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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 (창작년도)

나의 무비즘 (30), 실존주의 앙가주망 (27), 리얼리즘 (6) 4월 그 가슴 위로 / 박석준

나의 신시 32 4월 그 가슴 위로

나의 무비즘 (30), 실존주의 앙가주망 (27), 리얼리즘 (6)

1989-04 / 1989-05 / 1990

박석준 /

4월 그 가슴 위로

 

 

  오전인데, 교실의 아이들이 나하고 인사를 나누었을

  말없이 앉아 있다. 4·19라 그런가, 란 생각이 들 정도로.

  “오늘이 4·19인데, 내가 노래 하나 불러줄까?”

  “.” 예전과는 달리, 짧게 반응했을 뿐 움직임도 말도

  거의 흐르지 않은 조용함, 침울함을 1분쯤 느껴본 뒤,

  나는 목소리를 려갔다.

  “이젠 우리 폭정에 견딜 수 없어 자유의 그리움으로……

  사월 그 가슴 위로…… 통일의 염원이여.”

  박수 소리가 흐르는데, “한 번 더 불러주세요.”

  하는 소리가 여러 곳에서 났다.

  나는 다시 <4월 그 가슴 위로>라는 노래를 불러주었다.

  “선생님의 잔잔한 목소리가 꼭 4월 그날로 돌아가

  있는 듯한 기분을 슬픈 기분을 느끼게 했어요.”

  라고 다윗이 소감을 말했다.

  밤, 나는 누워, 4월 그 가슴 위로……, 생각을 흘렸다.

 

  “날짜는 안 치는 게 좋겠죠?”

  재원이 작성한 글을 찬웅이 다 쳤음을 알 수 있었다.

  “대호하고 창석이, 둘이 갔다 와라. 나랑 갔던 곳 알지?”

  11시 반 대호와 창석이 돌아왔을 때 방안에는 애들이

  작성한 열두 장의 대자보가 접쳐져 있었다. 둘은 각각

  천 장씩으로 묶인 복사물을 방바닥에 내려놓았는데,

  곧바로 비슷한 양의 여섯 더미로 나누었다.

  대자보를 여섯 장씩, 풀칠 도구 봉지를 하나씩 나누어

  가방 두 개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찬웅이 주의를 주었다.

  “정한 대로 나하고 창석이, 대호는 3호 광장 위쪽으로

  돌 테니까, 상일이, 광휘, 재원이는 아래쪽으로 돌아라.”

  그들은 조심하라는 나의 말을 듣고 방에서 나갔다.

  나는 방안을 정리하고서, 이불 위에 앉았다.

  ! 창문 밖의 어둠, 그 속을 움직이는 사람들의 형태가

  뇌리에 어른거리며 나의 마음을 쓰게 하였다.

  ‘깡마른 상일이는 나처럼 아픈데, 괜찮을까?

  일하는 사람이 많고 수시로 손님이 찾는 농집이어서,

  아이들이 출입해도 괜찮을 거라고 방을 정했는데…….

  새 자취방에서 생각하다가 성명서를 떠올리게 되었다.

    불어 살아가야 할 순수한 학생들이…… 소위 평준화

    제라는 악습을 반복하는……. 통일염원 455

    교육 실천을 위한 목포 고등학생 연합회

  내 마음에는 그림자가 지고 있었다.

  ‘성태는 오늘도 오지 않았다. 대호가, 목고련에서는 이런

  문제는 나서기 어렵다는 입장을 취했다고 전해줬을 뿐.’

  학교 비합법 조직인 더불어라는 이름을 내걸어서는

  안 될 일이고. 해서 또다시 모임의 이름을 지어

  성명서를 내는 행위를 하게 되었는데,

  나의 생각이 깊어가 새벽 2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상일과 창석이 2시 조금 넘었을 때 돌아왔다.

  “찬웅이 형, 광휘, 재원이하고 3호 광장에서 헤어졌어요.

  성명서는 대문이나 셔터 속으로 어넣었어요. 대자보는

  MBC 벽하고, 시장 입구, 학교 앞 삼거리, 교무실로

  올라가는 계단 벽과 동쪽 출입구 벽에 붙였습니다.

