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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 (창작년도)

나의 무비즘 (25), 실존주의 앙가주망 (22), 사상시 (2) 슬픈 방 1 / 박석준

나의 신시 28 슬픈 방 1

나의 무비즘 (25), 실존주의 앙가주망 (22), 사상시 (2)

1988-05

박석준 /

슬픈 방 1

 

 

    세월은 여관방에서 여인숙을 거쳐 단칸방으로 갔다.

    내 두 달 월급만큼의 돈을 빌려 돈을 내고,

    추석날 짐을 싸, 열 달을 빌려 쓰는 단칸방으로 일요일에

    다섯 식구가 이사했다. 창 없는 어두운 좁은 방,

    두 사람이 벽에 기대야 다섯이 자는 유동 슬픈 방,

    그 방에서 헌이 시월 초순에 떠났다. 순천으로 갔다.

먼 곳 3 11월의 얼굴들과 빗물부분

.

.

슬픈 방 1

 

 

  “안채 사람들이 나갔단다. 무리가 되더라도 우리가

  그 들을 얻어야 할 것 같아야. 형들이 나오면

  식구대로 잠잘 자리는 있어야 할 것 아니냐?”

  885월 중순의 토요일, 어머니는 우리들에게 매우

  진지하게 자신이 인식한 상황을 예감처럼 털어놨다.

  “얼마랍디여?”라고 나와 헌이 동시에 물었는데, 어머니는

  열 달 사글세로 200만 원인 방값을

  이상한 방정식 같은 계산법을 적용하더니

  당장엔 120만 원만 있으면 된다고 설명했다.

  “일단 들어가고 봅시다. 이야 구해볼 테니까요.”

  라고 헌이 곧바로 얘기했다.

  나와 헌의 한 달 월급을 합쳐도 40만 원이 더 있어야만

  해결될 수 있는 금액인데.

  “다음주에 월급 나오면 방값으로 해요.

  란 말에, ·고 검정고시 후 대학생이 된 수는 다만

  “그럼 제 형 생활비는 어떻게 하려고?”라고 표현했다.

 

  5월 말의 토요일, 우리는 두 방으로 이사했다.

  수가 이미 아침부터 짐을 날라다 놓은 터여서

  내가 돌아와서 3면의 책장에 책을 정리했다.

  움푹 들어간 그 방들 역시 햇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아,

  책 정리를 하려면 불을 켜야 했다.

  “방이 두 개가 되고 본께 넓어서 좋네!”

  저녁에 들른 헌이, 도배도 못 한 방을 둘러보고 말했다.

  하지만, 남의집살이하는 헌은 어머니가 차려준

  저녁을 먹고 곧장 순천으로 가야 했다.

  새벽 3시가 되어도 어머니는 을 하고 있었다.

  앞닫이, 30년도 넘게 어머니 곁에 둔, 어머니의 손으로

  장만한 물적 재산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 앞에 앉아,

  자신이 가장 귀중하게 여기는 물건들, 즉 노트나 사진 등

  형들과 관계된 물건들, 내가 어렵게 다녔던 고등학교

  모자, 아버지의 사진 과거와 관계된 물건을 차근차근

  정리하여 앞닫이 속으로 차곡차곡 집어넣고 있었다.

  “그만하고 쉬시지 그래요? 그러다,”

  말만을 떨어냈을 뿐, ‘그러다 또 아프시면 어쩌려고……?’

  라는 뒷말은 목구멍 속으로 넣어야 했다.

  “알았다. 앞닫이만 정리해놓고 그만할란다.

  피곤할 텐디 어서 자거라.”

  하여 나는 옆방으로 갔다.

  그 방에는 조금만 누워 있다가 마저 정리를 하겠다던

  수가 피곤했던 듯 코를 골고 있었다. 나는 잠들어 있는,

  누나 아들 재연이 머리맡에 남겨둔 메모를 보았다.

 

    어느 날 밤. 나와 할머니는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원각사 옆 광주은행 사거리에 있었다. 전국에서 온 대학 연합회 학생들과 시민단체와 시민들이 한데 어우러진 양심수 석방 집회가 열리던 그날, 어김없이 할머니를 따라나선 보호자로서의 어린 나는 그날 집회에서도 얼굴이 달아오를 정도로 최루탄 가스를 들이마셔야 했고, 그런 혼란과 긴장감 속에서 할머니는 없는 듯 존재하며 민가협 어머니들과 함께하였다. 어쩌다 한 번씩 두 아들*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 자리가 나오면, 그렇게 조용한 할머니도 <성 엘모의 열정>과 같은 열정을 토하셨다. 무대에 서서 말보다는 눈으로 호소하였고, 두 아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석방을 외쳤다. 그리고 항상 마지막 구호는 양심수를 석방하라!”였는데, 이 구호는 말이 막혔을 때도 외쳤다.

