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8 장미의 곁에 있는 두 얼굴
나의 무비즘 (8), 실존주의 앙가주망 (5)
1977
박석준 /
장미의 곁에 있는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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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곁에 있는 두 얼굴」은 2020년에 출판된 자서전 시집 『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에 실린 나의 글이다. 시 형식으로 된 이 글과 글이 든 시집을 잘 감상하려면 ‘장미’는 무엇을 상징하는지, ‘두 얼굴’은 무엇을 가리키는지, ‘눈 조심하고’는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인지. 왜 2020년에 출판한 것인지 생각하기를 바란다.
장미의 곁에 있는 두 얼굴
1
12월, 밤이 시작된 무렵. 불빛들, 언덕 쪽으로 걸었다.
우리 집을 스친 길과 성당이 꼭대기에 솟은 언덕 밑을 스친 길이 있는 오거리, 언덕 밑 길 포장마차들 중 한 곳.
그 안의 백열전등 불빛 아래 장미꽃처럼 빨간 준수한 얼굴에 코트 깃을 세운 사람, 그 옆에 놓인 빨간 장미.
그 옆에 서점 상윤 형이 전해주라는 검은 가방을 놓았다.
“김장은 안 했겠구나. 이십만 원이다, 대학교 진학해라. 일이 있어 나는 집에 오기 어렵다. 어머니 잘 모셔라.”
건강해져야 할 텐데, 눈 조심하고……. 빨간 장미를 든 나는 집 쪽으로 걸었다. 간혹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형은 쫓기는 자일까? 형이 모금하여 나를 살리고, 신문에 내 옆얼굴이 났는데, 산다는 건 무엇일까? 장미, 얼굴들!
2
둥근 얼굴 여자가 마루 앞에 서서 보고 있었어. 바지와
반팔 티셔츠를 입는 스무 살 소년을. 누구세요? 물었어.
1월에 신문을 보고 편지한다, 성남에서 공장 다닌다,
3월에 열아홉 살, 본명은 연, 광주로 돌아왔다, 사랑해요,
했는데, 5월 아침 일요일을 무엇 때문에 찾아왔을까?
수국 같은 성숙한 여자! 난 치료 중인데. 빵을 안 먹네!
공원에 갈까요? 제과점에서 나왔어. 사진 찍을 때만 넌
곁에 있었지. 네가 권한 영화관엔 편히 서 있을 곳 없어,
피로해서 갈게요, 했어. 그때까지 넌 전혀 묻지 않더군.
이발사가, 넌 구레나룻이 멋진데 너무 빼빼해, 했을 때,
그 여자, 집에 와서 울고 갔어, 헌의 목소리가 들렸지.
여름날 하교하여 가방을 간신히 들고 들른 수예점에서
누나의 말에 상자 위에 둔 현에게 보낼 편지가 생각났어.
열린 방문, 가버린 상자. 들어가 형광등을 꺼버렸지.
친구랑 튀어나갔지만, 넌 집 앞에서 얼굴을 못 들었어.
나는 고2 소년을 들켜버려서 눈물이 맺히는데, 들킨
너는 말없이 눈물을 쏟아내고는 언덕 쪽으로 달아났어.
눈과 가슴뼈가 흔들려 5미터도 못 뛰어가 괴로웠지.
상사병 나 초췌하고 불안하다고 쓴 네 친구의 편지,
가을 해 질 녘 충장로. 내게 다가온 건 포동포동한 외모,
변한 얼굴, 기억에 없는 목소리였어. 산수동 달동네
불빛들 몇, 안쓰러워 들어간 언덕길, 골목이 갈린 곳에서
여기서부터는 따라오지 마세요, 사감한테 들키면 혼나요,
소리만 했지. 갈 테니 회사 기숙사 전화번호 적어줘요,
했을 때까지 넌 아무것도, 안부조차도 묻지 않았어.
큰길 전화박스에서 소리가 났어. 없는 번호입니다.
‘거울 속 왕자님을 바라보는 거지 소녀가’ 한 카드.
11월 예비고사 날 모처럼 온 말이 마지막일까?
3
옆얼굴이 잘생겨서 오빠 삼고 싶다며 열여섯 현, 네가
네 사진을 담아 연과 같은 날 편지로 찾아왔어.
유채꽃 같은 고2 소녀! 고2인 나 내 사진을 보냈지.
