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109-1 호스피스 나뭇잎_(문학마당 요약버전)
나의 실존주의 모더니즘 (59), 나의 무비즘 (98)
2008-03-23 (일)
박석준 /
<문학마당 요약 버전> 2012-12-11 (씁쓸해져)
호스피스 나뭇잎
어머니는 아직 호스피스 병동 휴식실에 있다.
어머니는 목을 뚫어 꽂은 관을 통해
가래를 걸러내고 있다. 가까이에선
진하게 보이는 어떤 사정과 말 못하는 사람을
휠체어에 매달고 있는 호스피스 휴식실은
나뭇잎으로 장식되어 있다. 낮 열두 시,
5분쯤 더 있다가 휠체어는 병실로 가야 한다.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이 줄어들어
인형에 불과한 사람, 그 사람 곁에
나는 한 사람으로 가 있어야 한다.
3월 낮 따뜻한 햇살이 두 사람의 말 없는
장면으로만 남아버려 씁쓸해져 쓸쓸해지는 것을
느낀다. 어떤 사람은 늘 어떤 존재들을 위한
부스러기로 있는 까닭에 그걸 외로움이라고
말할 힘도 없다. 창밖 나뭇잎은 거리로
떨어져 내렸지만 호스피스 휴식실의 나뭇잎은
탈색조차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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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1. 23:24.메. 호스피스 나뭇잎.hwp <원작 요약 버전>
= 『문학마당』 41호/2012 겨울호 (2012.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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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상황
2008-03-23 (일). 광주 기독교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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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꽃나무보다 평범한 사람들도 살아갔다는 이야기를 누군가는 다루어야
이 글은 2008년에 나에게 실제로 펼쳐진 일을 형상화하고 그 일로 인한 나의 상념을 털어낸 실화로 이루어져 있다. ‘호스피스 나뭇잎’이라는 제목으로 어머니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나의 글은 3편인데 원작이 『석사학위 작품집』에 실렸고 그 요약 버전이라고 볼 수 있는 수정개작이 『문학마당』에, 오교정작이 『시집』에 실렸다. 이 중 원작에는 “돈과 삶에 여유가 생기면/어색한 얼굴과 어색한 목소리는 다 없어진다.”라는 표현에 자본주의의 맘모니즘에 대한 앙가주망이 담겨 있다. 그런데 이 글과 유사한 상황이 「언덕의 아이」라는 글에도 펼쳐진다.
그런 뒤, 30년쯤 흐르는 사이에 우쩍 커져버린 도시를
도시의 아스라한 끝을 보았던 것인데…….
지금은 언덕에 세워진 병원 창밖을 내다보고 있지,
한 사람을 태운 휠체어를 밀고 4층 호스피스 병실
작은 나무 둘레를 왔다 갔다 하다가.
창밖에는 무슨 나무인지 나무가 자라고 있고
한두 달 후면 봄이 올 텐데, 오후가 있고
모르는 사람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지.
― 「언덕의 아이」 끝 부분
이 글에 등장하는 “한 사람”은 2008년 3월로 살아와 광주기독병원 4층 호스피스 휴식실에 있는 나의 ‘어머니’를 가리킨다.
나는 이처럼 실제로 일어난 일을 시적 형식으로 표현한 글이 매우 많다. 그 이유는 꽃나무보다는 소박하고 평범해도 살아가는 사람에 관심이 많고 이 사람들(이 살아갔다는) 이야기를 누군가는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덕의 아이」, 「호스피스 나뭇잎」에 흐르는 씁쓸한, 슬픈 정경은 멜랑콜리에 중심을 둔 것이 아니라 휴머니즘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고 보아야 옳다.
나는 “씁쓸해져 쓸쓸해지는” 것을 느끼는 경우가 꽤 있는데, 이것을 “씁쓸하고 쓸쓸해지는”이라고 오식하여 수정한 것이 시집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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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문학마당 요약 버전>에 대한 평론
이 시는 첫 줄에서 모든 상황을 다 말해버린다. 어머니는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호스피스 병동의 중환자다. 이런 위독한 상황을 만난 지 꽤 오래된 듯 “아직”이라는 부사어에서 간병하는 가족들의 지친 모습이 진하게 배어 있다. 소생의 가능성이 없어졌을 때 간병이란 말은 왠지 어색하다. 간병(看病)이란 말에는 치유를 기다리는 마음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환자[病]를 지켜본다[看]는 말 속에는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전제로 하기에 힘들지만 어둡지는 않다. 그러나 그 간병이 호스피스 병동에서라면 달라진다. 희망이 아니라 절망과 익숙해져야 하고, 어느 순간부터는 절망이 버거워서 벗어나고 싶어지는 곳이다.
