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127 난 널 어떻게 만났지?
나의 초현실주의 (5), 나의 무비즘 (87)
2010-09-25
박석준 /
<원작> (담배 피워도 될까요)
난 널 어떻게 만났지?
나보다 10센티쯤 커 보이지만,
비 오는 날 학교 건물 앞에 서 있다가
나만큼 몸이 말랐을까, 비에?
난 널 어떻게 만났지?
오늘 모임에서 만났을까,
깡패 같은 카리스마로 내 가까이 와서
술 한 잔 함께하고 싶은데……
부탁하더니
담배 피워도 될까요 하네. 비가 오는 속에서
난 집에 가고 싶은데
술 때문인지 나 때문인지
―그, 육교 옆 약국에 자주 가나요?
―아, 그래요? 그 뒷집이 제 친구 집이라서…….
약국 뒷집 아이와 친구라 하네.
무서웠지.
집에 일이 있어 가야 하는데
소리가 대신했어.
집에 어머니가 기다리신가요,
하더니 뒷집 애네 찾아가자 하네.
술집 여자가 배려했지.
집에서 걱정할 텐데 빨리 병원에 가라고
중국 출신 여자가 있는 카페식 술집
체어에 앉은 나에게 의사가 안약을 넣었지,
전짓불로 눈을 검사하며.
조절력이 강해서……,
하는 소리가 지나간 뒤
내 학번을 물었어.
―뒷집 아이하고 같네요. 그러니까 저는 스무 살이지요.
했지만, 선배 같던 너.
진단서엔 우안, 가성근시 증상.
―어머니한테 무슨 일 있는가 보죠.
내가 눈을 다시 뜬 순간
나를 위로하던 너,
어머니는 이미 1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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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25 ∽ 2013-01-06 오전 6:01. 박석준-시집 최종본 2013년1월5일-2(내가 모퉁이로 사라졌다가).hwp <원작>
= 시집_『카페, 가난한 비』(2013.02.12. 푸른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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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
없음(꿈: 2010-09-25. 광주시 (유동, 전남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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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객관적 해석
“나보다 10센티쯤 커 보이지만,/비 오는 날 학교 건물 앞에 서 있다가/나만큼 몸이 말랐을까, 비에?”라는 표현이, 특히 “몸이 말랐을까”가 주목된다. 의미의 이중성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이중성은 ①‘키는 커 보이지만 몸은 나만큼 말랐을까?’로, ②‘비 오는 학교 앞에 서 있다가 몸(옷)이 젖었는데, 몸(옷)이 말랐을까’로 해석됨을 의미한다. ①은 화자가 몸이 허약한 사람이며(상대방도 몸이 허약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으며), ②는 비 오는 날 두 사람이 빗속에서 학교 건물 앞에 있었고 비에 취해서 젖었는데, 비가 갠 지금 나(의 옷)처럼 상대방(의 옷)도 말랐을까? 라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낸다. 즉 둘 다 우울하거나 우수에 젖은 또는 낭만적인 상태임을 표현한 말도 된다는 것이다. 한데 글의 흐름은 ①로 해석하는 것을 유도한다. “그, 육교 옆 약국에 자주 가나요?”라는 표현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이 표현은 남자와 여자의 마른 모습을 연상하게 하고 둘 다 병약한 사람으로 생각하게 한다. 그런데 “깡패 같은 카리스마”라는 말이 이런 요소를 잠시 가려버려서 ‘남자는 몸은 약하면서도 적극적인 활동성을 보여주는 사람’으로 생각되게 한다.(“뒷집 애네 찾아가자 하네.”라는 뒤따른 표현이 ‘남자가 이런 면을 지닌 사람’으로 유도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젊은 남녀가 만나서 데이트하는(또는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이 글은 무비즘 기법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돌연 “술집 여자”가 튀어나온다. 이것은 이 글이 초현실주의를 반영한 것임을 깨닫게 한다. “나”가 술집에 가야 할 상황도 아니고 “나”와 “상대방”이 함께 술집에 가야 할 관계도 아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술집 여자는 (나가 사정을 말해줘서인지는 모르지만) “집에서 걱정할 텐데 빨리 병원에 가라”는 말로 (두 남녀에게 폏쳐지고 있는) 상황을 굴절시켜 버린다.