나에게 ‘사랑해요’ 한 여자한테 일기와 편지가 든 상자를
들켜버려서, 현에게서도 떠나겠어. 라고 썼어. 그러나
너는 ‘사랑해요’란 말을 처음으로 보냈지.
‘대학생이 되겠네요. 난 취직해요.’ 예비고사 날 온 편지.
다음해 2월 토요일, 서울 전농동 달동네 긴 언덕길에서
대문 앞에 두 개의 방이 바짝 붙은 집을 찾고
캄캄해진 얼마 후에 노크해 언니에게 전했어.
내일 열두 시에 창경원 앞에 파란 풍선 들고 있겠어요.
열한 시부터 두 시간 기다렸어. 답장은 계속 왔지.
네 목소리를 들은 적도 얼굴을 직접 본 적도 없는데,
4월에 네 답장을 받고, 며칠 후 형사들이 수색했어.
내 상자 속 편지들까지. 그러곤 며칠 후 편지가 왔어.
회사의 29살 오빠가 날 사랑해요.
4
11월에 형이 체포됐다. 상실, 결여, 나의 고독, 카오스적 나가 5·18을 흘러가고, 김제영이 다가와 함께 본 백장미*.
스물다섯 살 1월에 우리 집을 잃어, 여관방으로 이사했다.
졸업하여 스물여섯, 2월 말인 오늘 다시 구직하러 다닌 후, 나는 슬퍼졌다. 나는 왜 가벼운 것일까?
무기수인 형, 장미의 곁에 두 얼굴! 산다는 건 무엇일까?
* 잉케 숄,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원제 백장미, Die Weisse Rose)』, 박종서 역, 청사, 1978.
2020-01-01 ∽ 2020-03-17 오전 10:00 <원작>
= 시집_『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2020.05.25. 푸른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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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상황
1978.12. (큰형과 헤어짐, 고3) : 1연
1977.1. (연의 편지),
1977.5. (연이 찾아옴).
1978.11.7. (예비고사 날, 연의 편지) : 2연
1977.1. (현의 편지),
1978.11.7. (예비고사 날, 현의 편지),
1979.2. (현의 집 찾아감),
1979.4. (중앙정보부에서 집 수색. 헤어짐) : 3연
1979.11. (형 체포됨),
1980.5.18. (제영과 만남, 대2),
1982.1. (여관으로 이사),
1983.2. (졸업, 구직 실패,) : 4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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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시집과 관련한 해석
「장미의 곁에 있는 두 얼굴」은 시 형식을 취하고 네 부분으로 이야기를 구성됐다. 그리고 네 부분 중 첫 부분과 끝 부분에 현재 시점(이중적인 현재 시점)으로 표현함으로써(글 전체로 보면 끝 부분이 현재에 해당한다.), 펼쳐간 네 개의 이야기가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렇게 시 형식으로 표현한 이야기가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기법(또는 경향)을 무비즘이라고 한다.
1. 창작 배경 : 섬세하게 이해하려면
글에는 없지만 형의 죽음으로 인해 ‘형의 삶의 의미’와 ‘나의 삶의 문제들’을 고뇌해오다가 나는 이 글을 썼다.
「장미의 곁에 있는 두 얼굴」은 시 형식으로 표현한 실화이다. 실제로 있었던 사람(실명 인물)에게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말, 행동 등)과 당시에 일어난 나의 생각을 그대로 적은 글이다. 그럼에도 이 글을 보다 섬세하게 이해하려면 다음 세 가지는 생각해봐야 한다.
⓵ 실화인데 ‘형이 무슨 사건으로 체포되었으며 어찌하여 ‘무기수’가 된 것인지‘를 왜 언급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⓶ ‘장미’와 ‘두 얼굴’의 의미는 무엇인가? ⓷ ‘예비고사 날’은 당시의 사회적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지녔는가?
2. 창작 의도
이 글은 나(박석준)의 삶의 한 시절에 실제로 흘러간 것(말, 생각, 사건, 사람 등)을 재구성한 실화이다. 하지만 독자에겐 다만 시 같은 형식으로 된 한 편의 글일 뿐이다.
나는 나의 삶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살아가는 시간의 두 가지 색깔을 표현하려는 의도로 이 글을 썼다.
