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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 (창작년도)

나의 실존주의 멜랑콜리 (2), 앙가주망 (33) 마지막 출근투쟁 ― 1989년 8월 29일의 비 / 박석준

나의 신시 37-1 마지막 출근투쟁 1989829일의 비

나의 실존주의 멜랑콜리 (2), 앙가주망 (33)

1989-08-29

박석준 /

<개작> 축소 버전

마지막 출근투쟁

1989829일의 비

 

 

  비! 빗속에 ……

  내가 8시간의 노동을 팔며 수업을 하는 교실,

  소낙비는 피해 가라고 투덜거리는 교장의 말을 무시하고

  단식 농성하는 미술실,

  비가 오는 오늘도 돌아가야만 할 나의 셋방,

  흔들거리는세 개의 실내

 

  선생님이 왜 쫓겨나야 해요?!

  너무 걱정 마라, 언젠가 다시 교단에 설 테니까.

  이보다 더한 일로도 살아왔는데.

  아이들과 어머니의 말소리가 흔들거리는 두 개의 실내.

  먹고살 일을 뿌리쳐 이젠 내가 거리를 방황해도

 

  비는 전날에도 왔지만

  마지막 출근투쟁을 하고 내리는 빗속에서 귀가하는 ,

  지난 여름날 빗속에서 어머니가 가꾸던 나팔꽃 화분 하나

  내가 가는 길 위에 우수가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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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08-29 (일상 2 89.8.29의 비) <원작>

2012.10.31. 00:43.. 박석준-시집 최종본 2012922-1.hwp (3개 행과 2곳에 어휘 많음, 그보다) (개작 초고)

2013-01-06 오전 6:01. 박석준-시집 최종본 201315-2(내가 모퉁이로 사라졌다가).hwp 축소버전 <개작 원본>

= 시집_카페, 가난한 비(2013.02.12. 푸른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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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상황

    1989-08-29. 비 내리는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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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들과 관련한 해석

  「마지막 출근투쟁1989829일의, 마지막 출근투쟁을 하고 내리는 빗속에 방황하다 귀가하는 의 모습을 흘려내고 있다. “는 교사였으며 출근투쟁가 해고되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19898이라는 표현은 가 전교조 결성 건으로 해직되었음을 암시한다. “흔들거리는”, “방황해도의 심적 갈등이 아니라 번민(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를 생각함) 모습을 시각화한 어휘들이다.

  시집 카페, 가난한 비에 수록된 이 글은 1연을 세 개”, 2연을 두 개”, 3연을 하나라는 수로 채워 3개의 연으로 구성했다. 글에 시간이 흘러가고 그 흐름에 따라 집중할 곳을 점차 줄여가면서 마지막 부분으로 집중시켜 나팔꽃 화분클로즈업시킨다. 그런데 나팔꽃 화분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것을 분명하게 이해하려면 작가의 삶 및 자서전 ⓐ『내 시절 속에 살아 있는 사람들(1999)과 자서전 시집 ⓑ『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2020) 속의 글들을 살펴봄이 필요하다.

  이 글은 원작 일상 2 89. 8. 29의 비의 축소 수정작이고, 일상 2 89. 8. 29의 비일상의 다음 편이다. 이 두 글은 일상 3(= 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과 함께 에 수록되었다.

 

    “일상, 그 속에 바램과 슬픔의 사정이 허덕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지난 가을 한 저녁,/수감된 형들을 그리워하며 나팔꽃 시든 화분을 가꾸고 있던/어머님의 어슴푸레한 모습을 잊지 못하면서도 (중략) 나는 우리들의 가난하고 자유롭지 못한 사정상 그곳으로 가야만 하기에” (수록 1987-10-27 원작 일상) (수록 2020-03-16 수정작 일상 1-1)

    “그러나 비가 오는 오늘,/마지막 출근을 하고 귀가한 내 눈앞에 떠오른/어느 가을날 어머니가 가꾸시던 나팔꽃 화분 하나!” (수록 원작 일상 2 89. 8. 29의 비)

    “881220일 밤, 어머니는 청소를 하고 (중략) 내게 더욱 애틋한 것은, 어느 가을 저녁/어머니가 손길을 주는, 마당에 놓인 나팔꽃 화분이었다. (중략) 1221(중략) , 어머니는 아침이 다 된 때에야/철문에서 나오는 큰형*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수록 슬픈 방 방과 나)

 

