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시 (창작년도)

나의 무비즘 (127), 실존주의 모더니즘 (69) 산책길에 때로 둘러본 인생. 2 / 박석준

나의 신시 158 산책길에 때로 둘러본 인생. 2

나의 무비즘 (127), 실존주의 모더니즘 (69)

2015-08-26

박석준 /

(원작 띄어쓰기 교정)

산책길에 때로 둘러본 인생. 2

 

 

  학교에서 나가면 길이 있어요.

  쭉 뻗은 길 얼마만 걸어가면

  마트 그 앞에서 갈리진 길, 그 길 따라 걸어가면

  큰길 건너편에 터미널이 있지요.

  점심때면 아이들이 그 갈라진 길로 많이 나와요.

  밥 먹으러 가거나 뭐 사 먹으러 가는 게 마땅하겠죠.

 

  나는 쉬고 싶은 점심때면 일단 갈라진 곳까지 걸어 봐요.

  더 걷다가 터미널로 갈까, 그냥 터미널로 갈까

  날씨라든가 길의 상황, 몸 상태를 판단해 보지요.

 

  여름이라 무더워서 쉬 피로하고 다리도 아파서

  오늘은 약국에서 피로회복제 먼저 사 먹고 건넜어요.

  터미널 옆이 시장이지만 인도에도 노점들이 늘어앉아 있어

  같은 방향 다른 방향 나오는 사람 들어가는 사람

  말하는 소리 걸음 소리 사람과 소리가 범벅인데

  큰 소리가 입구 술집 쪽에서 났어요.

 

  뭐 같은 세상에 내 사는 꼴이 이래도 내 인생 내가 살아라.”

  놀라서 듣게 되었지만

  인생? 내가 살아? 쉬고 싶은 내 머리가 소리를 여과했어요.

  상념을 만들었어요. 인생! 너무 간결하게 그려지는 살아감.

  일상도 아니고 생활도 될 수 없는, 옹색한 하루살이 같은

  그것과 같지 않다면,

 

  자판기 냉커피를 뽑고 대합실 벤치에서 쉬는 행복함.

  “커피 마시게요.”

  직행버스에 승차하러 가면서

  핸드폰으로 통화하는 젊은 여자의 말소리.

  맥락을 알 수 없이

  ‘스토핀’, ‘머크라타카’ 이런 타 언어처럼 새겨져.

 

  그립네! 보고 싶어! 말 한마디보다

  곁에 존재한다는 게 더 좋겠지요.

  두 사람만의 만남엔 먼저 말을 못 건넨다 해도.

 

  나흘 전 ‘그립더라도’라는 말을 지운,

  선생님의 생각대로 더는 뵙지 않겠어요, 답장

  편지를 보내고서 오늘 다시 낮 산책을 나왔어요.

  돌아가는 길에서 말소리를 듣게 되네요.

 

  “뭐 사러 가작해? 나보고?”

  “그래서 돈만 쓰고 있어.”

  “아, 밥을 먹었는디 배가 안 꺼져. 오매 무화과 나왔네!”

  “나물이랑 생선.”

  영광터미널시장 앞 노점 바구니들 속을

  눈요기하던 아낙 둘한테서.

.

2015.08.26. (사먹으러, 사먹고, 걸음소리,) <원작 원본>

=→ 2016.11.09 17:41. 박석준 시집 본문.pdf (사 먹으러, 사 먹고, 걸음 소리) (원작 교정)

= 시집_『거짓 시, 쇼윈도 세상에서』(2016.12.02. 문학들)

.

.

<원작> (사먹으러, 사먹고, 걸음소리) =→

산책길에 때로 둘러본 인생. 2

 

 

  학교에서 나가면 길이 있어요.

  쭉 뻗은 길 얼마만 걸어가면

  마트 그 앞에서 갈리진 길, 그 길 따라 걸어가면

  큰길 건너편에 터미널이 있지요.

  점심때면 아이들이 그 갈라진 길로 많이 나와요.

  밥 먹으러 가거나 뭐 사먹으러 가는 게 마땅하겠죠.

 

  나는 쉬고 싶은 점심때면 일단 갈라진 곳까지 걸어 봐요.