이미 어머니는 형상만 살아 있는 사람일 뿐 “인형에 불과한 사람”이다. 창밖은 3월의 봄빛으로 충만해지고 있지만, 이 “휴식실” 안의 두 사람은 봄이 낯설기만 하다. 휠체어에 의지한 어머니나 그 휠체어를 끌고 있는 화자나 말이 없다. 형식적인 대화조차 이루어지지 않는 관계, 더 이상 할 얘기도 들을 얘기도 없는 관계는 관계가 아니다. 일종의 공적(公的)인 사무일 뿐이다. 더 이상 어머니에게 격려와 위로를 줄 수 없는 자식은, 겉도는 관계 앞에서 “부스러기로 있는 까닭에 그걸 외로움이라고/말할 힘도 없다.” 호스피스 병동의 휴식실은 휴식이라는 수식이 무색하게 쉬는 것과는 무관한 공간이다. 플라스틱 나뭇잎으로 푸르게 장식했지만, 인위적인 푸름은 아무런 위로도 희망도 주지를 못한다. ‘마지막 잎새’가 될 수 없는 자식의 “씁쓸해져 쓸쓸해지는” 풍경이다.
이 시는 아무런 윤기 없이 퍼석거린다. 죽음에서 건진 통찰이나 위로로 또 다른 활기를 보일 수도 있고, 미화시키고자 하는 욕망으로 죽음을 다르게 가공할 수도 있었을 텐데, 시인은 지치고 피로한 표정을 굳이 감추지 않은 채 수다를 피한다. 그래서 감정의 과잉이나 상황의 과장에서 오는 호들갑이 제거된 첫 줄 “어머니는 아직 호스피스 병동 휴식실에 있다.”는 더욱더 씁쓸하고 쓸쓸하게 읽힌다.
- 「시, 그 첫 줄의 매혹」, 김남호 평론집 『불통으로 소통하기』(2014, 북인 book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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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2009-09-08 109 (목소리의)
호스피스 나뭇잎
어머니는 아직 호스피스 병동 휴식실에 있다.
외로움이 시나브로 내 얼굴과 목소리의 색을 없앤다.
외로움을 느끼면 어색해진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돈과 삶에 여유가 생기면
어색한 얼굴과 어색한 목소리는 다 없어진다.
어머니는 목을 뚫어낸 관을 통해
가래를 걸러내고 있다. 가까이에선
진하게 보이는 어떤 사정과 말 못 하는 사람을
휠체어에 매달고 있는 호스피스 휴식실은
나뭇잎으로 장식되어 있다. 낮 열두시,
5분쯤 더 있다가 휠체어는 병실로 가야 한다.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이 줄어들어
인형에 불과한 사람, 그 사람 곁에
나는 한 사람으로 가 있어야 한다.
3월 낮 따뜻한 햇살이 두 사람의 말 없는 장면으로만 남아버려
씁쓸해져 쓸쓸해지는 것을 느낀다.
어떤 사람은 늘 어떤 존재들을 위한
부스러기로 있는 까닭에
그걸 외로움이라고 말할 힘도 없다.
창밖 나뭇잎은 거리로 떨어져 내렸지만
호스피스 휴식실의 나뭇잎은 탈색조차 않는다.
그저 멍한 얼굴 하나가,
고독으로 탈색되어 가는 제 얼굴을 보고 있다.
나는 모른다. 누가 내 얼굴에서 탈색을 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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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4 ∽ 2008.09.06. (목소리에서) <원고>
∽ 2008.09.08. 16:09.메. 박석준-08종합1-1.hwp
(목소리의) <원고 교정 원작>
= 『석사학위 작품집』(20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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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원고) (목소리에서)
호스피스 나뭇잎
어머니는 아직 호스피스 병동 휴식실에 있다.
외로움이 시나브로 내 얼굴과 목소리에서 색을 없앤다.
외로움을 느끼면 어색해진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돈과 삶에 여유가 생기면
어색한 얼굴과 어색한 목소리는 다 없어진다.
어머니는 목을 뚫어낸 관을 통해
가래를 걸러내고 있다. 가까이에선
진하게 보이는 어떤 사정과 말 못 하는 사람을
휠체어에 매달고 있는 호스피스 휴식실은
나뭇잎으로 장식되어 있다. 낮 열두시,
5분쯤 더 있다가 휠체어는 병실로 가야 한다.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이 줄어들어
인형에 불과한 사람, 그 사람 곁에
나는 한 사람으로 가 있어야 한다.
