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시 55-1 돈을 세며, ‘돈을 세는 사람’을
나의 실존주의 앙가주망 (41), 아방가르드 (9)
2001-10
박석준 /
<원작 교정작>_시집
돈을 세며, ‘돈을 세는 사람’을
구르는 차 안에서
돈을 세며 ‘돈을 세는 사람’을
바라본다. 다시 나는
돈을 세며 ‘돈을 세는 사람’을,
‘나’를 바라본다. 구르는 돈이
구르는 퇴근길에
나의 의식을 얼리는 밤이다.
밤에 나는 밤을 생각한다,
밤 없이 하루가 구르기를 바라며.
밤을 새며 ‘밤을 새는 사람’을
바라본다. 나는 다시
구르는 차 안에서
남은 동전 몇 개 만지작거리다가
밤을 새며 지내야 할
밤을 세어 본다. 밤은 돈을
제 머릿속으로 달고 와 구르다가
나까지도 구르게 한다.
구르다가 다시 밤이 가고
나는 또 ‘돈을 세는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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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0.26.(초고)∽2009-02-19<원작>
∽→ 2013.01.05.<원작 교정작>
2013.01.06._06:16.메. 박석준-시집 최종본 2013년1월5일-0(57편).hwp
=시집_『카페, 가난한 비』(2013.02.12. 푸른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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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상황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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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시 55 돈을 세며, ‘돈을 세는 사람’을
<원작>_(머리 속으로/머릿속을/구르는 차 안에서.)
돈을 세며, ‘돈을 세는 사람’을
구르는 차 안에서
돈을 세며 ‘돈을 세는 사람’을
바라본다. 다시 나는
돈을 세며 ‘돈을 세는 사람’을,
‘나’를 바라본다. 구르는 돈이
구르는 퇴근길에
나의 의식을 얼리는 밤이다.
밤에 나는 밤을 생각한다,
밤 없이 하루가 구르기를 바라며.
밤을 새며 ‘밤을 새는 사람’을
바라본다. 나는 다시
구르는 차 안에서
남은 동전 몇 개 만지작거리다가
밤을 새며 지내야 할
밤을 세어 본다. 밤은 돈을
제 머리 속으로 달고 와
머릿속을 구르다가
나까지도 구르게 한다.
구르다가 다시 밤이 가고
나는 또 ‘돈을 세는 사람’이 된다.
구르는 차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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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0.26. ∽ 2009-02-19 오후 7:32. 박석준-08종합1-2.hwp <원작>
= 『석사학위 작품집』(20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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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나의 삶과 시집과 관련한 해석
“ⓐ구르는 차 안에서”로 시작하여 12행에 다시 “ⓐ구르는 차 안에서”가 나타나는 까닭에 이 시 「돈을 세며, ‘돈을 세는 사람’을」은 2개의 부분으로 형태를 구성한 글임을 알게 한다. 차종이 명시되지 않았지만, ⓑ“‘돈을 세는 사람’을,/‘나’를 바라본다. 구르는 돈이/구르는 퇴근길에/나의 의식을 얼리는 밤이다.”라는 표현이 있어서 「돈을 세며, ‘돈을 세는 사람’을」의 ‘나’는 버스로 통근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나’는 버스를 타고 밤에 퇴근하는 가난한 사람이다. 가난하기 때문에 “밤”은 “나의 의식”을 차가운 상태로 만들어 굳게 한다. ‘나’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생각하게 하고 ‘나’의 현실에 막막함을 느끼게 한다. 그리하여 ‘나’는 ⓒ“밤 없이 하루가 구르기를 바라며/밤을 새며 ‘밤을 새는 사람’을 바라본다”.
ⓒ에 표현한 “밤”은 무엇이고 ‘밤을 새는 사람’은 누구일까? 이 “밤”은 ‘낮’이 지나간 후의 시간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밤은 돈을/제 머릿속으로 달고 와 구르다가/나까지도 구르게 한다.”(15∼17행)라고 표현하고 있어서 “밤”은 ‘나’로 하여금 구르게(전전반측하게) 하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생활에서 생기는 어려움 또는 몸 아픔을 상징한 말로도 해석된다. 그리고 이로써 ‘밤을 새는 사람’은 ‘나’임을, ‘몸이 아픈 사람’임을 유추하게 한다.
