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시 76 40대의 말에 내리는 밤비
나의 무비즘 (64), 실존주의 의식의 흐름 (9), 사상시 (12)
2005-05-19
박석준 /
<교정: 원고를 행갈이함>
40대의 말에 내리는 밤비
40대의 말에 내리는 비가
悲歌(비가)같이 자꾸만 가슴을 파고 흐르는 밤이다.
거슬렁거리는 숨결이 빗속에서 꿈틀거리는
나, 의 집엔 슬픔이 없다.
아프게 살아와, 삶이 슬프다고
삶을 정리해 추억해 달라고
핸드폰에다 토막토막 목소리 토하던
젊은 토마토 같은 사람이
12년 전의 내 모습과 뒤엉켜
술잔에 부딪치고 있다.
절망하는 목소리를 놔두고
어디에선가 끝내버릴 목숨이 비를 바라보며
빗소리를 듣고 있다.
얼굴 흐릿하게, 발길 흔들거리게
못 잊어 삶이 아프다
는, 목소리만 가슴에 담아야 하는데
세월이 아무 일 없는 듯 흐른다, 빗속에서.
말 없음 곁에서 말이 병들고
너무 많이 걸어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발길이 닳아져버려
방황하는 사람과 죽어가는 사람 곁에서
비가 悲歌같이 내린다.
40대의 말에 세월을, 그냥 쉬고만 싶은 밤에!
.
2005-05-19 ∽ 2006.06.14. <원작 원고>
=→ 2008.09.06. 10:50.메. 박석준-08종합1.hwp <원작 교정: 행갈이>
= 『석사학위 작품집』(2009.08.)
.
.
<원작 원고> 2006-06-14
40대의 말에 내리는 밤비
40대의 말에 내리는 비가
悲歌같이 자꾸만 가슴을
파고 흐르는 밤이다.
거슬렁거리는 숨결이
빗속에서 꿈틀거리는
나, 의 집엔 슬픔이 없다.
아프게 살아와, 삶이 슬프다고
삶을 정리해 추억해 달라고
핸드폰에다 토막토막 목소리 토하던
젊은 토마토 같은 사람이
12년 전의 내 모습과 뒤엉켜
술잔에 부딪치고 있다.
절망하는 목소리를
놔두고, 어디에선가
끝내버릴 목숨이 비를 바라보며
빗소리를 듣고 있다.
얼굴 흐릿하게, 발길 흔들거리게
못 잊어 삶이 아프다
는, 목소리만
가슴에 담아야 하는데
세월이 아무 일 없는 듯
흐른다, 빗속에서.
말 없음 곁에서 말이 병들고
너무 많이 걸어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발길이 닳아져버려
방황하는 사람과
죽어가는 사람 곁에서
비가 悲歌같이 내린다.
40대의 말에
세월을, 그냥 쉬고만 싶은 밤에!
.
2005-05-19 ∽ 2006.06.14. 22:26.메. 박석준-가을 비.hwp <원작 원고>
.
.
실제상황
2005-05-19 광주광역시 유동
.
.
Ⅰ. 말 없음과 인생
비가 내리고 있는데, 화자는 술집에 있다. 비감하게 “비를 바라보며 빗소리를 듣고 있다”. 그리고 의식을 흘리고 있다. 술잔 앞에서 자신을 “어디에선가 끝내버릴 목숨이”라고 생각한 데서 화자가 비감에 젖어 드는 것 같고, 화자의 처지가 처량하고 슬프다는 느낌(비감)이 들게 한다.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시상을 전개한 「40대의 말에 내리는 밤비」에서 몇 표현 기법을 보게 된다.
“나, 의 집”, “아프다/는, 목소리만”에 ‘어휘 자르기’를 하여 시상 흐름을 생각하게 한다.
“비가/悲歌(비가)같이”는 동음이 내포되어 있어 운율을 형성하고, ‘비’가 ‘슬픈 노래’(=슬픈 목소리) 같다고 하여 ‘비’에 ‘슬픔’의 이미지를 담아버린다.
“거슬렁거리는 숨결”은 ‘죽어갈 듯한 사람’의 은유인데, ‘거슬렁거리다’는 사전에 없는 말이다. 비슷한 음을 내포한 단어가 있을 뿐이다.
슬렁거리다 : 서두르지 않고 느릿느릿 굼뜨게 행동하다.
어슬렁거리다 : 큰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계속 천천히 걸어 다니다.
거슬리다 : 순순히 받아들여지지 않아 언짢고 불쾌함을 느끼다.
이 말들에 들어있는 성분들에서 뽑아서 ‘거슬려서 언짢고 불쾌하면서도 느릿느릿 굼뜨게 흔드는 거친’이라는 이미지와 의미를 지닌 말로 ‘거슬렁거리다’를 만든 것으로 해석된다. 쉽게 요약하면 “거슬렁거리”은 ‘언짢고 불쾌한, 느리면서도 거칠게 반복되는’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거슬렁거리는”이 “숨결”로 이어져서 ‘호흡이 매우 거칠어진→곧 죽음에 이를 것 같은’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럼에도 화자인 “나”는 “거슬렁거리는 숨결이 빗속에서 꿈틀거리는/나, 의 집엔 슬픔이 없다.”라고 아이러니한 말을 하였다. 이것은 반어법을 사용한 말이다. 화자의 집엔 슬픔을 주는 사정(“죽어가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정에 놓인 화자를, 내리는 밤비가 또 하나의 슬픈 것(“토막토막 목소리 토하던/젊은 토마토 같은 사람”)을 가져와 흔들리게 한다. ‘토막토막 목소리 토하던 젊은 토마토 같은 사람’엔 ‘토’라는 음이 3번 나타나는데 마지막 것 ‘토마토’에서 뉘앙스가 달라진다. “토막토막”, “토하던”이 단절, 거절, 거역 등의 불쾌하고 불안한 이미지를 발산했으나 “토마토”는 젊고 빨갛고(정열적이고, 사랑스럽고, 귀엽고) 같은 이미지를 발산한다.