3월 낮 따뜻한 햇살이 두 사람의 말 없는 장면으로만 남아버려
씁쓸해져 쓸쓸해지는 것을 느낀다.
어떤 사람은 늘 어떤 존재들을 위한
부스러기로 있는 까닭에
그걸 외로움이라고 말할 힘도 없다.
창밖 나뭇잎은 거리로 떨어져 내렸지만
호스피스 휴식실의 나뭇잎은 탈색조차 않는다.
그저 멍한 얼굴 하나가,
고독으로 탈색되어 가는 제 얼굴을 보고 있다.
나는 모른다. 누가 내 얼굴에서 탈색을 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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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4 ∽ 2008.09.06. 10:50.메. 박석준-08종합1.hwp (목소리에서) <원작 원고>
∽ 2008.09.08. 16:09.메. 박석준-08종합1-1.hwp
(목소리의) <원고 교정 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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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마당 요약 버전을 오교정한 시집본> 109-2 (씁쓸하고)
호스피스 나뭇잎
어머니는 아직 호스피스 병동 휴식실에 있다.
어머니는 목을 뚫어 꽂은 관을 통해
가래를 걸러내고 있다. 가까이에선
진하게 보이는 어떤 사정과 말 못하는 사람을
휠체어에 매달고 있는 호스피스 휴식실은
나뭇잎으로 장식되어 있다. 낮 열두 시,
5분쯤 더 있다가 휠체어는 병실로 가야 한다.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이 줄어들어
인형에 불과한 사람, 그 사람 곁에
나는 한 사람으로 가 있어야 한다.
3월 낮 따뜻한 햇살이 두 사람의 말 없는
장면으로만 남아버려 씁쓸하고 쓸쓸해지는 것을
느낀다. 어떤 사람은 늘 어떤 존재들을 위한
부스러기로 있는 까닭에 그걸 외로움이라고
말할 힘도 없다. 창밖 나뭇잎은 거리로
떨어져 내렸지만 호스피스 휴식실의 나뭇잎은
탈색조차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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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마당 요약 버전> 2012-12-11 (씁쓸해져)
↛ 2013-01-06 오전 6:01. 박석준-시집 최종본 2013년1월5일-2(내가 모퉁이로 사라졌다가).hwp <편집자가 임의 오교정: 씁쓸하고>
= 시집_『카페, 가난한 비』(2013.02.12. 푸른사상)
(씁쓸하고: 동시상황/씁쓸해져: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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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 2008-03-24
호스피스 나뭇잎
어머니는 아직 호스피스 병동 휴식실에 있다.
외로움이 시나브로 내 얼굴과 내 목소리에 색을 없앴다.
외로움을 느꼈을 때 어색했다고
사람들은 말하기도 했다.
돈과 삶에 여유가 있게 되면
어색한 얼굴과 어색한 목소리는 쓸데없는 것이 되고 만다.
어머니는 목을 뚫어 낸 관을 통해
가래를 걸러내곤 한다.
가까이에선
진하게 보이는 어떤 사정과 말 못 하는 사람을
휠체어에 단 호스피스 휴식실은 나뭇잎으로 장식하고 있다.
열두시.
5분쯤 더 있다가 휠체어는 병실로 가야 할 것이다.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은 줄어들어
인형뿐인 사람
그 한 사람 곁에 한 사람으로 나는 가 있곤 한다.
3월 낮 따뜻한 햇살이
두 사람의 말 없는 장면으로만 남아버렸음에
씁쓸해져 쓸쓸해졌음을 느낀다.
어차피 어떤 사람은 어느 존재들을 위한
부수적인 장면으로 있는 까닭에
그걸 외로움이라고 말할 바탕도 없다.
지난날 바람에 나뭇잎이 떨어져 내리곤 하였지만
호스피스 휴식실 나뭇잎은 탈색조차 하지 않을 것 같다.
그저 멍한 얼굴 하나가,
그저 고독이 나의 탈색되어 가는 인색을 보게 한다.
그러나 나는 모른다. 누가 내 가까이서 지금 색칠하고 있는지를.
-2008.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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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4 (초고)
2008-03-30 오후 6:42. 나뭇잎.hwp (초고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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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광주기독병원 호스피스 쉼터, 소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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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기독병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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