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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 (창작년도)

나의 무비즘 (33), 실존주의 앙가주망 (30), 리얼리즘 (9) 단식 수업 그리고 철야 농성 / 박석준

나의 신시 35 단식 수업 그리고 철야 농성

나의 무비즘 (33), 실존주의 앙가주망 (30), 리얼리즘 (9)

1989-07-11

박석준 /

(원작 최종교정: 퇴각/급회/권면)

단식 수업 그리고 철야 농성

 

 

  노조 가입 교사 단식 수업 및 교내 농성을 계획·실행하라는

  본조의 지침이 내려왔습니다. 생각을 말씀해 주세요

  7112교시가 끝난 쉬는 시간, 긴급 모임에서

  윤보현 분회장의 말이 매우 실감나게 전해진 것 같았다.

  “빨리 농성 체제로 들어가는 게 수라면 수제.

  “아따, 마빡도 요런 때는 머리가 상당히 잘 돌아가네.

  “허허, 그런께 마빡이제.라고

  7·9 대회 참가자 김종대, 강선, 김재일 선생이 말했다.

  분회는 11일부터 무기한 제2차 농성투쟁을 한다는 것과

  단식 수업과 철야 농성 투쟁을 결정하였다.

  정규 수업이 끝난 오후, 스치로폴을 구입해 바닥에 깔고

  담요를 덮음으로써 미술실은 농성장으로 탈바꿈했다.

  분회원의 역할이 배치되어, 김종훈은 상황 보고를 맡고,

  대자보와 성명서를 작성하는 역할은 내가 맡아

  미술실의 복도 벽에 대자보를 붙였다. 그리고 그날, 밤은

  노래와 구호, 토론과 작업이 펼쳐지면서, 아침을 향했다.

  13, 점심시간엔, 미술실에서 사직서가 배부되고

  김성진 선생이 설명했다.

  “퇴각서 분열 공작에 대응한다는 의미에서,

  사직서를 한꺼번에 제출하는 전술을 택해라 합니다.”

 

  14, 점심시간에 분회원이 한 사람씩 호출되어

  교장실로 갔다가 미술실에 돌아왔다.

  밤 8시경엔 교장이 수박 두 동이를 들고 들어왔다.

  교장은 히죽 웃더니 말을 시작했다.

  “나 한 도막 더 주라. 나도 니들 문제로 신경 쓰다가

  오늘도 한 끼니도 못 먹었다.

  “그러니까 멀라고 남의 일에 신경을 써요? 배만 고픈걸.

  “박제 선생, 자네한테는 신경 안 쓸 거니까 걱정도 마라.”

  뜻밖의 자리에서 교장의 생각을 알게 되었다.

  ‘걱정을 왜 해요?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런데 교장은

  “신재용이도 보통 고집이 아니더란께. 죽어도 각서는

  못 쓰겠다고 하니, 참말로 교장도 못 할 일이제. 헌데

  어쩌겄냐? 위에서는 징계를 최소화하라니, 나도 그렇고.”

  심정을 털어보이고는 약간의 시간을 두었다.

 

  15, 마지막 수업을 하는 나는 20분쯤이 지났을 때

  현기증으로 목소리 내기 힘듦을 느꼈다. 이내 휘청거렸다.

  ‘안 돼.’ 하고 정신을 붙잡고서 가까스로 교탁을 붙잡아

  거기에 기대어 목소리를 내는 데에 안간힘을 썼다.

  “화셜 셰종이라고 나왔었죠? 그런데 왜 홍길동전에 그런

  말이 끼워져 있을까? 세종 때에는 한글도 만들어지고

  측우기 같은 과학적인 기구도 만들어졌는데. 혹시

  그 시대가 사회적으로는……, !”

  하고, 현기증으로 다시 비틀거렸다.

  ‘안 돼.’ 생각이 들면서, 5일째 단식하는 나는 왼손으로

  바로 앞 학생의 책상을 짚었다. 전 학생이 내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선생님, 수업 그만하시고 좀 쉬세.