  더 걷다가 터미널로 갈까, 그냥 터미널로 갈까

  날씨라든가 길의 상황, 몸 상태를 판단해 보지요.

 

  여름이라 무더워서 쉬 피로하고 다리도 아파서

  오늘은 약국에서 피로회복제 먼저 사먹고 건넜어요.

  터미널 옆이 시장이지만 인도에도 노점들이 늘어앉아 있어

  같은 방향 다른 방향 나오는 사람 들어가는 사람

  말하는 소리 걸음소리 사람과 소리가 범벅인데

  큰 소리가 입구 술집 쪽에서 났어요.

 

  “뭐 같은 세상에 내 사는 꼴이 이래도 내 인생 내가 살아라.”

  놀라서 듣게 되었지만

  인생? 내가 살아? 쉬고 싶은 내 머리가 소리를 여과했어요.

  상념을 만들었어요. 인생! 너무 간결하게 그려지는 살아감.

  일상도 아니고 생활도 될 수 없는, 옹색한 하루살이 같은

  그것과 같지 않다면,

 

  자판기 냉커피를 뽑고 대합실 벤치에서 쉬는 행복함.

  “커피 마시게요.”

  직행버스에 승차하러 가면서

  핸드폰으로 통화하는 젊은 여자의 말소리.

  맥락을 알 수 없이

  ‘스토핀’, ‘머크라타카’ 이런 타 언어처럼 새겨져.

 

  그립네! 보고 싶어! 말 한마디보다

  곁에 존재한다는 게 더 좋겠지요.

  두 사람만의 만남엔 먼저 말을 못 건넨다 해도.

 

  나흘 전 ‘그립더라도’라는 말을 지운,

  선생님의 생각대로 더는 뵙지 않겠어요, 답장

  편지를 보내고서 오늘 다시 낮 산책을 나왔어요.

  돌아가는 길에서 말소리를 듣게 되네요.

 

  “뭐 사러 가작해? 나보고?”

  “그래서 돈만 쓰고 있어.”

  “아, 밥을 먹었는디 배가 안 꺼져. 오매 무화과 나왔네!”

  “나물이랑 생선.”

  영광터미널시장 앞 노점 바구니들 속을

  눈요기하던 아낙 둘한테서.

.

2015.08.26. 18:32. 카페 가난한 비_문병란 시인(선생님)께 (사먹으러, 사먹고, 걸음소리,) <원작 원본>

― https://cafe.daum.net/poorrain/FB7E/102

=→ 2016.11.09 17:41. 박석준 시집 본문.pdf (사 먹으러, 사 먹고, 걸음 소리) (원작 교정)

= 시집_『거짓 시, 쇼윈도 세상에서』(2016.12.02. 문학들)

.

.

실제상황

    2015-08-26. 영광군 (버스터미널과 부근)

.

.

Ⅰ. 문병란 시인 편지와 내가 보낸 편지

.

  한반도의 반목은 여전하니 아프지 않을 수가 없어요. 위 내시경 검사(?) 심각하진 않고 궤양에서 조금 나아가고 있으니 약물치료 가능… 헌데도 재미가 없는 이 땅에서 쌓이는 것 스트레스… 좀 사는 일이 민망하고 창피한 것 아닌지…? 건강하고 2학기 준비 잘하길 비오.

2015년 8월 12일. 지산동에서 서은(문병란)

.

  어디 아프신 건 아닐까 걱정을 하던 중에, 시인(선생님)께서 많이 아프고 제자도 아프다 하는 사연을 알게 되었습니다. 찾아뵈야 하는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차 운전을 하지 않는 저는 윗옷 안주머니에 작은 우산을 넣어 가지고 다닙니다. 점심시간이나 퇴근시간에 비가 올 수도 있어서. 점심땐 긴한 용무만 없다면 밖으로 산책 나갑니다. 아는 사람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생각을 정리하기도 하면서 걷다가 피로함을 느끼면 약국에서 피로회복제를 사먹기도 합니다. 영광에서는 학교에서 10분쯤 걸면 되는 곳에 터미널과 시장이 있어서 그곳으로 자주 갑니다. 그러면 답답한 기분이 풀리고 마음이 편해집니다. 태풍이 분다거나 폭설이 내린 날에는 어쩔 수 없이 학교에서 있지만.

