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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 (창작년도)

나의 무비즘 (151), 실존주의 모더니즘 (82) 10월, 산책로 / 박석준

나의 신시 192 10월, 산책로

나의 무비즘 (151), 실존주의 모더니즘 (82)

2019-10-28 / 10-29

박석준 /

10산책로

 

 

      1

  바로 아래 큰길가에 병원과 소방서, 은행, 교회, 피시방,

  상점들이 서 있는 시가를, 서성이다 바라보았을 뿐.

  사람들 있고 햇빛 있는 오후 5시의 산책로로

  시월 28일, 네 달 만에 나는 들어간다.

  나는, 새로운 생각을 떠올리려고,

  햇빛 받는 길을 얼마나 걸으면 다리가

  머리가 휘청이는지 체크하려고산책하려고.

  산책로 옆 동산 숲 나무들은 아직 청록이 남아

  산책로 가 시월의 벚나무들은 가지들만 남아

  어떤 낙엽들은 바람, 비로 산책로에 남아,

  진홍 티셔츠 나에게 더 좋을 것 같아서.

 

  이 산책로에 옷 입은 개가 보이지 않아,

  쉬거나 거니는 사람이 돈 없는 사람같이 보이지 않아,

  나는 마음이 편해진다. 산책로에서, 햇빛 속에서

  30초를 못 걷고 머리가 어지러워 휘청이고

  다리가 아파 쉬었다 가야 하지만, 나는

  현실과 나와 새로운 것을 생각한다.

  산책로 중간에서 갈라진 숲길

  입구 옆 텃밭 막대 위에, 새 하나 날다 앉고,

  텃밭에서 고양이가 산책로를 피융 가로지를 때

  산책로 아래 진입로에서 야옹 다른 고양이가 맞는

  낯선 상황에 오늘 산책로에서 내 머리는 새로워진다.

 

  나의 이마와 목뒤에 시간이 낳아 흘려내는 서늘한 가을.

  진홍 티셔츠 나 올봄엔 숲길을 조금 올라갔는데.

  사람들 가는 숲길도 갈 수 없는 게 아쉬워,

  햇빛 속에서 5분을 감당하기 어려워,

  내 낡음들이 욕망과 그리움 사이에 떨어져,

  나는 갈라진 두 길에서 돌아서 알 수 없는 미래로 간다.

 

      2

  시월 29일 아파트들 사이에 새소리,

  야옹 소리, 차 소리, 사람 소리 잠시 지나가고

  오후 5시 아파트 베란다 위 내 이마에 햇빛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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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9(초고), 2020-02-29 <원작>

= 2020.03.09. 05:11.메. 박석준-3시집-0618-12-푸105(교)-4-2.hwp <원작 원본>

= 2020.09.03. 17:46.메. 10월.hwp <원작 원본>

= 『푸른사상』 34호/2020 겨울호(2020.12.15. 푸른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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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상황

    2019-10-28, 2019-10-29. 광주시 푸른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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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객관적 해석

  “나”는 ‘시월 28일에 산책로 들어간다.’라는 행동을 선택하고 그 행동을 하게 된 이유 7가지를 밝힌다. 1연에 이 이유가 ‘-려고’, ‘남아’, ‘-아서’라는 형태로 변주되어 표현되었다.

  “나”는 “산책로에서” 자신에게 벌어지는 사정을 2연에 4가지로 설명한다. (→ 편해진다 / 아파서 쉬었다 간다 / 생각한다 / 새로워진다)

  그리고 “나”는 “갈라진 두 길에서 돌아서” “미래로 간다”라는 행동을 선택하고 그 행동을 하게 된 이유 3가지를 3연에 밝힌다. (→ 아쉬워 / 어려워/ 떨어져)

  “나”는 ‘시월 28일에 자신을 지나간 소리를 “2” 부분에 진술한다. (→ 새소리 / 야옹 소리 / 차 소리 / 사람 소리 )