  “저희들끼리 자습을 할 테니, 의자에 앉아 쉬세요.”

  아이들의 마음과 모습이 가슴과 뇌리에 흘러들어 나는

  수업을 중단했다. 교탁에 기대어 서 있는데 끝종이

  들려왔다. 부축해주겠다는 학생들에게 걱정 마라는 말을

  남겨주고서 힘없는 발을 한 발 한 발 움직였다.

  지쳐 있는 내 몸이 나를 교란시켰다.

  못 버티겠으면 단식 수업을 포기해야 할 것 아니냐?

  안 돼! 단식 수업도 투쟁이니까!

  정규 수업 시간이 끝난 오후, 급회의가 소집되었다.

  본조에서, 정부에 실체 인정과 대화를 요구했으며,

  단식 수업·농성·집단사표 등의 투쟁을 잠정 중지하는

  방향으로 투쟁을 전환한다는 뜻밖의 내용이 전달되었다.

  분회원들은 토의로 들어갔다, 상황에 신속히 대처할

  수 있도록 미술실은 농성장 상태로 놔두자고 결정했다.

  20명에 가까운 조합원들이 무리를 지어 길을 걸었다.

  5시 반경임에도 다소 열기까지 느껴지는 날씨였다.

  “단식 수업 하느라 고생하셨어요. 목욕탕 가서 몸 푸세요.

  저는 밤에 선생님 댁에 들를게요.”

  다리에 힘이 없는 내게 자취집 대문 앞 창석이 말했다.

  탕 안의 거울 앞으로 가는 나를 사람들이 흘긋 쳐다봤다.

  몸통은 갈비뼈의 윤곽만이 두드러졌을 뿐 배는 꺼진 채

  가늘게 푹 들어가버린 허리가 있었다.

  ! 가고자 하는 길을 가고 싶은데,

  나의 육신은 이토록 나로부터 분리되어 사람들로부터

  나를 분리시켜버릴 것만 같으니……!’

  라는 상념을 스쳐 가게…….

 

  84일 여덟 시 반경에 교장이 농성장 안으로 들어왔다.

  “탈퇴 문제를 신중히 고려해봄이 좋을 것 같은데.

  소낙비는 피해 가는 것처럼.”

  분열시키려는 의도라고 판단하여 나는 곧 반발했다.

  “소낙비도 맞고 싶은 사람이 있을 텐데, 왜 자꾸 소낙비,

  소낙비 하면서 남의 갈 길을 못 가게 막는 것입니까?

  “그런께 내가 아무한테나 피해 가라고 하더냐?

  나도 인정이 있고 마음 쓰여지는 곳이 있어서,” 하더니

  “안 선생 탈퇴 문제 생각해봤어?” 하며 피해 갔다.

  “탈퇴라는 말에 내 이름이 언급되는 것조차

  저는 수치스럽게 생각합니다.

  안용주 선생의 항변에, 교장은 다른 조합원을 찾아갔다.

  열흘 후 나와 강, 4, , , , 9인이

  먼 곳에서 권면되었다.

.

2020-03-21 오후 2:48 2020-04-13 (‘말씀해 주세요?’, ‘현기증 목소리’) <원작>

2020.05.14. 18:01. 박석준시집_시간의색깔은자신이지향하는빛깔로간다_내지(0514).pdf (‘말씀해 주세요.’, ‘현기증으로 목소리’ + 오교정 퇴 각/급 회/권 면’)

= 오교정 시집_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2020.05.25. 푸른사상)

2023-05-29 오후 6:05 (원작 최종교정: 퇴각/급회/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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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상황:

    1989.7.11. 8.4(8,11). 44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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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객관적인 해석

  「단식 수업 그리고 철야 농성먼 곳의 교사들이 7·9 대회에 참가하고 돌아온 다음날(711)부터 814일까지 먼 곳에서 일어난 사실들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실 그대로 재현한(리얼리즘 기법으로 쓴) 글이다.

