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시 75-1 언덕의 말
나의 무비즘 (63), 실존주의 앙가주망 (44), 상징주의 (10)
2005-03-28
박석준 /
언덕의 말
시간 길을 따라 계절이 열두 번 가고
나는 그 골목길을 걸어가네
골목길을 걷다가
내 그림자가 벽에 져서
낮이 사라진 벽을 보았네
떠났어, 서울 지하철역에서,
잘 있거라, 거울 속 얼굴들아 조선대 언덕의 말들아.
사람들한테 들어서 낯익은 말들인데,
마음이 궁글어
무디어진 사람의 얼굴이 모습이
나를 그곳에서 망설이게 하네
그 사람의 말 없음에, 사랑을 잃고
내 젊음이 사라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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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28. 00:15 ∽ 2021-10-25 <원작 「세월, 말」>
∽ 2022-12-01 오전 8:41 <개작>
= 2023-01-09 오후 1:29 파,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이니-박석준-2023-91-09-교-분석.hwp
= 2022-12-14 오후 07:25. 카페, 가난한 비, 거리에 움직이는 사람들, 무비이즘-선경-박석준-2022-12-14.hwp <개작 원본>
= 시집_『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이니』(2023.03.20. 푸른사상)
↛ 『시와경계』 57호 2023 여름(2023.05.19.) (오교정: 띄어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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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상황:
1993.01. 대학생 박재원과 조선대 언덕에서의 마지막 만남
1999.01. 파주에서 의자공장에 다닌다는 박재원과 고양시 일산에서 만난 날
서울 지하철 역에서 헤어짐(재원과의 마지막 만남)
2002.04.28. (파주에서 죽음)
2005.03.25. (금, 현재, 순천시 순천여고 후문 앞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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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상징과 실존주의 멜랑콜리
“나”는 사람이 생각나서 “그 골목길”을 걷고 있다. 그곳에서 밤을 보았다.(“내 그림자가 벽에 져서/낮이 사라진 벽을 보았네” → 낮에 내 그림자가 벽에 졌기(나타났기) 때문에, 벽에 그림자가 감추어진 밤을 보았네.)
“떠났어, 서울 지하철역에서,/잘 있거라, 거울 속 얼굴들아 조선대 언덕의 말들아.” 이 표현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조선대 언덕을 거닐었던 사람이 서울 지하철역에서 조선대 다니던 시절에 남긴 말들(일들)에게, 그리고 거울 속 얼굴들에게 “잘 있거라”라는 말을 누군가에게 남기고 떠났다는 것이다. “계절이 열두 번 가고”라고 화자가 한 말을 감안하면 이 사람이 떠난 때는 3년 전이다. 그런데 이 “떠났어”는 ‘사랑을 하다가 뜻이 안 맞아서 헤어졌어’를 뜻하는 게 아니다. ‘헤어진 후에 곧 죽었어’를 뜻하는 말이다. “거울 속 얼굴들아”, “조선대 언덕”이라는 표현이 있기 때문이다.
언덕은 가파르기 때문에 고난길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골고다 언덕(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했던 언덕.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곳)이다. 「언덕의 말」의 “언덕”은 ‘함께 정답게 지내던 곳’이면서도 ‘(내가 간) 고난의 길’을 뜻하는 상징어이다.(← 시인의 삶이 반영된 작품들엔 ‘언덕’이 ‘괴로운 일이 있어서 찾아간 곳’, ‘기대를 품고 갔으나 헤어진 곳’으로 설정된다.) 그리고 이런 점 때문에 “거울 속 얼굴들”은 ‘자신의 지난날들’을 가리키게 되고, “그 사람의 말 없음”은 ‘그 사람의 죽음’을 가리키게 된다.
“골목길”은 “나”가 “그 사람”하고 함께 거닐었고 추억을 만든 곳이다. 그런데 “그 사람”은 “나”하고는 달리 질이 높은 “조선대 언덕(고난의 길)”으로 갔다. 시인의 글을 참고하면 “조선대 언덕”은 ‘민주화 운동을 한 곳’ 또는 ‘민주화 운동과 관련 깊은 길’을 상징한다. 「언덕의 말」은 화자 “나”가, 언덕을 가다가 3년 전에 세상을 떠난 “그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자신의 번민을 표현한 것이다. 자기구속과 현실에 대한 비판적 참여의 필요함(앙가주망)을 암시한 글이다. 이 글에 표현한 “낮이 사라진 벽”은 ‘밤’ 즉 내면의 어둠(번민)을 비유한 말이다. 그리고 ‘그림자’는 ‘질 낮은 삶’을 상징하는 말이다. 이 소재들이 이 글에 실존주의적 멜랑콜리 정서를 만들어낸다. 이 글은 인물의 움직임을 따라 시공간이 흘러가는 무비즘 기법을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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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밖 실화
나(박석준)의 글에는 「언덕의 아이」와 「언덕의 말」이 있다. ‘언덕’이라는 장소는 이외에 ‘남민전 사건’을 다루는 글 「장미의 곁에 있는 두 얼굴」(“너는 말없이 눈물을 쏟아내고는 언덕 쪽으로 달아났어.”/“안쓰러워 들어간 언덕길, 골목이 갈린 곳에서 여기서부터는 따라오지 마세요, 사감한테 들키면 혼나요, 소리만 했지.”) 등 몇 편의 글들에서도 나오는데, 첫사랑과의 헤어짐, 친구와의 헤어짐 후에 ‘나는 고독하다’라는 생각이 들어 찾아가게 된 때문인지는 모르나, 나에겐 ‘언덕’이라는 장소 혹은 말이 중요한 의미로 남았다.
나는 어린 시절에 학교가 재미없어서(그리고 교실에 갇혀 있는 게 무척 싫어서) 결석을 하거나 조퇴를 하고는, 혼자 백과사전 보고 놀거나 공원에 가거나 언덕에 가거나 하는 식으로 나날을 보냈다. 내가 학교에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생긴 데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나의 괴로움이 있었다.
“바람 사람, 사람 바람 둘 중에 어느 것이 맘에 들어요?”라는 말은 내가 가장 좋아한 아이, 애제자 박재원(1971-2002)이 한 말이다. 그는 운동권 학생으로 대학시절을 보냈지만 입대하여 고문당하고 그 후유증으로 2002년 4월 말경에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2004년 9월에는 점심시간에 약국에 가서 피로회복제를 사 먹고 순천여고 앞 골목길을 거니는데 불현듯 재원이 얼굴이 떠올랐다. 이날 메모를 하여 ‘바람 속 길’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그리고 다음해 봄에 순천여고 앞 골목길을 걷다가 다시 재원이 생각나서 아쉬워하였다. 하지만, 메모를 바탕으로 하여 2013년 1월에 「바람과 사람」을 완성했고 63살이 된 2020년에 「세월, 말」을 썼다. 2022년에는 「세월, 말」을 바탕으로 하였지만 역사적인 시각을 반영하여 「언덕의 말」로 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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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조선대학교 박재원 민주열사_박석준의 사진 20240402_103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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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 유동 공터. 2023-07-23 오후 6:32_DSC5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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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대학교 언덕. 수. _박석준의 사진20240402_104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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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대학교 민주화운동기념탑. _박석준의 사진 20240402_103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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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대학교 언덕. _박석준의 사진 20240402_105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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