  20, 아침 동쪽 출입구 안벽 대자보와 성명서를 보며

  서 있는 학생들의 모습을, 그리고 교무실로 올라가는

  계단 중간쯤 벽에 붙은 대자보를 뜯고 있는 선생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오후, 목포역 광장에서 개최된 평준화 해제 반대

  집회에는 교사·학생·학부모 등 2만여 명이 참가했다.

 

  526일 나는 퇴근 후 바로 2층 카페 세잔느로 향했다.

  세잔의 그림 한 장 걸려 있지 않았지만 조용하고

  아늑한 카페, 길이 보이는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대호가 610분경에 현국과 한 아이와 함께 나타났다.

  조직 자주교육 쟁취 고등학생 협의회를 결성했다고 하고,

  “전교조 투쟁을 지원하려고요. 목고련이 말만 연합회지

  학생회장단 모임체로 전락하고 말았거든요.” 했다.

  “을 하지 않는다면 조직은 스스로 소멸할 것이다.

  그런데, 너희 둘은 어떻게 온 거냐?”

  상황을 파악하게 된 나는 화제를 바꾸었다.

  “고교 운동의 방향과 방법 등을 들어보러 왔습니다.”

  미소를 짓는 현국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자고협 학생들은 77일 시내에서 데모를 했다.

 

  어떤 고1 아이들이 6월항쟁 후, 친절하게 다가왔다.

‘  그 애재원이 자취방으로 찾아온 후, 대호와,

  나를 아빠라고 부르는 창석을 데리고 왔다.

  비교고사 거부 데모 후 대호가 성태를 소개했다.

  2학년 땐 5·18 기념식 치를 권리 보장 및 직선제 학생회

  건설 데모를 하여, 재원, 성태, 대호, 다윗이

  정학을 맞은 후, 재원이 다윗을 소개했다.

  나는 상일을 처음 만난 날 자취방에 데려갔고

  상일은 팔씨름을 제안하여 져주었다.

  내가 고등학생 연합회의 필요성을 밝혀, 재원, 대호, 성태,

  창석이 주축이 되어 2학년이 끝난 날 목고련을 만들었다.

  그리고 3학년 진급 후 재원이 광휘를 소개했다.

  재원, 성태, 대호, 다윗이 더불어라는 학습 투쟁 조직

  만들었다. 자고협이 생긴 후 5월 말경

  “선생님이 나의 의식을 구속해가는 것이 싫습니다.

  라고 말한 후 성태가 나에게서 떠났다.

  나는 8월에 해직되어 먼 곳을 떠났다.

  다음해 봄, 점식이 찾아와 을 좋아하는 매우 가벼운

  서른세 살인 나를 업고 가끔 광주 시내로 다녔다.

 

 

* 목고련 : 19892월에 학생들이 결성한 목포고등학생연합회.

* 자고혐 : 박재원 열사(19712002), 서다윗, 김대호, 박광휘, 배상일, 이창석, 김현국이 박승희 열사(19711991) 등과 논의하여 1989526일에 결성한, 고교생의 전교조 투쟁을 주도한 자주교육쟁취 고등학생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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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2 오후 8:072020.04.13. 11:58 <원작 원본> (세잔/어넣었어요)

=시집_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2020.05.25.)

(오교정: 세잔/방 안, 어 넣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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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상황

    1989.4.19. (1)

    1989.5.20. (2)

    1989.5.26. (3)

    1989.8.14.(해직) 19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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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객관적인 해석

  「4월 그 가슴 위로는 나(박석준)의 자서전 시집 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에만 실려 있으며 실존주의 앙가주망 경향의 글이다. 실제로 일어난 일들을 재현한 리얼리즘 기법도 사용하였고, 인물을 따라 시공간이 이동하고 사람들 사이에 일어난 일들과 사정을 시각적 심상을 강화하는 동사를 사용하여 표현하는 무비즘 기법을 사용한 글이다. (나누었을 / 흘려갔다 / 흐르는데 / 흘렸다/ 내려놓았는데 / 나누었다 / 집어넣었다 / 돌아라 / 어넣었어요 / 붙였습니다 / 업고) 무비즘은 시 형식의 글에 적용하는 나의 표현(문체)의 특징이다.

