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79 은행 앞 은행잎이 뒹구는 여름날
나의 실존주의 아방가르드 (10), 의식의 흐름 (7), 나의 무비즘 (66)
2005-07-27
박석준 /
<원작 수정 r개작> 2013-01-05
은행 앞, 은행잎이 뒹구는 여름날
금남로 길, 낙엽이 있다. 은행잎!
은행에 갔다 돌아오는 길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데
은행잎 몇 개 바람 따라 뒹굴고 있다.
초록빛 깜박거려 건넌 횡단보도,
인도의 보도블록, 네모진 것들
빈칸 같다, 내가 만났던 꼬마가 남겨 놓은.
떠나겠다고 지난 가을 내게
핸드폰 문자메시지를 보내온
23세가 된 한 꼬마가
그동안 아팠어요, 사실은
생활할 돈이 없어요,
라고, 오늘 아침 핸드폰으로 쏟아내던 말
이미 전에 만든 빈칸 같다.
너무 고독해 그녀는 사랑을 시도하고,
어쩌면 오늘도 한 사람과 같이 있을 텐데…….
사람 흔한 금남로에서
나는 돈과, 그녀와, 한 사람을 떠올리고 있다.
흐릿한 의식만 공백같이 남아버린
또 하루의 저녁이
여름날의 은행잎처럼 뒹굴고 있다.
빈 종이에 그린, 사선이
곡선으로 변해버리고
색칠하던 그림의 형상마저, 아련하게 변해버려
술 취해 다 잊고 싶은 나
의, 파편으로 사라지고 있다.
아는 것은 허덕이는 일상일 뿐
남아 있는 것은 지친 나 자신과
사라져 가는 나 자신의 이미지일 뿐
은행에서 내가 보낸 건 돈이 아니다.
내 비밀번호다. 아픔이 일어나지 않도록
무너져 가는 내 이름의
뒷그림자를 보냈을 뿐이다.
보도블록 같은 네모진 칸에 쓴 숫자는
금액이 아니다. 네모진
칸 속에 집어넣은 숫자는
체중계 위에서 왔다 갔다 하는
충당할 수 있는 내 현존의 이미지이다.
이 꼬마도 어느덧 현재의
자신을 숨기고 싶은
과거에다가 추억으로 남겨서는 안 될 듯한
낙엽을 떨구는 어른이 되어버렸는데
49세, 내 이상한 육신은
바람 끝 낙엽같이
오늘도 걸음을 흩뜨리고 있다
보도블록 네모진 칸 같은 허상들
석양빛 근처에서, 차츰 어두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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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28 ∽ 2006-06-14 <원작 원고>
→ 2013-01-05 오후 11:26. 박석준-시집 최종본 2012년9월22일-1(맹문재).hwp <원작 수정 개작>
= 시집_『카페, 가난한 비』(2013.02.12. 푸른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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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 원작> 2006-12-11 (보도블록/어쩌면 오늘도/보도블록)
은행 앞, 은행잎 뒹구는 여름날
금남로 길, 낙엽이 있다. 은행잎!
은행에 갔다 돌아오는 길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데
은행잎 몇 개 바람 따라 뒹굴고 있다.
초록빛 깜박거려 건넌 횡단보도,
인도의 보도블록, 네모진 것들
빈칸 같다, 내가 만났던 꼬마가 남겨 놓은.
떠나겠다고, 지난 가을에 문자메시지를 보낸
23세가 된 한 꼬마가
그동안 아팠어요, 사실은
생활할 돈이 없어요,
라고, 오늘 아침 핸드폰으로 쏟아내던 말
이미 전에 만든 빈칸 같다.
너무 고독해 그녀는 사랑을 시도하고,
어쩌면 오늘도 한 사람과 같이 있을 텐데…….
사람 흔한 금남로에서
나는 돈과, 그녀와, 한 사람을 떠올리고 있다.
흐릿한 의식만 공백같이 남아버린
또 하루의 저녁이
여름날의 은행잎처럼 뒹굴고 있다.
빈 종이에 그린, 사선이
곡선으로 변해버리고
색칠하던 그림의 형상마저, 아련하게 변해버려
술 취해 다 잊고 싶은 나
의, 파편으로 사라지고 있다.
아는 것은 허덕이는 일상일 뿐
남아 있는 것은 지친 나 자신과
사라져 가는 나 자신의 이미지일 뿐
은행에서 내가 보낸 건 돈이 아니다.
내 비밀번호다. 아픔이 일어나지 않도록
무너져 가는 내 이름의
뒷그림자를 보냈을 뿐이다.
보도블록 같은 네모진 칸에 쓴 숫자는
금액이 아니다. 네모진
칸 속에 집어넣은 숫자는
체중기 위에서 왔다 갔다 하는
충당할 수 있는 내 현존의 이미지이다.
