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78 내가 모퉁이로 사라지고 탁자 앞에 나타났을 때
나의 의식의 흐름 (5), 실존주의 모더니즘 (31) 나의 무비즘 (64)
2005-07-19
박석준 /
<원작>=등단작 2008-09-06
내가 모퉁이로 사라지고 탁자 앞에 나타났을 때
담배 연기가 그 정경을 흔들리게 하고 있었어요.
창 밖 시가의 불빛들이 검푸른 밤과 마찰하고 있었어요.
아직 소녀였을 때 내가 처음으로 찾아갔던 날
술을 달라 했던 게 분명해요. 여자가
비스듬해진 얼굴 속 남자의 지긋한 눈길에 부딪쳤으니까요.
그 술은 내가 세상과 접하고 싶었던 첫 욕망이었죠.
벌써 4년 전이지만.
그는 여자가 쥐어주는 잔에 잠시 눈길을 주었어요.
투명한 속에 불빛이 흔들거리고 있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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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19 ∽ 2006-05-24
∽ 2008.09.06. 10:50.메. 박석준-08종합1.hwp <원작>
= 『문학마당』 24호(2008.09.27.) 신인상 당선작 4
= 『석사학위 작품집』(20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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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상황
없음(가상: 2005-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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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나의 시론; 3. 소외와 번민
하이데거는 신이 부재하는 시대를 “옹색한 시간”으로 보고 있으며, 두 겹의 허무와 결핍으로 이루어진 시간으로, 좀 더 간단한 용어로는 ‘밤’의 시간으로 규정하고 있다. 나는 현대라고 하는 이 옹색한 시간이 가장 집약적으로 나타나는 공간을 도시라고 생각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 도시에서는 인간과 인간 사이, 인간과 사물, 인간과 세계 사이의 관계가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다. 졸시 「별이 빛나는 밤」, 「가을비 ― 물컵 속의 재」, 「은행 앞, 은행잎이 뒹구는 여름날」 등은 그런 도시에서 살아가면서 느끼는 번민과 소외를 형상화해 보려고 한 예이다.
번민은 어디에서 오는가. 여러 원인을 찾을 수 있겠지만, 내 생각으로는 ‘바람’, 즉 지향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번민은 지향이 색을 잃어갈 때, 곧 ‘바램(퇴색)’이 되어갈 때 격렬하게 움직인다. 다음의 시 「별이 빛나는 밤」에서는 바로 이런 생각을 담으려고 했다.
이 시의 전반부(「별이 빛나는 밤」)에는 “낮의 햇살이 쏟아져 내리는” 교회, 즉 神(신)의 세계가 있고, 후반부(「내가 모퉁이로 사라지고 탁자 앞에 나타났을 때」)에는 “시가”의 불빛이 “밤”과 마찰하고 있는 현대가 있다. “나”에게 “시가”의 시간은 알고 싶어하는 “세상”이며, 그것에의 접근을 부추기는 역할을 하는 것은 “술”이다. 물론 알고 싶지 않다고 해도 밤이라는 시간에 ‘술’은 사람의 존재성을 더욱 강렬하게 드러내는, 그리하여 ‘사랑하고 싶은’ 사람에 대한 욕망을 발산하고 싶은 촉매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이 욕망을 불러들이는 계기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 주체(나)가 “허술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리라. 허술하게 여겨진다는 것은 이미 결여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 된다.
전반부(「별이 빛나는 밤」)에서 “교회” 앞에 잠깐 멈춰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는 자리는 “횡단보도”이다. 현대라는 이 시간에는 차도, 인도, 거리 등 많은 길들이 존재하지만, 人道(인도)보다 인간을 더욱 머뭇거리게 하는 곳은 횡단보도이다. 그런데 횡단보도에 멈춰서는 그 순간부터 파란불을 찾는 것이 인간이다.
“疎外(소외)란 인간이 그 자신을 이질적인 존재로서 경험하는 경험의 한 유형을 의미한다. 소외된 인간은 그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있듯이 그 자신으로부터도 떨어져 있다”라고 프롬은 말하고 있다. 프롬에게 소외의 주체는 類(류)의 의미를 강하게 띠고 있는 까닭에 인간 일반의 개념인 平均人·現代人(현대인)이란 용어와 구별 없이 혼용되고 있다. 내가 파악한 소외의 주체는 이뿐 아니라 ‘한 사람의 행위’라든가 ‘非平均人(비평균인)’인 경우가 있다는 점에서 조금 다르지만 말이다.