  이 글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한국의 시 형식의 글에서는 매우 드문, 고등학생이 사회운동을 하는 모습과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한 리얼리즘 경향이 반영되었다. 그럼에도 그 리얼리즘 경향이 모더니즘 경향과 충돌하지 않는다. 그리고 의식의 흐름’(‘깡마른 정했는데……’, ‘성태는 전해줬을 뿐.’)을 표현하고 유인물 글자를 그대로 적어 표현하 시상의 흐름을 전환시킨다.

  “선생님이 나의 의식을 구속해가는 것이 싫습니다.라고 말한 성태와 말의 지향점인 ”, 이 둘 다 내적 갈등을 겪으면서 자기 구속을 하고 자기 길을 선택한다.(실존주의 앙가주망) 구속에 반대되는 말이며 실존을 상징한다. 자서전 시집에 수록된 시들에서 목포라는 지명이 처음으로 이 글에서 나타났고, 이 글에는 먼 곳도 있다. 이것은 먼 곳이 지명이 아님을(학교명을 가린 표현임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4월 그 가슴 위로는 당대의 사회적 현실로 인해 목포에서 자생적으로 조직된 여러 고등학생 운동조직의 결성과정과 각 조직의 활동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을 하지 않는다면은 현실 참여(앙가주망)을 의미한다. (대자보를 벽에 붙이는 학생들의 모습벽에 붙은 대자보를 뜯고 있는 선생의 모습이 당대의 시대 현실에 대한 인식과 사람의 삶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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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가주망, engagement

  인간이 사회·정치 문제에 관계하고 참여하면서, 자유롭게 자기의 실존을 성취하는 일. 사르트르의 용어임. 사회 참여. 현실 참여. 자기 구속(自己拘束).

  참여(參與)라는 의미의 프랑스 실존주의학파의 용어이다. 원래의 말뜻은 담보, 도박이다. 일반적으로 예술지상주의 문학에 대하여 사회·정치적 입장을 분명히 내세운 문학이다. 사르트르에 의하면 작가는 상황을 폭로함으로써 세계의 변혁을 시도하고, 독자는 폭로된 대상 앞에서 책임을 져야 하며, 따라서 작가나 독자가 필연적으로 사회적 입장을 취하게 된다.

  앙가주망 문학 : 문학을 통하여 사회 문제에 참여할 것을 주장한 문학 사조.

  참여문학은 사르트르의 앙가주망을 통해 문학론으로 확립됐다. 앙가주망은 어떤 일을 행하기 위해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선택한 '자기 구속'을 의미한다. 사르트르는 참여 개념을 통해 개인의 자유에 기반한 현실 세계 비판과 새로운 세계를 향해 자기 자신을 내던지는 실천적 행위를 옹호했다. 사르트르의 앙가주망은 특정 이데올로기에 문학이 복무해야 한다는 주장과는 거리가 멀다. 그의 앙가주망은 자유를 억압하는 모순된 상황과 부조리에 맞서 행하는 모든 문학적 실천을 포괄한다. 이를 위해서는 작가의 자유뿐만 아니라 타인의 자유를 위해서도 스스로 구속된 작가로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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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양기창 시인-다윗-나_서울 충무로_2019-07-21. FB_IMG_1563669635417

  양기창 시인-다윗-_서울 충무로_2019-07-21. FB_IMG_1563669635417

    (박석률 선생 2주기 추모식 후_서울 충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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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태-나-창석(앞줄)_2023-06-30_광주시 창석 가게 탕과막회 앞. Resized_20230630_212049

  성태-나-창석(앞줄)_2023-06-30_광주시 창석 가게 탕과막회 앞. Resized_20230630_212049

      (33년 만에 만난 성태와 나) 승직이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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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헌(체크 옆)_ 광휘 (체크)_ 상일 (오른쪽 안경)_1990-02-10 (먼 곳 졸업식 날). img400

  상헌(체크 옆)_광휘(체크)_상일(오른쪽 안경)_1990-02-10 (먼 곳 졸업식 날). img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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