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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 (창작년도)

나의 무비즘 (28), 실존주의 앙가주망 (25), 리얼리즘 (4) 그 애의 수첩과 선생님, 길 / 박석준

나의 신시 31 그 애의 수첩과 선생님,

나의 무비즘 (28), 실존주의 앙가주망 (25), 리얼리즘 (4)

1987-03 / 1989-01 / 1993 / 2002

박석준 /

<원작> 2019.07.28. 11:37 (육일간/나 둘/자공)

그 애의 수첩과 선생님,

 

 

  광주로 귀갓길을 걷는 나를 따라와, 집 가르쳐 주세요,

  버스정류장에서 3월에 육일간을 내 손을 잡았다.

  3월분 봉급으로 받은 돈을 가지고 나는 4월에 자취방을 구했다.

  시간은 6월항쟁 속으로 들어갔다.

  그 애는 9월에 찾아왔다.

  날 알려 하지 말고, 니 할 일을 해라, 난 내 할 일 할 테니까.

  그러세요. 전 아버지한테 기술 배워서 목수 일 할 줄 아니까.

 

  수상한데? 왜 이런 책을 보세요? 하던 아이가 타자를 쳤다.

  타는 진달래. 조여 오는 압박과 갈등의 굴레에 아이들은 하나 둘 지쳐가고……

  나는, 8월에 해직을 선택하여, 냉장고 없는 어머니가 있는 셋집에 돌아갔다.

  내가 생존을 위해 노조사무실 알바를 하고, 대학 4학년인 그 아이가 수첩선생님이라 쓰고 전화번호를 적었다. 그리고 입대했다.

 

  다른 아이에게서 그 아이가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면회하는데

  수첩을 뺏겼어요. 선생님 전화번호만 적혔는데, 누구냐고, 자꾸만 누구냐고, 고문을…….

 

  내가 복직하고, 자공에 다닌다고 했던, 그 아이와 서울의 지하철에서 헤어졌다.

  한 달 쯤이나 지난 17년 전 메이데이, 그 애가 떠났다고 전화로 전해졌다.

 

  17년 전 그를 기리는 학교에 심은 나무가 떠오르고,

  그의 얼굴이, 택시의 차창 밖에서, 흐르는 과 밤의 불빛들 사이에서 흔들거렸다.

 

 

  * 타는 진달래 : 19895월에 발생하여 고교생의 전교조 투쟁을 주도적으로 이끈 조직 자주교육쟁취고등학생협의회의 간행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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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08 2019-07-27 (2019.07.28. 11:37 ) 국밥집 가서 밥 한 숟가락 얻어 와라.hwp () (육일간/나 둘/자공) <원작 원고 원본>

= 문학들572019 가을(2019.08.30.) () (육 일간/나둘/자 공)

=2020.03.17. 16:43 <수정 개작 원본> (그애)

= 시집_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2020.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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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상황

    19873(만남),

    19879(자취방에 찾아옴)

    19891(자취방에 찾아옴) : 1

    19898(해직),

    19899(타는 진달래돌아갔다.)

    1991(노조 상근 알바)

    1993_(입대) : 2

    1993_초여름 (면회) : 3

    19981(헤어짐),

    20024월 말경. (그 애 사망, 32) : 4

    201968(현재)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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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삶과 시집과 관련한 해석

  200024월 말경에 그 애가 세상을 떠났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나(박석준)는 심란했다. 이 해 2월에 22살의 제자가 군대에서 사망하여 괴로워하는 중이어서. (고흐를 좋아한 이 제자를 생각하다 20035월에 쓴 글이 블로그 고흐이다.)

  19981월에 내가 일산에 가 있는 때 그 애가 그곳으로 1주일 가량 찾아왔다. 나의 자서전의 최종 교정을 보기 위해서였다. 교정을 마치고, 고속버스로 광주로 돌아가는 나를 배웅하려고 지하철에 동승한 그 애는 지하철역에서 작별인사를 했다. (→ 「언덕의 말) 이것이 그 애를 마지막으로 본 날이 되고 말았다.