  “형들197911월에 정권의 폭력에 의해 남민전 사건으로 수감되었고, 19881221일에 석방되었다. 어머니가 ‘(정권의 폭력에 의해) 수감된 아들들을 그리워함. 폭력에 굽히지 않고 아들들이 실존하기를 바람을 표상한 것이 나팔꽃 (화분)이다. 그리고 에겐 이 나팔꽃 (화분)”어려운 사정 속에서 살아가는 가난한 어머니의 애틋한 모습의 표상물이다. 그런데 다음해인 1989814일에 라는 아들(어머니의 넷째 아들)이 전교조 결성 건으로 해직되었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면 일상 2 89. 8. 29의 비나팔꽃 화분어머니의 애틋한 삶을 담은 것. 어머니의 애틋한 모습임을 알게 된다. 그런데 마지막 출근투쟁에서는 지난 여름날 빗속에서 어머니가 가꾸던 나팔꽃 화분이어서 나팔꽃 화분어머니의 를 사랑함. “가 실존하기를 바람의 의미도 지니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가 교육운동을 하여 고난의 길(해직)을 선택할 것임을 어머니에게 이미(지난해 여름 빗속에서) 알려주었음을 유추하게 한다.

  이런 점에서 이 글은 의 단순한 멜랑콜리(melancholy)의 투영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너무 걱정 마라, 이보다 더한 일로도 살아왔는데.”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의 실존 의식을 가미하여 투영한 것이다.

  「마지막 출근투쟁”, “빗물”, “방황”, “우수등의 단어 때문에 멜랑콜리(melancholy) 기분을 줄 수도 있으나, 멜랑콜리 표출에 중점을 둔 글이 아니다. “소낙비부조리한 정권의 탄압을 상징하고, “는 이것이 에게 행해질 것임을 예상하였음에도 단식 농성으로 저항했기 때문이다.

  ‘우수는 우수(憂愁, 마음이나 분위기가 시름에 싸인 상태. 근심과 걱정)라는 사전적 의미가 있지만 이 글에선 실직한 내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생각을 표현한 말이다. “실존주의 의식을 반영한 말이다.

  「마지막 출근투쟁은 시집 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의 글 먼 곳 4 수감된 거리에 서면 가 한 나는 생각한다. 언젠가 먼 곳을 떠날 테지만, 이제 수감된 거리에 서면 나는 불안한 눈, 가는 다리로 어디를 찾아가야 하나?”라는 생각이 실현된 장면을 담았다.

  이 글은 세 개두 개하나로 흘러가고 초점이 좁혀져, “나팔꽃 화분 하나클로즈업시킨다. “나팔꽃 화분 하나가난한 어머니(가 자식들이 실현하기를 바라는 실존하는 삶의 모습)”을 표상하는 물건이다. 마지막 출근투쟁은 비 내리는 길을 걷는 상황에서 의 뇌리에 세 개의 실내의 장면이 흐르는, ‘세 개의 실내가 흔들거리는오버랩 기법을 사용한 무비즘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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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melancholy)

  우울 또는 비관주의에 해당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 삶의 궁극적 의미에 대한 회의에서부터 비롯된 이 감정은 이후 정신 의학 분야에서 다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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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

비극적 주체의 절망과 희망

박석준 시집 카페, 가난한 비에 대하여

 

  시인 박석준은 한국 민주화운동 과정에 수많은 고통을 겪은 형제들을 두고 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가족의 일원인 그는 저 자신 또한 전남지역에서 교사로 근무하며 전교조운동에 참여하는 등 적잖은 고통을 감내한 바 있다. 그래서일까. 그의 시의 정서적 바탕에는 고통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오랫동안 마음고생을 하지 않고서는 형성되기 어려운 슬프고도 서러운 정서가 깊게 깔려 있는 것이 그의 시이다.

  이때의 슬프고도 서러운 정서는 거개가 침통한 표정,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우울한 표정을 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시의 이러한 정서는 심지어 멜랑콜리라고 명명되어도 무방할 정도이다. 멜랑콜리라고 불리는 비정상적인 심리는 그 범주를 한 마디로 잘라 말하기 쉽지 않다. 그것이 고독, 소외, 상실, 환멸, 염증, 피곤, 절망, 불안, 초조, 공포, 설움, 우울, 침통, 싫증, 짜증, 권태, 나태, 무료 등 어긋나고 비틀린 정서를 모두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왜곡된 정서는 물론 자본주의적 근대에 들어 부쩍 만연해진 병적 심리 일반과 무관하지 않다. 극단적인 이기주의로 말미암아 소통이 단절된 시대, 공감이 사라진 시대의 정서와 깊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 멜랑콜리이다.