    그렇게 한 번씩 아픈 몸을 이끌고 집회에 나갔다 오면 적어도 보름씩은 앓아누웠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운동권에서 소문난 김치 맛 때문에, 양심수 기금 마련을 위한 일일찻집 자리에선 할머니는 빠져나올 수 없었다. 그런 날엔 접시와 그릇과 주방기구를 보자기에 싸가지고 나가셨는데……, 그렇게 해서 또 한 번 앓아눕는다.

 

  벽 쪽으로 등을 기대고 앉은 나는 생각에 잠겼다.

  ‘삼형이 소내에서 단식투쟁하다가 고문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췌장염을 앓고 있다는 큰형 소식을 듣고서

  면회 신청을 했지만 좌절됐을 때, 교도소 정문 앞에 누워

  “내 아들 내놓아라! 내 아들을 보기 전에는

  여기서 한 발자국도 못 간다.”농성을 하면서

  면회 요구 투쟁을 하여, 전경들이 끄집어내려고

  달라붙고 했던 어머니! 이 많이 생겨서 그럴까?

  일을 해서 또 아프면, ! 알 수 없다.

  을 할 수 있을 때 사람은

  사람으로서의 존재 의미를 획득한다지만.’

  아침, 어머니의 방에는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벽에 걸린 둥그런 시계는 10시가 되고 있고

  텔레비전은 조그마한 고리짝 위에 놓인 채

  흐릿한 화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제 형, 엄마 방에 전화 놓을 생각 없어?”

  식사를 하는 중에 갑작스럽게 수가 제안을 했다.

  “다음 달에는 놉시다.”

  하고 오후, 그 방들을 두고 나는 목포행 버스를 탔다.

  차가 굴러가고, 내 뇌리에 국민학교 6학년

  재연의 메모가 채워졌는데

  어느 결엔가 , 사람, 이 내 머릿속에 어른거리더니

  이내 변하여 어머니 , 전화, 이 새겨져버렸다.

 

 

  * 두 아들 : 남민전 사건으로 197911월부터 수감 중인 큰아들 박석률(무기 형)과 셋째아들 박석삼(15년 형)

.

1999.06. 내 시절 속에 살아 있는 사람들(메모),

2020-03-21 오전 1:33 <원작>

= 2020.03.21. 01:56.내메. 박석준-3시집-0618-12-105()-5-93-1.hwp (오타: 지만 좌절, 초등학교) (원작 원본)

= 2020.03.25. 15:35.. 박석준-3시집-0618-12-105()-5-20-2.hwp (오타 정정: 지만 좌절, 초등학교)

(오교정) 시집_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2020.05.25. 푸른사상)

.

.

실제 상황

    1988.05.14.(), 광주시 유동 단칸방 슬픈 방

    1988.05.28. 05.29.(), 광주시 유동 두 개의 슬픈 방

.

.

. 작가와 시집과 관련한 해석

  「슬픈 방 140편의 글로 구성한 박석준의 자서전 시집 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속의 글이다. 이 시집에는 슬픈 방을 제목으로 한 2편의 시가, 슬픈 방 1- 초대- 슬픈 방 2 방과 나가 순서로 수록되었다. (이런 까닭에 연작시로 규정하기가 어렵지만,) 그런데 슬픈 방이라는 용어는 이 시집의 먼 곳 3 11월의 얼굴들과 빗물라는 작품에서 처음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박제방과 함께 시인이 자신의 삶과 관련하여 만들어낸 개인적 상징의 용어이다. “슬픈 방은 처음엔 열 달을 빌려 쓰려고 내 두 달 월급만큼의 돈을 빌려 돈을 내고구한 방이다. (← 「먼 곳 3 11월의 얼굴들과 빗물) 그래서 슬픈 방슬픈 가난한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서 흔들거리며 허덕이는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이 슬픈 방의 범주가 이 글 슬픈 방 1에서 확장된다. 처음엔 슬픈 방이 유동 어떤 집의 단칸방이었지만 이 글에서 그 집 안채에 있는 붙어있는 두 방으로 전화(轉化)한다. 어머니에겐 이 두 방식구대로 잠잘 자리”(양심수인 두 아들이 석방되면 온 식구들이 함께 살아갈 거처)이다. 그래서 아이러니컬하게도, “슬픈 방슬픈좋은 날이 있기를 기대하는. 극복할 수 있이라는 의미도 지닌다.

