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40-1 11월
나의 무비즘 (39), 실존주의 모더니즘 (4)
1992-11-초
박석준 /
<수정 개작> 원고 2013-91-06
11월
마당에 날아든 비둘기 떼가
모이를 찾아 두리번거리며 걷는다.
아무래도 냉장고 하나는 있어야겠다.
노파가 문을 열고 묻는다.
비가 온다. 빗속의 사내
노파의 얼굴 밖만 바라보고 있다.
이젠 돈이 없어요, 라고 말해야 할 것 같은데
등 뒤에선 아파트에 사각의 유리창들을 달고 있다.
철근과 콘크리트가 아파트들을 만들고 있다.
아무리 없어도 김장은 해야겠고…….
다시 노파가 묻는다.
TV에서는 선거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다.
말을 요구와 충당으로 살리지 못한 채
그는 마루에 걸터앉아 있다.
비둘기는 어디론가 가버리고
마당엔 비가 내리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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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월 하순 ∽ 2007.12.04. 22:33 이전. (「레인 맨」 초고)
→ 『석사학위작품집』(2008.09.08.) <「레인맨」 원작>
→ 2013-01-06 오전 6:01. 박석준-시집 최종본 2013년1월5일-2(내가 모퉁이로 사라졌다가).hwp <수정 개작 「11월」 원본>
= 시집_『카페, 가난한 비』(2013.02.12. 푸른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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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상황
1992-11-초순
*1992년 12월 18일 (금): 14대 대통령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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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객관적인 해석
『카페, 가난한 비』는 매우 신선한 시집이오. 박선생의 시는 진솔한 감흥이 전류처럼 전해옴을 느끼게 되오. 이건 보통의 시가 아니다, 좋은 시라는 것을 대뜸 느낄 수 있었소.
「11월」 “마당에 날아든 비둘기 떼가/ 모이를 찾아 두리번거리며 걷는다/ 아무래도 냉장고 하나는 있어야겠다/ 노파가 문을 열고 묻는다/ 비가 온다, 빗속의 사내” 5행의 시행이 서로 아무런 연결고리도 없이 각자 각문장인데 어찌 이것이 시가 될까. 운문의 특징이고 현실과 진실, 외면과 내면 별 볼 일 없는 11월을 별 볼 일 있는 특별한 것으로 만드는 시인의 의식의 조각들, 불연속적인 문장이지만 보이지 않는 새로운 시적 질서를 가지고 있소. 끝 두 행이 없었다면 작자의 생각을 짐작도 못 했을 것이오. 이것이 왜 시냐. 설명할 수 있다면 시가 아닐지도 모르오. 느끼는 것이 시이니까. 설명이 가능하고 논리적으로 해명된다면 그것은 주장이지 시가 아닐 것이오. 박석준 시인은 흥취를 (진실을) 전달하기 위해서 시를 쓰는 것이지 논리적으로 증명하거나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오.
― 문병란, 박석준에게 보낸 편지(2013년 3월 13일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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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새로운 시적 질서 ‘무비시(movie poetry)’와 「11월」
「11월」은 나의 삶에서 1992년 11월에 실제로 발생한 일과 그 주변 사정을 그대로 담아 리얼하게 그린 글(단편 무비시)이다. 글 속의 “사내”는 ‘나=박석준’이고 “노파”(어머니)가 있는 곳은 「슬픈 방 1」의 현장인 유동 유동 ‘슬픈 방’이다.
이 글에 대해 문병란 시인은, 처음 “5행의 시행이 서로 아무런 연결고리도 없”는데도 “불연속적인 문장이지만 보이지 않는 새로운 시적 질서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불연속적인 문장이지만 새로운 시적 질서를 가지’게 하기 위해 형상(또는 색깔)과 소리가 시공간을 흐르는 동사를 선택하는 기법(무비즘)을 사용했다.
「11월」은 나의 「시인의 말」을 구체적 상황에 시각적 이미지를 중심으로 적용하여 형상화한 글이다. 짧은 형태이지만 ‘비둘기 떼가 걷는 장면’, ‘노파가 문을 연 장면’, ‘빗속의 사내’, ‘아파트들을 만들고 있는 장면’, ‘사내가 마루에 걸터앉아 있는 장면’ ‘비둘기가 마당에서 사라진 장면’ 등으로 사건과 사정이 흘러가 영화의 몇 컷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무비즘 수법이 반영된 것이다.
이 글은 요구와 충당으로 살리지 못한 “말”들이 사람에게 쓸쓸함을 주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존재의 “돈 없음(가난함)”이 존재의 본질(실존)을 제대로 실현할 수 없게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돈 없는 “사내”의 “등 뒤에서” “철근과 콘크리트가 아파트들을 만들고 있”는 사실(배경)이 자본주의 사회가 가난한 사람의 삶에 불연속성과 부조리나 괴리감을 형성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각적 동적 심상으로 표현하고 있다. “11”은 누군가에게(혹은 누군가에게서) 직선으로 갈라져 떨어져 내리는 빗줄기(혹은 눈물)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표현이다. 한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다룬 이 글엔 추리소설의 기법과 실존주의 경향이 반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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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전제로 하는 삶에는 바탕이 되는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내가 주로 살아왔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 공간은 자본주의 사회의 도시들이다.
도시에서 도시로 들어가는 길을 따라 내가 출퇴근하는
쓸쓸한 체제
말들이 여러 곳에 흩어져 있다.
트위터, 페이스북, 블로그, 카페, 핸드폰,
시…….