  「단식 수업 그리고 철야 농성에선 등장인물의 말(또는 생각)을 통해 상황에서 그 인물이 취한 태도 또는 자세, 심성을 짐작게 한다. 김종대, 강선, 김재일 선생이 이어간 말들은 긴급 상황에 결단력 있고 여유로운 자세로 대처하는 세 선생의 밝은 심성을 느끼게 한다. (빨리 농성 체제로 들어가는 게 수라면 수제.”, “아따, 마빡도 요런 때는 머리가 상당히 잘 돌아가네.”, “허허, 그런께 마빡이제.”) 긴급 모임인데, 심각한 상황에 운동의 순수성, 코믹하고 밝은 이미지와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나 한 도막 더 주라. 나도 니들 문제로 신경 쓰다가 오늘도 한 끼니도 못 먹었다.”, “그러니까 멀라고 남의 일에 신경을 써요? 배만 고픈걸.”, “박제 선생, 자네한테는 신경 안 쓸 거니까 걱정도 마라.” / “소낙비는 피해 가는 것처럼.”, “소낙비도 맞고 싶은 사람이 있을 텐데, 왜 자꾸 소낙비, 소낙비 하면서 남의 갈 길을 못 가게 막는 것입니까?”, “그런께 내가 아무한테나 피해 가라고 하더냐? 나도 인정이 있고 마음 쓰여지는 곳이 있어서,”)

  ‘안 돼! 단식 수업도 투쟁이니까!”, ‘! 가고자 하는 길을 가고 싶은데, 나의 육신은 이토록 나로부터 분리되어 사람들로부터 나를 분리시켜버릴 것만 같으니……!’, “탈퇴라는 말에 내 이름이 언급되는 것조차 저는 수치스럽게 생각합니다.”에서는 자신이 전교조 운동을 지향한 빛깔(운동에 쏟는 순수한 심성과 열정)을 보게 한다.

  「단식 수업 그리고 철야 농성본조의 지침이 내려왔습니다. 생각을 말씀해 주세요라고 현실 문제에 적절한 대응을 요구하고 조합원들이 주체로서 농성 투쟁을 결정”(선택)하여 행동(현실 참여)하는 실존주의 앙가주망을 보게 한다. 교사들이 투쟁을 해가는 과정과 장면을 섬세하게 사실적으로 형상화한 리얼리즘 경향을 보여준다. “아침새날, 밝은 날, 새역사를 상징하는 말이다. 실명 인물들이 움직여서 시공간 변화를 가져오고 의미있는 현재들을 만들어 역사를 만들어내는 무비즘과 역사 리얼리즘 경향을 보게 한다.

  이 글의 표현상 특징은 9인의 실명 인물이 등장하고 관계 속의 사람들(이들과 교장)이 움직임에 따라 시공간이 움직여, 전교조합원들의 단식 수업·농성·집단사표 등의 투쟁과, “퇴각서 분열 공작”, 직권면직이라는 정권의 탄압이 펼쳐지는, 역사의 현장을 재현한 역사적 리얼리즘 무비즘이다. ‘털어보이고는 / 휘청거렸다 / 비틀거렸다 / 흘러들어 / 스쳐 가게라는 시각적 동적 심상을 주는 서술어로 무비즘을 느끼게 한다.

  교장과 화자 역시 여유롭지만 그 색깔이 다르다. “나도 니들 문제로 신경 쓰다가 오늘도 한 끼니도 못 먹었다.”/“그러니까 멀라고 남의 일에 신경을 써요? 배만 고픈걸.”, “박제 선생, 자네한테는 신경 안 쓸 거니까 걱정도 마라.”/‘걱정을 왜 해요?라는 식으로 교장의 말에 대해 한 말(과 생각)이라든가, “소낙비는 피해 가는 것처럼.”/“소낙비도 맞고 싶은 사람이 있을 텐데, 왜 자꾸 소낙비, 소낙비 하면서 남의 갈 길을 못 가게 막는 것입니까?”라는, 교장의 말로 인한 반응에 저돌적인 면이 깔려 있다. 반면에 교장은 코믹한 이미지를 주면서도 화자인 박제의 공격을 피하는 순발력 있는 말을 한다.

