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시 31-1 그 애의 수첩과 선생님, 길_(개)
나의 무비즘 (29), 실존주의 앙가주망 (26), 리얼리즘 (5)
1987-03 / 1989-01 / 1993 / 2002
박석준 /
그 애의 수첩과 선생님, 길
다음해인 올해. 3월에 잘생긴 고1 아이가 싱글거렸다.
‘쟤가 수업을 하는 거냐, 나를 감상하는 거냐?’
생각게 한 ‘그 애’가 광주로 귀가하려고 길을 걷는 나를
따라왔다. 엿새를 버스정류장까지 오더니, 마지막 날엔
“하숙하면 더 편하잖아요?” 하며 나의 손을 잡았다.
나는 3월 봉급으로 4월에 항구도시에 자취방을 빌려,
밤엔 일을 설계했다.
― 「먼 곳 3 ― 11월의 얼굴들과 빗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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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개작> (‘그애’)
그 애의 수첩과 선생님, 길
귀갓길을 걷는 나를 따라와 버스정류장에서 3월에
6일간을, 집 가르쳐주세요, 하고 내 손을 잡았다.
3월분 봉급으로 나는 4월에 자취방을 구했다.
시간은 6월항쟁 속으로 들어갔다.
‘그 애’는 9월에 찾아왔다.
날 알려 하지 말고, 니 할 일을 해라, 난 내 할 일 할 테니까.
그러세요. 전 아버지한테 기술 배워서 목수 일 할 줄 아니까.
수상한데? 왜 이런 책을 보세요? 하던 아이가 타자를 쳤다.
타는 진달래*. 조여오는 압박과 갈등의 굴레에 아이들은 하나 둘 지쳐가고……
나는, 8월에 해직을 선택하여, 냉장고 없는 어머니가 있는 광주 셋집에 돌아갔다.
내가 생존을 위해 노조 사무실 알바를 하고,
대학 4학년인 ‘그 애’가 수첩에 선생님이라 쓰고 전화번호를 적었다. 그리고 입대했다.
다른 아이에게서 ‘그 애’가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면회하는데
수첩을 뺏겼어요. 선생님 전화번호만 적혔는데, 누구냐고, 자꾸만 누구냐고, 고문을…….
내가 복직하고, 의자 공장에 다닌다는 ‘그 애’와 서울의 지하철에서 헤어졌다.
한 달쯤이나 지난 17년 전 메이데이, ‘그 애’가 떠났다고 전화로 전해졌다.
그를 기리려고 학교에 17년 전 심은 나무가 떠오르고,
‘그 애’ 얼굴이, 택시의 차창 밖에서, 흐르는 길과 밤의 불빛들 사이에서 흔들거렸다.
* 타는 진달래 : ‘더불어’의 핵심인 그 애(박재원 열사, 1971~2002), 서다윗, 김대호, 박광휘, 배상일, 이창석, 김현국이 박승희 등과 논의하여 1989년 5월 26일에 결성한, 고교생의 전교조 투쟁을 주도한 ‘자주교육쟁취고등학생협의회’의 9월 간행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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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08⁓2019.07.28. 11:37 <원작 원본> (그)
= 『문학들』 57호 2019 가을(2019.08.30.)
=→ 2020.03.17. 16:43 <수정 개작 원본> (‘그애’)
= 시집_『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2020.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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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상황
1987년 3월 (만남),
1987년 9월 (자취방에 찾아옴)
1989년 1월 (자취방에 찾아옴) : 1연
1989년 8월 (해직),
1989년 9월(타는 진달래∼돌아갔다.)
1991년 (노조 상근 알바)
1993년_초 (입대) : 2연
1993년_초여름 (면회) : 3연
1998년 1월 (헤어짐),
2002년 4월 말경. (그 애 사망, 32살) : 4연
2019년 6월 8일 (현재) : 5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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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작가의 삶과 시집과 관련한 해석
20002년 4월 말경에 ‘그 애’가 세상을 떠났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나(박석준)는 심란했다. 이 해 2월에 22살의 제자가 군대에서 사망하여 괴로워하는 중이어서. (→ 고흐를 좋아한 이 제자를 생각하다 2003년 5월에 쓴 글이 「블로그 고흐」이다.)
