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124 단 하루의 장마_(시선본)
나의 실존주의 아방가르드 (22), 앙가주망 (57), 나의 무비즘 (110)
2009-07-27
박석준 /
<원작>_(시선본) (흐리멍텅하네/버드와이저 소주를)
단 하루의 장마
회의를 했던 풍암동 폭풍의 언덕
옆 호프집으로 오라고
핸드폰으로 듣게 되는데
택시 차창 밖으로 월요일
저물녘인지 장마기인지 흐리멍텅하네
미디어법인가
떠들썩하던 여름 밤 빗발이 거세어지는데
호프집 벽에 걸린 피카소의 거울 보는 여자
그러고는 나는 버드와이저를 먹었어, 바보처럼
나는 버드와이저 소주를
먹었어, 광화문의 황금비율로
내 곁에 가끔 살아 걷던 새
그 새였는지 죽어버려 통닭이 되었군
똥집은 떨어져 어디론가 가버렸네
집이 없는 나는 쓸쓸한가
애초 집사람을 데려오지 못해서.
이쯤해서 술 한 잔 거국적으로.
광화문의 황금비율로 간을 맞춘 거예요.
이십에서 오십대까지 남자 셋 여자 셋이 섞인
우리 테이블의 한 아가씨가
소리를 잇는데
근데 히말라야는 셰르파가 맨 먼저 오른 게 아닐까
이어지는 소리들 속에서
문득 나는 발견했지
단 하루의 장마, 이런 밤에는
나방이 나비보다 높은 곳에 날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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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30 오전 5:14. 《문학마당》에 보내는 작품.hwp (술한잔) <원작>
=→ (술 한 잔) 『시선』 27호/2009 가을호(2009.09.01.)
→ 2012-10-31 <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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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상황
2009-07-27. 월요일. 광주시 (풍암동)
2009년 7월 23일. 대한민국 미디어 관련법 개정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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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작품에 시도한 아방가르드와 그것을 강화시키는 무비즘 기법들
이 글은 “빗발이 거세어지는데”라는 상황묘사 때문인지 우선 ‘분위기가 어수선하다’는 느낌 혹은 생각을 갖게 한다. 한데도 이 글은 남자 셋 여자 셋이 함께 만난 공간과 시간이 풍암동 “폭풍의 언덕”이라는 술집(광주), 2009년 7월 27일 월요일 저녁임을 알려주고 있다. 7월 23일에 대한민국 미디어 관련법 개정 논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이 글이 시대 현실이 어두우므로 술이나 셰르파를 화제로 하여 이야기하는 6인 같은 행동보다는 더 중요한 일을 하라는 앙가주망(자기구속)을 말하며 풍자적 생각을 지닌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람은 ‘법’을 마련함으로써 자신과 타인이 해도 좋을 일이나 행위를(혹은 사고를) 확정하고 제한하고 있다. 사람 사이에서 관계가 분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글의 화자는 “흐리멍텅하네”라고 말하고 그렇게 된 원인이 “저물녘인지 장마기인지” 확정할 수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양주인지 소주인지 불분명한 “버드와이저 소주를 먹었”다고 말한다, “그 새였는지 죽어버려 통닭이 되었군”이라고 생각하고, “똥집은 떨어져 어디론가 가버렸네/집이 없는 나는 쓸쓸한가”라고 아주 모호한 말을 한다. 통닭은 죽은 사물이라서 집(똥집)이 없으며, 나는 산 사람이지만 “집사람을 데려오지 못해서” “집이 없는” 사람이고 “집(사람)”이 없어서 쓸쓸한가라고 자신에게 의문을 제기하면서 자신의 현 처지를 모호하게 만들어버린다. 배경으로 제시한 피카소의 “거울 보는 여자”는 역사화인지 추상화인지 정하기가 애매한 그림인데 이것이 미혼인 나의 처지에 연결되면서 야릇한 분위기나 기분에 젖게 한다. 합석한 여자는 “근데 히말라야는 셰르파가 맨 먼저 오른 게 아닐까”라고 선을 확정하고 싶은 일을 말로 토해낸다.
그런데 화자는 이런 날(분위기가 어수선한 날) 엉뚱하게도 “이런 밤에는/나방이 나비보다 높은 곳에 날았지”라고 자신의 판단을 전하면서 사정을 정리해 버린다. 이런 흐름으로 파악했다면 이 글의 성격은 매우 코믹하고 희즉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편 이 글은 “밤 빗발이 거세어지는데”라고 해놓고 제목은 “단 하루의 장마”라고 미리 언급하여 이 어휘를 아이러니(반어)로 사용한 것인지, 패러독스(역설)로 사용한 것인지 무슨 까닭으로 사용한 것인지 생각해보게 만들면서, 이 비가 오늘 중으로 그친다고 확정한다. ‘장마’란 사전에서 ‘여름철에 여러 날을 계속해서 비가 내리는 현상이나 날씨. 또는 그 비.’로 설명하고 있다. 이것이 이글이 지닌 아방가르드이다.
이 글은 불확실한 시대의 ‘일상ㅇ에서 흐르는 불확실성’을 성찰하게 한다.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1977년 출판한 <불확실성의 시대>라는 저서에서 현대의 특성을 불확실성이라 하고 있다. 불확실성의 시대는 불규칙적인 변화로 미래에 전개될 상황을 예측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하는데 현대를 ‘사회를 주도하는 지도 원리가 사라진 불확실한 시대’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글은 “이십에서 오십대까지 남자 셋 여자 셋이 섞인” 자리의 매우 어수선한 월요일 저녁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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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흐리멍텅했네”로 수정하여 시집에 실린 「단 하루의 장마」<수정개작>에서는 이런 다양한 요소를 다 누리지 못하게 한다. 그 한 예로 “황금비율로”를 감안하지 않은 “버드와이저와 소주를/먹었네”라는 표현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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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정 개작>=(시집본) 2012-10-31 (흐리멍텅했네/버드와이저와 소주를)
단 하루의 장마
회의를 했던 풍암동 폭풍의 언덕
옆 호프집으로 오라고
핸드폰으로 듣게 되었는데
택시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월요일 저물녘인지 장마철인지 흐리멍텅했네.
미디어법인가, 뭔가로 떠들썩한 여름 밤
빗발이 거세어지는데
호프집 벽에 걸려 있는 그림은
피카소의 ‘거울 보는 여자’였네.
나는 버드와이저와 소주를
먹었네, 광화문의 황금비율로.
내 곁에 가끔 살아 걷던 새,
그 새였는지, 죽어버려 통닭이 되었더군.
똥집은 떨어져 어디론가 가버렸고.
집이 없는 나는 쓸쓸한가,
애초 집사람을 데려오지 못해.
이쯤해서 거국적으로 한 잔 해야지.
광화문의 황금비율로 간을 맞춘 거예요.
이십에서 오십대까지
남자 셋 여자 셋이 섞인 우리 테이블의
한 아가씨가 소리를 잇는데
근데 히말라야는 셰르파가 맨 먼저 오른 게 아닐까,
이어지는 소리들 속에서
문득 나는 발견했지,
단 하루의 장마를. 이런 밤에는
나방이 나비보다 높은 곳에 날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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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30 시선본=<원작>
↛ 2012.10.31. 00:43.메. 박석준-시집 최종본 2012년9월22일-1.hwp <출판사에서 원작 오수정 개작>
(‘황금비율로’를 감안하지 않은 오수정: 버드와이저와 소주를)
= 시집_『카페, 가난한 비』(2013.02.12. 푸른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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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022-05-06_22:09. 광주시 산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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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07_21:37. 광주시 산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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