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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시

나의 무비즘 (9), 실존주의 앙가주망 (6) 한순간만이라도 이미지를 / 박석준

나의 9 한순간만이라도 이미지를

나의 무비즘 (9), 실존주의 앙가주망 (6)

1978

박석준 /

한순간만이라도 이미지를

 

 

  중간고사가 끝난 후의 11월 중순, 어느 오후였다.

  “뭐라고? 수업을 조금만 하자고?” 내가 묻는데,

  “선생님, 그렇게 해줘요. 날씨가 너무 좋아요.”

  “쉬고 싶을 때는 쉴 수도 있어야 한다고 했잖아요?”

  아이들의 말이 쏟아져 나왔다.

  2학기 시작된 후로는 1주일에 두세 번 나타나

  주로 복도에서 지켜보고 갔다. 게다가 주마다 한 번 이상

  “법적으로 금지한 거니 통근 그만하시오.”,

  “통근한다고 학부형들이 전화가 잦단 말이오.”

  라는 식으로 교감이 압박을 가중시켰다.

  20분쯤 수업을 하고 나자, 아이들이 운동장 쪽 벽을

  지름으로 하는 반원형의 공간을 만들어냈다. 거기에는

  따사로운 햇볕이 쏟아지고, 창밖으로는 가을,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른 하늘이 흐르고 있었다.

  애들은 반원형의 교실 바닥과, 그 둘레에 포개어진

  책상이나 의자에 올망졸망 앉았다.

  “노래 한 곡 듣고 싶어요.” 소리에, 나는 교탁 옆에서

  반원형의 공간으로, 애 둘은 망보러 교실 문가로 갔다.

  “눈을 감고 걸어도 눈을 뜨고 걸어도 보고 싶은 얼굴.

  거리마다 물결이 거리마다 발길이…….

  전날 또다시 통증이 오고 얼굴 주변에 종기가 나서

  7시경 학교를 빠져나와 충장로의 약국에 갔다가, 수많은

  사람들을 느끼며 귀가 중 불빛에 불현듯 형들의 얼굴이

  떠올라, 가슴이 뭉클해져 가만히 흥얼거린 그 노래였다.

  “새파란 색을 좋아한다고 새파랗게 웃을 수는 없잖아

  하는 훈의 노래로 인해 훈 뒤의 푸른 하늘을 보았는데,

  돌연 7811의 어느 토요일 오후가 떠올랐다.

 

  책가방을 간신히 들고 우체국 앞까지 온 나를 삼형

  버스에 태워 데려간 곳은 피정센터의 언덕이었다.

  그 언덕길에서 사방을 두리번거린 뒤 비로소 꺼낸 말은

  “! 푸르른 하늘을 봐라. 봤냐?”였다.

  형의 말대로 하늘을 보았을 때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푸른빛이어서 나는 .”이라 대답했다.

  삼형이 밤에 송정리역에서 도둑기차 타고 갔다고

  헌이 전했는데, 삼형은 전남대 교육지표 사건

  함평 고구마 사건으로 쫓기는 중이었다.

  “기순이가 연탄가스로 죽었다 한다. 니 형 안 보인 후론

  주마다 우체국 갔다가 항시 들렀는데.”라고, 들불야학

  여선생의 죽음에, 어머니의 슬픈 목소리가 1227일 흘렀다.

  그날 헤어지고 2년이 지난, 806월 배재고 앞에서,

  남민전 사건으로 재판받기 위해 수갑이 채워진 채

  걸어가는 사람들의 옆모습 속에서, 서른이 넘은 큰형과

  26세가 된 삼형의 옆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26!

  아! 나도 26. 푸르던 하늘, 그리고 또다시 푸르른

  하늘! 보고 싶다! 그 푸르던 하늘, 그 푸르름을.

  푸르름을 그리워하며, 그 푸르름이 사라지고 있는 것을

  아쉬워하며, 푸르름 뒤에 가려진 슬픔을 느낀 채,

  바로 앞에 흐르는 푸르른 하늘에 눈길을 주고 있는데,

  뒤를 이은 아이의 노래가 시작되는 건지

  환호를 지르며 박수를 쳐댔다.

  나는 한순간만이라도 이미지를 남기는 사람이 되라

  당부한 뒤 시간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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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8 오후 7:15 2020-03-24 오후 11:22 <원작 원본>

(2020.04.23. 14:28, 오인 가사 정정 : 색칠할 수 웃을 수는)

= 시집_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2020.05.25. 푸른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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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상황:

    1983.11, 항구도시의 먼 곳’ (현재 시점)

       *1978.11 1980.5. (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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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만을 본 해석

  「한순간만이라도 이미지를은 사건들이 매체에 의해 발생하여 이어지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불빛훈의 노래는 형()을 떠올리게 한 연상의 매체다.