  자서전은 유명 출판사와의 교섭 과정에서 많은 고난(난도질)을 겪는 슬픈 책(sad book)’이 되고 말았다. 나는 고뇌하었고 1998122일에 저자후기(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를 썼다. 그렇지만 사정이 좋아지지 않아서 19994월엔 시 형식의 글 일상 3’(= 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을 쓰기에 이른다. 내가 괴로워하는 것을 본 석률 형이 한ᄀᆞᄅᆞᆷ출판사를 만든 후 이 글을 마지막에 덧붙여서 19999월에 출판한 책이 나의 자서전 내 시절 속에 살아 있는 사람들이다. 이 책은 시집 내 시절 속에 살아 있는 사람들의 틀을 만들어줬다.

  ‘그 애가 사망하고 1주일쯤 지난 후 그 소식을 듣고 그 애의 친구 점식이 광주로 나를 찾아와 괴로워했는데 그 며칠 후에 점식이 세상을 떠났다. 5년 후, ‘그 애와 함께 운동을 했던 그 애의 친구 상일도 요절했다.

  나는 2019628() 밤에 제자 창석이 하는 술집에 가서 그 애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십칠 년 전에 떠난 제자이자 술집제자 친구를 기리려고/십칠 년 전에 심은 나무의 관리를 제자와 상의했다.” 밤과 더 깊어진 밤) 그리고 다음날 그 애의 수첩과 선생님, 초고를 썼다.

  ‘그 애가 고문을 당한 것은 학생운동권의 리더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첩이 문제가 되었다. ‘그 애가 수첩에 선생님이라는 글자 옆에 전화번호(실제 번호의 네 개의 숫자에 1씩을 더한 것임)를 적었기 때문이다. ‘그 애는 나를 보호하려는 생각에서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나는 해직교사이고 전교조 전남지부 정책실에서 일하는 사람이고 나의 한 제자가 수감 중이고 두 제자가 얼마 전에 출감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생운동에서 핵심으로 활동을 하는 제자가 많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1학년 학생 중 그 애가 나의 자취방에 찾아온 첫 아이이다. ‘그 애는 학생을 데려왔다. 나는 나의 자취방에 찾아온 학생들에게 자취방을 학습 및 토론 공간으로 제공했다. 하지만 그들의 학습 및 토론에는 개입하지 않았다. 그들이 삶에 관한 문제를 놓고 나의 생각을 물었지만 몇 차례만 내가 생각한 대로 말했을 뿐이다. 그들 중 중심인물은 그 애와 성태, 대호, 창석이었다. 이들은 고등학생연합회를 구상하였고 작업을 하여 목고련을 결성했다(19892).

  「그 애의 수첩과 선생님, 은 수첩()으로 인해 고문을 받고 그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난 그 애(박재원 열사)’에게 의미를 두기 위해 쓴 것이다.

 

  “날 알려 하지 말고, 니 할 일을 해라, 난 내 할 일 할 테니까.

  그러세요. 전 아버지한테 기술 배워서 목수 일 할 줄 아니까.

  「그 애의 수첩과 선생님, 은 이 문장에 글의 경향(색깔)이 잘 드러나 있다. ‘그 애는 자신의 삶의 을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이 글은 인간의 주체적 존재성을 강조하는 실존주의를 바탕에 깔고 있다. “해직을 선택하여” “노조사무실 알바를 한 것이다. ‘그 애는 사회 변혁을 위한 길로 인식을 키워갔고 현실에 비판적 의식을 가지고 참여했고(앙가주망), 자신이 생각한 대로 후일 의자 공장에서 목수 일을 하던 중에 삶을 마친 것이다.

  이 글에 덤덤한 어조를 취한 것은 그 애의 안타까운 삶을 슬퍼하는 색깔로 형상화하는 것보다는 그 애는 진실한 삶을 이루었다는 것을, 또는 진실한 삶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려는 마음 때문이다. “흐르는 흐르는 삶이다.

  나는 그 애수첩선생님을 연상하고 연결하는 중요한 사물로 여겼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애(박재원 열사)’에 대한 그리움을 자주 일으켰다. 그리고 그 애를 생각하면서 종종 글을 썼다.

  이 글은 1989년에 고등학교 아이들에게 압박과 갈등의 굴레를 씌우는 부정적인 사회현실을 비판하고 변혁하려는 고등학생이 고등학생 운동을 펼쳐갔다는 알려주는 데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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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재원 열사 묘비. 조선대학교. FB_IMG_1698585941098 (1)

  박재원 열사 묘비. 조선대학교. FB_IMG_169858594109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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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곳 소풍. 송석정. 1987. img290-1

  먼곳 소풍. 송석정. 1987. img2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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