그리고 “술집 여자”가 말한 대로 하려고 “나”는 안과로 가는 것을 선택하는데, 의사는 “조절력이 강해서…”라고 진단한다. 그런데 이 말은 복선을 품고 있다. “나”가 “조절력이 강해서 사태를 수습할 수 있다.”는 해석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단이 끝난 직후 “나”가 “나를 위로하던 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처음엔 “어머니가 기다리신가요”라고 묻는 상대방을 피하려고 ‘어머니’에 관한 말을 안 했을 테지만.
이렇게 이 글은 초현실주의를 가린 아방가르드가 무비즘을 동반하면서 시도되었다. 그리고 글 속의 ‘비가 매우 선명한 순수한 비’이며 이 비가 글 속 ‘남녀가 매우 순수하고 모험적인 성격을 선명하게 드러냈다’는 이미지를 만들어주고 있다. 글에서 명시하지 않았지만, “나”가 여자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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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밖 실화
나는 나(박석준)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1년 5개월이 지난 후에, 대학생인 나가 사랑을 시도한 이상한 꿈을 꿨다. 결말을 맺지 못한 채로 끝나서 일어난 후에도 너무 아쉬웠는데, 메시지를 준 것 같아서 곧 꿈을 그대로 옮겼다. 그 글이 이 글 「난 널 어떻게 만났지?」의 원작 초고이다. 꿈을 옮겨 놓은 것이라서 글에 초현실주의 요소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 몇 년 후에 그 요소를 찾아냈다.
여자들은 병약한 남자애를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두 여자가 1977년에 고등학생인 20살 나를 찾아와서 사랑한다고 속삭였다. 내가 병약해서 고등학생이지만 내 친구들은 2학년인 대학생이다. 나는 22살에 대학생이 되었지만 친구들이 군대에 가버렸고, 4월 초에 형들을 체포하려는 목적으로 형사들 10명이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10월 26일에 대통령이 사망하는데(10.26 사태) 그 며칠 전까지 감시하거나 데리고 다녔다. 그런 와중에 여자들이 나에게서 4월에 떠났음을 알게 되었다.(후일 어머니가 4월 초에 사망함으로써 나에겐 4월이 잔인한 달이 되었다.)
나의 사랑은 영화처럼 끝났으나 매우 순수한 소년 소녀들의 사랑이었음을 32살 때에 깨닫게 되었다. 그렇지만 나는 여자를 사랑하는 데에 실패했고, 이렇게 세월이 흘러 50살이 되었는데, 50살이 되어도 병약한 나를 보고 어머니는 내가 결혼하지 못한 이유가 병약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아서 여러 방면으로 궁리를 하고 모색하던 중에 그해 12월에 쓰러져 의식을 잃고 의식을 잃은 지 15월이 조금 넘었을 때 세상을 떠났다.
나에겐 어머니가 사망한 후, 홀로 살아가면서 어머니를 그리워함과 내 어린 시절에 사랑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이 자주 생겼다. 그런데 이 꿈을 꿨다. 꿈에선 내가 “깡패 같은 카리스마”가 있고 내가 먼저 상대방에게 다가간 사람으로 등장했다.
파블로 네루다 시인의 시들을 《네루다 시선》(민음사)라는 제목으로 번역하여 출간한 정현종 시인은 “네루다의 시는 언어가 아니라 하나의 생동이다”라고 말했다. 스페인어학자인 민용태 시인은 네루다 시의 생동감을 한 단어로 ‘열대성’ 또는 ‘다혈성’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문학 수업을 준비하다가 네루다 시를 접했다. 그러고는 생각에 빠진 후에 네루다 시에 ‘생동성’이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꿈을 생동감 있게 옮기려고 했다. 그 방법으로 무비즘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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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2) (담배 피워도 될까요) 2012-06-25
난 널 어떻게 만났지?