  눈통증이 오고 얼굴 주변에 종기 충장로(거리)의 약국 불빛 형들의 얼굴 노래(눈을 감고 걸어도 보고 싶은 얼굴./ 거리마다) 노래 한 곡 듣고 싶어요 노래(눈을 감고 걸어도 보고 싶은 얼굴./ 거리마다) 훈의 노래로 인해 훈 뒤의 푸른 하늘 피정센터의 언덕에서 본 푸르른 하늘 푸르름 뒤에 가려진 슬픔 한순간만이라도 이미지를 남기는 사람

  「한순간만이라도 이미지를은 가을철에 어느 학교의 교실에서 수업시간에 펼쳐지는 것들을 담고 있는 글이며, 가을날의 서정(형을 그리워함과 푸르름이 사라지고 있음을 아쉬워함)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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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과 관련한 해석

1, 일반적인 현대시인의 시하고는 다른 내용형식

  「한순간만이라도 이미지를실제 일어난 일(과 생각)20203월에 시 형식으로 표현한 글이다. 이 글은 20205월 자서전 시집_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에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한순간만이라도 이미지를을 포함하여 이 시집에 실린 전 40편 글은 한국의 일반적인 현대시인의 시하고는 내용면에서 크게 다르고 형식도 달라서 이들 시인에게 시인지 수필인지 일기인지 판단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 이유를 서사(敍事)로 가다가 갑자기 이미지가 튀어나오기 때문이다.’고 어떤 시인은 말했는데. 이 글에는 그 푸르름 뒤에 가려진 슬픔을 느낀 채가 그런 예에 해당한다.

  「한순간만이라도 이미지를에는 (박제 = 박석준)”먼 곳고등학교에서 근무한 198311월의 교실(1-4) 상황이 펼쳐지는 중에 전남대 교육지표 사’, ‘평 고구마 사건’, ‘들불야학기순이의 죽음, ‘남민전 사건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과 실명 인물이 내용으로 제시되었다.

  이런 점에서 이 글을 어느 학교 수업시간에 펼쳐지는 가을날의 서정으로만 이해해버리는 건 제대로 된 해석이 되지 못한다.

 

2. 표현 형식배경(11)

  나는 가을날의 서정을 중점적으로 언급하기 위해 이 글을 쓴 것이 아니다. 이 글에 11월의 어느 날이 현재 사건이지만 “11에 이보다 중요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11배경이 된 것이다.

  「한순간만이라도 이미지를은 사건들이 매체에 의해 발생하여 이어지는 형태로 구성되어 시공간의 이동이 있어서, 시 형식으로 표현한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표현 형식에 무비즘이 사용되었다.

 

3. 이 글엔 놓쳐서는 안 될 사항이 있다.

  현재 교길 안 상황이 환호를 지를 만큼 흥겹게 진행되고 있으면서도, 에게는 형과 헤어진 날의 상황과 현재의 심정과 상념(민주화운동 관련 사건으로 감옥에 갇힌 삼형으로 인한 상념: 그 푸르름 뒤에 가려진 슬픔)’이 흐르고 있다. 애 둘은교실 문가에서 망보고 있다.

  ⓷“‘1주일에 두세 번 나타나/ 주로 복도에서 지켜보고 갔다.”, “교감이 압박을 가중시켰다.”

  ⓵, 는 이날 먼 곳의 수업시간에 진행 중인 교실 안 상황이고, 은 이 수업시간 이전의 날에 먼 곳에서 있었던 일들이다.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 지켜보다(감시하다: 통제하기 위하여 주의하여 지켜보다)’망보다(다른 사람의 동정 따위를 살피다)’라는 모순되는 상황(행위)이어서 아이러니컬하다.

  한편 이보다 5년 전인 1978년엔 전남대 교육지표 사건들불야학/ 여선생의 죽음이 있었다.

  ⓵⁓④는 정치 혹은 교육 면에서 부정적인 한국 현실에서 발생한 일들이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가을날의 서정을 중요한 것이 되지 못한다. 내가 이 글을 쓴 중심의도한국의 정치 또는 교육에서 부정적이고 문제점이 있는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을 표현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의식을 전하할 수 있는 는 이런 의식을 “‘한순간만이라도 이미지를 남기는 사람이 되라라는 상징 표현을 쓴 것이다. “4월에 “‘각서’, 본인은 학생에게 문제가 되는 일이/ 발생했을 때 즉각 학교를 그만둔다”(→ 「먼 곳 2 프리즈 프레임)안기부에게써야만 했던 처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사용한 주요 소재는 먼 곳’(사학 私學)에서의 교사 탄압, 들불야학, 전남대학교 교육지표 사건 등 교육과 관련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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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 고구마 투쟁

  가난하여 고등학교 중퇴한 삼형은 내가 고3이 된 1978년엔 봄부터 어디론가 갔다 오곤 했다. 막내 수와 누나가 매듭을 만들어 팔고, 고교 진학을 포기한 동생 헌이 돈을 벌 수 있는 이 일 저 일을 했다.