이 글에서 ‘구르는 것’은 4가지이고 (차→돈→밤→‘나’) 4가지로 변하고 있다. ‘나’는 ‘차’를 타야만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이어서 “차”는 ‘자본주의 사회’를 상징한다. 즉 “구르는 차 안”이란 ‘돈으로 굴러가는 자본주의 사회 안’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은 몸이 아파도 “돈”을 벌어야 생계 생활을 이어간다. 이 점에서 “밤”은 이 글에 아방가르드를 낳는 요소가 된다. ‘나’는 “구르는 차 안에서/남은 동전 몇 개 만지작거리다가/밤을 새며 지내야 할/밤을 세”는 가난하고 아픈 사람이다.
‘나’는 질곡(지나친 속박으로 자유를 가질 수 없는 상태)에 빠진 사람이다, 라는 생각이 들 수 있고 글에 흐르는 중심 정서가 낭만주의적 멜랑콜리이다, 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런데 이 글에서 중심을 둔 멜랑콜리는 자본주의 한국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이 어떻게 하면 실존할 수 있을까 하는 삶의 문제로 발생하는 실존주의 멜랑콜리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이 글에서 “돈”과 “밤”은 의미가 상충하면서도 낮이 지나간 후의 시간 “밤”이 있어야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에서 “밤”은 “돈”으로 의미가 전화되기도 한다. “밤은 돈을/제 머릿속으로 달고 와 구르다가/나까지도 구르게 한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없는 가난한 사람이 ‘밤에 항상 생각하게 되는 살아가는 일(생계와 실존)’에 대한 번민을,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시인의 비판(앙가주망)을 내포한 말이다.
나(박석준)는 44살 때 2001년 10월 26일에 이 글의 (초고)를 썼는데 이 글의 ‘나’는 44살인 아픈 나(박석준)가 모델로 된 존재이다. 이 글은 19행이지만 (초고)는 4연 20행으로 구성했다. 늙은 어머니도 아프기 때문에, 실존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가난한 나는 시외버스로 광주-목포로 통근하면서 돈 생각을 자주 하고 살아갔다.
나는 (초고)를 2009년 2월에 교정한 「돈을 세며, ‘돈을 세는 사람’을」<원작>을 『석사학위 작품집』(2009.06.)에 수록하였다. 「돈을 세며, ‘돈을 세는 사람’을」<교정작>은 <원작>에서 “머릿속을”과 마지막 행 “구르는 차 안에서.”를 2013년 1월에 삭제하여 19행으로 교정된 것이고 시집 『카페, 가난한 비』(2013.02.12.)에 수록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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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해설
비극적 주체의 절망과 희망
― 박석준 시집 『카페, 가난한 비』에 대하여
시인 박석준은 한국 민주화운동 과정에 수많은 고통을 겪은 형제들을 두고 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가족의 일원인 그는 저 자신 또한 전남지역에서 교사로 근무하며 전교조운동에 참여하는 등 적잖은 고통을 감내한 바 있다. 그래서일까. 그의 시의 정서적 바탕에는 고통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오랫동안 마음고생을 하지 않고서는 형성되기 어려운 슬프고도 서러운 정서가 깊게 깔려 있는 것이 그의 시이다.
이때의 슬프고도 서러운 정서는 거개가 침통한 표정,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우울한 표정을 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시의 이러한 정서는 심지어 멜랑콜리라고 명명되어도 무방할 정도이다. 멜랑콜리라고 불리는 비정상적인 심리는 그 범주를 한 마디로 잘라 말하기 쉽지 않다. 그것이 고독, 소외, 상실, 환멸, 염증, 피곤, 절망, 불안, 초조, 공포, 설움, 우울, 침통, 싫증, 짜증, 권태, 나태, 무료 등 어긋나고 비틀린 정서를 모두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왜곡된 정서는 물론 자본주의적 근대에 들어 부쩍 만연해진 병적 심리 일반과 무관하지 않다. 극단적인 이기주의로 말미암아 소통이 단절된 시대, 공감이 사라진 시대의 정서와 깊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 멜랑콜리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멜랑콜리는 일조량이 부쩍 줄어드는 가을에 훨씬 심하게 나타나는 것이 사실이다. 플러스의 양기보다는 마이너스의 음기에 훨씬 더 가까운 것이 멜랑콜리이거니와, 그것이 신생의 봄기운보다는 소멸의 가을 기운과 밀접하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박석준의 시에 가을을 노래한 시가 유독 많은 것도 실제로는 이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제목에 가을이라는 언표가 들어가 있는 시만 하더라도 「가을비 ― 물컵 속의 담뱃재」, 「가을, 도시의 밤」, 「가을의 오전」, 「세련되지 못한 가을비」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그의 이 시집이다.