3. 시점/구성/수법
이 글의 현재 시점은 4연의 구직에 실패한 날인 “오늘”이다. 4개의 이야기를 담고 있고, 이 중 2는 1의 “산다는 건 무엇일까? 장미, 얼굴들!”이라는 상념 뒤에 떠오른 과거 일을 요약 진술한 것이다. 그런데 3은 “장미의 곁에 두 얼굴! 산다는 건 무엇일까?”라고 끝맺은 4의 상념 속의 과거 일이다.
이렇게 이 글엔 1, 4연(끝 연)이 “장미”, “얼굴”, “산다는 건 무엇일까?”라는 말들로 연결되어 내용상 운율을 이루는 표현과 구성 방식으로 ‘(장미, 얼굴을 통한 형상과 색깔이 흐르는 시각)이미지’와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달시키는 무비즘 수법이 사용되었다.
4. 제목 속 ‘장미’와 ‘두 얼굴’의 의미
하지만 세밀하게 보면 1 부분의 “형은 쫓기는 자일까? … 신문에 내 옆얼굴이 났는데, 산다는 건 무엇일까? 장미, 얼굴들!”에선 자문하지만, 4 부분의 “무기수인 형, 장미의 곁에 두 얼굴! 산다는 건 무엇일까?”에선 “형”에게 물어보는 듯한 뉘앙스를 남기고 있다.
그리고, 1에선 “장미, 얼굴들”이 두 사항은 별개의 것이라고 여겨지고 몇 개의 얼굴인지 범주가 분명하지 않아 구체성이 떨어지는데 4에선 “두 얼굴”이라 하여 범주가 분명하다. 게다가 바로 뒤에 “산다는 건 무엇일까?”라고 말하고 있어서 두 얼굴이 “형”과 “나”임을 알게 된다. 이렇게 세밀하게 볼 때 ‘장미’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일, 행동, 가치 있는 것)을 상징하는 말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제목을 ‘장미의 곁에 있는 두 얼굴’이라고 정했다. 장미의 곁에 있는 두 얼굴은 우선 “형”과 “나”의 얼굴이다.
5. ‘시간(사건)의 진행’과 사물(장미, 수국, 유채꽃)의 심상
나는 이 글을 싸는 이야기(1과 4 부분) 속에 ‘장미’와 ‘백장미’가 있고, 싸인 이야기(2와 3 부분)에 ‘장미’하고는 별 관련이 없는 듯한, ‘수국’과 ‘유채꽃’이란 이미지가 부여된 두 여자의 이야기가 들어있는 형태로 구성했다. 그리고 ‘동생을 사랑하는 또는 동생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의 표시로 형이 준 것으로 짐작되게 해놓고, ‘장미’가 “나(동생)”에게 온 후엔 한 여자를 떠올리게 하는 매체가 되게 했다. 즉 ‘장미’에 ‘여자를 사랑하는 마음’도 포함된 듯하게 표현했다.
애초에 나는 ‘사랑’, ‘저항운동’, ‘성남, 변덕스러움’, ‘쾌활, 발랄함’을 암시하려고 이 꽃들(빨간 장미, 백장미, 수국, 유채꽃)을 꽃말 상징으로 사용했다. 그런데 사건(시간)이 진행되면서 ‘장미’, ‘수국’, ‘유채꽃’이 스스로 의미를 변화시켜 버렸다.
한 날에 두 여자의 위문편지를 받게 되어 “나”에게 새 유형의 시간이 형성되고 그것이 모데라토로 흘러갔는데, “연”이 “나”를 찾아오는 적극적인 행동을 실현한 때부터 두 사람의 시간이 흔들거린다.
“옆모습”을 말하면서 오빠로 삼고 싶다는 마음을 전하며 접근했던 “현”과의 시간도, “현”의 “사랑해요”란 말을 받으면서 두 사람의 시간이 흔들거린다.
다음해(1978년) 11월 예비고사 날에 “연”과 “현”의 편지를 받고는, “나”에겐 ‘수국’, ‘유채꽃’이 “마지막, 불안”, “의혹, 불안”의 심상으로 변해버린다.
그리고 “형”이 체포되어 무기수가 된 후엔 “장미”가 “형”의 “지향하는 인생 길(또는 저항운동)”의 심상으로 남는다. “장미”는 “나”에게 “아름다운 것, 사랑의 꿈, 가지 못한 길”의 심상으로 남는다.