  「10월, 산책로」는 2개의 부분(2개의 날 ― 시월 28일은 “1”부분, 시월 29일은 “2”부분)으로 구성하여 “나”와 관련한 사정이나 상황을 설명하거나 진술하는 형태로 시상을 전개한다. 두드러지게 사용한 수사법은 열거법이다. 그런데 제목과는 달리 “2” 부분은 산책로에서 펼쳐지는 상황은 없다. “아파트 베란다”에 있는 “나”와 관련한 상황을 말한다. 그리하여 “나”가 산책로로 들어갈 수 없는 몸이 되었음(병이 심각해짐)을 유추하게 한다. 이것이 “1” 부분의 “나 올봄엔 숲길을 조금 올라갔는데./사람들 가는 숲길도 갈 수 없는 게 아쉬워,/햇빛 속에서 5분을 감당하기 어려워,”라는 표현에 암시되어 있다. 이 표현에서 글의 마지막 장면 “베란다 위 내 이마에 햇빛이 쏟아진다.”를 내포한 것임을 유추하게 된다. 이 글은 몹시 아픈 “나”가 “사람들 가는 숲길”도 갈 수 있는 몸이 되기를 바라는 심정(자기 연민)을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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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산책로」는 아픔(병)을 벗어나고 새로운 것을 찾으려는 욕망으로 행위(산책)를 하는 사람의 모습이 형상화되었다. 그런데 낡음(병들고 늙음. 노쇠함)이 ‘욕망과 그리움 사이’를 낳고 ‘가고 싶은 시간(10월)에 가지 않은 길’을 만들어버려서 그것에 대한 화자의 안타까움(실존주의 멜랑콜리=자기 연민)을 흘려낸다. 이 글엔 문장의 모양에 신경을 써서 전체 행들이 만들어낸 모양이 산책하는 형태를 이루어낸다.

  “병원과 소방서, 은행, 교회, 피시방, 상점들”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대변한 것들이다. 그런데 화자인 “나”는 이것들을 서성이다 바라보았을 뿐 산책로로 들어간다. 이유는 “새로운 생각을 떠올리려고”, “얼마나 걸으면 다리가 머리가 휘청이는지 체크하려고”, “산책하려고”이다. 그리고

    “산책로 옆 동산 숲 나무들은 아직 청록이 남아

    산책로 가 시월의 벚나무들은 가지들만 남아

    어떤 낙엽들은 바람, 비로 산책로에 남아,

    진홍 티셔츠 나에게 더 좋을 것 같아서”

  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건강을 체크하고 산책로의 분위기에 젖어 산책하고 새로운 생각을 떠올리려는 욕망이 있어서 산책로로 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몸(노쇠함. 낡음) 때문에 화자는 이 욕망을 다 실현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이것이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개인의 인생인가? 라는 물음으로 유도한다.

  화자에겐 자본주의 한국 사회의 현실 양태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있다. “이 산책로에 옷 입은 개가 보이지 않아, 쉬거나 거니는 사람이 돈 없는 사람같이 보이지 않아, 나는 마음이 편해진다.”라는 생각에서 그것을 엿보게 한다. “옷 입은 개”가 왜 산책로에 있는가? ‘산책로’는 ‘산책하는 길’이며 ‘산책하다’는 ‘(사람이)한가로이 가볍게 이리저리 거닐다.’인데. 사람이 있어야 할 곳에 “옷 입은 개”가 있다는 것은 그 주인의 과시욕(조금 돈 많음을 과시하려는 욕망)이나 욕구불만이 가져온 일이 아닐까? 화자는 “쉬거나 거니는 사람이 돈 없는 사람같이 보이지 않아” 마음이 편해진다 하여 이 사회에 ‘돈에 시달리지 않는 삶’이 충만되어야 함을 전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옷 입은 개”는 ‘조금 돈이 많아서 돈 자랑하려는 사람이 돈 없는 사람 앞에서 하는 돈 자랑’으로 해석될 수 있다.

  화자는 노쇠하지만 ‘옷 입은 개가 산책로에 있는 사회(마을)’가 아니라 “아파트들 사이에 새소리, 야옹 소리, 차 소리, 사람 소리”가 항상 공존하는 사회(마을)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라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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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작동기와 출판 과정

  나(박석준)는 고등학생 시절에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1874∼196)의 「가지 않은 길. The Road Not Taken」에 심취했다. 이 글은 나에게 실제로 일어난 일을 시 형식으로 묘사한 실화이다.

