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24 일상 1-1
나의 실존주의 앙가주망 (16), 나의 무비즘 (22)
1987-10
박석준 /
일상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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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팔고 나면 스물아홉 살 나는 어김없이 여인숙–사람을 숙박시키는 일을 업으로 하는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다음 날에도 몸을 팔아야 하니까.
― 박석준, 「어머니 ― 돈과 사람과 방」 마지막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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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작>
일상 1-1
그러자 밤이 스치고, 나는 자야만 했다.
일상, 그 속에 바람과 슬픔의 사정이 허덕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지난가을 한 저녁, 수감된 형들을 그리워하며 나팔꽃 시든 화분을 가꾸고 있던
어머님의 어슴푸레한 모습을 잊지 못하면서도
그러나 져근덧 날이 새고,
9시의 반교차로를 또다시 의식한 나는
우리들의 가난하고 자유롭지 못한 사정상 그곳으로
가야만 하기에 그 가는 길을 찾아 가고만 있었다.
또다시 하루 속으로 사라지고 말 상념들로 분주한 채,
그 길 가는 곳 입구에 표시된 방향으로 가라고 강조된
화살표 하나 푯말로 서 있어서, 나는 왼쪽으로 갔다.
담벼락 뒤 푸접없이 네모진 창들을 연이어 내민
공장(恐場)*에 내 집에서보다 더 많은 시간을 토하고
푸르른 시간이 비켜서야
하루치 몸을 다 판 나는 서두름도 없이
그 길 가는 곳에서 떨어져
나와, 나의 실내엘 갔건만
이미지, 이미 지나가버리고 만 현상의 형상화……
그것은 일 속에 끝없는 듯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혼자서, 둘이서, 여럿이서 그 속을 사람들은
온통 진지하게 서두르며 만들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일상은 내게 또다시 장미꽃처럼 피었다간 져
분리, 그 속에
세월이 흘렀었다. 끝이 없을 듯한
반항의 세월이 흘렀었다.
* 공장(恐場): 입시제도 때문에 공포의 장소가 된 곳,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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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10-27 <원작>
→ 2020-03-16 오후 7:500 <수정 개작>
= 2020.03.18 (수) 11:43.메. 박석준-3시집-0618-12-푸105(교)-5-93-2.hwp (개작 원본)
= 시집_『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2020.05.25. 푸른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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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상황
1987-10-27 무렵(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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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시집들과 관련한 해석
「일상 1-1」은 자서전적 시집 『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에서 「어머니 ― 돈과 사람과 방」 다음에 나오는 글이며, 시집에서 전개하는 이야기(또는 사건)의 한 과정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 글은 ‘일상 1-1’이 ‘일상 일 다시 일(일하고 다시 일함)’을 내포하는 말이며, “그러자”로 시작하고 있다.
그래서 “그러자(앞에서 말한 일이 일어나자)”는 ⓐ, ⓑ, ⓒ 중 어느 것으로든 해석하는 것이 적당하다. ; ⓐ‘여인숙으로 돌아가자’, ⓑ‘나의 실내엘 가자’, ⓒ‘일상은 내게 또다시 장미꽃처럼 피었다간 져 분리, 그 속에 반항의 세월이 흘러가자’.
그리고 “나는 자야만 했”던 이유는 “다음 날에도 몸을 팔아야 하니까.”이다. “일상, 그 속에 (어머니와 나의) 바람과 슬픔의 사정이 허덕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수감된 형들을 그리워하며 나팔꽃 시든 화분을 가꾸고 있던 어머님의 어슴푸레한 모습을 잊지 못하면서도” “나” 또한 “형들을 그리워하”기 때문이다.
「일상 1-1」은 ‘한진여인숙’에서 1986년 9월에 떠나 단칸방인 ‘슬픈 방’으로 이사 온 지 1년 1개월이 지난 때인 1987년 10월 27일(30살 때)에 창작되었다(← 「슬픈 방 1」). “나”를 둘러싼 것 중 심히 변한 것은 ‘가난(한 상태)’이다. 일을 하고 다시 일을 해도 더 가난해진 상태로 “분리”되어 간 것이다. “반항의 세월이 흘렀”지만.
“9시의 반교차로”는 ‘9시부터 돈을 버ᅟᅳᆫ 길 = 수업’의 상징어이다. “왼쪽으로 갔다.”의 “왼쪽”은 ‘반항하는 쪽’이라는 의미도 내포한 중의어이다. “이미 지나가버리고 만 현상”은 “나”가 공장(恐場)에서 머물러 있을 때 펼쳐진 “일 속에 끝없는 듯한 시간”이다. 즉 공장(恐場)에서의 “나”의 “일”은 이미지로만 남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장에서 “(다른) 사람들”은 “일 속을” “혼자서, 둘이서, 여럿이서 온통 진지하게 서두르며 만들고 았는 상황”이 되었다는 점에서 “나”와는 존재 의미가 다르다. “나”는 이미지로 존재했고 “(다른) 사람들”은 상황으로 존재했다. “나”는 “일” 속에서 실존하지 못한 것이다. “하루치 몸을 다 판 나는” 상품가치로만 존재한 것이다. 이 글에는 이렇게 실존주의가 반영되어 있다. 그리고 한국 현대사에서 민주화운동을 한 이유로 수감된 가족을 둔 한 가정 구성원들이 1980년대를 살아가는 모습이 모더니즘 기법(비연대기적인 플롯 진행 방법. 의식과 시간에 대한 새로운 태도. 의식의 흐름 등)으로 담겨 있다.