  「단식 수업 그리고 철야 농성이 실재하는 인물들 간에 실제로 오고 간 대화를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학교는 교장과 교사들이 평상시에 매우 정감 있는 관계로 지내는 분위기 좋은 학교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도 교사들은 왜 전교조를 결성한 것일까? 교장은 자신의 위치가 있어서 탈퇴각서 종용하는 건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다는 말을 하는데, 교사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교사들의 개인적 생각은 이 글에서는 알 수 없다. 단지 단식 수업에서 암시할 뿐이다.

  화자는 단식 수업 시간에 화셜 셰종이라고 나왔었죠? 그런데 왜 홍길동전에 그런 말이 끼워져 있을까? 세종 때에는 한글도 만들어지고 측우기 같은 과학적인 기구도 만들어졌는데. 혹시 그 시대가 사회적으로는……라고 말한다. 이 말은 어떤 시대이든 자유를 통제당하는 사람, 억압받는 사람, 못사는 사람은 저항할 수 없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이것이 단식 수업 그리고 철야 농성특이한 점이다.

  한편 화자가 하는 ! 가고자 하는 길을 가고 싶은데, 나의 육신은 이토록 나로부터 분리되어 사람들로부터 나를 분리시켜버릴 것만 같으니……!’라는 상념에서 글에 실존주의 앙가주망 경향을 반영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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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2020-04-13 (‘말씀해 주세요?’, ‘현기증 목소리’)

식수업 그리고 철야농

 

 

  “노조 가입교사 단식수업 및 교내농성을 계획·실행하라는

  본조의 지침이 내려왔습니다. 생각을 말씀해 주세요.

  7112교시가 끝난 쉬는 시간, 긴급 모임에서

  윤보현 분회장의 말이 매우 실감나게 전해진 것 같았다.

  “빨리 농성체제로 들어가는 게 수라면 수제.”

  “아따, 마빡도 요런 때는 머리가 상당히 잘 돌아가네.”

  “허허, 그런께 마빡이제.”라고

  7·9대회 참가자 김종대, 강선, 김재일 선생이 말했다.

  분회는 11일부터 무기한 제2차 농성투쟁을 한다는 것과

  단식수업과 철야농성투쟁을 결정하였다.

  정규수업이 끝난 오후, 스치로폴을 구입해 바닥에 깔고

  담요를 덮음으로써 미술실은 농성장으로 탈바꿈했다.

  분회원의 역할이 배치되어, 김종훈은 상황 보고를 맡고,

  대자보와 성명서를 작성하는 역할은 내가 맡아

  미술실의 복도 벽에 대자보를 붙였다. 그리고 그날, 밤은

  노래와 구호, 토론과 작업이 펼쳐지면서, 아침을 향했다.

  13, 점심시간엔, 미술실에서 사직서가 배부되고

  김성진 선생이 설명했다.

  “퇴각서 분열공작에 대응한다는 의미에서,

  사직서를 한꺼번에 제출하는 전술을 택해라 합니다.”

 

  14, 점심시간에 분회원이 한 사람씩 호출되어

  교장실로 갔다가 미술실에 돌아왔다.

  밤 8시경엔 교장이 수박 두 동이를 들고 들어왔다.

  교장은 히죽 웃더니 말을 시작했다.

  “나 한 도막 더 주라. 나도 니들 문제로 신경 쓰다가

  오늘도 한 끼니도 못 먹었다.”

  “그러니까 멀라고 남의 일에 신경을 써요? 배만 고픈걸.”

  “제선, 자네한테는 신경 안 쓸 거니까 걱정도 마라.”

  뜻밖의 자리에서 교장의 생각을 알게 되었다.

  ‘걱정을 왜 해요?’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런데 교장은

  “신재용이도 보통 고집이 아니더란께. 죽어도 각서는

  못 쓰겠다고 하니, 참말로 교장도 못 할 일이제. 헌데

  어쩌겄냐? 위에서는 징계를 최소화하라니, 나도 그렇고.”