일조량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겨울이 멀지 않다는 점에서도 가을은 쓸쓸하고 외로운 계절이다. 고독을 노래하는 데 평생을 바친 김현승 시인의 시에 특히 가을을 노래한 시들이 많다는 점도 이와 관련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독은 소외의 적극적인 모습이거니와, 그것이 과도할 정도로 경쟁을 우위에 두는 자본주의 사회에 이르러 더욱 심화되었으리라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물론 이때의 고독은 우울로, 곧 멜랑콜리로 전이되기 쉽다. 멜랑콜리의 핵심 정서는 우울이거니와, 이때의 우울이 고독이나 소외, 상실이나 좌절 등의 정서와 상호 침투되기 쉽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박석준이 자신의 시에서 “비는 전날에도 왔지만/…… 내가 가는 길 위에 우수가 들어선다”(「마지막 출근투쟁」)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이는 잘 알 수 있다. 다음의 시도 동일한 맥락에서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예이다.
외로움 때문이었다.
댓글 하나에,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그리움을 둔 것은
―「음악 카페에서」 부분
한 해면 삼백육십오 일을, 슬프다고 말해 놓고도
말 못할 슬픔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안」 부분
버리고 싶은 우울이 가난이 튀어나온 곳에서 일어난다.
우울은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우울은 네가 없는 곳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비와 세 개의 우산과 나」 부분
위의 인용시에는 각 편마다 ‘외로움’, ‘슬픔’, ‘우울’ 등의 어휘가 토로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보더라도 그의 시의 기본 정조가 멜랑콜리라는 이름의 죽음의 정서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것이 고독, 소외, 상실, 환멸, 염증, 피곤, 절망, 불안, 초조, 공포, 슬픔, 설움, 우울, 침통, 싫증, 짜증, 권태, 나태, 무료 등 어긋나고 비틀린 정서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은 앞에서도 말한 바 있다. 그와 더불어 우수나 우울이 실제로는 심화된 슬픔이나 설움으로부터 비롯되기 마련이라는 것도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들 정서가 자본주의적 근대에 이르러 끊임없이 부추겨진 욕망이 지속적으로 억압되는 데서 기인하는 왜곡된 정서, 병적 정서라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점에서 생각하면 자본주의적 근대에 대한, 특히 자본 자체에 대한 시인 박석준의 비판 역시 매우 도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우선 “구르는 차 안에서/돈을 세며 ‘돈을 세는 사람’을/바라본다. 다시 나는/돈을 세며 ‘돈을 세는 사람’을,/‘나’를”(「돈을 세며, ‘돈을 세는 사람’을」)과 같은 그의 시를 통해 확인이 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사람이 얼어 죽어도/냄새나는 돈, 살 길 막막한/내 머릿속을 항상 떠다닌다”(「길이 떠는 겨울」) 라고 하며 자본에 대해 비판하기도 한다.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단적으로 상징하는 것이 은행이거니와, 은행과 관련해 자신이 느끼는 멜랑콜리를 「은행 앞, 은행잎이 뒹구는 여름날」과 같이 노래하기도 하는 것이 그이기도 하다.
―이은봉 시인, 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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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 2001-10-26
돈을 세며 ‘돈을 세는 사람’을
구르는 차 안에서
돈을 세며 ‘돈을 세는 사람’을
나는 오늘 보았다. 다시
돈을 세며 ‘돈을 세는 사람’이
‘나’
구르는 돈이 굴러가는 출근길에서
나의 의식을 얼려,
밤에 나는 밤을 생각한다.
밤이 없이 하루가 굴러가기를 바라며.
밤을 새며 ‘밤을 새는 사람’을
나는 오늘 보았다. 다시
구르는 차 안 퇴근길에서
남은 동전 몇 개를 만지작거리고
밤을 새며, 지나가야 할 밤을 세어 본다.
밤은 돈을 머리 속으로 달고 와
그 속을 구르다가
나를 구르게 한다.
구르다가 다시 밤이 가고
나는 ‘돈을 세는 사람’이 된다.
구르는 차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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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10.26 (초고)
= 2001.10.28. 22:59. 카페 가난한 비 (초고 원본)
→ https://cafe.daum.net/poor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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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예술혁명의 두 얼굴, 아방가르드와 모더니즘
‘칸딘스키, 말레비치 & 러시아 아방가르드: 혁명의 예술展’ 특집 <2>
아방가르드와 모더니즘의 차이는 지속과 단절의 메커니즘에 있다. 모더니스트들이 혁신 속에서도 변증법적 패러다임을 유지하는 태도를 유지했던 것과는 달리 아방가르드 작가들은 예술의 연속성을 부정하고 파괴하는데 천착했다. 그런 점에서 유럽의 다다와 초현실주의는 진정한 아방가르드였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102209160002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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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전남제일고 교무실. 2001-11-29. poorrain 3-01-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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