이 꼬마도 어느덧 과거로
자신을 숨기고 싶은
과거에다가 추억을 남겨서는 안 될 듯한
낙엽을 떨구는, 어른이 되어버렸는데
49세, 내 이상한 육신은
바람 끝 낙엽같이
오늘도 걸음을 흩뜨리고 있다
보도블록 네모진 칸 같은 허상들
석양빛 근처에서, 차츰 어두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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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28 ∽ 2006-06-14 (블록보도/오늘도 어쩌면/블록보도) (원작 원교)
∽ 2006-12-11 오후 7:45. 박석준-가을비-1.hwp (보도블록/어쩌면 오늘도/보도블록) <교정 원작>
= 『석사학위 작품집』(20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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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2006-06-14 (블록보도/오늘도 어쩌면/블록보도)
은행 앞, 은행잎 뒹구는 여름날
금남로 길, 낙엽이 있다. 은행잎!
은행에 갔다 돌아오는 길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데
은행잎 몇 개 바람 따라 뒹굴고 있다.
초록빛 깜박거려 건넌 횡단보도,
인도의 블록보도, 네모진 것들
빈칸 같다, 내가 만났던 꼬마가 남겨 놓은.
떠나겠다고, 지난 가을에 문자메시지를 보낸
23세가 된 한 꼬마가
그동안 아팠어요, 사실은
생활할 돈이 없어요,
라고, 오늘 아침 핸드폰으로 쏟아내던 말
이미 전에 만든 빈칸 같다.
너무 고독해 그녀는 사랑을 시도하고,
오늘도 어쩌면 한 사람과 같이 있을 텐데…….
사람 흔한 금남로에서
나는 돈과, 그녀와, 한 사람을 떠올리고 있다.
흐릿한 의식만 공백같이 남아버린
또 하루의 저녁이
여름날의 은행잎처럼 뒹굴고 있다.
빈 종이에 그린, 사선이
곡선으로 변해버리고
색칠하던 그림의 형상마저, 아련하게 변해버려
술 취해 다 잊고 싶은 나
의, 파편으로 사라지고 있다.
아는 것은 허덕이는 일상일 뿐
남아 있는 것은 지친 나 자신과
사라져 가는 나 자신의 이미지일 뿐
은행에서 내가 보낸 건 돈이 아니다.
내 비밀번호다. 아픔이 일어나지 않도록
무너져 가는 내 이름의
뒷그림자를 보냈을 뿐이다.
보도블록 같은 네모진 칸에 쓴 숫자는
금액이 아니다. 네모진
칸 속에 집어넣은 숫자는
체중기 위에서 왔다 갔다 하는
충당할 수 있는 내 현존의 이미지이다.
이 꼬마도 어느덧 과거로
자신을 숨기고 싶은
과거에다가 추억을 남겨서는 안 될 듯한
낙엽을 떨구는, 어른이 되어버렸는데
49세, 내 이상한 육신은
바람 끝 낙엽같이
오늘도 걸음을 흩뜨리고 있다
블록보도 네모진 칸 같은 허상들
석양빛 근처에서, 차츰 어두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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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28 ∽ 2006.06.14. 22:26.메. 박석준-가을 비.hwp (블록보도/오늘도 어쩌면/블록보도)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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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상황
2005-07-27. 광주시 금남로 – 유동. 42kg정도(49살로 가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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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나의 시론; 3. 소외와 번민
하이데거는 신이 부재하는 시대를 “옹색한 시간”으로 보고 있으며, 두 겹의 허무와 결핍으로 이루어진 시간으로, 좀 더 간단한 용어로는 ‘밤’의 시간으로 규정하고 있다. 나는 현대라고 하는 이 옹색한 시간이 가장 집약적으로 나타나는 공간을 도시라고 생각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 도시에서는 인간과 인간 사이, 인간과 사물, 인간과 세계 사이의 관계가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다. 졸시 「별이 빛나는 밤」, 「가을비 ― 물컵 속의 재」, 「은행 앞, 은행잎이 뒹구는 여름날」 등은 그런 도시에서 살아가면서 느끼는 번민과 소외를 형상화해 보려고 한 예이다.
번민은 어디에서 오는가. 여러 원인을 찾을 수 있겠지만, 내 생각으로는 ‘바람’, 즉 지향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번민은 지향이 색을 잃어갈 때, 곧 ‘바램(퇴색)’이 되어갈 때 격렬하게 움직인다. 시 「은행 앞, 은행잎이 뒹구는 여름날」에서는 바로 이런 생각을 담으려고 했다.
이 시에서 “은행잎 몇 개 바람 따라 뒹굴고 있”는 금남로에 잠깐 멈춰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는 자리는 “횡단보도”이다. 현대라는 이 시간에는 차도, 인도, 거리 등 많은 길들이 존재하지만, 人道(인도)보다 인간을 더욱 머뭇거리게 하는 곳은 횡단보도이다. 그런데 횡단보도 앞에 멈춰서는 그 순간부터 파란불을 찾는 것이 인간이다.