시 「내가 모퉁이로 사라지고 탁자 앞에 나타났을 때」에서 내가 그려내려 한 ‘나’는 실내의 어떤 사람으로부터 ‘부름’을 기다리고 있는 존재이다. 나는 이러한 존재를 “술을 달라고 했던”, “비스듬해진 얼굴 속, 남자의 지긋한 눈길에 부딪쳤으니까요”라는 행위를 통해 묘사해 보려 했다. 이 시에서 ‘나’의 여러 행위들은 ‘나’ 자신의 진정성 문제와 연관되는 것으로, 이 진정성이 흔들리는 가운데 ‘나’는 거듭 고독을 맛보고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출현하게 되는 갖가지 소외 현상은 그 가장 중요한 원인이 사유재산과 분업 등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생산양식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와서는 소외가 생산양식만으로는 명확하게 해석할 수 없는 극히 개인적인 관계나 상황에서도 발생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모퉁이로 사라지고 탁자 앞에 나타났을 때」는 「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제목으로 묶여진 시의 후반부로 창작되었고 『석사학위 작품집』에 수록되었다. 즉, 두 상황이 이어진 것이다. 그런데 두 부분이 따로따로 등단작이 된 까닭에 시집에는 이어진 두 편의 글로 수록한 것이다(그리고 제목을 「내가 모퉁이로 사라졌다가 다시 탁자 앞에 나타났을 때」로 바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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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수정 개작> 2013-01-06
내가 모퉁이로 사라졌다가 다시 탁자 앞에 나타났을 때
담배 연기가 그곳의 정경을 흔들리게 하고 있었지요.
창밖 시가지의 불빛들이 검푸른 밤과 마찰하고 있었고요.
아직 소녀였을 때 처음으로 찾아갔던 그날, 나는
술을 달라고 했던 것이 분명해요. 여자가
비스듬해진 얼굴 속, 남자의 지긋한 눈길과 부딪쳤으니까요.
그날 술은 내가 세상과 접하고 싶었던
첫 욕망이었죠, 벌써 4년 전의 일이지만.
남자는 여자가 쥐어주는 잔에 잠시 눈길을 주었어요.
투명한 그 속에선 불빛이 흔들리고 있었고요.
불빛만 흔들린 것이 아니에요. 나도, 여자도 흔들리고 있었지요.
그렇게 세상이 시작되었지요. 슬픔도 시작되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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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19 ∽ 2008-09-06 <원작>
→ 2013.01.06. 09:49.메. 박석준 시집 최종본 2013년1월 5일 8편 중 5편.hwp <원작 수정 개작>
= 시집_『카페, 가난한 비』(2013.02.12. 푸른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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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 2006-05-24
내가 모퉁이로 사라지고 탁자 앞에 나타났을 때
담배 연기가 그 정경을 흔들리게 하고 있었어요.
창 밖 시가의 불빛들이 검푸른 밤과 마찰하고 있었어요.
아직 소녀였을 때 내가 처음으로 찾아갔던 날
술을 달라 했던 게 분명해요.
여자가 비스듬해진 얼굴 속 남자의 지긋한 눈길에 부딪쳤으니까요.
그 술은 내가 세상과 접하고 싶었던 첫 욕망이었죠.
벌써 4년 전이지만.
그는 여자가 쥐어주는 잔에 잠시 눈길을 주었어요.
투명한 속에 불빛이 흔들거리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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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19 ∽ 2006.05.24. 14:00. 카페 가난한 비_별이 빛나는 밤 (초고 원본)
→ https://cafe.daum.net/poorrain/F1vW/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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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상) 2005-07-19
26
아마 허술하게 여겨져서 그럴 거예요.
어째서 그렇게 단정할 수 있는 거지?
바람이 불 때 그렇게 생각되었어요. 어느 날! 바람과 바램이 틀리다는 말을 했던 그 사람 생각이 몹시 강렬했던 날이었죠.
그 사람은 존재하지 않아. 그리고 그에 대한 말로 내게 아픔을 들어서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물론 넌 다시 떠나가도 좋아.
퇴색한 벽지뿐이었다. 바램이란 의미 이전에 바람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은. 벽엔 ‘르느 강의 별이 빛나는 밤’ 그림의 사진이 액자에 끼워져 있었다. 별은 없는 것 같았다. 퇴색한 벽지 때문에. 별을 덮치고 스치는 담배 연기 때문에.
파리-텍사스, 말 없는 그 음악이 네가 남긴 작별 인사였음을 지난해에 처음으로 알게 되었지. 넌 날 떠나가면서 아마 번민에 빠졌을 테지만, 난 너의 연인이 아니었다는 걸 생각해 본다면 어쩌면 너의 사치였는지도 모르지. 넌 너의 연인을 나와 병치하려 했던 것 때문에 좌절했겠지만, 나는 뭐냐? 나는 다안 사람이었다는 것 하나만으로 괴로워했지. 그뿐이야.
술 한 잔 권하고 싶었어요.
여자가 코너로 사라지고 탁자 앞에 나타났을 때 담배 연기가 그 정경을 흔들리게 하고 있었다. 창 밖 시가의 불빛들이 검푸른 밤과 마찰하고 있었다.
제가 처음으로 찾아왔던 날 술을 달라 햇던 게 분명해요. 아직 소녀였을 때.
여자는 비스듬해진 얼굴 속의 남자의 지긋한 눈길을 접하였으나,
그 술엔 제가 세상과 접하고 싶었던 첫 욕망이었었죠. 벌써 7년 전이지만.
그는 여자가 쥐어주는 잔에 잠시 눈길을 주었다. 투명한 속에 불빛이 흔들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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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19. 02:37. 카페 가난한 비_26 (발상)
→ https://cafe.daum.net/poorrain/4Ps/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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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PHOTO0508100002. 2005-08-10 광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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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0508100008. 2005-08-10. 광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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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imilar view of the site, 2008
1920px-France_Arles_Reattu_LaCroix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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