  고독은 소외의 적극적인 모습이거니와, 그것이 과도할 정도로 경쟁을 우위에 두는 자본주의 사회에 이르러 더욱 심화되었으리라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물론 이때의 고독은 우울로, 멜랑콜리로 전이되기 쉽다. 멜랑콜리의 핵심 정서는 우울이거니와, 이때의 우울이 고독이나 소외, 상실이나 좌절 등의 정서와 상호 침투되기 쉽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박석준이 자신의 시에서 비는 전날에도 왔지만/…… 내가 가는 길 위에 우수가 들어선다”(지막 출근투쟁)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이는 잘 알 수 있다. 다음의 시도 동일한 맥락에서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예이다.

 

외로움 때문이었다.

 

댓글 하나에,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그리움을 둔 것은

―「음악 카페에서부분

 

한 해면 삼백육십오 일을, 슬프다고 말해 놓고도

말 못할 슬픔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부분

 

버리고 싶은 우울이 가난이 튀어나온 곳에서 일어난다.

우울은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우울은 네가 없는 곳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비와 세 개의 우산과 나부분

 

  위의 인용시에는 각 편마다 외로움’, ‘슬픔’, ‘우울등의 어휘가 토로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보더라도 그의 시의 기본 정조가 멜랑콜리라는 이름의 죽음의 정서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것이 고독, 소외, 상실, 환멸, 염증, 피곤, 절망, 불안, 초조, 공포, 슬픔, 설움, 우울, 침통, 싫증, 짜증, 권태, 나태, 무료 등 어긋나고 비틀린 정서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은 앞에서도 말한 바 있다. 그와 더불어 우수우울이 실제로는 심화된 슬픔이나 설움으로부터 비롯되기 마련이라는 것도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들 정서가 자본주의적 근대에 이르러 끊임없이 부추겨진 욕망이 지속적으로 억압되는 데서 기인하는 왜곡된 정서, 병적 정서라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은봉 시인, 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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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밖 실화

  나는 1989829일에 비를 맞고 유동 슬픈 방으로 돌아와 마지막 출근투쟁의 초고를 썼다. 1989814일에 직권면직된 먼 곳’ 9인은 본조의 지침에 따라 821일부터 출근투쟁을 했다. 첫날은 내가 작성한 <직권면직을 당한 우리의 입장>을 파고라 언덕에서 발표했다.

  829일 출근투쟁에서는, 전교조 탈퇴각서를 쓰고 학교에 남은 교사들이 우리를 외면하거나 냉대하거나 피하는 상황으로 전개되어, 파고라 언덕의 벤치로 돌아갔는데, 해직교사 9인 모두 월출산에 가서 괴로운 마음을 달래기로 했다. 월출산 계곡에서 투쟁계획을 세우는 중에 비가 왔다. ‘이대로 떠나는 건 너무나 마음 아프니, 아이들에게 떠나는 인사를 할 수 있도록 학교측에 요구해 보자는 것으로 논의를 마쳤다. 그러고는 광주행 버스를 탄 나는 공용터미널에서 내려 유동 슬픈 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를 맞았다. 이 글은 그때까지의 장면을 담고 있다.

  우리는 94일에 먼 곳으로 갔다. 9인은 내가 마지막으로 작성한 <더 큰 스승이 되어 돌아오기 위해 떠난다>라는 유인물 몇십 장씩 가지고 김종대 선생 집에서 학교로 향했다, 이 유인물은 내가 먼 곳에 남긴 마지막 글이다. 나는 먼 곳에 근무하면서 신명여상투쟁지지 성명서, 부당징계 거부 성명서, 창립선언문, 수많은 대자보를 썼다.

  예상한 대로 학교에서는 한때 조합원이었던 교사들이 우리 9인을 냉대했다. 그런데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와 우리를 강당으로 모셨고 거기에서 우리는 마지막 인사를 했다. 교무실로 가서 짐을 챙기고 떠나려는데 교문을 막은 아이들이 우리를 못 떠나게 하려고 붙들고 놔주지 않았다.

  신재용, 안용주 선생이 눈물을 흘렸고 강선 선생과 김종대 선생은 눈물을 보이지 않기 위해 얼굴을 돌렸다. 이상하게도 나는 눈시울만 찡했을 뿐 눈물이 나질 않았다. 김성진 선생과 내가 설득한 끝에 1시간 만에 아이들이 우리를 잘 가라고 전송했다. 이 중 서다윗이 나를 업고 아이들 틈을 헤쳐 교문까지 갔으며 거기서 전송을 했다.