“疎外(소외)란 인간이 그 자신을 이질적인 존재로서 경험하는 경험의 한 유형을 의미한다. 소외된 인간은 그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있듯이 그 자신으로부터도 떨어져 있다”라고 프롬은 말하고 있다. 프롬에게 소외의 주체는 類(류)의 의미를 강하게 띠고 있는 까닭에 인간 일반의 개념인 平均人․現代人(현대인)이란 용어와 구별 없이 혼용되고 있다. 내가 파악한 소외의 주체는 이뿐 아니라 ‘한 사람의 행위’라든가 ‘非平均人(비평균인)’인 경우가 있다는 점에서 조금 다르지만 말이다.
시 「은행 앞, 은행잎이 뒹구는 여름날」은 2005년 7월 27일의 나(49살로 가는 박석준)에게 다가온 일과 나 자신에 관한 의식의 흐름을 시적 형식으로 형상화한 글이다.
이 시에서 내가 그려내려 한 특별한 인물은 “꼬마(23세의 남자)”나 “그녀(어떤 남자를 사랑하고 싶은 여자)”가 아니라 “나”이다. “나”는 ‘어떤 사람들’로부터 도피해 있는 존재이다. 이 시에서 ‘나’의 여러 행위들은 ‘나’ 자신의 진정성 문제와 연관되는 것으로, 이 진정성이 “석양빛 근처에서” 흔들리는 가운데 ‘나’는 거듭 고독을 맛보고 있다.
하지만 ‘나’의 진정성을 흔들리게 하는 것은 보다 근본적으로 ‘나’ 자신의 결여, 즉 다른 사람에 비해 내게 있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이 결여는 신체상의 결함, 성격상 결함, 지식이나 정보의 부족, 돈 없음 등 극히 개인적인 사정과 연관되는 것이 될 수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결여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소외가, 존재의 진정성을 흔들어 존재를 추상화하고 우수를 낳기도 하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출현하게 되는 갖가지 소외 현상은 그 가장 중요한 원인이 사유재산과 분업 등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생산양식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와서는 소외가 생산양식만으로는 명확하게 해석할 수 없는 극히 개인적인 관계나 상황에서도 발생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시 「은행 앞, 은행잎 뒹구는 여름날」은 그런 맥락에서 인간의 소외문제를 다루려고 한 시이다.
나는 이 시에서 은행에 갔다 오는 길에서 겪은 풍경과, 뇌리에서 펼쳐지는 풍경을 겹쳐 담으려고 했다. 등장하는 인물은 세 사람이며, 그 중 갈등을 겪고 있는 인물은 두 사람이다. 이 갈등은 겉으로는 돈을 매개로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소외라는 측면에서 보면 한 사람(나)만이 소외되고 있다. 물론 여기서의 소외 근원을 생산양식과 관련해 “허덕이는 일상”에서 찾을 수도 있다. 하지만 더욱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갈등(번민)의 이유는 ‘함께 있지 못함’, ‘사랑의 상실’, ‘연령 차이에 따르는 도덕성 문제’, ‘인간관계 문제’, ‘불안한 신체와 같은 한 개인의 ‘비평균인이라고 해야 옳다.
이 시에는 “칸 속에 집어넣은 숫자는/체중기 위에서 왔다 갔다 하는/충당할 수 있는 내 현존의 이미지”라는 표현이 있다. 이는 아날로지에 의한 은유로, 휠라이트에 따르면 치환은유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흔히 나타나는 돈으로 인한 갈등, 돈과 인간이 뒤얽혀지면서 생기는 분열과 분리 등을 입금행위와 관련해 의미부여하고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물론 이 입금 행위는 “내 비밀번호” 또는 “내 이름의 뒷그림자”를 매개로 하는 모험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일상의 인간에게는 나를 구속하는 것과 대립하거나 갈등하는 것이 기본적인 존재방식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나를 구속하는 것에 대해 뭔가 깊은 해석을 하면서 그 구속에 자기 자신을 던져버리는 이중적인 시도를 하는 존재가 인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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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해설
비극적 주체의 절망과 희망
이러한 점에서 생각하면 자본주의적 근대에 대한, 특히 자본 자체에 대한 시인 박석준의 비판 역시 매우 도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우선 “구르는 차 안에서/돈을 세며 ‘돈을 세는 사람’을/바라본다. 다시 나는/돈을 세며 ‘돈을 세는 사람’을,/‘나’를”(「돈을 세며, ‘돈을 세는 사람’을)과 같은 그의 시를 통해 확인이 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사람이 얼어 죽어도/냄새나는 돈, 살 길 막막한/내 머릿속을 항상 떠다닌다”(「길이 떠는 겨울」) 라고 하며 자본에 대해 비판하기도 한다.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단적으로 상징하는 것이 은행이거니와, 은행과 관련해 자신이 느끼는 멜랑콜리를 「은행 앞, 은행잎이 뒹구는 여름날」과 같이 노래하기도 하는 것이 그이기도 하다.