  심정을 털어보이고는 약간의 시간을 두었다.

 

  15, 마지막 수업을 하는 나는 20분쯤이 지났을 때

  현기증으로 목소리 내기 힘듦을 느꼈다. 이내 휘청거렸다.

  ‘안 돼.’ 하고 정신을 붙잡고서 가까스로 교탁을 붙잡아

  거기에 기대어 목소리를 내는 데에 안간힘을 썼다.

  “화셜 셰종이라고 나왔었죠? 그런데 왜 홍길롱전에 그런

  말이 끼워져 있을까? 세종 때에는 한글도 만들어지고

  측우기 같은 과학적인 기구도 만들어졌는데. 혹시

  그 시대가 사회적으로는……, !”

  하고, 현기증으로 다시 비틀거렸다.

  ‘안 돼.’ 생각이 들면서, 5일째 단식하는 나는 왼손이

  바로 앞 학생의 책상을 짚었다. 전 학생이 내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선생님, 수업 그만하시고 좀 쉬세요.”

  “저희들끼리 자습을 할 테니, 의자에 앉아 쉬세요.”

  아이들의 마음과 모습이 가슴과 뇌리에 흘러들어 나는

  수업을 중단했다. 교탁에 기대어 서 있는데 끝종이

  들려왔다. 부축해 주겠다는 학생들에게 걱정 마라는 말을

  남겨 주고서 힘없는 발을 한 발 한 발 움직였다.

  지쳐 있는 내 몸이 나를 교란시켰다.

  못 버티겠으면 단식수업을 포기해야 할 것 아니냐?

  안 돼! 식수업도 투쟁이니까!

  정규수업 시간이 끝난 오후, 급회의가 소집되었다.

  본조에서, 정부에 실체 인정과 대화를 요구했으며,

  단식수·농성·집단사표 등의 투쟁을 잠정 중지하는

  방향으로 투쟁을 전환한다는 뜻밖의 내용이 전달되었다.

  분회원들은 토의로 들어갔다, 상황에 신속히 대처할

  수 있도록 미술실은 농성장 상태로 두자고 결정했다.

  20명에 가까운 조합원들이 무리를 지어 길을 걸었다.

  5시 반경임에도 다소 열기까지 느껴지는 날씨였다.

  “식수업하느라 고생하셨어요. 목욕탕 가서 몸 푸세요.

  저는 밤에 선생님 댁에 들를게요.”

  다리에 힘이 없는 내게 자취집 대문 앞 창석이 말했다.

  탕 안의 거울 앞으로 가는 나를 사람들이 흘긋 쳐다봤다.

  몸통은 갈비뼈의 윤곽만이 두드러졌을 뿐 배는 꺼진 채

  가늘게 푹 들어가 버린 허리가 있었다.

  ‘! 가고자 하는 길을 가고 싶은데,

  나의 육신은 이토록 나로부터 분리되어 사람들로부터

  나를 분리시켜 버릴 것만 같으니……!’

  라는 상념을 스쳐 가게…….

 

  848시 반경에 교장이 농성장 안으로 들어왔다.

  “탈퇴 문제를 신중히 고려해 봄이 좋을 것 같은데.

  소낙비는 피해 가는 것처럼.”

  분열시키려는 의도라고 판단하여 나는 곧 반발했다.

  “소낙비도 맞고 싶은 사람이 있을 텐데, 왜 자꾸 소낙비,

  소낙비 하면서 남의 갈 길을 못 가게 막는 것입니까?”

  “그런께 내가 아무한테나 피해 가라고 하더냐?

  나도 인정이 있고 마음 쓰여지는 곳이 있어서,” 하더니

  “안 선생 탈퇴 문제 생각해 봤어?” 하며 피해 갔다.

  “탈퇴라는 말에 내 이름이 언급되는 것조차

  저는 수치스럽게 생각합니다.”

  안용주 선생의 항변에, 교장은 다른 조합원을 찾아갔다.