6. 눈 조심하고
이 글만 본 사람에겐 “눈 조심하고”라는 말에서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조심하여 길을 살펴 가고’라는 의미가 먼저 새겨질 것이다. 반면, 시집 전체 글을 읽은 사람에겐 “눈 조심하고”는 ‘볼 수 있는 왼쪽 눈을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고’/혹은 ‘누군가의 눈을 조심하고’라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7. ‘예비고사 날’과 편지들/여자 이야기 삽입 의도
‘예비고사 날’에 두 여자의 편지를 받은 나에겐 편지에서 ⓵ “거울 속 왕자님을 바라보는 거지 소녀가”, ⓶ “대학생이 되겠네요. 난 취직해요.”라는 말이 짙게 새겨진다. “연”이 공장에 다니는 만큼 가난한 집 사람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⓵에 ‘거울 속, 왕자님, 거지’라는 어휘가 들어 있어서이다. 그리고 ⓶에 “난 취직해요.”가 있어서 ‘현도 가난한 집 사람이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이다. 또한 이 두 사람이 ‘예비고사’란 날짜에 편지가 전해지길 바라고 편지를 썼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거울 속”은 ‘사회적 처지가 다른 곳’, “왕자님”은 ‘사랑하는 사람이면서 귀한 사람’, “거지”는 ‘가난하면서 사회적 처지가 좋지 않은 사람’을 전하려고 사용한 것 같다. “대학생”은 “취직”이란 말과 상반되는 ‘사회적 위치가 높은 곳’이란 인식을 내포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⓵, ⓶는 ‘사랑하는 사람이 곧 나하고는 처지가 다른 곳으로 간다라는 생각에서 온 절망감을 표현한 말’이다.
이렇게 1970년대 “예비고사 (날)”는 20대를 살아가야 할 젊은 사람에게 어떤 위치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고 그런 날로 의식되었다. “연”, “현” 같은 가난한 사람에겐 ‘불안’, ‘소외’가 파고드는 말이었다.
런데 왜 “현”은 만나주지도 않으면서 편지를 계속 보냈고, 그리고 말없이 조용히 절교하면 되는데 “회사의 29살 오빠가 날 사랑해요.”라고 써서 편지를 보낸 것일까? 이 편지의 내용과 편지가 “내 상자 속 편지들까지” “형사들이 수색”한 며칠 후에 왔다는 사실이 여러 의미로 해석되게 만든다.
이 글에서 헤어진지 모르게 헤어지고 만 당시의 “나”에게 남게 된 두 여자는 ‘상대방의 처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고 하지 않고 자신만을 생각한, 자신을 위치가 낮고 가난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라고 인식한,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을 포기한 여자’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 글에서 “나”는 매우 가난한 사람이니까.
이 글에서 “나”하고 “연”이 만들어낸 시간은 실제로 사랑한 시간이지만, “나”하고 “현”이 만들어낸 시간은 사랑이 담겨 있지 않은 꿈(일장춘몽)의 시간, 의미 없는 시간이다.
‘시간의 빛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 내가 두 여자의 이야기를 삽입한 까닭은 이 주제를 의도적으로 강하게 형성해내려는 데에 있다.
“연”은 ‘나에게 스며든 여자’로, “현”은 ‘나를 스쳐간 여자(꿈, 일장춘몽)’로 남았다. 이렇게 남은 여자들 또한 이 글에서 남은 “두 얼굴”이다.
8. 글의 의미/글의 경향
이 글은 ‘장미(사랑, 아름다운 것, 지향하는 인생 길) 곁에 두 얼굴(자신의 의지를 끝까지 추구하는 사람과 자신의 의지가 흔들거린 사람)’이 있음을 알게 한다, “두 얼굴”인 “형”과 “나”는 ‘자기 갈 길을 따라 흔들리지 않고 간 형의 얼굴(백장미: 순수, 저항)’과 ‘자기 길을 못 가고 흔들거리는 나의 얼굴(빨간 장미: 사랑, 사랑에 대한 열정)’에 귀결한다.
이 글은 “산다는 건 무엇일까?”를 추적한 글이다. 이 글이 실린 시집 『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 전체 글을 읽어본 ‘운동을 지향하는’ 사람에게는 ‘남민전 사건’과 관련된 “형”의 이야기가 중심 이야기가 되지만, 이 글만 떼어 놓고 본다면 ‘형이 자기 길을 가다가 무기수가 된 사건’은 부차적인 이야기가 되고, ‘사랑과 관련한 “나”와 두 여자 사이의 사건’이 중심 이야기가 된다.