 

구성 형식기법과 경향

  「슬픈 방 1을 잘 이해하기 위해선 작가의 삶이나 시집 등 콘텍스트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슬픈 방 1은 사건들 속에 메모가 삽입된, 그리고 그 메모 속에도 사건들이 흘러가는 독특한 구성 형식을 취한 글이다. “식구대로 잠잘 자리는 있어야 할 것이라는 어머니의 말로부터 시작하여 시공간을 이동하면서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펼쳐내는 무비즘의 글이다.

  “할머니없는 듯 존재하며 민가협 어머니들과 함께하였고 양심수인 두 아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석방을 외쳤다.”란 내용을 조카는 메모에서 전했다. 그 후 의 생각 속에 두 아들의 사연과 두 아들을 위해 농성, 투쟁하는 어머니모습이 흘러간다. 두 아들9년 전인 197911월에 남민전 사건으로 투옥된 무기수 박석률과 15년 형을 받은 박석삼이다. 이 글은 조카의 메모와 의 생각을 통해 바람직한 인간적 삶을 위해 사람들이 부조리한 사회 문제에 참여하는 모습을 담은 실존주의 앙가주망의 문학 글이다. 그리고 한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한 가난한 가족의 살아가는 모습을 리얼리즘 기법을 사용하여 사실적으로 형상화한 글이다.(“국민학교 6학년인 조카의 메모를 삽입한 것은 글의 사실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소재: “어머니

  「슬픈 방 1은 전반적으로 소재로 내용이 흘러간다. 하지만 의 경우엔 을 중심으로 생각이 진행된다.

  어머니에게 자신의 바람(수감된 두 아들이 돌아와서 함께 사는 것)을 실현할 수 있는 곳으로 여겨진다. 수감된 형들을 그리워하며 나팔꽃 시든 화분을 가꾸고 있던/어머님의 어슴푸레한 모습을 잊지 못하면서도”(일상 1-1)

  “어머니 두 가지이다. 집에서 하는 일(수감된 자식들을 떠올리며 앞닫이 정리하기, 나팔꽃 화분 가꾸기 등)과 밖에서 하는 일(수감된 자식들을 위해 하는 일: 집회 참가, 일일찻집 활동, 농성 및 투쟁”)이다. 밖에서는 민가협 어머니들과 함께하거나 혼자서 한다. 현실 문제에 동참한다.

 

소재: “

  40편의 시로 구성한 자서전 시집 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의 시이다.

  “에게 ”(생계비 및 생활비. )이며 돈을 버는 을 하기 위해 쉬는 공간이다.

  (84) “9월 말 일요일, 우리는 (장원)여관에서 떠나야 했다”,(아버지 무너진 집) “은성여관으로 옮기기 전 신용금고에서 6백만 원을 빌려,/나는 달마다 20만 원씩 갚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지만.”(푸른 하늘 푸른 옷 슬프고 아이러니컬한 날), “내 뇌리에는 돈과 사람과 이라는 단어들이 수도 없이 교차되었다. 다시 3백만 원을 빌려 식구들이 거처를 (한진여인숙으로) 옮긴 것뿐이지만”(어머니 돈과 사람과 방)

  한진여인숙을 거쳐, 19869월에 내 두 달 월급만큼의 돈을 빌려 돈을 내고,/추석날 짐을 싸, 열 달을 빌려 쓰는 단칸방으로 일요일에/다섯 식구가 이사했다. 창 없는 어두운 좁은 방,/두 사람이 벽에 기대야 다섯이 자는 유동 슬픈 ,/그 방에서 헌이 시월 초순에 떠났다. 순천으로 갔다.”(먼 곳 3 11월의 얼굴들과 빗물)

  그러고는 그 슬픈 방에서 “885월 중순의 토요일, 어머니는 우리들에게 매우/진지하게 자신이 인식한 상황을 예감처럼 털어놨다”. “형들이 나오면/식구대로 잠잘 자리는 있어야 할 것이라고. “나와 헌의 한 달 월급을 합쳐도 40만 원이 더 있어야만/해결될 수 있는 금액인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만 다음주에 월급 나오면 방값으로 해요.”라고 말을 털어낸다.(슬픈 방 1)

  “가 대답한 이 말은, 거처를 단칸방에서 두 개의 방으로 옮기기 위해 가 다시 을 냈음을 암시한다. “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에 허덕이며 살아가고 있다. 허덕이며 하는 나의 은 돈을 벌어오거나 돈을 빌리는 일(빚내기)이다.