  위의 글(「산책길에 때로 둘러본 인생. 2」<원작>)은 영광에서 어느 여름날 점심시간 산책하다가 보거나 듣거나 생각하게 된 것들을 정리해 본 것입니다. 금요일 점심시간엔 퇴근 후에 누군가 말을 나누고 싶은 사람을 주로 생각하고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의 점심시간엔 집에 가면 무슨 일을 먼저 할까를 생각하거나 합니다.

  시를 쓸 수 있는 마음과 시간을 잘 갖는 게 중요하다, 방학 때 깨달은 것입니다. 생각대로 되었으면 좋겠는데, 퇴근하려다가 (학교 안과 밖)전교조 집행부 선생들에게 붙잡힌 꼴로 어제 다시 전교조 행사에 가게 되었고 10시가 넘은 시간에 귀가하였습니다. 소통과정이 없는 행사를 위한 행사, 사업을 위한 사업에는 가지 않겠다고 방학 전에 말한 바 있는데,

--2015년 8월 26일(수)

.

  위의 글 「산책길에 때로 둘러본 인생. 2」는 2015년 8월 12일자로 보낸 문병란 시인의 편지에 답장으로 쓴 2015년 8월 26일 편지에 삽입된 글이다. 이 시의 1, 2연이 편지에 쓴 “어느 여름날 점심시간 산책하다가 보거나 듣거나 생각하게 된 것들”에 해당한다. 3연부터는 2015년 8월 26일에 일어난 것들을 담고 있다.

  나는 영광버스터미널로 갔고 “자판기 냉커피를 뽑고 대합실 벤치에서 쉬”는 중에 문병란 “선생님”을 떠올려냈다. “그립네! 보고 싶어! 말 한마디보다/곁에 존재한다는 게 더 좋겠지요./두 사람만의 만남엔 먼저 말을 못 건넨다 해도.” 하면서 상념이 흘러갔다. 문병란 시인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산책길에 때로 둘러본 인생. 2」에 흘려냈다.

  그렇지만 답장은 오지 않고 사망했다는 소식이 9월 25일에 나에게 전해졌다. 그리하여 “그립네! 보고 싶어! 말 한마디”만 나에게 남고 말았다. (문병란 “선생님” 시인이 이 「산책길에 때로 둘러본 인생. 2」를 읽었는지는 알 수 없으므로.)

  「산책길에 때로 둘러본 인생. 2」는 “뭐 같은 세상에 내 사는 꼴이 이래도 내 인생 내가 살아라.”라는 말이 실려 있다. 그런데 “인생이란 말이 “너무 간결하게 그려지는 살아감./일상도 아니고 생활도 될 수 없는, 옹색한 하루살이 같은/그것과 같지 않다면,”으로 여과되었다. ― 나는 ‘한 사람의 일생, 즉 문병란 시인의 생애’를 생각해보았다.

  그럼에도 “돌아가는 길에서 말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래서 돈만 쓰고 있어.”

    “아, 밥을 먹었는디 배가 안 꺼져. 오매 무화과 나왔네!”

    “나물이랑 생선.”

    영광터미널시장 앞 노점 바구니들 속을

    눈요기하던 아낙 둘한테서.”

  그리하여 이렇게 시공간을 흘러가며 내가 살아감이 ‘산책길에 때로 둘러본 인생’이 되어버렸다.

  「산책길에 때로 둘러본 인생. 2」는 내가 문병란 시인께 보낸 마지막 시가 되고 말아서 이 시가 인생무상을 말하고 아울러 한 사람의 생을 예측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

.

사진

2023-11-10_16:51.14. 광주시 지산동 문병란 시인의 집

  2023-11-10_16:51.14. 광주시 지산동 문병란 시인의 집

.

2015-11-05_13:07. 영광버스터미널 주변 노점_poorrain

  2015-11-05_13:07. 영광버스터미널 주변 노점_poorra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