  2017년 2월말 퇴직을 하고 그해 6월에 길에서 넘어져 왼다리의 발등뼈가 깨졌다. 뼈는 8개월이 지난 2018년에 다 붙었지만, 이상하게도 2019년 3월부터 무릎 위 다리가 아프고 붓고 자주 빈혈증, 현기증이 일어났다. 집 앞 병원에서 심장병 때문이라고 하여 약을 처방했지만, 이 증세는 더욱 짙어졌다. 2019년 9월에 접어들면서 날이 갈수록 다리가 가늘어졌는데 이상하게도 몸은 점점 부어 체중이 늘어갔다. 길에서 1분쯤 걸으면 머리가 어지러워서 길에 앉아 쉬거나 급히 돌아오곤 했다. 10월 20일엔 외출하기 힘들 정도로 다리가 가늘어졌는데 54킬로를 넘은 완전 기형이 되어버렸다(예전에 내가 서 있는 체중계에서 50이 넘은 숫자를 확인한 적은 50살 때 어느 날뿐이었다. 그때도 몸이 아프고 부어 있었다). 얼굴, 몸, 팔 모두 부은 탓이었다. 그 후로 다리는 더 가늘어졌고 10월 20일부터는 잠을 자다가 발에 통증이 와서 일어나곤 했다.

  어쩔 수 없이 10월 28일 월요일에 다른 병원을 찾았다. 병(심장병과 대동맥경화증)으로 인해 머리에 어지럼증이 생기고 다리에 통증이 오고 몸이 붓는 것이며 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 그런데 수술에 성공한다는 장담은 못 한다고 진단을 했다.

  9월 이후로는 내가 외출을 못 함으로써 차츰 소통이 단절되어 10월 중순에는 고독감을 느꼈는데, 병원에서 나와 집 앞에 오니 단풍나무의 빨간색이 눈에 띄었다. 그러고는 내 마음을 파고들었다. 귀가한 나는 만일을 대비해, 쓴 글들을 정리하거나 새로 글을 쓰거나 하면서 인생을 정리해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그날부터 그 작업에 들어갔다. 그리하여 맨 먼저 쓴 글이 「10월, 산책로」(초고)이다.

  10월 29일엔 다리에 통증이 깊어져서 봄부터 산책로에서 해오던 산책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 후로는 몸은 부었지만 땀이 나고 체중은 점차 줄어들었다. 산다는 건 눈과 다리로 사람에게도 걸어간다는 것! 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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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1874~196) /

가지 않은 길

The Road Not Taken

 

 

  노란 숲 속에 길이 둘로 갈라져 있었다.

    Two roads diverged in a yellow wood

  안타깝게도 두 길을 한꺼번에 갈 수 없는

    And sorry I could not travel both

  한 사람의 여행자이기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

    And be on traveler, long I stood

  한 길이 덤불 속으로 구부러지는 데까지

    And looked down one as far as I could

  눈 닿는 데까지 멀리 굽어보면서;

    To where it bent in the undergrowth;

 

  그리고 다른 한 길을 택했다, 똑같이 아름답고

    Then took the other, as just as fair

  아마 더 좋은 이유가 있는 길을,

    And having perhaps the better claim,

  풀이 우거지고 별로 닳지 않았기에;

    Because it was grassy and wanted wear;

  그 점을 말하자면, 발자취로 닳은 건

    Though as for that, the passing there

  두 길이 사실 비슷했지만,

    Had worn them really about the same,

 

  그리고 그날 아침 두 길은 똑같이

    And both that morning equally lay

  아직 밟혀 더럽혀지지 않은 낙엽에 묻혀있었다.

    In leaves no step had trodden black.

  아, 나는 첫 길은 훗날을 위해 남겨두었다!

    Oh, I kept the first for another day!

  길은 계속 길로 이어지는 것을 알기에

    Yet knowing how way leads on to way,

  내가 과연 여기 돌아올지 의심하면서도,

    I doubted if I should ever come back,

 

  어디에선가 먼 먼 훗날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나는 한숨 쉬며 이 이야기를 하고 있겠지: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그리고 나는-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나는 사람들이 덜 걸은 길을 택했다고,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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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s://youngdaejo.tistory.com/9

      [Living, Learning and Loving:티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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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푸른마을 산책로. 20191029_091555

  푸른마을 산책로. 20191029_09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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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마을 산책로. 20191029_091922

  푸른마을 산책로. 20191029_09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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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마을 산책로. 20191029_092206

  푸른마을 산책로. 20191029_09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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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1874~196).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1874~196). 미국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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