1998년 1월에 내가 일산에 가 있는 때 ‘그 애’가 그곳으로 1주일 가량 찾아왔다. 나의 자서전의 최종 교정을 보기 위해서였다. 교정을 마치고, 고속버스로 광주로 돌아가는 나를 배웅하려고 지하철에 동승한 ‘그 애’는 지하철역에서 작별인사를 했다. (→ 「언덕의 말」) 이것이 ‘그 애’를 마지막으로 본 날이 되고 말았다.
자서전은 유명 출판사와의 교섭 과정에서 많은 고난(난도질)을 겪는 ‘슬픈 책(sad book)’이 되고 말았다. 나는 고뇌하었고 1998년 1월 22일에 저자후기(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를 썼다. 그렇지만 사정이 좋아지지 않아서 1999년 4월엔 시 형식의 글 ‘일상 3’(= 「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을 쓰기에 이른다. 내가 괴로워하는 것을 본 석률 형이 ‘한ᄀᆞᄅᆞᆷ’출판사를 만든 후 이 글을 마지막에 덧붙여서 1999년 9월에 출판한 책이 나의 자서전 『내 시절 속에 살아 있는 사람들』이다. 이 책은 시집 『내 시절 속에 살아 있는 사람들』의 틀을 만들어줬다.
‘그 애’가 사망하고 1주일쯤 지난 후 그 소식을 듣고 ‘그 애’의 친구 점식이 광주로 나를 찾아와 괴로워했는데 그 며칠 후에 점식이 세상을 떠났다. 그 5년 후, ‘그 애’와 함께 운동을 했던 ‘그 애’의 친구 상일도 요절했다.
나는 2019년 6월 28일(금) 밤에 제자 창석이 하는 술집에 가서 ‘그 애’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십칠 년 전에 떠난 제자이자 술집제자 친구를 기리려고/십칠 년 전에 심은 나무의 관리를 제자와 상의했다.” 「밤과 더 깊어진 밤」) 그리고 다음날 「그 애의 수첩과 선생님, 길」 초고를 썼다.
‘그 애’가 고문을 당한 것은 학생운동권의 리더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첩이 문제가 되었다. ‘그 애’가 수첩에 ‘선생님’이라는 글자 옆에 전화번호(실제 번호의 네 개의 숫자에 1씩을 더한 것임)를 적었기 때문이다. ‘그 애’는 나를 보호하려는 생각에서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나는 해직교사이고 전교조 전남지부 정책실에서 일하는 사람이고 나의 한 제자가 수감 중이고 두 제자가 얼마 전에 출감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생운동에서 핵심으로 활동을 하는 제자가 많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1학년 학생 중 ‘그 애’가 나의 자취방에 찾아온 첫 아이이다. ‘그 애’는 학생을 데려왔다. 나는 나의 자취방에 찾아온 학생들에게 자취방을 학습 및 토론 공간으로 제공했다. 하지만 그들의 학습 및 토론에는 개입하지 않았다. 그들이 삶에 관한 문제를 놓고 나의 생각을 물었지만 몇 차례만 내가 생각한 대로 말했을 뿐이다. 그들 중 중심인물은 ‘그 애’와 성태, 대호, 창석이었다. 이들은 고등학생연합회를 구상하였고 작업을 하여 목고련을 결성했다(1989년 2월).
「그 애의 수첩과 선생님, 길」은 수첩(나)으로 인해 고문을 받고 그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난 ‘그 애(박재원 열사)’에게 의미를 두기 위해 쓴 것이다.
“날 알려 하지 말고, 니 할 일을 해라, 난 내 할 일 할 테니까.
그러세요. 전 아버지한테 기술 배워서 목수 일 할 줄 아니까.”