나의 글에는 ‘나팔꽃’과 ‘장미(꽃)’이 개인적 상징으로 사용된다. “나팔꽃”은 ‘어머니의 기쁨(형들의 석방)과 그리움’을, “장미꽃”은 나의 ‘사랑, 아름다움, 열망(가난과 구속에서 벗어남)’을 내포한 상징어이다.
「일상 1-1」은 시공관을 이동하며 사람(자본주의 사회의 소시민)의 살아가는 모습을 영화로 보는 것처럼 느끼게 표현하는 무비즘 기법이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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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意識)의 흐름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은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가 1890년대에 처음 사용한 심리학의 개념이다. 그의 이 개념은 아방가르드와 모더니즘의 문학과 예술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1910년대 영국 문학에서 처음으로 시도되어 모더니즘 문학 및 예술 전반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실험적 표현법으로, 자동기술법과 유사하다.
인간의 의식은 정적인 부분의 배열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동적인 이미지와 관념이 흘러 늘어선 것이라고 하는 사고 방식이다. 앙리 베르그송도 《시간과 의식에 대한 고찰》에서 제임스와 같은 시기에 유사한 착상을 하였고 “고수”라는 개념을 주창하고 있다. 베르그송과 제임스는 서로 교류를 하였지만 영감은 서로 독자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이 개념은 나중에 문학의 세계에 사용되며, 문학의 한 기법을 나타내는 용어로 쓰이게 된다. 즉 “인간의 정신 속에 끊임없이 변하고 이어지는 주관적인 생각과 감각, 특히 주석 없이 설명해 나가는 문학적 기법”을 대표하는 문학 용어로 “의식의 흐름”이라는 말이 이용되게 된다. 이 뜻을 처음 사용한 것은 영국의 소설가 메이 싱클레어이다.
이러한 수법을 이용한 작품으로서 들 수 있는 예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Ulysses), 《피네간즈 웨이크》(Finnegans Wake),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To the Lighthouse), 윌리엄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The Sound and the Fury, 1929년) 등이 있다. 또한 의식의 흐름은 “내적 독백”이나 “무의식적 기억”이라고 하는 용어로 표현되기도 한다.
서구 모더니즘의 영향 아래 『후반기』를 중심으로 한 일군의 모더니즘 시인이 등장했다. 모더니스트 중에는 1950년대 후반 이후 사회 참여 의식을 강하게 드러내는 시를 쓰는 경향이 증폭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이후 '순수와 참여'라는 문학 논쟁의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전봉건, 김수영, 박인환, 김춘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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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10-27 <원작>_자서전본
日常(일상)
그러자 밤이 스치고, 나는
자야만 했다.
日常(일상), 그 속에 바램과 슬픔의 事情(사정)이 허덕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지난 가을 한 저녁,
수감된 형들을 그리워하며 나팔꽃 시든 화분을 가꾸고 있던
어머님의 어슴푸레한 모습을 잊지 못하면서도
그러나 저근덧 날이 새고
9시의 半(반)교차로를 또다시 의식하고 있는 나는
우리들의 가난하고 자유롭지 못한 事情(사정)상 그곳으로 가야만 하기에
그 가는 길을 찾아
가고만 있었다.
머릿속은 날이 지면 또다시 하루 속으로 사라지고 말 상념들로 분주한 채
문득 그 길 가는 곳에 이르러 서고, 푯말로 다가와 선 표시된 방향으로 가라고
강조된 화살표 하나, 그래서 나는 왼쪽으로 갔다.
담벼락 뒤, 푸접없이 네모진 창들을 연이어 내민 恐場(공장)*에
내 집에서보다 더 많은 시간을 토하고
푸르른 시간이 비켜서야
하루치 몸을 다 판, 나는
서두름도 없이 그 길 가는 곳에서 떨어져
나와, 나의 실내엘 갔건만
이미지, 이미 지나가 버리고 만 現象(현상)의 形象化(형상화)……
그것은 일 속에 끝없는 듯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혼자서, 둘이서, 여럿이서
그 속을 사람들은 온통 진지하게 서두르며 만들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일상은 내게 또다시 장미꽃처럼 피었다간 져
분리, 그 속에
세월이 흘렀었다, 끝이 없을 듯한
반항의 세월이 흘렀었다.
*학교사 제도교유과 입시제도 때문에 공포의 장소가 되었다는 뜻으로 공장(恐場)이란 표현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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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10-27 <원작 원본>
= 자서전_『내 시절 속에 살아 있는 사람들』(1999.06.20. 백산서당)
= 자서전_『내 시절 속에 살아 있는 사람들』(1999.09.05. 일월서각/ᄒᆞᆫᄀᆞᄅᆞ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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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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