  열흘 후 나와 강, 4, , , , 9인이

  먼 곳에서 직권면직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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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1 오후 2:48 2020.04.13. 11:58.. 2020_04(박석준)원고-교정본.hwp (오타: ‘말씀해 주세요?’, ‘현기증 목소리’) <원작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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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 2020-03-21 오후 2:48 2020-03-24

단식수업 그리고 철야농성

 

 

  “노조 가입교사 단식수업 및 교내농성을 계획·실행하라는

  본조의 지침이 내려왔습니다. 생각을 말씀해 주세요?

  7112교시가 끝난 쉬는 시간, 긴급 모임에서

  윤보현 분회장의 말이 매우 실감나게 전해진 것 같았다.

  “빨리 농성체제로 들어가는 게 수라면 수제.”

  “아따, 마빡도 요런 때는 머리가 상당히 잘 돌아가네.”

  “허허, 그런께 마빡이제.”라고

  7·9대회 참가자 김종대, 강선, 김재일 선생이 말했다.

  분회는 11일부터 무기한 제2차 농성투쟁을 한다는 것과

  단식수업과 철야농성투쟁을 결정하였다.

  정규수업이 끝난 오후, 스치로폴을 구입해 바닥에 깔고

  담요를 덮음으로써 미술실은 농성장으로 탈바꿈했다.

  분회원에게는 역할이 배치되었다.

  대자보를 작성하는 역할은 나와 김종훈 선생이 맡아

  미술실의 복도 벽에 대자보를 붙였다. 그리고 그날, 밤은

  노래와 구호, 토론과 작업이 펼쳐지면서, 아침을 향했다.

  13, 점심시간엔, 미술실에서 사직서가 배부되고

  김성진 선생이 설명했다.

  “퇴각서 분열공작에 대응한다는 의미에서,

  사직서를 한꺼번에 제출하는 전술을 택해라 합니다.”

 

  14, 점심시간에 분회원이 한 사람씩 호출되어

  교장실로 갔다가 미술실에 돌아왔다.

  밤 8시경엔 교장이 수박 두 동이를 들고 들어왔다.

  교장은 히죽 웃더니 말을 시작했다.

  “나 한 도막 더 주라. 나도 니들 문제로 신경 쓰다가

  오늘도 한 끼니도 못 먹었다.”

  “그러니까 멀라고 남의 일에 신경을 써요? 배만 고픈걸.”

  “제선, 자네한테는 신경 안 쓸 거니까 걱정도 마라.”

  뜻밖의 자리에서 교장의 생각을 알게 되었다.

  ‘걱정을 왜 해요?’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런데 교장은

  “신재용이도 보통 고집이 아니더란께. 죽어도 각서는

  못 쓰겠다고 하니, 참말로 교장도 못 할 일이제. 헌데

  어쩌겄냐? 위에서는 징계를 최소화하라니, 나도 그렇고.”

  심정을 털어보이고는 교장은 약간의 시간을 두었다.

 

  15, 마지막 수업을 하는 나는 20분쯤이 지났을 때

  현기증 목소리 내기 힘듦을 느꼈다. 이내 휘청거렸다.

  ‘안 돼.’ 하고 정신을 붙잡고서 가까스로 교탁을 붙잡아

  거기에 기대어 목소리를 내는 데에 안간힘을 썼다.

  “화셜 셰종이라고 나왔었죠? 그런데 왜 홍길롱전에 그런

  말이 끼워져 있을까? 세종 때에는 한글도 만들어지고

  측우기 같은 과학적인 기구도 만들어졌는데. 혹시

  그 시대가 사회적으로는……, !”

  하고, 현기증으로 다시 비틀거렸다.

  ‘안 돼.’ 생각이 들면서, 5일째 단식하는 나는 왼손이

  바로 앞 학생의 책상을 짚었다. 전 학생이 내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선생님, 수업 그만하시고 좀 쉬세요.”

  “저희들끼리 자습을 할 테니, 의자에 앉아 쉬세요.”