내가 “형”이 관련된 사건과 “형”이 무기수가 된 이유를 쓰지 않은 건 이 두 가지 시각을 감안했기 때문이다. 시집 속의 흘러가는 시간 중 한 사절의 이야기로 이해되고 또한 시집과는 별개로 한 작품으로 이해되기를 바라는 측면에서 그렇게 썼다.
이런 점에서 이 글은 ‘어떤 사건을 어떤 시각으로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를 시공간의 이동을 통해 사건들을 구성한 무비즘 경향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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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밖 실화
나는 1982년 1월에 이사하기 전까지는 계림동에서 살았다. 계림동의 큰길(중앙로)이 우리 식료품 가게와 계림파출소, 내가 다닌 고교를 스쳐가며, 우리 가게 맞은편의 계림파출소에서 갈라진 길에, 파출소 바로 옆의 제과점, 바로 앞의 허의원(→ 「국밥집 가서 밥 한 숟가락 얻어 와라」)이 서 있었다. 이 중 “연”이 찾아와서 내가 데리고 간 곳이 이 제과점인데 “연”이 빵을 안 먹었다.
우리 가게 옆 상점에서 갈라진 길이 삼거리, 계림동오거리를 만들어냈는데, 이 글에 나오는 오거리의 언덕(동산)에 성당이 솟아 있다. 우리 안집은 삼거리의 양쪽 길을 낀 두 번째 집이며 동네에서 가장 큰 집이다. 삼거리의 오른쪽 길인 소로를 조금 따라가면 우리집에 딸린 술집이 있고 맞은편에 만홧가게가 있고(→ 「신」), 30미터쯤 더 올라가면 언덕이 있어서(→ 「언덕의 아이」) 오른쪽 왼쪽으로 길이 갈라졌다. 갈라진 지점에 이 글에 나오는 이발관이 있었다. 대문 쪽으로 흘러가고 대문 앞에서 복개된 좁은, 「신」에 나오는 도랑에서 나는 10살 때(1967년 장마철에) 고무신을 가지고 놀다가 놓쳐버렸다.
1971년(내가 중2 때)의 파산으로 인한 빚 때문에 우리 식구들은, 소로 쪽에 낸 술집의 뒷방으로 1975년에 이사했는데 이 뒷방에서 1976년 1월에 심장병의 합병증으로 나의 눈을 다쳤다. 그래서 3월에 휴학하고 공부방으로 이사 왔는데 볼펜을 굴리기도 했다.(→ 「생의 프리즈 ― 절규」) 12월에 심장병 수술을 했지만 시력은 회복되지 않았다.
나는 1978년 가을에 삼형과 피정센터에서 헤어졌고 며칠 후인 11월 7일에 예비고사를 봤다. 12월(이 글에 나온 날)엔 큰형이 나의 대학 등록금을 주었다.
내가 대학생이 된 1979년에는 4월에 형사들이 안집을 수색했다. 서울과 광주에서 온 형사들은 집을 감시했다. 큰형과 삼형이 남민전 조직에 관련 혐의가 있다고 판단한 때문이었다. 대학 1학년생인 나를 경찰서로 연행했고 취조하다가 내실로 끌고 가 가슴을 짓밟고 폭행을 몇 차례 했다.
10월 20일엔 중정부에서 나온 사람들이 어머니를 끌고 남영동 대공분실로 갔다. 어머니와 작은형이 대공분실에서 폭행을 당하고 전기고문을 받았고 박정희 대통령이 1979년 10월 26일 밤에 서거하자 풀려났다. 1979년 11월엔 남민전 사건으로 큰형, 삼형이 검거됐다.
결국 빚 때문에 우리 식구들은 1982년 1월에 계림동 가게와 안집을 잃고 중흥동 ‘장원여관’으로 이사했다. 이 글의 “오늘”은 내가 1983년에 졸업하여, 구직하러 간 2월 말경의 어느 날이다. 이날 어머니와 함께 구직하러 갔으나 나는 몸이 너무 가벼워서 구직에 또 실패했다.(면접장에서 면접관 앞으로 가다가 다리가 휘청거리더니 쓰러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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