그 후 김성진 선생의 집으로 돌아가서 앞으로 살아갈 문제를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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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권면직을 당한 우리의 입장

  파국의 날은 기어코 오고야 말았다! 학원 재단측은 814일자로 전교조 교사들에 대해서 직권면직이라는 만행을 자행하고야 말았다. 우리가 이러한 파국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재단측에 누차에 걸쳐 경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재단측은 정부의 지시대로 우리에게 죽음과 같은 직권면직을 내림으로써 우리를 학교 밖으로 내몰고야 말았다.

  …… 중략 ……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분명해졌다. 우리는 우리에게 직권면직을 강요했던 문교부와 그리고 그들의 지시에 충실했던 재단측과의 싸움을 전개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문교부와 정권에게는 은폐된 독재의 본질을 끝끝내 보여줄 것이고, 재단측에 대해서는 …… 시민들에게 알릴 것이다. …….

  이 땅의 참교육 동지들이여! 이 땅의 민주 시민들이여! 이 땅의 애국 학생들이여! 함께 떨치고 나가자! 위대한 거부*를 통하여 교육 민주화를 완수하자! 이 땅에서 이 시대 우리의 역사적 성업을 완결짓자!

참교육 만세! 전교조 만세! 교육 민주화 만세!

전교조 원년 8

전교조 먼 곳 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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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대한 거부 : 먼 곳 2 프리즈 프레임위대한 거부를 읽는 점심시간, 급사 아가씨가 전했다.”라는 표현이 있다. 참조할 것 교사가 된 지 한 달 후인 19834월 초인 이날 안기부가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며칠 후에 나는 안기부에게 각서를 썼다./ 내가 작성한 이 성명서를 파고라 동산에서 발표한 후 우리 9인은 출근투쟁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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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일상 2 89. 8. 29의 비

 

 

  장면(場面) 같은 오늘,

  비가 오고

  내가 가는 으로

  우수들어.

  비는 전날에도 었건

  세월이 흐를수록 비는

  슬픔으로 흘렀던가 싶다.

 

  비, 비가 오고 나서

  빗속을 사람들은 갔었고

  비는 사람들을 스몄건만

  나는 빗물을 따라 귀가하고 있었다.

  나는 빗물에 스며 간 사람도 비를 피해 간 사람도

  아니려 한 채

  말없이 실내(室內)의 사정(事情)을 새기면서

 

  비! 빗속에 흔들거리는 세 개의 실내……

  내가 8시간의 몸을 팔며 수업을 했던 교실과

  소낙비는 피해 가라고 교장이 투덜거렸던 단식 농성하던 미술실,

  그리고 비가 오는 오늘도 돌아가야만 할 나의 셋방.

 

  내가 먹고 살 일을 뿌리쳐

  이젠 거리를 방황해도

  선생님이 왜 쫓겨나야 해요?!

  너무 걱정 마라, 언젠가 다시 교단에 설 테니까.

  너무 걱정 마라, 그보다 더한 일로도 살아 왔는데.

  하고 아이들과 어머니의 말소리가 흔들거리던

  두 개의 실내.

  그리고 비, 빗속을 흔들거리는

  바람과 슬픔의 사정(事情)마저 지쳐 버린 나,

  나는 89.8.29의 비!

 

  그러나 비가 오는 오늘,

  마지막 출근을 하고 귀가한 내 눈앞에 떠오른

  어느 가을날 어머니가 가꾸시던 나팔꽃 화분 하나!

  그 분리된 세월 곁에

  구부러진 허리로 밤의 일상(日常)을 진행하는 어머니의 삶을 담은

  하나의 실내!

  그럼에도 내 곁엔, 내 뒤엔

  속절없이

  우수 같은 비만 흐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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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08-29 <원작>

내 시절 속에 살아 있는 사람들(1999.09.05. 일월서각,한ᄀᆞᄅᆞᆷ) (원작 원본)

= 2001.07.13. 21:55. 카페 가난한 비_일상 2 (눈 앞)

https://cafe.daum.net/poorrain/F1vW/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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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제상황 : 1989-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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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해직 후 낚시(무안. 1989-09) img375

  해직 후 낚시(무안. 1989-09) img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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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직 후 낚시(무안. 1989-09) img350

  해직 후 낚시(무안. 1989-09) img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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