하지만 “젊은 토마토 같은 사람”이 세상을 떠난 듯하다. “못 잊어 삶이 아프다/는, 목소리만 가슴에 담아야 하는데”에서 그런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런데 “집엔 슬픔이 없다”는 어떤 사정을 표현한 말일까? “방황하는 사람과 죽어가는 사람 곁에서/비가 悲歌같이 내린다.”에서 그 내막을 짐작하게 한다. “나, 의 집”에 “죽어가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말 없이 “거슬렁거리는 숨결”을 흘려내서, “나”는 불안해져서 빗속에서 방황했고 술집으로 간 것이다. 그리고 이 술집에서, 이미 세상을 떠난 젊은 토마토 같은 사람을 떠올려낸 것이다.
글 「40대의 말에 내리는 밤비」는 두 개의 이야기(어쩌면, 12년 전의 화자 자신까지 포함한다면 세 개의 이야기)를 펼쳐 ‘죽음’의 정서를 발산한다. 화자는 “말 없음 곁에서 말이 병들고”라는 생각을 지닌 사람이다. “말 없음”은 ‘(친밀하게 함께 있고 싶은) 사람이 없음 = 사람이 떠날 듯함, 사람이 떠남, 사람이 죽음’으로 해석되어 “말 없음”의 ‘말’은 ‘(“나”가 친밀하게 함께 있고 싶은) 사람’을 비유하게 된다. 그리하여 “말이 병들고”의 ‘말’이 ‘나(라는 사람)’를 비유하게 되고, “말”은 ‘사람’을 상징하게 된다. 이로 미루어 “말 없음 곁에서 말이 병들고”는 ‘곁에 사람이 없어서 사람이 병든다, 사람은 사람이 곁에 있어야 실존한다.’라는 사상을 담은 표현임을 깨닫게 된다. 「40대의 말에 내리는 밤비」는 ‘인생의 전환점, 40대의 말로 왔지만 나는 실존한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을 메시지로 전한, ‘말 없음 곁에서 말이 병든다.’고 표현한 실존주의 사상시이다. 이 글의 “나”가 ‘집을 떠올리며 밤에 숨결이 빗속에서 꿈틀거리는’ → ‘술집으로 들어간’ → ‘술집에서 젊은 토마토 같은 사람의 모습이 술잔이 떠올라 빗소리를 바라보고 듣고 있는’ → ‘술집을 나왔으나 빗속에서 젊은 토마토 같은 사람의 얼굴이 흐릿하게 떠올라서 발길 흔들거리는’ → ‘집에서 죽어가는 사람이 떠올라서 빗속에서 방황하는’ 모습으로 움직이고 있다. 장면들이 이어지는 무비즘 기법이 구사되었는데, 집에서 “죽어가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언급되지 않았다. 작가의 삶이나 시집들을 참조하면 “젊은 토마토 같은 사람”은 “나”(=시인)의 제자인 이미 죽은 사람이고 “죽어가는 사람”이 “나”(=시인)의 어머니인 것으로 짐작되지만.
.
.
(초고) 2005-05-19
밤비
40대의 말에 내리던 비가
비가(悲歌)
같이
파고 흐르던
밤
거슬렁거리는 숨결이
빗속에서 꿈틀거리는
그 노인의 집엔 슬픔이 없었다
아프게 살아와서
삶이 슬프다고
삶을 추억해 달라고
핸드폰에다
목소리 흘리던 젊은 사람의 인상과
거슬렁거리는 숨결이 부딪치고 있을 뿐
절망하는 목소리
놔두고
어디선가 끝나버릴 목숨
비를 바라보며 빗소리를 듣고 있다.
얼굴 흐릿하게
흔들거리게
못 잊어
삶이 아프다는 목소리만 가슴에 담아야 하는
세월이
아무 일 없는 듯 흐른다.
빗속에서.
말 없음 이전에
말이 병들고
너무 많이 걸어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닳아져버린
방황하는 사람과 죽어가는 사람의
발길 곁에서
비가 내렸다.
40대의 말에 세월을
그냥 쉬고만 싶은 밤에!
.
2005.05.19. 01:06. 카페 가난한 비_밤비 (초고)
→ https://cafe.daum.net/poorrain/4Ps/63
.
.
사진
서울 인현동 술집. 박석준의 사진. 20220723_220715
.
서울 인현동 술집. 박석준의 사진. 20220723_194747
.
'나의 시 (창작년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무비즘 (66), 실존주의 아방가르드 (17) 별이 빛나는 밤_(카페 버전) / 박석준 (2) | 2024.06.08 |
---|---|
나의 무비즘 (65), 실존주의 아방가르드 (16) 별이 빛나는 밤_(등단작) / 박석준 (1) | 2024.06.08 |
나의 무비즘 (63), 실존주의 앙가주망 (44), 상징주의 (10) 언덕의 말 / 박석준 (2) | 2024.06.08 |
나의 낭만주의 (3) 세월, 말 / 박석준 (1) | 2024.06.08 |
나의 무비즘 (62) 실존주의 모더니즘 (24) 세 가지 얼굴로 이루어진 한밤의 꿈 / 박석준 (1) | 2024.06.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