 

메시지

  자서전 시집에서 슬픈 방이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된 작품은 먼 곳 3 11월의 얼굴들과 빗물이다. 이 시집에선 슬픈 방이 유동 어떤 집의 단칸방그 집 안채에 있는 붙어있는 두 방을 가리킨 용어이다. 이 용어가 제목에 들어간 작품이 2가지이다. ‘슬픈 방 1- 초대- 슬픈 방 2 방과 나의 순서로 시집에 수록되었. 이런 순서여서 이 2가지 작품을 슬픈 방 연작시라고 규정하기가 어렵다.

  “‘, 사람, 이 내 머릿속에 어른거리더니 이내 변하여 어머니 방, 전화, 이 새겨져버렸다.”라고, 슬픈 방 1 의 지향점의 순서가 바뀌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난다. 슬픈 방 1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는 것을 어머니가 시공간을 이동하면서 하는 을 통해 형상화하고 있다. 이 글은 무비즘을 반영하고 있다.

  말은 요구와 충당으로 그 형태가 드러난다. “어머니식구대로 잠잘 자리는 있어야 할 것이니까 두 개의 방에서 살아야 하고 그렇게 살려면 그 방들(2)을 얻어야 한다.’라는 요구()를 했고 요구의 내용이 곧 실현되었다. 그런데 어머니의 말이 제대로 드러났는지(요구가 충당되었는지) 의문이 간다. 삶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한다. 한국의 부조리한 사회에서 바라는 삶을 이루려면 가난한 사람은 어떻게(무슨 일을 하고) 살아가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이 글 슬픈 방 1을 할 수 있을 때 사람은/사람으로서의 존재 의미를 획득한다라고 작가의 사상과 (실존주의) 의식을 보여준다. 슬픈 방 2 방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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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엘모의 열정(세인트 엘모의 열정)

  대학동기생 7명이 사회에 갓 진출하여 고난을 겪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인생의 의미를 깨달으며 성장하는 전형적인 청춘물 영화(원제는 St. Elmo's Fire. 세인트 엘모의 불). 1985년 제작햇는데. 무엇보다도 OST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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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교정)_시집

슬픈 방 1

 

 

  “안채 사람들이 나갔단다. 무리가 되더라도 우리가

  그 방들을 얻어야 할 것 같아야. 형들이 나오면

  식구대로 잠잘 자리는 있어야 할 것 아니냐?”

  885월 중순의 토요일, 어머니는 우리들에게 매우

  진지하게 자신이 인식한 상황을 예감처럼 털어놨다.

  “얼마랍디여?”라고 나와 헌이 동시에 물었는데, 어머니는

  열 달 사글세로 200만 원인 방값을

  이상한 방정식 같은 계산법을 적용하더니

  당장엔 120만 원만 있으면 된다고 설명했다.

  “일단 들어가고 봅시다. 돈이야 구해볼 테니까요.”

  라고 헌이 곧바로 얘기했다.

  나와 헌의 한 달 월급을 합쳐도 40만 원이 더 있어야만

  해결될 수 있는 금액인데.

  “다음주에 월급 나오면 방값으로 해요.”

  란 말에, ·고 검정고시 후 대학생이 된 수는 다만

  “그럼 제 형 생활비는 어떻게 하려고?”라고 표현했다.

 

  5월 말의 토요일, 우리는 두 방으로 이사했다.

  수가 이미 아침부터 짐을 날라다 놓은 터여서

  내가 돌아와서 3면의 책장에 책을 정리했다.

  움푹 들어간 그 방들 역시 햇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아,

  책 정리를 하려면 불을 켜야 했다.

  “방이 두 개가 되고 본께 넓어서 좋네!”

  저녁에 들른 헌이, 도배도 못 한 방을 둘러보고 말했다.

  하지만, 남의집살이하는 헌은 어머니가 차려준

  저녁을 먹고 곧장 순천으로 가야 했다.

  새벽 3가 되어도 어머니는 일을 하고 있었다.

  앞닫이, 30년도 넘게 어머니 곁에 둔, 어머니의 손으로

  장만한 물적 재산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 앞에 앉아,

  자신이 가장 귀중하게 여기는 물건들, 즉 노트나 사진 등

  형들과 관계된 물건들과, 내가 어렵게 다녔던 고등학교

  모자, 아버지의 사진 등 과거와 관계된 물건을 차근차근

  정리하여 앞닫이 속으로 차곡차곡 집어넣고 있었다.