나보다 10센티쯤 커 보이지만,
비 오는 날 학교 건물 앞에 서 있다가
나만큼 몸이 말랐을까, 비에?
난 널 어떻게 만났지?
오늘 모임에서 만났을까,
깡패 같은 카리스마로 내 가까이 와서
술 한 잔 함께 하고 싶은데……
부탁하더니
담배 피워도 될까요 하네. 비가 오는 속에서
난 집에 가고 싶은데
술 때문인지 나 때문인지
―그, 육교 옆 약국에 자주 가나요?
―아, 그래요? 그 뒷집이 제 친구 집이라서…….
약국 뒷집 아이와 친구라 하네.
무서웠지.
집에 일이 있어서 가야 하는데
소리가 대신했어.
미성을 내게 심은 채
학교 건물 갓길을 왔다갔다 노래 부르다가
날 따라오던 너
집에 어머니가 기디리신가요?
하더니 뒷집 애네 찾아가자 하네
술집 여자가 배려했지.
집에서 걱정할 텐데 빨리 병원에 가라고
중국 출신 여자가 있는 카페식 술집
그 술집에서 나온
나를 따라오던 너
체어에 앉은 나에게 의사가 안약을 넣었지
전짓불로 눈을 검사하며
조절력이 강해서……
소리 지나자
내 학번을 물었어.
―뒷집 아이하고 같네요. 그러니까 저는 스무 살이지요.
하였지만, 선배 같던 너
Oh My Love를 나 기다리던 동안 폰으로 흘리던 사람
진단서엔 우안, 가성근시 증상
―어머니한테 무슨 일 있는가 보죠.
내가 눈을 다시 뜬 순간
나를 위로하던 너
어머니는 이미 1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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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5. 23:02. 박석준-시집(이은봉교수)-새 수정본-6월.hwp (초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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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1) 2010-09-25
난 널 어떻게 만났지?
나보다 10cm쯤 더 커 보이지만,
비 오는 날 학교 건물 앞에 서 있다가
나만큼 몸이 말랐을까, 비에
난 널 어떻게 만났지?
오늘 모임에서 만났을까,
깡패 같은 카리스마로 내 가까이 와서
술 한잔 함께 하고 싶은데……
부탁하더니
담배 하나 주라 하네. 비가 오는 속에서
난 집에 가고 싶은데
술 때문인지 나 때문인지
-그 학교 옆 약국에 자주 가나요?
-아, 그래요? 그 뒷집이 제 친구 집이라서, 이창일이라고.
내 친구의 뒷집 아이와 친구라 하네.
무서웠지.
집에 일이 있어서 가야 하는데
소리가 대신했어.
미성을 내게 심은 채
학교 건물 갓길을 왔다갔다 노래부르다가
가려는 날 따라오던 너
집에 어머니가 기디리신가요?
하더니
뒷집애네 찾아가자면서 그 방까지 구경하게 만들던 너
뒷집아이와 함께
술집 여자가 배려했지.
집에서 기다릴 텐데 빨리 병원에 가라고
중국 출신 여자가 있는 카페식 술집
그 술집에서 나온
나를 따라오던 너
의사 둘이서
체어에 나를 눕힌 후
전짓불로 눈을 검사하는데
상향 불응 하향 불응
소리 지나자
내 학번을 물었지.
뒷집아이보다, 세 살이 많군요. 그러니까 제가 세 살이 적지요.
하였지만, 선배 같던 너
수학 물리 문제를 나 기다리던 동안 풀었던 사람
진단서엔 나는 절망적 시각장애 증세를 보였는데
- 어머니한테 무슨 일 있는가 보죠.
내가 눈을 다시 뜬 순간
나를 위로하던 너
어머니는 이미 1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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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25. 10:47. 카페 가난한 비_난 널 어떻게 만났지? (초고1)
→ https://cafe.daum.net/poorrain/4Ps/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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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광주시 운암동 2018-01-04_16:04.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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