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135 시인의 말_(카페, 가난한 비)
나의 실존주의 모더니즘 (70), 앙가주망 (63)
2012-02-24
박석준 /
시인의 말
시간을 전제로 하는 삶에는 바탕이 되는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내가 주로 살아왔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 공간은 자본주의 사회의 도시들이다.
도시에서 도시로 들어가는 길을 따라 내가 출퇴근하는
쓸쓸한 체제
말들이 여러 곳에 흩어져 있다.
트위터, 페이스북, 블로그, 카페, 핸드폰,
시…….
말들은 사람을 부르고 말 밖에서 사람이 버려진다.
“말이 빠진 곳, 아무것이 없으면 어떠리”라고 어느 시인은 표현하였지만.
돈이 알 수 없이 굴러다니고 있는 도시들과, 그것들 사이에 자리해 있는 여러 움직임들이 나와 마주하고 있는 세계의 실재라면 나는 우선 그런 세계에 관한 것들을 써야만 할 것이다. 말을 알아 간다는 것이 고달프지만.
말로 표현해야 할 사정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말로 표현하여 사정이 제대로 인식되고 새로워진다면 좋겠는데…….
말은 요구와 충당으로 그 형태가 드러난다. 내가 표현한 말이 나와 마주하고 있는 세계에서 시로 남을지 무엇이 될지 알 수 없지만.
2012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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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4 ∽ 2012-10-27 오전 1:34. 박석준-시집 최종본 2012년10월25일.hwp <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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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
상념(2012-02-24. 광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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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나의 생각
나는 4개의 「시인의 말」을 시로 썼다. 이 글은 「시인의 말(카페, 가난한비)」은 이 중 첫 번째 시이며, 나의 시와 관련한 다음과 같은 생각을 반영해서 쓴 시이다.(이 생각은 나의 모든 「시인의 말」에 깔려 있다.)
시와 관련해 오랫동안 내가 생각해온 것이 있다. 옥타비오 파스의 시 「확실한 것」에 표현되어 있는 “이 하얀 불빛이 실제 있는 것이고/이 글을 쓰고 있는 손이 실제 있다면, 이 쓴 것을/바라보는 눈은 진짜 있는 것인가?/말과 말 사이/내가 하는 말은 사라진다./내가 아는 건 지금 내가 살아 있다는 것뿐”(민용태, 「옥따비오 빠스」, 『스페인․ 중남미 현대시의 이해 2』, 창작과비평사, 1997, 205~206면.) 이라는 구절이 그것이다. 나는 이 시의 구절처럼 ‘내가 살아있다는 것’과 관련해 ‘존재의 불확실성’을 의식할 때가 많다.
시란 무엇인가. 논리를 초월한다는 특성 때문에 시의 본질이 무엇이라고 정확하게 답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시의 본질과 관련해 내 나름대로 생각해 본 것은 다음과 같다.
우선은 시의 본질적 요소 중의 하나인 언어가 있어야 한다. 언어를 매개로 하는 것이 논리인 만큼 논리의 초월도 언어를 전제로 하지 않고서는 가능치 않다. 다음으로는 시를 쓰는 것이 세계를 살아가는 인간의 행위 중 하나라는 점에서 시의 본질적 요소 중에는 세계와 인간이 있어야 한다. 시는 살아있는 인간이 어떤 세계에 대해 취하고 느끼는 것을 표현한 것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시를 쓴다는 것’은 시를 쓰는 사람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존재방식의 하나이어야만 한다. 시는 자아와 세계의 상호관계, 곧 대상을 심미적 언어를 매개로 해 표현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시에 수용된 대상은 기본적으로 언어로 표현되어 있는 객관적 상관물일 수밖에 없다. 물론 이들 객관적 상관물들 사이의 연관도 언어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때의 연관은 의미와 정서를 산출하는 까닭에 표현에 가담한 언어들이 긴밀하게 배열되어야만 명확한 인식을 얻는다. 이처럼 시의 형상화 과정에 요구되는 언어들은 무엇보다 의미와 정서를 십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언어들 사이의 충돌도 없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항용 비유나 상징, 리듬 등의 표현방법이 요구된다.
그렇다면 나는 시로 무엇을 쓸 수 있으며, 어떻게 써야 할까. 나는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 즉 현 세계가 가장 확실한 나의 시적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살아가면서 겪은 것, 아는 것을 서정이 있는 언어로, 곧 시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모든 삶은 기본적으로 시간을 전제로 한다. 삶에는 그것의 바탕이 되는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내가 지금까지 살아왔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 공간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도시들이다. 돈이 알 수 없이 굴러다니고 있는 도시들과, 그것들 사이에 자리해 있는 여러 움직임들이 나와 마주하고 있는 세계의 실재라는 뜻이다. 아직도 내가 그런 세계로 휩쓸려가고, 그런 세계에 부딪치고 있다면 나는 우선 그런 세계에 관한 것들을 써야만 하지 않겠는가. 따라서 나는 현재의 나의 세계, 그리고 그 속의 사람 및 사물 등 여러 존재들과 현상들에 관해 진지하게 사유하고, 사유한 것을 정확한 언어로 표현하는 시를 쓰려고 한다.
그런 뜻에서 본고에서는 <카페, 가난, 비>, <소외와 번민>, <시간의 색깔>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 내 시를 통해 내가 의도한 특징들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이런 정리가 내 시를 완벽하게 대변하지는 못하겠지만 커다란 줄기만은 드러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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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 2012-02-24
시인의 말
모든 삶은 기본적으로 시간을 전제로 한다. 삶에는 그것의 바탕이 되는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내가 주로 살아왔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 공간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도시들이다.
도시에서 도시로 들어가는 길을 따라 내가 출퇴근하는
쓸쓸한 체제
말들이 여러 곳에 흩어져 있다.
트위터, 페이스북, 블로그, 카페, 핸드폰,
시……
말들은 사람을 부르고 말 밖에서 사람이 버려진다.
“말이 빠진 곳, 아무것이 없으면 어떠리”라고 어느 시인은 표현하였지만.
돈이 알 수 없이 굴러다니고 있는 도시들과, 그것들 사이에 자리해 있는 여러 움직임들이 나와 마주하고 있는 세계의 실재라면 나는 우선 그런 세계에 관한 것들을 써야만 할 것이다. 말을 알아 간다는 것이 고달프지만.
말로 표현해야 할 사정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말로 표현하여 사정이 제대로 인식되고 새로워진다면 좋겠는데…….
말은 요구와 충당으로 그 형태가 드러난다. 내가 표현한 말이 나와 마주하고 있는 세계에서 시로 남을지 무엇이 될지 알 수 없지만.
2012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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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4. 03:06.메. 박석준-시집(이은봉교수).hwp (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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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010-10-06 오후 2:36. 목포. 박석준 43kg. IMG_7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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