「그 애의 수첩과 선생님, 길」은 이 문장에 글의 경향(색깔)이 잘 드러나 있다. ‘그 애’와 “나”는 자신의 삶의 길을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이 글은 인간의 주체적 존재성을 강조하는 실존주의를 바탕에 깔고 있다. “나”는 “해직을 선택하여” “노조사무실 알바”를 한 것이다. ‘그 애’는 사회 변혁을 위한 길로 인식을 키워갔고 현실에 비판적 의식을 가지고 참여했고(앙가주망), 자신이 생각한 대로 후일 의자 공장에서 “목수 일”을 하던 중에 삶을 마친 것이다.
이 글에 덤덤한 어조를 취한 것은 ‘그 애’의 안타까운 삶을 슬퍼하는 색깔로 형상화하는 것보다는 ‘그 애’는 진실한 삶을 이루었다는 것을, 또는 ‘진실한 삶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려는 마음 때문이다. “흐르는 길”은 “흐르는 삶”이다.
나는 ‘그 애’가 ‘수첩’을 ‘선생님’을 연상하고 연결하는 중요한 사물로 여겼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애(박재원 열사)’에 대한 그리움을 자주 일으켰다. 그리고 ‘그 애’를 생각하면서 종종 글을 썼다.
이 글은 1989년에 고등학교 아이들에게 “압박과 갈등의 굴레”를 씌우는 부정적인 사회현실을 비판하고 변혁하려는 고등학생이 고등학생 운동을 펼쳐갔다는 알려주는 데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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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2019.07.28. 11:37 (육일간/하나 둘/의자공장)
그 애의 수첩과 선생님, 길
광주로 귀갓길을 걷는 나를 따라와, 집 가르쳐 주세요,
버스정류장에서 3월에 육일간을 내 손을 잡았다.
3월분 봉급으로 받은 돈을 가지고 나는 4월에 자취방을 구했다.
시간은 6월항쟁 속으로 들어갔다.
그 애는 9월에 찾아왔다.
날 알려 하지 말고, 니 할 일을 해라, 난 내 할 일 할 테니까.
그러세요. 전 아버지한테 기술 배워서 목수 일 할 줄 아니까.
수상한데? 왜 이런 책을 보세요? 하던 아이가 타자를 쳤다.
타는 진달래. 조여 오는 압박과 갈등의 굴레에 아이들은 하나 둘 지쳐가고……
나는, 8월에 해직을 선택하여, 냉장고 없는 어머니가 있는 셋집에 돌아갔다.
내가 생존을 위해 노조사무실 알바를 하고, 대학 4학년인 그 아이가 수첩에 선생님이라 쓰고 전화번호를 적었다. 그리고 입대했다.
다른 아이에게서 그 아이가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면회하는데
수첩을 뺏겼어요. 선생님 전화번호만 적혔는데, 누구냐고, 자꾸만 누구냐고, 고문을…….
내가 복직하고, 의자공장에 다닌다고 했던, 그 아이와 서울의 지하철에서 헤어졌다.
한 달 쯤이나 지난 17년 전 메이데이, 그 애가 떠났다고 전화로 전해졌다.
17년 전 그를 기리는 학교에 심은 나무가 떠오르고,
그의 얼굴이, 택시의 차창 밖에서, 흐르는 길과 밤의 불빛들 사이에서 흔들거렸다.
* 타는 진달래 : 1989년 5월에 발생하여 고교생의 전교조 투쟁을 주도적으로 이끈 조직 ‘자주교육쟁취고등학생협의회’의 간행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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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08 ∼ 2019-07-27 (2019.07.28. 11:37 메) 국밥집 가서 밥 한 숟가락 얻어 와라.hwp (그) (육일간/하나 둘/의자공장) <원작 원고 원본>
= 『문학들』 57호 2019 가을(2019.08.30.) (그) (육 일간/하나둘/의자 공장)
=→ 2020.03.17. 16:43 <수정 개작 원본> (‘그애’)
= 시집_『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2020.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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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나. 20200729_0905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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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원 열사 묘비(왼쪽). 조선대학교 만주공원. 20240402_103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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