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시 45 침묵 수업
나의 무비즘 (44), 리얼리즘 (16)
1996-04
박석준 /
<원작>
침묵 수업
선생님의 가벼운 몸을 안쓰러워하거나 생각을 물어올 정도로 애들이 가까이해주는 시간이 누적되었다. 그럼에도
“선생님, 설명은 필요 없어요. 그냥 답만 적으면 돼요.”,
아이들이 요구했다, 중2 교실의 칠판에 적어놓은 언어
영역 문제들에 대한 선생의 설명을 거부했다.
무엇 때문에 학교에 온 거지? 애들이나 나나. 생각했다.
“설명은 필요 없다고?”라고, 96년 4월에 물었다.
“예, 설명하지 마세요. 나중에 자습서 보면 되니까요.”
“그러면 나는 칠판에 문제만 적어주면 된다 이거죠?”
“예, 그냥 문제하고 답만 적어놓으세요.”
“알았어요. 정 원한다면 앞으로 나는 적기만 할 테니까,
자습서를 보든 뭣을 하든 알아서 하세요.”
나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단지 시간이 흘러 그 수업이 끝나고 말았을 뿐.
다음 날엔 그 교실에서 인사도 주고받음이 없이 나는
칠판에 적기만 했다. 선생이 교실에 들어오고 20분쯤
흐른 동안 주위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주고받는 말소리는
점차 사라져갔다. 애들도 적기는 했을 테지만.
그 다음 날에는 선생과 애들이 적는 행동을 의식적으로
했을 뿐 교실 사람들 사이엔 아무런 말이 오감이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상태로 4일이 더 지나갔다.
애들은 어떻게 해달라거나 어떻게 하고 싶다는
말은커녕 다른 어떤 말도 꺼냄이 없이 국어 시간에
문제와 답만을 적어놓고선 그저 앉아 있을 뿐이었다.
8일째 되는 날 마침내 내가 입을 열었다.
“자습서들 보고 있는 거죠?”라고. 애들은
“아뇨, 처음엔 보려고 했지만 재미가 없어요.”
“잘못했어요. 선생님 말씀 잘 들을게요. 설명해주세요.”
“선생님이 말을 안 하시니까 무서워요.”
와 같이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았다. 그리하여 나는
8일 만에 선생으로서의 설명의 말을 해가게 되었다.
내가 만일 당면한 상황에 대한 애들의 인식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 채 무엇을 하라고 요구하거나 명령한다면,
대개의 애들은 선생(의 말)이 무서워서 그대로 하려고 할
것이다. 그들에게 분명히 자기 나름의 판단이 있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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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4 오후 6:13 (거부하는 행위였다.) (초고)
∼ 2020.04.13. 11:58.메. 2020년_04월(박석준)원고-교정본.hwp (거부했다.) <원작 원본>
= 시집_『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2020.05.25. 푸른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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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상황
19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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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객관적 해석
「침묵 수업」은 8개의 날에 한 공간에서 학생(애들)과 선생이 ‘말’과 관련한 행동을 펼쳐냄으로써 그들 사이에 관계를 보여준다. 행동이 ‘(선생의 설명을 거부했다 / 주고받는 말소리는 점차 사라져갔다 / 아무런 말이 오감이 없었다 / 마침내 내가 입을 열었다 / 잘못했어요 … 설명해주세요)’로 행동이 이어짐으로써 관계가 변화한다. 그런데 이 행동들이 ‘말’을 해야 하는 ‘언어 영역’과 관련해서 벌어졌다는 점에서 풍자적인 느낌을 준다.
선생과 학생의 의식이 객관 현실의 전체상을 향해 운동해감으로써 현실의 본질적 측면을 형상화한다는 점에서 이 글은 리얼리즘을 반영하였다. 한 장소에서 사람들의 행동들이 변증법적으로 변화하는 양태(장면들)를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보여주는 무비즘 기법을 사용하였다.
“말”이 중심소재인 이 글은 어느 날 힘의 측면에서 선생님보다 우위에 있다고 판단한 학생들이 상대방의 활동 범주를 “그냥 문제하고 답만 적어놓”는 것으로 제한하고 행동(설명 거부)함으로써 말의 힘을 실현했고 그 다음 날에도 계속 실현했고 그 다음다음 날에도 실현한다, 힘에서 우위에 있는 학생이 가벼운 몸(허약한 몸을 지닌) 선생님을 말로써 통제한다. 힘 있는 사람은 힘이 약한 상대방을 통제할 수 있다(통제하기가 쉽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런데 이 글은 “잘못했어요. 선생님 말씀 잘 들을게요. 설명해주세요.”라는 말로써 관계가 다시 변한 것을 표현했다. 이것은 ‘눈앞에 있는 보이는 존재가 말이 없을 때 나에게 무서운 존재가 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관계가 변하는 표현은 기형도 시인의 「전문가」의 “필요한 시일이 지난 후, 동네의 모든 아이들이/충실한 그의 부하가 되었다‘에서도 볼 수 있다.)
이 굴에는 “대개의 애들은 선생(의 말)이 무서워서 그대로 하려고 할 것이다.”에 위치의 힘으로 길들여서 통제(명령)하려는 자에 대한 비판이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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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이 글과 관련한 1996년의 나
「침묵 수업」은 나(박석준)의 자서전 시집 『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에 수록되었는데, 이 글에 이어진 글 「유동 뷰티」에는 다음의 표현이 있다.
