.
― 박석준, 『석사학위 작품집』(20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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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 2003-08-09
흔들거리는 목소리의 슬픔
‘살아온 만큼의 아름다움’
예전에는 목소리로 떨구기도 했었는데
요즈음엔 뇌리에 새겨지는 말이다.
생각은 너무도 쉽고 편한 것이어서 말 한 마디를 얼른 건네지 않았던 20대! 사람들은 내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그러나, 40대에 이르면서
돈
한 사람의 삶의 흐름을 얽어버린 Rain의 몸짓에서
그(Ra)는 과거가 되기 시작했다.
그는 과거가 되어 갈 것임을 예상하고 <내 시절 속--사람들>을 써 갈 생각을 했다.
없음과 있음의 돈,
부족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따라다닌다고 생각하였지만,
갈등과 번민은 사람(과의 만남)을 구속하고, 그를 사람으로 있지 못하게, 실존하지 못하게 하였다.
회색의 거리가 가끔 그의 비틀거리는 귀가길을 안았다.
실존의 순간들이 어느 순간 실존의 욕망으로 변하게 한 것은 Rain이 그 곁에 너무 가까이서 재촉했을 때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Rain은 없다. 그저 잘 흘러가려는 사람이 따로 있을 뿐이다.
사람을 잃기 전에 그는 ‘나’를 잃어갔다.
‘나는 누구인가?’ 생각할 대마다 그는 ‘나’를 잃어갔다
길을 잃어버린 그림자라고 말해야 옳다. 지금은.
그는 원래 세 개의 색깔을 가지고 항상 서성거렸지만, 40대 중반에 오면서 한 개의 색깔만이 시간을 따라 퇴색해,
사람으로서의 삶이 버려지고 있는 중이다.
사람. 빛깔을 잃으면서 물건보다 더 흔한 것이 되어 버린 어떤 사람(의 어느 한 시절의 일상).
그와 그의 삶은 저물고 있다. 석양 속에 있다.
다만 캄캄한 밤이 되기 전 가고 싶은, 머무르고 싶은 곳에 있어야 한다는 의식만이 뇌리에 꿈틀거린다.
흔들거리는 목소리!
말이 되지 못하는 목소리는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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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8.9./P (초고)
2003.08.10. 02:06. 카페 가난한 비_흔들거리는 목소리의 슬픔 (초고 원본)
→ https://cafe.daum.net/poorrain/F1vW/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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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린 곳
빈 잔에 담긴 고독
흔들거리는 목소리의 슬픔 - 박석준
https://blog.naver.com/windspoon/222067117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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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fe.daum.net뉴에이지와함께
흔들거리는 목소리의 슬픔
― https://cafe.daum.net/61538/9SMW/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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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020-07-28_23:28. 광주시 푸른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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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4-05-기민.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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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 (창작년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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