이 시에서 그는 은행잎이 구르는 금남로의 “은행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이런저런 몽상에 빠진다. “떠나겠다고 지난 가을 내게 핸드폰 문자메시지를 보내온” 여자, “그동안 아팠어요, 사실은/생활할 돈이 없어요”라고 고백한 여자와 돈과 한 사람을 떠올리기도 하는 것이 이 시에서의 그이다. 말하자면 그는 “은행잎 몇 개 바람 따라 뒹굴고 있”는 금남로의 한 은행 앞에서 “돈과, 그녀와, 한 사람”에게서 받은 실연의 상처를 되새기고 있는 것이다.
주지하다시시피 멜랑콜리를 불러일으키는 주된 원인은 실연의 상처이다. 하지만 이때의 실연의 대상이 언제나 이성적 존재로 한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트라우마로 내재하기 쉬운 실연의 상처는 형제나 부자간에도 충분히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상처를 만드는 실연의 대상이 조국일 수도 있고, 고향일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어쨌거나 그의 시가 지니고 있는 멜랑콜리 역시 실연의 상처와 함께 하는 정신적 트라우마와 깊이 관련되어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물론 그의 시에 나타나 있는 왜곡된 정서, 병적 정서만으로 그가 겪은 실연의 상처를 제대로 알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그의 시에는 이처럼 저 자신의 주관적인 정서, 곧 고독이나 소외, 상실이나 환멸 등과 함께하는 멜랑콜리가 직접적으로 토로되어 있는 예가 적잖다. 주체의 내면이 겪는 고통이나 아픔, 슬픔이나 설움 등을 직접적으로 토로하고 있는 것이 그의 시의 한 특징이라는 것이다.
―이은봉 시인, 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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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상) 2005-07-28
26
금남로 길, 낙엽이 있었다. 은행잎!
은행에 갔다 돌아오는 길 횡단보도에 나는 서 있는데, 은행잎 몇 개가 바람 따라 뒹굴고, 나는 초록빛 깜박거리는 걸 보고 건너갔다. 돌아가는 길이었다.
블록보도 인도에 네모진 것들, 빈 칸 같았다. 내가 만나던 사람이 남겨 놓은.
나를 부르던, 삶이 괴로워 나를 부르던 한 꼬마는 삶 때문에 돈을 원했다. 돈이 없으면 아픔이 오래가고 깊어진다는 걸 6개월쯤 전부터, 어쩌면 그 이전부터 알았을 텐데.
아는 것이 하루의 허덕이는 일상뿐
아는 것이 지쳐있는 자신과 없어져 가는 자신의 이미지일뿐.
그보다 먼저 상심했던 사람은 괴로움 때문에 사랑을 시도하고,
오늘도 아마 한 사람하고 같이 있을 것이다.
사랑보다도 아픔을 느끼지 않기 위하여.
피로와 괴로움 때문에 돈을 그리워하고, 사람을 찾아다니는
흐릿한 의식만이 그 뒤에 남아 버리는
사람의 밤은
여름날의 낙엽처럼 뒹군다.
사선으로 그렸던 그림이 곡선으로, 색깔 칠하던 그림이 그림 속 형상마저 아련하게 만드는
취하고 싶도록 잊고 싶은 자아 한 파편이 없어지고 마는
은행에서 내가 보낸 건 돈이 아니었다.
내 싸인을 보냈을 뿐이다.
아픔을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한,
지쳐가는 이름의 뒷그림자를 보냈을 뿐이다.
블록보도같은 네모진 칸에 쓴 숫자는 금액이 아니었다. 네모진 속에 들어간 숫자는
체중기 위에서 왔다갔다하는
충당할 수 있을 정도의 나의 현존의 이미지였다.
한 꼬마도 어느덧 과거로 자신을 숨기고 싶은,
과거에다가도 관계의 추억을 남겨서는 안 될 성싶은
낙엽을 떨구고 어른이 되어 버렸는데,
26
이상한 육신이 낙엽 같이 뒹구는데.
블록보도 네모 같은 허상들이
어두워지고 있는데.
밤
길을
떠나야 하는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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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28. 04:55. 카페 가난한 비_26 (발상)
→ https://cafe.daum.net/poorrain/4Ps/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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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023-05-11_1721.06. 광주시 금남로 – 유동사거리, 횡단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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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1_17:21.32. 광주시 금남로 – 유동사거리
.
2023-05-13_17:37. 광주시 유동사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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