  “만하고 쉬시지 그래요? 그러다,”

  말만을 떨어냈을 뿐, ‘그러다 또 아프시면 어쩌려고……?’

  라는 뒷말은 목구멍 속으로 넣어야 했다.

  “알았다. 앞닫이만 정리해놓고 그만할란다.

  피곤할 텐디 어서 자거라.”

  하여 나는 옆방으로 갔다.

  그 방에는 조금만 누워 있다가 마저 정리를 하겠다던

  수가 피곤했던 듯 코를 골고 있었다. 나는 잠들어 있는,

  누나 아들 재연이 머리맡에 남겨둔 메모를 보았다.

 

    느 날 밤. 나와 할머니는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원각사 옆 광주은행 사거리에 있었다. 전국에서 온 대학 연합회 학생들과 시민단체와 시민들이 한데 어우러진 양심수 석방 집회가 열리던 그날, 어김없이 할머니를 따라나선 보호자로서의 어린 나는 그날 집회에서도 얼굴이 달아오를 정도로 최루탄 가스를 들이마셔야 했고, 그런 혼란과 긴장감 속에서 할머니는 없는 듯 존재하며 민가협 어머니들과 함께하였다. 어쩌다 한 번씩 두 아들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 자리가 나오면, 그렇게 조용한 할머니도 <성 엘모의 열정>과 같은 열정을 토하셨다. 무대에 서서 말보다는 눈으로 호소하였고, 두 아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석방을 외쳤다. 그리고 항상 마지막 구호는 양심수를 석방하라!”였는데, 이 구호는 말이 막혔을 때도 외쳤다.

    렇게 한 번씩 아픈 몸을 이끌고 집회에 나갔다 오면 적어도 보름씩은 앓아누웠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동권에서 소문난 김치 맛 때문에, 양심수 기금 마련을 위한 일일찻집 자리에선 할머니는 빠져나올 수 없었다. 그런 날엔 접시와 그릇과 주방기구를 보자기에 싸가지고 나가셨는데……, 그렇게 해서 또 한 번 앓아눕는다.

 

  벽 쪽으로 등을 기대고 앉은 나는 생각에 잠겼다.

  ‘삼형이 소내에서 단식투쟁하다가 고문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췌장염을 앓고 있다는 큰형 소식을 듣고서

  면회 신청을 했지만 좌절됐을 때, 교도소 정문 앞에 누워

  “내 아들 내놓아라! 내 아들을 보기 전에는

  여기서 한 발자국도 못 간다.”고 농성을 하면서

  면회 요구 투쟁을 하여, 전경들이 끄집어내려고

  달라붙고 했던 어머니! 할 일이 많이 생겨서 그럴까?

  일을 해서 또 아프면, ! 알 수 없다.

  일을 할 수 있을 때 사람은

  사람으로서의 존재 의미를 획득한다지만.’

  아침, 어머니의 방에는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벽에 걸린 둥그런 시계는 10가 되고 있고

  텔레비전은 조그마한 고리짝 위에 놓인 채

  흐릿한 화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제 형, 엄마 방에 전화 놓을 생각 없어?”

  식사를 하는 중에 갑작스럽게 수가 제안을 했다.

  “다음 달에는 놉시다.”

  하고 오후, 그 방들을 두고 나는 목포행 버스를 탔다.

  차가 굴러가고, 내 뇌리에 국민학교 6학년

  재연의 메모가 채워졌는데

  어느 결엔가 , 사람, 이 내 머릿속에 어른거리더니

  이내 변하여 어머니 방, 전화, 이 새겨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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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14. 18:01. 박석준시집_시간의색깔은자신이지향하는빛깔로간다_내지(0514).pdf (빨간색 //은 편집자가 임의 오교정하여 들여쓰기 안 함)

= 시집_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2020.05.25. 푸른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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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어머니. img460

  어머니. img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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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의 아들 준형-형(앞), 수-나(뒤). 2022. 1593459376524

  헌의 아들 준형-(), -(). 2022. 1593459376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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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 유동 슬픈 방 근처. 2023-07-23 오후 6:37 _DSC5484

  광주시 유동 슬픈 방 근처. 2023-07-23 오후 6:37 _DSC5484

      (골목 끝 집 뒤에 슬픈 방이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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