말들은 사람을 부르고 말 밖에서 사람이 버려진다.
“말이 빠진 곳, 아무것이 없으면 어떠리”라고 어느 시인은 표현하였지만.
돈이 알 수 없이 굴러다니고 있는 도시들과, 그것들 사이에 자리해 있는 여러 움직임들이 나와 마주하고 있는 세계의 실재라면 나는 우선 그런 세계에 관한 것들을 써야만 할 것이다. 말을 알아 간다는 것이 고달프지만.
말로 표현해야 할 사정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말로 표현하여 사정이 제대로 인식되고 새로워진다면 좋겠는데…….
말은 요구와 충당으로 그 형태가 드러난다. 내가 표현한 말이 나와 마주하고 있는 세계에서 시로 남을지 무엇이 될지 알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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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_『카페, 가난한 비』 「시인의 말」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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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원본: 석사본> 2009-01-17
레인맨
마당에 날아든 비둘기가
모이를 찾아 두리번거리며 걷는 동안
쇠재두루미 떼는 미얀마를 향해 날아갔다.
아무래도 냉장고 하나는 있어야겠다.
노파가 문을 열고 묻는다.
비가 온다. 빗속의 사내
그는 노파의 얼굴 밖만 바라보고 있다.
너무 흔해 아무것도 아닌 삶이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그의 의식은 존재를 추상화한다.
(이젠 돈이 없어요.)
수직은 사방으로 움직이더니
아파트 끝 층을 만들고 있다.
수직이 지전 같은 창들을 배열해 놓고
잠시 쉬는 곳에서는
또 다른 수직이 사방으로 뻗더니
창날 같은 첨탑 위에 창살 같은 십자가를 세운다.
아무리 없어도 김장도 해야겠고…….
다시 노파가 묻는다.
TV에서는 선거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다.
이제 그는 마루에 걸터앉아 있다.
비둘기는 어디론가 가버리고
털어내지 못한 상념 하나가 꿈틀거린다.
지쳤어. 버리고 싶어, 슬픈 말을,
말을 요구와 충당의 의미로 상징화시키지 못하는 사람을.
마당엔 비가 내리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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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6. 10:50.메. 박석준-08종합1.hwp (오타 ‘날아간다’) <원작 원고>
=→ 2009-01-17 오전 11:35. 박석준-08종합1-1-1.hwp (제목 ‘레인 맨’, 교정 ‘날아갔다’) = (원작 원본)
= (제목 정정: 레인맨) 『석사학위 작품집』(20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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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원고) 2008-09-06
레인 맨
마당에 날아든 비둘기가
모이를 찾아 두리번거리며 걷는 동안
쇠재두루미 떼는 미얀마를 향해 날아간다.
아무래도 냉장고 하나는 있어야겠다.
노파가 문을 열고 묻는다.
비가 온다. 빗속의 사내
그는 노파의 얼굴 밖만 바라보고 있다.
너무 흔해 아무것도 아닌 삶이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그의 의식은 존재를 추상화한다.
(이젠 돈이 없어요.)
수직은 사방으로 움직이더니
아파트 끝 층을 만들고 있다.
수직이 지전 같은 창들을 배열해 놓고
잠시 쉬는 곳에서는
또 다른 수직이 사방으로 뻗더니
창날 같은 첨탑 위에 창살 같은 십자가를 세운다.
아무리 없어도 김장도 해야겠고…….
다시 노파가 묻는다.
TV에서는 선거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다.
이제 그는 마루에 걸터앉아 있다.
비둘기는 어디론가 가버리고
털어내지 못한 상념 하나가 꿈틀거린다.
지쳤어. 버리고 싶어, 슬픈 말을,
말을 요구와 충당의 의미로 상징화시키지 못하는 사람을.
마당엔 비가 내리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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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6. 10:50.메. 박석준-08종합1.hwp (오타 ‘날아간다’) <원작 원고>
=→ 2009-01-17 (교정 ‘날아갔다’) = (원작 원본)
= 『석사학위 작품집』(20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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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 2007-12-04
레인 맨
마당에 날아든 비둘기가 모이를 찾아 걷는 동안
쇠재두루미 떼가 미얀마를 향해 날아갔다.
아무래도 냉장고 하나 있어야겠다.
노파가 문을 열고 묻는다.
비가 온다.
빗속의 사내
태양신 안 사람
그는 노파의 얼굴 밖만 보고 있다.
너무 흔해서 아무것도 아닌
삶이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그의 의식은 존재를 추상화한다.
이젠 돈이 없어요.
수직은 사방으로 움직이더니
아파트 끝층을 만들고 있다.
수직이 지전 같은 창들을 배열해 놓고 잠시 쉬는 곳에는
또다른 수직이 사방으로 뻗더니
창날 같은 첨탑 위에 창살 같은 십자가를 세웠다.
아무리 없어도 김장도 해야겠고.
다시 노파가 묻는다.
TV에서는 선거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다.
그는 이제 마루에 걸터앉아 있다.
비둘기는 어디론가 가버리고
관계 속에다 털어내지 못한 상념 하나가 꿈틀거린다.
지쳤어. 버리고 싶어.
슬픈 말을.
말을 요구와 충당의 의미로 상징화시키지 못하고 만 사람을.
하고 살아감을 죽여 간다.
마당엔
비가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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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04. 22:33.메. 길을 걷다 보면.hwp (초고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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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023-07-24 18:17_광주시 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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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4 18:14_광주시 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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