소안 배 확보 운동을 하고, 96년 9월 첫 토요일,
주의보로 인해 2주일 만에 유동에 올 수 있었던 39살
37킬로인 아픈 나에게 어머니가 절룩이며 속삭였다.
이 두 편의 글은 내가 39살 때인 1996년에 소안중학교 3학년 국어 교사로 근무하는 시절에 일어난 사건들과 나의 생각이 담긴 시 형식으로 쓴 실화이다. 나는 「침묵 수업」 사건의 시발점이 내 몸이 너무 가벼운(허약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고심을 한 끝에 찾아냈다. ‘아이들이 나를 낯선 사람으로 여기도록 하자. 장난을 걸어와도 내가 아무런 말을 안 하면 나를 무서워하겠지.’라는 묘안을.
나에겐 뇌리에 「침묵 수업」이 기형도 시인의 시 「전문가」로 이어지거나, 「전문가」가 「침묵 수업」으로 이어져 흘러간 적이 종종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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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형도 시인의
전문가(專門家)
이사 온 그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판단)
그의 집 담장들은 모두 빛나는 유리들로 세워졌다 ( 묘사 )
골목에서 놀고 있는 부주의한 아이들이
잠깐의 실수 때문에
풍성한 햇빛을 복사해내는
그 유리담장을 박살내곤 했다 ( 설명 )
그러나 얘들아, 상관없다
유리야 또 갈아 끼우면 되지
마음껏 골목에서 놀렴 (말)
유리를 깬 아이는 얼굴이 새빨개졌지만
이상한 표정을 짓던 다른 아이들은
아이들답게 곧 즐거워했다 (묘사)
견고한 송판으로 담을 쌓으면 어떨까 (말)
주장하는 아이는 그 아름다운
골목에서 즉시 추방되었다 (설명)
유리담장은 매일같이 깨어졌다
필요한 시일이 지난 후, 동네의 모든 아이들이
충실한 그의 부하가 되었다 (설명)
어느날 그가 유리담장을 떼어냈을 때, 그 골목은
가장 햇빛이 안 드는 곳임이
판명되었다. 일렬로 선 아이들은
묵묵히 벽돌을 날랐다 (설명/묘사)
* 이 시에는 그로테스크 리얼리즘(Grotesque Realism) 경향이 반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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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 2020-03-24 (거부하는 행위였다.)
침묵 수업
선생님의 가벼운 몸을 안쓰러워하거나 생각을 물어 올 정도로 애들이 가까이 해주는 시간이 누적되었다. 그럼에도
“선생님, 설명은 필요 없어요. 그냥 답만 적으면 돼요.”,
아이들이 요구했다, 중2 교실의 칠판에 적어 놓은 언어
영역 문제들에 대한 선생의 설명을 거부하는 행위였다.
무엇 때문에 학교에 온 거지? 애들이나 나나. 생각했다.
“설명은 필요 없다고?”
“예, 설명하지 마세요. 나중에 자습서 보면 되니까요.”
“그러면 나는 칠판에 문제만 적어 주면 된다 이거죠?”
“예, 그냥 문제하고 답만 적어 놓으세요.”
“알았어요. 정 원한다면 앞으로 나는 적기만 할 테니까,
자습서를 보든 뭣을 하든 알아서 하세요.”
나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단지 시간이 흘러 그 수업이 끝나고 말았을 뿐.
다음 날엔 그 교실에서 인사도 주고받음이 없이 나는
칠판에 적기만 했다. 선생이 교실에 들어오고 20분쯤
흐른 동안 주위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주고받는 말소리는
점차 사라져 갔다. 애들도 적기는 했을 테지만.
그 다음 날에는 선생과 애들이 적는 행동을 의식적으로
했을 뿐 교실 사람들 사이엔 아무런 말이 오감이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상태로 4일이 더 지나갔다.
애들은 어떻게 해 달라거나 어떻게 하고 싶다는
말은커녕 다른 어떤 말도 꺼냄이 없이 국어 시간에
문제와 답만을 적어 놓고선 그저 앉아 있을 뿐이었다.
8일째 되는 날 마침내 내가 입을 열었다.
“자습서들 보고 있는 거죠?”라고. 애들은
“아뇨, 처음엔 보려고 했지만 재미가 없어요.”
“잘못했어요. 선생님 말씀 잘 들을게요. 설명해 주세요.”
“선생님이 말을 안 하시니까 무서워요.”
와 같이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았다. 그리하여 나는
8일 만에 선생으로서의 설명의 말을 해 가게 되었다.
내가 만일 당면한 상황에 대한 애들의 인식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 채 무엇을 하라고 요구하거나 명령한다면,
대개의 애들은 선생(의 말)이 무서워서 그대로 하려고 할
것이다. 그들에게 분명히 자기 나름의 판단이 있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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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4 오후 6:13 (초고)
= 2020.03.24. 18:49.내메. 박석준-3시집-0618-12-푸105(교)-5-93-1.hwp (초고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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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소안중학교에서 근무한 시절. img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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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빈_소안중학교 아래 바닷가. img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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