  아이들의 마음과 모습이 가슴과 뇌리에 흘러들어 나는

  수업을 중단했다. 교탁에 기대어 서 있는데 끝종이

  들려왔다. 부축해 주겠다는 학생들에게 걱정 마라는 말을

  남겨 주고서 힘없는 발을 한 발 한 발 움직였다.

  지쳐 있는 내 몸이 나를 교란시켰다.

  못 버티겠으면 단식수업을 포기해야 할 것 아니냐?

  안 돼! 식수업도 투쟁이니까!

  정규수업 시간이 끝난 오후, 급회의가 소집되었다.

  본조에서, 정부에 실체 인정과 대화를 요구했으며,

  단식수·농성·집단사표 등의 투쟁을 잠정 중지하는

  방향으로 투쟁을 전환한다는 뜻밖의 내용이 전달되었다.

  분회원들은 토의로 들어갔다, 상황에 신속히 대처할

  수 있도록 미술실은 농성장 상태로 자고 결정했다.

  20명에 가까운 조합원들이 무리를 지어 길을 걸었다.

  5시 반경임에도 다소 열기까지 느껴지는 날씨였다.

  “식수업하느라 고생하셨어요. 목욕탕 가서 몸 푸세요.

  저는 밤에 선생님 댁에 들를게요.”

  다리에 힘이 없는 내게 자취집 대문 앞 창석이 말했다.

  탕 안의 거울 앞으로 가는 나를 사람들이 흘긋 쳐다봤다.

  몸통은 갈비뼈의 윤곽만이 두드러졌을 뿐 배는 꺼진 채

  가늘게 푹 들어가 버린 허리가 있었다.

  ‘! 가고자 하는 길을 가고 싶은데,

  나의 육신은 이토록 나로부터 분리되어 사람들로부터

  나를 분리시켜 버릴 것만 같으니……!’

  라는 상념을 스쳐 가게…….

 

  848시 반경에 교장이 농성장 안으로 들어왔다.

  “탈퇴 문제를 신중히 고려해 봄이 좋을 것 같은데.

  소낙비는 피해 가는 것처럼.”

  분열시키려는 의도라고 판단하여 나는 곧 반발했다.

  “소낙비도 맞고 싶은 사람이 있을 텐데, 왜 자꾸 소낙비,

  소낙비 하면서 남의 갈 길을 못 가게 막는 것입니까?”

  “그런께 내가 아무한테나 피해 가라고 하더냐?

  나도 인정이 있고 마음 쓰여지는 곳이 있어서,” 하더니

  “안 선생 탈퇴 문제 생각해 봤어?” 하며 피해 갔다.

  “탈퇴라는 말에 내 이름이 언급되는 것조차

  저는 수치스럽게 생각합니다.”

  안용주 선생의 항변에, 교장은 다른 조합원을 찾아갔다.

  열흘 후 나와 강, 4, , , , 9인이

  먼 곳에서 직권면직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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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내 시절 속에 살아 있는 사람들(메모),

2020-03-21 오후 2:48 2020-03-24 오전 2:14 (초고)

= 2020.03.25. 15:35.. 박석준-3시집-0618-12-105()-5-20-2.hwp (오타: 나두자) (초고 원본)

*2020.03.25. 01:32.내메. 박석준-3시집-0618-12-105()-5-93-1.hwp (현기증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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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재일-김종대-김성진-윤보현-신재용-강선-박석준-안용주-김종훈_1994-02, 전교조 해직교사 특별채용 연수. img382

  김재일-김종대-김성진-윤보현-신재용-강선-박석준-안용주-김종훈_1994-02, 전교조 해직교사 특별채용 연수. img382.

    (1989.08.14일 직권면직된 전교조 먼곳 분회 교사 9. 1994-02 전교조 해직교사 특별채용 연수. 전남교육연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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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투쟁하는 1989년 나. 김재일 그림(1989). 20200911_120319

  단식투쟁하는 1989년 나. 김재일 그림(1989). 20200911_12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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