  삼형(박석삼)1978년에 함평 고구마 투쟁에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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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 교육지표 사건

  1978627일 명노근, 송기숙, 이석연 등 전남대학교 교수 11명이 발표한 우리의 교육지표선언서가 광주를 뒤흔들었다.

  송기숙 교수는 연세대 성내운 교수를 통해 AP통신, 아시아 신문 등 외신에 선언서를 전달했다. 다음날, 중앙정보부는 서명에 참여한 전남대학교 교수 11명을 체포했다.

  그날 밤 광주YWCA에서 연행된 교수들의 석방을 촉구하는 기도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우리의 교육지표가 배포되었다. 한편, 전남대학교 활동가들은 이황(이강의 동생)의 자취방에서 대책회의를 열었다. 노준현, 정용화, 박석삼, 박몽구, 김윤기, 조봉훈, 김선출, 안길정, 박현옥 등이 모였다. 이들은 시위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그날 저녁, 윤한봉은 박석삼을 불러 자신이 작성한 우리의 교육지표 사건 상황일지를 서울에 전달하는 중책을 맡겼다. 박석삼은 서울에 가서 백낙청, 성내운 교수를 만나 해당 문건을 전달했다. 이후 그는 수배 대상이 되었고 도피생활을 시작했다.

https://brunch.co.kr/@1980may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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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민전 사건

  197811월에, 삼형(박석삼)이 밤에 송정리역에서 도둑기차 타고 갔다고 헌이 전했는데. 삼형은 함평 고구마 투쟁과 전남대 교육지표 사건으로 쫓기는 중이었다.

  내가 저녁에 계림파출소 앞 우리 수예점 가게에 앉아 있는데, “기순이가 죽었다 한다. 니 형 안 보인 후로는 항시 주마다 우체국 갔다가 꼭 들렀는데.” 어머니의 슬픈 목소리가 1227일 흘렀다.

  197910월에 이재문, 신향식 등이 남민전 사건으로 구속된 후, 박석삼은 박석률(큰형) 등과 함께 1979113일 서울에서 체포됐다. 공안 기관은 이것을 북한 공산 집단의 대남 전략에 따라 국가 변란을 기도한 사건’, ‘북한과 연계된 간첩단 사건’, ‘무장 도시 게릴라 조직등으로 발표하면서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위반 등의 혐의로 처벌하였다.

  이재문은 옥사하고, 신향식은 사형 집행되었다. 박석삼(15년 형)과 박석률(무기징역)91개월여 수감생활을 하고 19881221일에, 김남주(15년 형) 등과 함께 특별사면되어 가석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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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순

  박기순 열사는 19786월 전남대학교 사범대 국사교육과 3학년 재학 중 민주교육지표사건으로 강제 휴학을 당했다.

1978723일 전남대생 임낙평·신영일·김영철 등과 함께 광천동 성당 교리에서 들불야학을 창립했다. 못 배우고 힘없는 노동자들을 돕기 위해서였다. 같은 해 10월에는 광천공단 한 금속 제조업체에 입사, 광주지역 최초 위장 취업 노동자가 됐다. 전남대 선배 윤상원 열사를 설득해 들불야학 교사로 참여시켰다. 박 열사는 월요일부터 토요일(오후 7~9)까지 노동자들에게 노동권과 평등 사회의 중요성 등을 가르치며 야학을 실질적으로 이끌었다. 박 열사는 그해 1226() 둘째 오빠 집에서 연탄가스 중독으로 숨졌다. 1224일 들불야학 운영에 대한 밤샘 토론 뒤 이틀간 수업을 마치고 귀가해 잠자던 중 참변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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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만이라도 이미지를 남기는 사람

  19834월에 안기부에게 각서를 쓴 후에야 먼 곳고교의 정식 교사로 채용된 나는 천진난만 개성유지를 내가 담임한 1-4반 표어로 정하여 교실 뒷칠판에 붙였다. 그리고 9월에 2학기 급훈으로 한순간만이라도 이미지를 남기는 사람을 정해 앞칠판 위에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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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무비즘 (9) 다음 이야기:

    나의 무비즘 (16) 아픈 수업

    나의 무비즘 (16) 아픈 수업 / 박석준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나의 무비즘 (16) 아픈 수업 / 박석준

나의 무비즘 (16) 1983-11-하순 아픈 수업 / 박석준 . 「아픈 수업」은 자서전적 시집 『시간의 색깔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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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삼형 ( 박석삼 )

 

    삼형(박석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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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헌 ( 박석헌 )

    동생 헌(박석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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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먼 곳' 가을소풍. 우리 반(1-4) 학생, 나(박제=박석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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